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박경리씨라고 하면 단연 토지가 생각이 난다.
언제였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소설 토지보다는 드라마 토지를 먼저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최근작이 김현주 주연의 드라마로 기억한다.
그때 박경리씨는 모든 인터뷰를 거절한 걸로 유명했었다.
그래서 박경리씨를 알게 되었고 소설 토지의 방대한 분량에도 너무 놀랐다.
아마 21한권인가? 16권인가 했었는데 선뜻 읽어 볼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 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김약국의 딸들도 생각난다.
문제는 내가 박경리씨 작품을 읽어 본 게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나의 독서습관이 편식하는 편이라서 그런가 보다.
요즘이 많이 고쳐가고 있지만, 좋아하는 소설류가 아님 선뜻 손을 뻗지 않는다.
좋은 기회에 내 인생 첫 박경리씨 작품으로 그분의 유고시집이 선택 되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제목에서 보이듯 그분의 삶의 종착역에서 얻어진 시집이란 걸 느낄 수 있다.
나이 20대에 이런 제목의 시집을 낸다면 아마도 불교용어로 해탈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분이 가시고 자제분이 어머니를 추억하며 시집으로 엮어낸 것이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39편의 시를 4장으로 나누어 엮어 놓았다.
나는 특히 맘에 드는 장은 2장 어머니이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된 박경리씨가 지나간 추억으로 어머니와 친.외 할머니를 회고한 시들이다.
사람냄새가 풀풀 난다.
좋은 추억들 보다는 굉장히 현실적으로 묘사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머니를 미인이라 했지만 나는 예쁘다고 생각해 본적이 한번도 없다.
라는 말이 생각난다.
일제시대에서 6.25라는 우리 민족의 가난한 시기에 살아가야 했던 박경리씨의 어머니.
악다구니같이 아껴 살지만 베품에 있어서는 유난히 손이 컸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세상을 떠날 나이가 된 박경리씨가 추억한다.
특히 소설이 아니라 시라는 면에서 더욱 특이하다.
아마도 산문시라고 해야겠지?
꼭 나의 할머니가 옛 이야기를 내게 들려 주는 느낌이 들었다.


읽는 내내 웃어보기도 하고 왜 이렇게 이야기를 할까? 하는 의문도 가져봤다.
그 의문점은 바로 30대나 40대에 쓴 게 아니라 80에 가까운 나이에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이해 못하는 부분이 생기는 것이다.
시라는 특성은(나도 잘 모르지만) 시를 쓴 사람의 환경이나 시대적 배경 그리고 연령도 충분히 공감하며 읽어야 한다.
소설보다 시는 감정이입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같이 감동하고 단어 하나 하나의 의미를 맘속에 새길 수 있다.
그래서 소설보다는 시가 어렵다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고 소설이냐 시냐 하는 이분법을 적용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시는 시 나름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시를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감성이 충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감정이 메마른 상태에서는 시의 그 어떤 단어도 이해가 되지 않고 내 것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가 좋은 것이다.
그래서 시집은 한번 읽고 책장에 넣어 두는 것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곳에 두고 자주 읽어야 한다.
그 이유는 읽을 때 마다 이해의 깊이나 받아들임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경리 유고시집은 내게 무척이나 소중해졌다.


마지막으로 시집 끝부분에 있는 박경리씨의 말년의 사진들이 아직도 눈에 아른 거린다.
정말이지 그녀의 모습은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무엇 때문에 인생을 그리 모질게 살고 남에게 못 할 짓을 하고 그렇게 사는가?
저승갈 때 무엇을 짊어 지고 갈려고 그렇게 욕심을 부리며 살고 있는가?
그녀의 모습에서는 정말이지 평범하면서도 일상적이며 어떤 면에서는 해탈의 모습도 보인다.
나도 그녀의 나이가 되면 세상을 그렇게 바라 볼 수 있을까?
참 곱다. 이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거 같다.
한 세상 살면서 무언가 남기고 가져 갈 것 없이 후회도 없이 다음 세상을 기다리는 초연한 모습.
그 모습은 예쁘다 이런 단어보다는 곱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얼마나 이루었냐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 왔느냐가 더 중요한 거 같다.
참 고운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려 보며 그녀의 시집을 덮는다.
그렇게 나는 박경리씨를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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