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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에서 1 ㅣ 미도리의 책장 6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시작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대략 천년 후 66초라는 마을이 있다.
아니 그냥 먼 미래라고 하자.
사람들은 모두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으며 주인공 사키는 곧 전인학교에 진급을 해야 하는 소녀이다.
어른들은 66초 마을 외곽에 둘러쳐진 팔정표식 밖으로 어린이들을 나가지 못하게 무서운 이야기를 한다.
전설 같은 이야기가 사키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떠돈다.
주력(초능력)이 없는 어린이가 팔정표식 밖으로 나갈 경우 악귀나 업마에게 잡혀간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어린이도 감히 팔정표식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우여곡절 끝에 전인학교 입학에 관련 된 의식을 치룬 사키,사토루,슌,마리아,마모루는 전인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5명이 한 반이 되어 여러가지 경험을 하게 된다.
하계 캠프를 떠난 사키 일행은 유사미노시로라는 특이한 생명체를 잡게 되고 평화롭기만 하던 66초에 종말을 알리는 서곡을 듣게 된다.
그리고 요괴쥐에게 추격 당하던 일행은 사키와 사토루를 남기고 헤어지게 된다.
그들은 요괴쥐들 간의 전쟁에 휩싸이게 되고 그들의 운명은 점점 미궁속으로 빠지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슌...
그리고 66초 최고 기관인 윤리위원회의 의장인 도미코를 만나게 된 사키는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되고 그토록 무서워 하던 악귀와 업마의 정체를 알게 된다.
사키에게 점점 다가오는 어둠의 그림자는 슌을 뺏어가고 또 마리아와 마모루를 사라지게 한다.
슌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사키와 사토루는 엄청난 시련을 만나게 되는데...
기시 유스케의 신세계에서는 놀라운 소설임이 분명하다.
그의 상상력은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신세계에서는 드보르작의 신세계라는 교향곡이 울려 퍼진다.
기시 유스케가 과연 드보르작의 신세계에서 모티브를 빌렸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전형적인 일본인 특유의 상상력이 거침없이 발휘된다.
신세계에서는 한편의 애니메이션과 같은 느낌이다.
일본 소설이나 만화 혹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바로 작가들의 무한한 상상력이다.
"상상력. 그것이야 말로 모든 것을 바꾼다." 라는 말로 기시 유스케는 신세계에서의 대미를 장식한다.
그의 상상력은 대단하다.
아마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같은 분위기도 많이 난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은 인간의 본질과 인류와의 관계 그리고 지구라는 하나의 행성을 모체로 하고 인간의 탐욕이나 거짓을 비유적으로 표현해 낸다.
신세계에서는 인간이 꿈꾸는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과 그에 대한 거짓과 탐욕을 이야기 한다.
소설 내용을 너무 언급하면 다른 독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워 진다.
인간은 인간 즉 자신의 유토피아를 위해서 거침없이 주변을 훼손하고 바꿔버린다.
그게 인간의 본성인가?
그리고 인간은 항상 지성의 존재라 자부하며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지기를 원한다.
그리고 만물의 영장이라며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 앞에 군림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인간이 영위하는 유토피아를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것도 배제시킬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일말의 양심의 가책 조차 느끼지 못한다.
신세계에서 인간들은 주력 즉 초능력을 사용하여 지구를 지배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을 추종하고 따르는 노예인 요괴쥐는 인간들의 주력 앞에 신을 모시듯 경배하고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요괴쥐에게 고마움은 고사하고 조금만 잘못하면 요괴쥐 콜로니(하나의 민족 개념의 식민지)를 순식간에 말살 시켜버린다.
그렇게 인간은 착하고 선한 척 하는 이면에 악마의 본성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서 같은 인간들끼리의 전쟁이나 살인도 거침이 없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정세도 그러했고 과거 역사만 봐도 피로 얼룩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과연 전쟁을 하고 살육을 하는 인간은 올바른 가치 판단을 내리고 있을까?
어릴 때부터 받아온 교육과 환경이 주는 영향으로 우리는 나름대로의 판단을 내리고 정의를 내린다.
그리고 그 판단과 정의에 의거해서 전쟁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받아온 교육이 올바른 교육이었을까?
유교나 불교 또는 기독교에 기반되어온 우리의 역사와 윤리관은 과연 정의롭고 바른 길로 가고 있을까?
신세계에서는 이런 인간의 모순을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물론 소설은 소설일 뿐이지만, 한가지 예로 천년 후 인간세계는 이성간의 교제는 성년이 되어야 할 수 있고 미성년자는 동성애를 강조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관념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기시 유스케의 소설에서는 가능하다. 바로 상상력이 모든 것을 바꾸기 때문이다.
정말로 천년 후에는 그런 모습이 존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 누구도 천년 후에 가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진실을 끝까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신세계에서의 천년 후 지구의 모습은 인간 스스로가 자멸한 사회이다.
주력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서로 싸우고 죽이다가 결국에는 인간 사회의 기초를 무너트리고 그 동안 쌓아온 지식과 관념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것이다.
지금의 우리 모습도 그러하다. 그러한 모습을 기시 유스케는 신세계에서 우화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는 인간이 아닐까 한다.
지구를 가장 오염시키고 훼손하는 종족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주제로 해서 많은 소설과 영화 그리고 애니메이션이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종말을 꿈꾸는 어느 애니메이션의 악당의 이론은 바로 인간이 모두 사라짐으로 즉 파괴가 됨으로 새로운 창조가 일어난다는 이론이다.
너무 깊게 생각할 필요도 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는 별로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깊게 생각함으로 세상을 비관적으로 살고 인간을 삐뚤게 볼 필요는 없다.
자각하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입과 손이 근질거린다.
신세계 마지막에 놀라운 반전을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가 힘들다.
과연 사키는 모든 진실을 알아내고 그녀에게 드리워진 어둠들을 모두 이겨낼 수 있을까?
950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께의 책을 보면서 지루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신세계에서는 소재에 있어서도 그렇고 기시 유스케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과 그리고 반전에 있어서도 독자를 사로 잡기 때문이 아닐까?
몇 일 동안 잠 못 이루며 정말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이게 바로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인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