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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7 - 박경리 대하소설, 5부 2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평점 :

토지 17 - 박경리 대하소설, 5부 2권

토지 17권은 영원할 것 같은 암흑기 속에서 다가올 일본 패망을 예견하고 독립을 열망하던 인물들의 목소리가 생생히 담겨 있다.
‘열등감’과 ‘불안’ 그리고 ‘신분 굴레’가 주요 요소로 다뤄진다.
전쟁의 말기에 접어든 1941년, 사람이 모이는 자리마다 앞으로의 시국을 예견한다. 절망과 희망을 오고 가는 사람들. 종전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성환할매의 목소리를 통해 또렷이 드러난다.
“우리 강산도 돌아올 게고 수많은 그 혼백들도 돌아 올 게야.” (410P)
주요 요소로 다뤄지는 ‘열등감’
영광과 양현은 자신들의 출생 배경 때문에 늘 마음 바닥에 지울 수 없는 슬픔과 열등감을 안고 살아간다. (277p, 288p)
일동네와 홍성숙이 상대가 싫다는데도 자꾸 혼사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도 바로 신분적 결핍과 열등감을 ‘결혼’이라는 수단을 통해 세탁하거나 보상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소림이 손등에 흠집이 있음에도 부유한 집안 덕에 의사인 허정윤과 결혼한 것처럼(59p), 이들에게 결혼은 순수한 결합이 아니라 자신의 신분적 약점을 가리거나 상대방의 명성과 가문을 빼앗아 오기 위한 ‘욕망의 수단’일 뿐이다.
설 땅이 없는 이들은 ‘불안’을 깔고 산다.
나라를 잃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통 속에서 미래는 막연하기만 하다. 공기 같이 깔린 불안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서 여유를 빼앗는다. 연학이 귀남네의 광란을 보고 “와 이렇노?”(92p)라고 한 것처럼, 일제 치하의 고된 삶은 사람들을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든다.
일동네가 한복의 딸 인호에게 억지 행패를 부리며 혼사를 요구하고, 영호네 집안의 과거(살인 죄인 집안 내력)를 후벼파는 악행(392p)을 저지르는 것도 이 불안과 여유 없음이 극단적인 ‘광기’와 ‘이기심’으로 표출된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 내 자식을 안정된 곳에 밀어 넣기 위해서 상대의 상처를 헤집어서라도 억지 결혼을 시키려는 것이다.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따듯한 시선과 희망도 깃들어 있다.
환국이 주저앉은 강혜숙을 보며 “상처받은 새 같아서 꽉 껴안아 주고 싶었다”(34p)라고 느끼는 연민의 마음과 세 늙은이가 부엌에 모여 음식을 만들며 모처럼 생활이 살아나 “꽃이 되는 것 같았다.”(422P)라는 설렘을 담은 모습에서 드러난다. 부모라는 굴레와 핏줄이라는 단단한 끈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 했던 것도 어쩌면 살아남으려는 민초들의 질긴 생명력을 말하려는 것이 아닐는지.
더하기)) ₍ᐢᴗ˔ᴗᐢ₎
다시 ‘결혼’ 이야기로 돌아가서,
17권에서는 결혼시키려는 쪽과 그것을 거부하는 쪽을 그린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왜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일까?
기성세대(홍성숙, 일동네)가 권하는 결혼은 당사자의 상처나 운명을 보듬어주는 연민이 없다. 오히려 상대방을 억지로 틀에 맞춰 주저앉히려는 또 다른 ‘인간의 굴레’이자 감옥이다. 인호가 일동네의 행패와 집안의 싸움을 보고 한복에게 “그만 머리 깎고 중이 될 것”(392p)이라고 저항하는 것이나, 양현이 결혼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은 기성세대가 억지로 씌우려는 시대의 굴레를 거부하겠다는 새 시대의 목소리이다. 나라를 잃은 ‘불안’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열등감’과 ‘신분적 결핍’을 타인을 이용해 보상받으려는 기성세대의 비정한 욕망과 이기심이 여기서 드러난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 다산에서 책을 받아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아버지를 모를 때 이상하게 나는 내 자신에 대해서도 알 수 없게 되는데, 막연하다는 것은 불안이야. 이 기분을 자네는 모를 거다." "알어." "김기성을 만날 때 내 신경이 곤두서는 것은……. 그들처럼 우리도 피해자냐, 아니면 가해자냐, 혼란스러워. 까닭 없이 당황해지고 설 자리 잃은 사람처럼 막연해지고, 그놈은 번번이 내 불안의 불씨가 되거든. 그럴 때 내 꼴이란 찻간에서 자리를 못 잡아 허둥대는 노파 같단 말이야. 아주 기분이 나빠."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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