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의 미래
박광일 지음 / 렛츠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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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분명히 좋은 공무원들이 많다. 공동체의 공공복리증진을 위해서 열정적으로 몸을 던지며 헌신하는 존경스러운 공무원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공동체의 이익보다는 공무원 자신의 이익에 훨씬 더 주의를 기울이며, 가뜩이나 어려운 시민들의 삶을 더욱 곤란하게 만드는 공무원들도 존재한다. "공무원과 함께 일하게 참 힘들다"는 이야기는 여기저기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곤 한다. 물론 어느 집단에나 사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오래된 시스템의 문제로 더 나은 공적활동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진단하고 개선한다면, 공직자들이 직면한 현실적 문제들을 짚어보고 구체적인 개선 방향을 모색한다면, 공직자들의 업무성과를 개선함으로써 더욱 풍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행정의 미래'는 공직자의 눈으로 바라본 행정의 현실과 미래 이야기다. 행정고시 재경직 출신으로 25년간 고용노동부에서 공직생활을 이어온 저자가 현장의 눈으로 바라본 행정의 현실을 말해준다. 현직 공직자로서 현실의 문제를 다루기 껄끄러운 부분이 있을법도 하나,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화법으로, 현실의 사례와 연결된 한국행정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나아가 행동주의 경제학, 데이터 분석, 게임이론을 바탕으로 한국행정이 나아갈 길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행정의 현실과 미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일부 공직자들의 문제적 행태에 대한 원인을 짚어볼 수 있었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 전략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행정의 문제뿐만 아니라 내가 현실에서 만나볼 수 있는 문제 상황을 진단하고 개선할 수 있는데에도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정의 개선 방향과, 나의 성장방향을 짚어보는 의미있는 독서의 시간이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구체적'이며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오늘만 대충 수습하자'라는 관가의 유행어를 예로 들기도 하고, 정부가 '봉이 김선달 노릇'을 한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논란이 되었던 문제적 민자사업을 분석하고 2017년의 지방관서 성과관리계획을 낱낱이 비판하기도 한다. 이러한 구체적 표현과 현실적 사례들이 읽는 흥미와 몰입도를 더했다. 행정인이 되고자 하는 분들께, 행정현장에 몸을 담고있는 분들께, 행정현장에 대한 이해와 현실적 문제해결방향을 배워보고자 하는 분들께 의미있고 흥미로운 독서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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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헤맬 때 몸이 하는 말들 - 자존감이란 몸으로부터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디아 지음 / 웨일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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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존감. 자아존중감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이 단어가 요즘의 화두다. 힘든 시대를 견디고 있는 현대인들의, 어떤 위기와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꿋꿋하게 버텨내고 끝내 행복을 향해 나아가기를 기대하는 염원이 담겨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 책 '마음이 헤맬 때 몸이 하는 말들'을 읽고 그보다 더 중요한 감각을 놓치며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자문하게 되었다. 바로 '자기 존재감'이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확신을 느끼는 상태다. 이게 무슨 소린가? 내가 세상에 없다면 이 글을 쓰고 읽고 있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나는 생각하고 있고, 고로 존재하고 있는 거지. 암 그렇지. 정말 그런가?

몸을 상실한 사람들
네모난 TV를 통해 세상과 만나는 시대를 지나, 네모난 모니터가 그 자리를 차지하더니, 이제는 손바닥만한 네모를 거쳐 사람과 세상이 만난다. 단어는 있지만 표정은 없고 언어는 있지만 느낌은 없다. 설명은 난무하고 공감은 전무하다.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의 대화는 그렇다. 고립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연민과 관심은 오지랖이 되었으며 해석과 판단과 생각의 대향연에, 경험과 감각과 느낌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 모든 과정속에서 근본적으로 소외된 것은 단연 우리의 '몸'이다. 몸으로 경험하는 와중에도, 감각하며 느끼지 않고, 생각하며 판단한다. 그 모든 과정속에서 우리의 몸은 '존재'가 아닌 '수단'이 된다.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의 원천인 몸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스마트폰, 자극으로의 도피
최근, 건널목의 바닥면에 신호등의 색상을 표시하는 'LED 바닥신호등'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스마트폰에 주의를 빼앗기는 바람에 신호등을 못보고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사고가 증가했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대응책의 일환이라고 했다. 아이디어가 신기하면서도 '이렇게까지 해야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나도 사실은 남말을 할 처지가 못된다.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을 앞두고도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에 주의가 팔려 시간을 낭비하고는 한다. 중요하거나 시급하지 않은 인터넷 서핑같은 사소한 자극에 주의를 빼앗기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이와 관련된 오래된 경향성을 인지하게 되었다. '몸의 불쾌한 느낌'이 '자극으로의 도피'로 이어지는 패턴이다. 당장의 불편한 느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자극으로 도망치게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당면한 일을 잘 하고 싶다는 부담감도 포함된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시간낭비로 이어지며 오히려 완성도를 떨어트리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게되는 것이다. 

중독, 몸으로부터의 도피
42 몸 심리학자 크리스 콜드웰은 중독을 이렇게 정의한다. '중독성 물질을 복용하는 식의 행동 양태라기 보다 우리 몸이 참다운 세계를 경험하지 못하도록 그 직접 경험에서 벗어나는 움직임.'
 중독은 당장의 힘든 느낌을 마주하지 않게 한다. 몸에서 떠나와 잠깐의 휴식을 준다. 몸을 떠나면 어떤 감각이나 감정, 그리고 좋지 않은 정신 상태를 막을 수 있다. 불편한 느낌에 스위치를 끄는 것이다. 콜드웰은 이런 중독을 '일종의 유체이탈 경험이며 자아와 세계의 연결 플러그를 뽑아놓는 행위'라고 했다.

166 불편해진 몸의 감각이 싫다. 이 감각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몸에서 마음이 떠나기로 작정한다.먹고 마시는 순간 편안해진다. 쇼핑몰을 보고 있는 순간, 드라마에 빠져 있는 순간, 술에 취한 순간, 게임을 하고 있는 시간동안 맘껏 잊을 수 있다. 몸의 느낌을 떠나서 꽂히는 감각에 나를 맡긴다. 이런 도피성 감각추구가 지나치면 병이 되어 돌아온다. 우리는 수많은 문제를 스스로 만들고 있다.

168 우리가 폰을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폰이 우리를 작동시킨다. 빈 시간을 견디기 힘들다. 새로운 메시지, 새로운 뉴스는 몸-마음 연결을 끊임없이 방해한다.

저자는 중독을 몸으로부터의 도피와 연결한다. 중독행위 그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몸으로 경험되는 불편한 감각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자아와 세계의 연결 플러그'를 뽑아버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적극 공감하며 나는, 이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나의 부정적 습관에 선행되는 몸의 감각을 세밀하게 경험하려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고 이내 나를 인터넷 세계로 이끄는 몸의 불편한 느낌을 자각하게 되었다. 불안함, 두려움, 후회, 자책, 불만족과 같은 감정들과 연결된 몸의 느낌. 그것은 일종의 '신호'였다. 도망칠 필요도 없고, 외면해서도 안될, 몸의 목소리였다. 배가 고플 때는 먹었고, 과부하가 왔을때는 휴식을 취했다. 경험속에서 의미를 찾았고 막연한 불안을 구체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 갈피를 잡을 수 없을때는, 바로 여기에서 쉬었다. 숨이다. 숨에서 쉬었다.

숨에서 쉬기
185 숨이 들어오는 한 우리는 '살려지고' 있다. 수동형으로 쓴 것에 주목했으면 한다. 의식하지 않아도 숨이 우리를 살게 한다. 밥도 물도 없이 숨만 잘 쉬면 당분간은 살 수 있다. 숨이 살려준다. 참 고마운, 그러나 의문이 드는 시스템이다. 살아가는 실제 원동력은 그냥 제공된다. 왜?

189 실제로 숨만 잘 쉬면 기분 나쁜 상태에 덜 젖어 있고, 화나거나 짜증나는 감정에도 덜 휘둘린다. 이런 실용성 말고도 숨의 진짜 효용은 이것이다. 바로 '시선의 발견'이다.

몸과 의식을 연결시켜주는 한 줄기 바람. 그것이 나를 살리고 있다. 흔히들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것으로 '산소'를 꼽는데 실질적으로 우리를 살리는 것은 숨이다. 내가 굳이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묵묵히 숨은 나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나는 이 신비한 과정을 위해 무엇을 지불했던가? 그저 태어났을 뿐이다. 아무런 대가도 조건도 없이 숨은 나를 살려왔고 살리고 있으며 살려나갈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숨과 연결된 순간, 놓치고 살던 '감사함'이 존재를 드러냈다. 나는 숨을 건너 몸에게 안부를 물었고 몸은 숨을 통해 인사를 전했다. 숨을 지켜보며 몸과 만나는 시간동안은 판단도, 분별도, 비교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온전하게 수용하며 평화속에 쉬었다. 숨을 쉬며, 숨에서 쉬었다.

재즈, 요가, 그리고 산토샤
155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마일스는 그 화음을 실수로 인지하지 않았어요. 그에게 그 화음은 단지 그 순간에 나타난 현실일 뿐이었어요. ... 우리에게 중요한 건 성장하는 일이죠.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떤 상황에서든 마음을 활짝 열고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체험하는 것. 그리고 그 상황에 어울리는 건설적인 일을 해내는 것이니까요.

155 요가의 권고사항 중에 산토샤라는 개념이 있다. 산토샤는 이 순간 행복을 선택하고 지난 순간을 후회하지 않는 태도이다.

이번 독서는 삶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 또한 되짚어보게 만들었다. 책에 담긴 천재 피아니스트 마일스 데이비스의 일화와 '산토샤'를 통해서다. 마일스가 무대에서 <so what>을 연주하던 어느 날, 동료의 실수로 완전히 틀린 화음이 연주되었다. 이 때 마일스는 당황하지 않고 틀린 화음에 어울리는 멜로디로 바꿔 연주함으로써 순간을 완성했다.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재즈 속에서 요가를 발견할 수 있었던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나는 종종 타임머신을 탄다.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며 자책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망치며 불안해한다. 완벽한 악보를 떠올리고 완벽한 음정과 박자로 삶의 마디를 채우고자 하는 욕심에 빠져든다. 그 속에서 고통받는 것은 누구보다 나 자신이다. 완벽한 삶의 악보는 없으며, 나 혼자서 연주할 수 있는것도 아니다. 어떠한 화음이 주어지든 나만의 멜로디를 즉흥적으로 연주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생기있고 자유로운 삶의 태도가 아닐까? 지금부터 채워나갈 내 삶의 궤적에 늘 재즈와 요가, 산토샤가 함께하기를 기대해본다.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50 몸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식물이 햇볕 쪽으로 온몸을 향하듯이, 행복한 감정을 일으키는 쪽으로 몸을 돌려가며 산다.

몸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모습에서 출발하여 몸과 함께하는 삶에 이르기까지, 책에는 요가인의 눈으로 바라본 몸과 삶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일상의 언어로 쓰여져 있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직관적 지혜는 탐구할수록 깊어보였다. 생각하고 비교하고 분석하는 태도가 일상화되어있던 나에게, 몸과 함께하는 풍요롭고 부드러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나쁜 습관의 실행에 앞서 드러나는 몸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 함으로써, 자유로운 기쁨의 흐름을 열어낼 수 있었다.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내 마음이 헤메는 순간에도, 몸은 이미 충분한 지혜를 속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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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권력의 탄생 - 1%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권력 사용법
대커 켈트너 지음, 장석훈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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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가 시끄러운 걸 보니 완연한 선거철이다. 후보자의 이름에 맞춰 개사한 아이돌 노래가 들리고 원색의 점퍼를 맞춰입은 운동원들이 명함을 건넨다. 네임드 후보들의 경우는 어느정도 이력을 알고 있지만, 작년에 이사를 온 탓에 더더욱 상당수의 후보자들에 대해서는 어떤 신념과 가치를 갖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젯밤 읽어본 벽보를 떠올려보지만 대부분의 이미지는 이미 휘발된 것 같다. 조만간 공보물이 도착하겠지? 그 많은 정보들 중 나는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며 읽어나갈까? 이번 선거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나침반삼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예정이다.
"이 사람은 과연 '선한 권력자'가 될 것인가?"

쟁취하는 권력이 아닌, 주어지는 권력의 시대
10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 이후, 사회는 크게 바뀌었으므로 권력에 관한 낡은 정의에서도 우리는 벗어날 필요가 있다. 사고를 확장하여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특히 오늘날 사회연결망 속에 있는 타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권력을 정의할 수 있다면, 우리는 권력 역설의 문제를 더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35 이 정의는 타인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세상을 바꿔나간다는 우리 인간의 고귀한 사회적 본성을 반영한다.

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잡기위해 수면위에서, 물밑에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선거는 물론이거니와 직장 내에서, 집단 안에서, 심지어 연인 사이에서도 밀고 당기며  눈치게임을 벌인다. 저자는 이처럼 권력을 "사회연결망 속에 있는 타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한다. 즉 권력은 모든 사람의 일상 속에 존재한다. 흔히 권력을 마키아벨리적으로 정의하며 '강압적인 힘'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새로운 권력'은 이에 상반된다. 권력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p.99) 마키아벨리적 권력으로 타인을 억압하고 무시하며 권모술수를 부리다가는, 권력을 부여해준 원천인 공동체에 의해서 권력을 박탈당하게 된다. 권력남용과 갑질, 성범죄와 폭력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요즘의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들은 과연 이러한 결말을 몰랐을까? 자신들의 전횡이 결국 스스로의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까? 

바로 여기서 '권력 역설'이 드러난다. 권력의 유혹에 넘어가 충동적이며 비도덕적인 행동을 저지르며, 권력을 획득하게 만들어줬던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과연 권력에는 어떤 속성이 숨어있길래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또한 권력을 부여받는 이들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을까? 권력 역설에서 벗어나 권력을 지속할 수 있는 동인은 무엇일까? 권력남용의 피해자들은 어떤 문제들을 경험하게 될까? 그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책 '선한 권력의 탄생'은 이처럼 권력에 과한 다방면의 이야기를 담았다. '선한 권력'의 기반과 확장에 관한 풍성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시대의 권력자는 누가 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있는 분들께, 남용된 권력이 개인과 사회의 건강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께, 의미있는 독서의 시간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스토리텔링, 선한 권력을 지속하는 힘
135 스토리텔링이 좋으면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 (...) 좋은 스토리텔링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도모하고 집단생활의 스트레스를 덜어주기 때문이다. 즐거움과 경쾌함 그리고 웃음을 자아내게 함으로써 최대 선을 증진시킨다. 이처럼 도파민이 풍부하게 분비될 수 있는 이런 경험들을 통해 우리는 사회연결망에서 깊은 유대를 맺을 수 있다.

137 다양한 방식으로 측정한 결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일에 대해 그 심정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 있었던 사실을 담담히 묘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이로웠다. 스트레스와 불안 그리고 우울증의 정도가 완화되었던 것이다. 학생들의 경우엔 성적이 올랐다. 그리고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의 경우엔 살해T세포가 증가하고 건강 상태가 호전됐다.

이 책의 3장은, 권력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갖는 4가지 특성을 제시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고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읽어나갔다. 4가지 특성의 본질은 '타인에 대한 관심'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특히 '권력은 모두를 하나로 묶는 스토르텔링으로 유지된다'는 구절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정치인에서부터 오디션 지원자까지, 대중들의 지지를 받는 이들은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진 경우가 많다. 세상에 과연, 사연없는 삶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각자의 이유가 있고 삶의 서사가 있다. 문제는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어떻게 풀어낼 수 있는가다. 나 역시 나만의 서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중 마음에 드는 것은 인정하고, 불쾌한 기억들은 부정하고 회피하는 태도를 지닌채 살아왔다. 그리고 최근, '검열하지 않는 글쓰기'를 시작하며 내 삶을 관통해온 모든 서사를 온전하게 수용하는 과정을 통과하고 있다. 이를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이 나아지고 있으며 주변 사람들을 향해서도 한결 열린 마음으로 미소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나 자신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하기 위해서, 앞으로도 즐겁게 말하고 듣고 읽고 써나가야겠다고 다짐한다.

권력 남용의 잔인한 폭력, 무력감
202 만성화된 위협과 스트레스는 사람을 방어적으로 만들고 세상과 어우러질 수 있는 길을 차단한다. 수면, 성생활, 창의성면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신뢰에 바탕을 둔 상호작용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만성화된 위협과 스트레스는 우리 뇌에서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추구하는 일을 관장하는 부위를 망가뜨린다.

208 무력감을 경험했던 사람일수록 내성적이고 부자연스럽고 불안하다. 무력감을 느꼈던 사람일수록 큰소리는커녕 하고 싶은 말도 못하며 행동을 머뭇거린다. 권력이 우리를 충동적으로 내지르고 보게 만든다면, 무력감은 우리를 안으로 감아들게 만든다.

이 책의 5장은 '무력감의 대가'라는 제목아래, 권력의 박탈과 권력남용에 따른 무력감이 피해자에게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다룬다. 저자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무력감이 빚는 위협과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의 건강, 인지기능, 인간관계등 다방면에서 해를 끼친다. 삶의 질과 건강을 장기적으로 위협하는 것이다. 학교폭력, 갑질, 폭력범죄가 얼마나 나쁜 일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권력관계에서 타인을 대함에 있어서 조금은 더 예민해져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무력감에 의해 상처를 입은 이들은 건강함을 회복할 길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사회적으로 지지를 보내면서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들이 있다. 운동, 명상이나 사회적 지원 프로그램 등이 그것이다. 상처입은 이들을 위한 사회적 돌봄과 지지의 필요성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나의 '선한 영향력'을 위하여
책에는 이 외에도 선한 권력에 대한 다양한 직관적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특히 각 챕터의 말미마다 내용을 요약하여 풀어낸 섬세한 배려가 좋았다. 내가 타인에게 전하는 영향력과, 타인이 나에게 전하는 영향력의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게 된 소중한 성장의 기회였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한편으로 가해자가 될 가능성도 열려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타인의 마음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그에 앞서, 내 마음 깊은 곳의 울림에는 진정으로 공감하며 감응하고 있을까?  '선한 권력'의 원리를 상기하며, '악한 권력'의 폐해를 기억하며, 나 자신과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이름모를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건네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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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가 - 달라이 라마와 유전자의 생명토론
아리 아이젠.융드룽 콘촉 지음, 김아림 옮김 / 영림카디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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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너무나 당연한 수식이다. 하지만 혹자는 말한다. "1+1=귀요미"라고. 심지어 "3+3=귀요미, 귀, 귀, 귀요미" 라고. 하나와 하나가 만나서 둘이 된다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만들어진다면, 심지어 그것이 귀엽기까지 하다면 분명히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물론 위의 이야기는 철지난 애교에 불과하지만 이처럼 재미난 일이 세계에서, 우리 몸에서, 우리 뇌에서 벌어지고 있다. 바로, '창발성'의 세계다.

58 어떤 사물이 결합해서 부분의 합 이상이 되는 경우에 우리는 '창발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두뇌는 여러 세포들의 합일 뿐이지만, 세포들이 제대로 된 방식으로 한데 합쳐지면 마음이 창발한다.

두 개의 수소 원자에 하나의 산소 원자가 결합하면 개별적 원소의 특성을 뛰어넘는 '물'이라는 물질이 탄생한다. 생명의 근원이라 불리우는 귀한 존재다. 우리 몸은 어떤가? 개별적 세포 60조개가 모여서 생명력과 의식을 가진 한 사람의 인간을 만들어낸다.  두뇌에서 이뤄진 개별적 신경세포의 결합이 '마음'이라는 신비한 무한의 세계를 창조해낸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세포란 어떤 의미일까? 우리에게 의식이 있다면, 세포에도 의식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세포'에 연민과 관심을 보여아 하는가?

48 세포는 공空 개념과 비슷하다. 공이란 아직은 아무것도 없지만 가능성이 많은 상태를 말한다. ... 우리는 이 공이라는 개념을 명상에 활용해 애착도, 욕망도 없는 텅 빈 가능성만이 여러분에게 이로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실재를 생각할 때 여러분은 자동으로 욕망이나 애착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내가 가진 세포의 개념도 마찬가지다. 세포는 새로움과 혁신을 위한 가능성이다. 그리고 세포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세포라는 생물학적 개념이 불교의 공개념과 만난다. 이 책 '우리는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가'의 탐구 여정을 보여주는 일부분이다. 이 책의 첫 번째 저자인 '아리 아이젠'은 미국 에모리 대학교 생물학 교수다. 그리고 두 번째 저자인 '융드룽 콘촉'은 에모리 대학교에서 과학을 공부한 바 있는 티베트 출신의 승려다. 생물학자와 승려는 달라이 라마의 주선으로 '에모리-티베트' 프로젝트의 핵심멤버로 의기투합한다. 바로 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승려들에게 생물학을 가르치는 프로젝트다. 이 책은 그 과정을 담은 '생물학'과 '불교'의 만남의 기록이다.

23 달라이 라마는 우리 프로젝트가 티베트 불교의 이론과 실제를 현대 과학과 결합시키기를 바랐다. 특히 그는 현대 신경과학을 마음과 몸에 대한 고대의 지식과 결합해 오늘날의 세계가 겪고 있는 고통과 곤란을 덜었으면 했다. ... 우리는 같은 정보라도 관점을 바꿔 접근하면 그 정보를 탐구하고 확장하는 방식이 극적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종교와 과학.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일지 모른다. 과학자는 종교를 비합리적이라며 멀리할 것 같고, 종교인들은 과학에 어긋나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진 두 저자의, 그리고 과학을 배워 나가는 승려들의 태도는 전혀 그렇지 않다. '열린마음'과 '호기심'으로 세상을 탐구해나갈 뿐이다. 때로는 지나치게 순수하여 엉뚱하면서도, 때로는 직관적이고 날카로운 통찰의 질문을 던지는 모습은, '순수한 어린 아이'의 배움을 떠올리게 한다. 때로는 생물학의 관점으로, 때로는 불교의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전환의 경험은, '나의 관점은 얼마나 열려있는가'에 대한 성찰의 물음을 던지게 만들었다.

347 현재라는 순간에 계속 주의를 집중하고 그에 따라 나타나는 내적인 현실을 지켜보다 보면, 특정한 패턴의 생각과 걱정, 감정이 자주 반복된다는 사실을 눈치 챌 것입니다. ... 그것들을 판단하거나, 그것들에 반응하거나, 그것들의 정체를 알고자 하는 대신 단지 기록해 두었다고 저절로 가라앉아 우리 마음속 고요한 곳으로 되돌아가도록 합시다.

면역계와 신경계, 균총의 '균형'에 대한 생물학적 중요성, 여기에 명상이 힘을 보탤 수 있다는 발견은 이 책이 가진 매력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 파트였다. 염증에 대항하는 면역계·신경계·균총의 균형이 가져다주는 신체적 건강, 그리고 명상을 통한 내면세계의 균형이 가져다주는 정신적 건강은 정말이지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몸과 마음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확신하게 되었다.

188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불교와 현대 과학의 핵심 화두이다. 우리 모두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처럼 보인다.

이 외에도 책에는 윤회와 이타주의, 공감과 연민, 후성유전학 등 종교와 과학의 흥미로운 만남들이 담겨 있다. 우리는 왜 탐구하는가? 그에 앞서, 우리는 도대체 누구일까?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대관절 우리는 '누구'로서 '무엇'을 탐구하는 것일까? 우리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사실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지만, 그 말은 우리를 누구로도 한계짓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학자든 종교인이든 어느 누구든 말이다. 열린 마음과 호기심으로 자신을 한계짓지 않으며 나와 세상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나갈 것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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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 건강한 자존감을 위한 자기 자비 연습
박진영 지음 / 호우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가 거듭된 실패로 좌절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본다. 안아주고 싶다. 위로해주고 싶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하여 용기를 주고 싶다. 적어도 그를 비난하거나 원망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왜 그것밖에 해내지 못했냐며 책임을 묻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나'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여왔던 것 같다. 비난과 비하와 원망과 후회는, 적어도 나 자신을 향해서 만큼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사랑하는 누군가와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의 극명한 차이. 무엇이 그것을 만들어낸 것일까?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건 아닐까?

자기 자비, 나에게 너그럽게
7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 듯 나 자신에게도 너그럽고 자애로운 태도를 유지하는 것(자기 자비)이나 자신을 판단해 버릇하지 않는 것(마음 챙김)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하는 학자들이 있다. 개인적으로도 자존감이나 행복에 대해 배울 때보다 자기 자비와 판단하지 않기에 대해 배우면서 나 자신에게 좀 더 편안해질 수 있었다. 

'자존감'을 쫓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다. 높은 자존감을 갖춤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고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존감이 성공의 원인인지 결과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또한 맹목적인 자존감 추구는 또 다른 내적 괴리감을 발생시켜 정신적 부담감을 가중시킬수도 있다. 자존감을 높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기비하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나에게 맹목적 과제를 부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에게 친절과 자애로 사랑을 보내줄 수 있다면 어떨까? 사랑하는 사람을 조건없이 돌보듯, 무조건적 사랑으로 나 자신을 돌봐줄 수 있다면 어떨까? 이 책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의 핵심 키워드는 '자기 자비(self-compassion)'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엄격하지 않아도, 평가하지 않아도, 비난하지 않아도,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삶을 지탱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마음같지 않은 현실 속에서 자신에 대한 미움을 갖게 되기 쉬운 요즘이다.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가 자기비하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상처받고, 지치고, 주저앉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의 독서는, 소외됐던 자신을 안아주고 돌봐주는 따뜻한 위로와 휴식의 시간이 될 것이다.

자기 자비, 회피가 아닌 직면의 힘
96 심리학자 로라 바너드는 자신에 대한 너그러움, 즉 자기 자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자기 자비는 무관심이 아닌 평정심에 관한 것이다.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지 문제와 싸우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한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것이지 안주와 정체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비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위로와 공감을 얻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 수용은 현실극복의 의지를 잃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도전을 포기하고 현실도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즉, '포기하면 편해'와 같은 태도를 갖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다. 하지만 자기 자비는 회피나 포기와는 대척점에 서있다. 오히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지각을 키워준다. 자신을 수용하고 현실을 인정함으로써 당면한 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기연민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상황과 감정을 각각 명료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이러한 담대한 직면은 자신감있고 적극적인 문제해결의 태도로 이어진다. 또한 자신에 대한 너그러움이 타인을 향한 너그러움으로 이어지며 연대의식을 키워주기도 한다. 자기 자비는 나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삶의 의미와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지지의 원천이다. 

그럴수록, 자기 자비
113 죄책감을 잘 느끼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이런 사회적 지지를 덜 구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자신의 부족함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게 될까 봐, 또 타인을 실망시킬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140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도 걱정시키기 싫다는 이유로 아프다는 이야기조차 잘 하지 않는데 .... 그걸 인정하고 돌보려 하기보다 무시하고 감추는 데 그동안 많은 에너지를 써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나의 삶은 '자기 자비'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면한 과제를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하는 자신을 비난했고, 이상적인 나의 모습에 미치지 못함을 자책했다. 열등감과 자기혐오의 굴레에 갇혀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던 때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그러한 상황속에서 타인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마저 어려워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박진영작가 또한 자신만의 힘든 시절을 지나왔다고 한다. 책에 댐긴 저자의 경험과 생각과 감정의 흐름들 속에서 나의 모습들이 보여 읽기를 멈추고 한참을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런 저자의 긴 여정끝에 도달한 곳이 '자기 자비'인 만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하고 사랑하는 독서의 경험이 나에게도 깊은 위로와 치유의 느낌을 주었다.

나와 함께, 매 순간 살아있는 삶으로
166 '의미'를 찾는다고 하면 뭔가 거대한 성취나 눈에 띄는 보상같은 큰 사건이 있어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실제로 삶의 의미가 그런 외적 보상물에 달려 있다고 한다면 삶의 환경이 나빠지는 순간 우리는 모든 의미를 잃은 채 살아가는 시체가 되어버릴 것이다. 결국 흔들리지 않는 의미감을 유지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매 순간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228 자신을 향한 비난은 '부족하면 비난을 받아야지'라며 결국 타인을 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크고 작은 약점과 부족함을 갖고 산다. 그런 부족함이 드러날 때 비난하기보다 따뜻한 말로 격려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의 존재는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우리는 역시 자기 자신과 서로에게 따뜻해질 필요가 있다.

무엇을 위해 성공하려 하는가? '행복' 내지는 '기쁨'일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을 잘 해내지 못하는 못하는 자신을 비난하며 고통 받는다면, 이 삶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삶이란 말인가? 하지만 우리의 시야는 그리 넓지 못하다. 근시안적 시야에 매몰되어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내가 진정으로 돌봐야할 사람이 누구인지 놓치게 되기 쉽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온전히 수용한다. 자기비난과 자기혐오에 갇혀있던 지난날의 나를 온전히 수용한다. 그 모든 '자기 자비'의 과정 속에서 가벼워지는 지금 여기의 나를 알아차린다. 나에 대한 자비는 타인을 향한 자비로도 이어진다. 나도 그랬다. 그러니 당신도 그럴수 있다. 나도 어리석었다. 그러니 당신도 어리석을 수 있다. 용서를 통해 해방되는 것은 타인이 아닌, 그 날의 원망에 얽메여있던 나 자신이다. 이제, 하나의 질문만이 남는다. 지금, 여기에서 사랑하는 나의 행복과 기쁨과 성장과 건강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떠오르는 것이 있다. 설렘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서둘러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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