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의 바다 - 영혼의 일기
이해인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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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계절, 다정하기를

― 이해인 《해인의 바다》를 읽고

 

 

사람을 버리느니

사람에게 버림받게 하소서.

 

사람끼리 사랑할 때

내가 먼저 사랑하게 하소서!

- 141p

 

 

사계절은 해마다 돌아오지만 삶은 유한하다. 사랑하는 사람은 언젠가 떠나고, 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천천히 후회하고, 더 일찍 친절할 걸 그랬다고 자책한다. 이해인 수녀의 《해인의 바다》는 바로 그런 인간의 연약함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낸 기록이다.



 

이 책은 1976년 종신 서원을 준비하던 젊은 이해인 수녀의 일기와 여든이 된 수녀의 기록이 함께 담겨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흐름에 따라 읽어가다 보면 수도자로서의 신앙생활보다는 작은 자로서 한 인간의 내면이 먼저 보인다.



 

이해인 수녀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안에는 죽음에 관한 꿈 얘기, 하느님에 대한 사랑, 말로 상처받았던 일과 말을 너무 많이 해서 후회했던 일, 보육원에 갔을 때 어린아이 백여 명이 부모 없이 버려져 있다는 사실에 슬펐다는 얘기, 병원 일하며 좀 더 친절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 친절하게 대할 것을 간구하는 기도, 병원에서나 생활하면서 많은 이들의 죽음을 보며 드는 생각들이 담겨 있다.



 

타인의 칭찬에 허영심을 갖지 않고 비난에 상심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정작 일상에서는 사소한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필요 없는 말을 많이 했다며 자책하는 인간적인 연약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솔직한 연약함이야말로 이 책이 더욱 와 닿는 이유다. 수녀는 하느님 앞에서 결코 거룩한 척하지 않고 어린아이가 된다. 방이 너무 좁다며 조롱 속에 든 새와 다를 바 없다고 투덜대고, 시력이 약해져 가는 사실에 슬픔과 절망을 고백하며, 때로는 아무하고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우울과 행복의 감정을 하느님 앞에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연약한 내면을 가리려고 애쓰다가 내 발에 걸려 넘어졌던 날들이 떠올랐다.

 



수도자의 생활이 바빠서 글 쓸 틈이 없다고 하느님께 고백하는 모습은 웃음을 짓게 한다. 끝내 최선을 다하면 도와주신다는 믿음 하나로 “단 한 줄이라도 좋으니 살아 움직이는 글을 쓰게 해달라”고 매달리던 기도 속에서 대중에게 사랑받은 시집 《민들레의 영토》가 태어났지 않았을까.

 

 

92p

단 한 줄이라도 좋으니 좀 더 살아 움직이는 글을 쓰게 해 주십시오. 타인이 저의 당신을 더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글을.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어머니 이야기다. 어린 시절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여주고 장미와 치자 꽃잎을 말려 보내주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노년이 되어서도 그리움과 사랑으로 소환된다. 둥근달을 볼 때도, 꿈속에서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가득 찬다.




며칠 전 나에게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여든을 바라보는 엄마가 돌아가신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다가 그립다며 우셨다. 나이를 초월하여 어머니라는 존재는 삶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인가 보다. 수도자인 수녀의 이런 인간적인 모습을 보며, 모두 언젠가 소중한 이들과 이별할 날을 맞이하고 그렇기에 서로를 빠르게 용서하고 다정하게 대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도와달라는 그의 기도에 동참하게 된다.

 



나이 들수록 명랑을 다짐하고, 도움받을 준비를 하며 내 뜻을 포기하는 법을 배워간다는 노년의 모습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 험담하지 말고 검소하며 기쁘게 살라는 교황의 열 가지 결심을 방에 붙여두고, 작은 사탕 한 알을 건네며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 《해인의 바다》는 빠르게 성과를 내고 누군가를 이겨야만 성공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적합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던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게 한다.

 


나약함을 숨기지 않고 끝없이 반성하며 다정해지기를 간구하는 영혼의 일기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공통의 문제를 ‘일인칭의 다정’으로 환원하며 나 혹은 당신에게 ‘괜찮다’라고 ‘내일 다시 하면 된다.’라고 말해준다.

 

 

여든에 접어든 그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열 가지 결심을 방에 붙여 놓고 생활한다고 하니, 평생 낮고 작은 자로서 닦고 또 닦는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닐지 생각한다.

 

 

253p

<프란치스코 교황의 열 가지 결심>

 

험담하지 마십시오.

음식을 남기지 마십시오.

타인을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검소하게 사십시오.

가난한 이들을 가까이하십시오.

다른 이를 판단하지 마십시오.‘

생각이 다른 사람과 벗이 되십시오.

맹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자주 만나 대화하십시오.

기쁘게 사십시오.

 

 

<이런 독자라면 추천>

 

수녀님의 하루 안에서,

기도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어떤 기도가 하느님이 바라는 것인지.

기도란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준다.

 

이해인 수녀님이 하느님을 만나고 음성을 들은 이야기도 나오는데, 어느 때에 어떤 말로 만나고 들었는지 하느님이 궁금한 독자라면 읽어보기를 권한다.

 

 

 


<읽은 후 궁금한 점>

만리향의 향기 (만리향이 뭔지 몰라서 검색했다. 아주 예쁜 꽃은 아니었다. 꽃은 작은데 향이 강하다고 한다. 수녀님은 책에서 만리향의 향기를 은은하고 달콤하다고 표현한다. 향을 직접 맡아보고 싶다.)



* 캐스리더스 9기로 책을 받아 쓴 솔직한 서평입니다.


살아갈수록 단순한 것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됩니다. - P10

고운 난초 꽃을 드리고 싶은 어머니. 언젠가 바닷가에서 함께 조개껍데기를 주우며 저와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시던 어머니. 어릴 적에는 진한 봉숭아 물로 제 손톱을 빨갛게 칠해 주셨고, 소녀가 되었을 때에는 하얀 치자 꽃잎과 장미 꽃잎을 말려 편지와 함께 보내 주시던 어머니. - P38

사람을 버리느니
사람에게 버림받게 하소서.

사람끼리 사랑할 때
내가 먼저 사랑하게 하소서! - P141

단 한 줄이라도 좋으니 좀 더 살아 움직이는 글을 쓰게 해 주십시오. 타인이 저의 당신을 더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글을.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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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의 바다 - 영혼의 일기
이해인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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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의 하루 안에서,
기도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어떤 기도가 하느님이 바라는 것인지.
기도란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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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7 - 박경리 대하소설, 5부 2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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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7 - 박경리 대하소설, 5부 2권



 




토지 17권은 영원할 것 같은 암흑기 속에서 다가올 일본 패망을 예견하고 독립을 열망하던 인물들의 목소리가 생생히 담겨 있다.

 


‘열등감’과 ‘불안’ 그리고 ‘신분 굴레’가 주요 요소로 다뤄진다.

 




전쟁의 말기에 접어든 1941년, 사람이 모이는 자리마다 앞으로의 시국을 예견한다. 절망과 희망을 오고 가는 사람들. 종전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성환할매의 목소리를 통해 또렷이 드러난다.



“우리 강산도 돌아올 게고 수많은 그 혼백들도 돌아 올 게야.” (410P)

 

 


주요 요소로 다뤄지는 ‘열등감’

 

영광과 양현은 자신들의 출생 배경 때문에 늘 마음 바닥에 지울 수 없는 슬픔과 열등감을 안고 살아간다. (277p, 288p)

 

일동네와 홍성숙이 상대가 싫다는데도 자꾸 혼사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도 바로 신분적 결핍과 열등감을 ‘결혼’이라는 수단을 통해 세탁하거나 보상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소림이 손등에 흠집이 있음에도 부유한 집안 덕에 의사인 허정윤과 결혼한 것처럼(59p), 이들에게 결혼은 순수한 결합이 아니라 자신의 신분적 약점을 가리거나 상대방의 명성과 가문을 빼앗아 오기 위한 ‘욕망의 수단’일 뿐이다.

 





설 땅이 없는 이들은 ‘불안’을 깔고 산다.

나라를 잃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통 속에서 미래는 막연하기만 하다. 공기 같이 깔린 불안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서 여유를 빼앗는다. 연학이 귀남네의 광란을 보고 “와 이렇노?”(92p)라고 한 것처럼, 일제 치하의 고된 삶은 사람들을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든다.

 


일동네가 한복의 딸 인호에게 억지 행패를 부리며 혼사를 요구하고, 영호네 집안의 과거(살인 죄인 집안 내력)를 후벼파는 악행(392p)을 저지르는 것도 이 불안과 여유 없음이 극단적인 ‘광기’와 ‘이기심’으로 표출된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 내 자식을 안정된 곳에 밀어 넣기 위해서 상대의 상처를 헤집어서라도 억지 결혼을 시키려는 것이다.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따듯한 시선과 희망도 깃들어 있다.

환국이 주저앉은 강혜숙을 보며 “상처받은 새 같아서 꽉 껴안아 주고 싶었다”(34p)라고 느끼는 연민의 마음과 세 늙은이가 부엌에 모여 음식을 만들며 모처럼 생활이 살아나 “꽃이 되는 것 같았다.”(422P)라는 설렘을 담은 모습에서 드러난다. 부모라는 굴레와 핏줄이라는 단단한 끈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 했던 것도 어쩌면 살아남으려는 민초들의 질긴 생명력을 말하려는 것이 아닐는지.

 


더하기))  ₍ᐢᴗ˔ᴗᐢ₎

 



다시 ‘결혼’ 이야기로 돌아가서,


17권에서는 결혼시키려는 쪽과 그것을 거부하는 쪽을 그린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왜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일까?



 

기성세대(홍성숙, 일동네)가 권하는 결혼은 당사자의 상처나 운명을 보듬어주는 연민이 없다. 오히려 상대방을 억지로 틀에 맞춰 주저앉히려는 또 다른 ‘인간의 굴레’이자 감옥이다. 인호가 일동네의 행패와 집안의 싸움을 보고 한복에게 “그만 머리 깎고 중이 될 것”(392p)이라고 저항하는 것이나, 양현이 결혼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은 기성세대가 억지로 씌우려는 시대의 굴레를 거부하겠다는 새 시대의 목소리이다. 나라를 잃은 ‘불안’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열등감’과 ‘신분적 결핍’을 타인을 이용해 보상받으려는 기성세대의 비정한 욕망과 이기심이 여기서 드러난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 다산에서 책을 받아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아버지를 모를 때 이상하게 나는 내 자신에 대해서도 알 수 없게 되는데, 막연하다는 것은 불안이야. 이 기분을 자네는 모를 거다."
"알어."
"김기성을 만날 때 내 신경이 곤두서는 것은……. 그들처럼 우리도 피해자냐, 아니면 가해자냐, 혼란스러워. 까닭 없이 당황해지고 설 자리 잃은 사람처럼 막연해지고, 그놈은 번번이 내 불안의 불씨가 되거든. 그럴 때 내 꼴이란 찻간에서 자리를 못 잡아 허둥대는 노파 같단 말이야. 아주 기분이 나빠."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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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7 - 박경리 대하소설, 5부 2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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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암흑 속에서 다가올 독립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절망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여러 인물 군상이 나와서 아주 들었다 놨다 해서 아주 재밌는 1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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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 - 우리가 서로를 적이라 믿게 만드는 마음의 함정
커트 그레이 지음, 제효영 옮김 / 김영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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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 / 커트 그레이 / 김영사

 





지은이 : 커트 그레이

심리학 및 신경과학과 교수. 도덕심리학 분야 세계적 석학. 의학사를 공부한 뒤 사회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내 지옥에 빠져 있을 때는 나만 보인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대체 왜 그렇게 주장하는지 이해하고 싶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보라. '저 사람은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112p)

 

 

혐오를 연대하다

오늘날 인류는 ‘분노 타겟팅’으로 혐오를 연대한다. 바다 건너 미국의 낙태 찬반 시위 현장부터 한국의 정치에 이르기까지, 나와 의견이 다른 상대를 대하는 대중의 ‘심판’은 살벌하기까지 하다. 대한민국 정치 지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공방을 두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을 각각 지지하는 이들이 서로를 향해 "뇌가 없는 좀비", "지능이 오염된 집단"이라 모멸하는 세태는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상대를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두개골 내부가 텅 빈, 혹은 악인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도덕심리학자 커트 그레이는 이 책에서 끝나지 않는 전쟁을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진화론적 역사에서 인간은 지구를 지배한 사냥꾼이 아니라, 언제 맹수가 튀어나올지 몰라 떨던 연약한 ‘먹잇감(피식자)’이라고. 인간이 도덕성을 진화시키고 집단을 이룬 진짜 목적은 타자를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험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피식자들의 사회에 이토록 분노가 들끓는가? 저자는 인간의 도덕적 판단과 격분이 상대의 악의가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협받는다는 극심한 '두려움'과 '위험성의 주관적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상대방의 가치관과 선택이 자신이 평생 일구어 온 체제와 삶의 안전망을 무너뜨릴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본능적으로 적대시하고 편을 가르며 분노하는 것이다.

 








'도덕적 정형화'

이 책의 후반부를 관통하는 내용은 '도덕적 정형화‘이다. 인간의 뇌는 복잡한 인과관계를 싫어하는 게으른 인지 체계를 지녔다. 갈등이 발생하면 두 가지 범주, 즉 '사고 능력을 갖춘 사악한 가해자'와 '감각 기능만 가진 무력한 피해자'로 구분한다.

 

이 도덕적 정형화는 "피해자는 비난 받을 리 없고, 가해자는 고통을 느낄 리 없다(340p)"는 인지 왜곡을 일으킨다. 우리가 특정 집단을 '사악한 가해자'로 규정하는 순간, 우리 뇌는 그들이 느끼는 감정과 고통, 심지어 그들의 인지 능력마저 지워버린다.

 

미국 사회에서 여전히 ’낙태 논쟁‘이 극단으로 치닫는 이유가 정확히 여기에 있다. 낙태 반대 진영은 상대방을 '태아라는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잔인한 가해자(=살인자)'로 정형화하고, 낙태 찬성 진영은 상대를 '여성의 신체 주권과 인권을 짓밟는 가부장적 가해자'라고 주장한다. 이 ’도덕적 정형화‘는 낙태를 고민하는 여성의 절박한 고통도, 생명의 가치를 지키려는 이들의 두려움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상대방을 악인이라 치부하며 분노한다.

 




인종 차별, 그리고 이주민 노동자

물리적 폭력과 질병이 극적으로 줄어든 현대사회에서, 석기시대의 뇌를 지닌 인간은 오히려 위험을 감지하는 센서의 민감도를 극도로 끌어올린다. 저자는 세상이 안전해질수록 사소한 위협도 거대하게 받아들이는 이 현상을 통해 현대의 이주민 노동자 혐오와 인종 차별을 설명한다.

 

일부 원주민들이 이주민 노동자를 향해 쏟아내는 인종 차별적 분노는 어디서 오는가? 이주민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고, 지역사회의 치안을 무너뜨리며, 고유의 문화를 오염시킬 것이라는 주관적 공포를 상상하며 시작된다.

 

"도덕적 직감은 합리적 추론을 가볍게 압도한다. 그것은 마치 객관적 안전을 100% 인지하더라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 투명한 스카이워크 위에 선 것과 같다. 

(215p)“

 

객관적인 통계나 데이터로 ’이주민 노동자가 경제에 기여한다‘ 라는 팩트를 제시해도 두려움에 사로잡힌 뇌는 ’나를 교란하기 위한 거짓 정보‘ 로 인식한다. 두려움이라는 직관은 사실을 이긴다. 인종 차별주의자들은 자신이 차별받는 취약한 피해자라고 믿게 된다. 모든 갈등의 당사자들이 필사적으로 자신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포장하는 이유다.

 



일인칭으로 연대하라! 취약성과 경험담으로.

책의 마지막 3부 전체는 분열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사실을 내려놓고, ’일인칭 취약성’과 ‘일인칭 경험담’을 공유하라고 강조한다.

 


좁혀지지 않던 극단적 대립을 녹일 수 있는 것은 통계학이나 법리적 논쟁이 아니다. 내가 왜 두려움을 느끼는지, 삶 속에서 어떤 상실과 고통의 경험이 나를 이토록 방어적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일인칭 서사'를 공유할 때 비로소 상대방의 가로막힌 뇌가 깨어날 것이다.

 


낙태를 반대하는 이가 과거 낙태 후 겪었던 깊은 상실감과 영적 고통의 경험담을 털어놓을 때, 낙태를 찬성하는 이가 원치 않는 임신으로 삶이 송두리째 무너질 뻔했던 절박한 취약성을 고백할 때, 비로소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주민 노동자가 고국에 남겨진 가족을 위해 먼 이국땅에서 매일 밤 눈물 흘리는 삶의 서사를 공유할 때, 그들을 향한 인종 차별의 시선은 옅어진다.

 


자신의 가장 약한 면(취약성)을 기꺼이 드러내는 일은 나를 해치려던 포식자의 손에서 무기를 떨어뜨리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연대의 기술이다.

 

"이야기는 상대방을 단순한 악마가 아닌, 걱정하고 염려하며 고통받는 3차원적 인간으로 소환해 낸다

(412p)."

 

서로의 경험담이 겹치는 지점에서, 상대방은 마침내 "뇌가 없는 좀비"에서 "나처럼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지키려다 상처 입은 삼차원적 인간"으로 바라보게 된다.

 






도덕도 겸손해야지.

『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의 마지막 지점은 '도덕적 겸손함‘이다. 겸손은 인간 궁극의 미덕이라지만 도덕까지 겸손 하라고?

 

저자가 말하는 도덕적 겸손함이란 내 신념을 포기하거나 비굴해지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전체가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하고, 나와 격렬히 부딪치는 저편의 완고한 판단 역시 ‘소중한 가치를 보호하고 안전하게 살고 싶다’라는 인류 공통의 피식자적 본능에서 나온 것임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정치적 탄핵 정국에서, 낙태 논쟁에서, 이주민 문제에서 인류는 저마다 다른 위험의 신호를 보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한쪽은 권력의 독주와 생명의 경시라는 것을 보고 있고, 다른 한쪽은 헌정 중단과 여성의 억압이라는 것을 보며 두려워한다. 이것은 선과 악의 전쟁이 아니라, 단지 '서로 다른 위험'을 바라보는 충돌일 뿐이다.

 

서로를 향한 적대와 혐오를 거두고, 저들이 응시하는 ‘일인칭 두려움’의 실체를 묻는 순간 분노는 점점 옅어지지 않을까?

 

"진보주의자가 보호하려는 소외 계층의 취약성과 보수주의자가 보호하려는 사회질서의 취약성은 결코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다. 

(478p)“

 

적대와 혐오가 굳어진 이 분열의 시대에, 도덕까지 겸손하라는 저자의 말은 타인을 들여다보고 수용하게 만들어 준다. 

내 지옥에 빠져 있을 때는 나만 보인다.

 

 

 


 

*책을 제공 받아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 위험성의 인식이 도덕성을 이해하는 마스터키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것이 정치적 분열뿐만 아니라 모든 도덕적 갈등을 이해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1 - P19

인구수가 엄청난 미국은 물론 다른 어떤 나라도 특정한 정치 진영이 몽땅 사악할 수는 없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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