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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권력의 탄생 - 1%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권력 사용법
대커 켈트너 지음, 장석훈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길거리가 시끄러운 걸 보니 완연한 선거철이다. 후보자의 이름에 맞춰 개사한 아이돌 노래가 들리고 원색의 점퍼를 맞춰입은 운동원들이 명함을 건넨다. 네임드 후보들의 경우는 어느정도 이력을 알고 있지만, 작년에 이사를 온 탓에 더더욱 상당수의 후보자들에 대해서는 어떤 신념과 가치를 갖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젯밤 읽어본 벽보를 떠올려보지만 대부분의 이미지는 이미 휘발된 것 같다. 조만간 공보물이 도착하겠지? 그 많은 정보들 중 나는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며 읽어나갈까? 이번 선거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나침반삼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예정이다.
"이 사람은 과연 '선한 권력자'가 될 것인가?"
쟁취하는 권력이 아닌, 주어지는 권력의 시대
10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 이후, 사회는 크게 바뀌었으므로 권력에 관한 낡은 정의에서도 우리는 벗어날 필요가 있다. 사고를 확장하여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특히 오늘날 사회연결망 속에 있는 타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권력을 정의할 수 있다면, 우리는 권력 역설의 문제를 더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35 이 정의는 타인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세상을 바꿔나간다는 우리 인간의 고귀한 사회적 본성을 반영한다.
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잡기위해 수면위에서, 물밑에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선거는 물론이거니와 직장 내에서, 집단 안에서, 심지어 연인 사이에서도 밀고 당기며 눈치게임을 벌인다. 저자는 이처럼 권력을 "사회연결망 속에 있는 타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한다. 즉 권력은 모든 사람의 일상 속에 존재한다. 흔히 권력을 마키아벨리적으로 정의하며 '강압적인 힘'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새로운 권력'은 이에 상반된다. 권력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p.99) 마키아벨리적 권력으로 타인을 억압하고 무시하며 권모술수를 부리다가는, 권력을 부여해준 원천인 공동체에 의해서 권력을 박탈당하게 된다. 권력남용과 갑질, 성범죄와 폭력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요즘의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들은 과연 이러한 결말을 몰랐을까? 자신들의 전횡이 결국 스스로의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까?
바로 여기서 '권력 역설'이 드러난다. 권력의 유혹에 넘어가 충동적이며 비도덕적인 행동을 저지르며, 권력을 획득하게 만들어줬던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과연 권력에는 어떤 속성이 숨어있길래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또한 권력을 부여받는 이들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을까? 권력 역설에서 벗어나 권력을 지속할 수 있는 동인은 무엇일까? 권력남용의 피해자들은 어떤 문제들을 경험하게 될까? 그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책 '선한 권력의 탄생'은 이처럼 권력에 과한 다방면의 이야기를 담았다. '선한 권력'의 기반과 확장에 관한 풍성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시대의 권력자는 누가 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있는 분들께, 남용된 권력이 개인과 사회의 건강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께, 의미있는 독서의 시간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스토리텔링, 선한 권력을 지속하는 힘
135 스토리텔링이 좋으면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 (...) 좋은 스토리텔링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도모하고 집단생활의 스트레스를 덜어주기 때문이다. 즐거움과 경쾌함 그리고 웃음을 자아내게 함으로써 최대 선을 증진시킨다. 이처럼 도파민이 풍부하게 분비될 수 있는 이런 경험들을 통해 우리는 사회연결망에서 깊은 유대를 맺을 수 있다.
137 다양한 방식으로 측정한 결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일에 대해 그 심정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 있었던 사실을 담담히 묘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이로웠다. 스트레스와 불안 그리고 우울증의 정도가 완화되었던 것이다. 학생들의 경우엔 성적이 올랐다. 그리고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의 경우엔 살해T세포가 증가하고 건강 상태가 호전됐다.
이 책의 3장은, 권력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갖는 4가지 특성을 제시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고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읽어나갔다. 4가지 특성의 본질은 '타인에 대한 관심'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특히 '권력은 모두를 하나로 묶는 스토르텔링으로 유지된다'는 구절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정치인에서부터 오디션 지원자까지, 대중들의 지지를 받는 이들은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진 경우가 많다. 세상에 과연, 사연없는 삶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각자의 이유가 있고 삶의 서사가 있다. 문제는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어떻게 풀어낼 수 있는가다. 나 역시 나만의 서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중 마음에 드는 것은 인정하고, 불쾌한 기억들은 부정하고 회피하는 태도를 지닌채 살아왔다. 그리고 최근, '검열하지 않는 글쓰기'를 시작하며 내 삶을 관통해온 모든 서사를 온전하게 수용하는 과정을 통과하고 있다. 이를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이 나아지고 있으며 주변 사람들을 향해서도 한결 열린 마음으로 미소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나 자신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하기 위해서, 앞으로도 즐겁게 말하고 듣고 읽고 써나가야겠다고 다짐한다.
권력 남용의 잔인한 폭력, 무력감
202 만성화된 위협과 스트레스는 사람을 방어적으로 만들고 세상과 어우러질 수 있는 길을 차단한다. 수면, 성생활, 창의성면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신뢰에 바탕을 둔 상호작용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만성화된 위협과 스트레스는 우리 뇌에서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추구하는 일을 관장하는 부위를 망가뜨린다.
208 무력감을 경험했던 사람일수록 내성적이고 부자연스럽고 불안하다. 무력감을 느꼈던 사람일수록 큰소리는커녕 하고 싶은 말도 못하며 행동을 머뭇거린다. 권력이 우리를 충동적으로 내지르고 보게 만든다면, 무력감은 우리를 안으로 감아들게 만든다.
이 책의 5장은 '무력감의 대가'라는 제목아래, 권력의 박탈과 권력남용에 따른 무력감이 피해자에게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다룬다. 저자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무력감이 빚는 위협과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의 건강, 인지기능, 인간관계등 다방면에서 해를 끼친다. 삶의 질과 건강을 장기적으로 위협하는 것이다. 학교폭력, 갑질, 폭력범죄가 얼마나 나쁜 일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권력관계에서 타인을 대함에 있어서 조금은 더 예민해져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무력감에 의해 상처를 입은 이들은 건강함을 회복할 길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사회적으로 지지를 보내면서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들이 있다. 운동, 명상이나 사회적 지원 프로그램 등이 그것이다. 상처입은 이들을 위한 사회적 돌봄과 지지의 필요성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나의 '선한 영향력'을 위하여
책에는 이 외에도 선한 권력에 대한 다양한 직관적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특히 각 챕터의 말미마다 내용을 요약하여 풀어낸 섬세한 배려가 좋았다. 내가 타인에게 전하는 영향력과, 타인이 나에게 전하는 영향력의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게 된 소중한 성장의 기회였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한편으로 가해자가 될 가능성도 열려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타인의 마음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그에 앞서, 내 마음 깊은 곳의 울림에는 진정으로 공감하며 감응하고 있을까? '선한 권력'의 원리를 상기하며, '악한 권력'의 폐해를 기억하며, 나 자신과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이름모를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건네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