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일까 상황일까
리처드 니스벳.리 로스 지음, 김호 옮김 / 심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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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사건을 바라본 사람이 결과의 원인을 추정하며 인과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일종의 자동적인 패턴같다. '왜'에 대한 해답을 찾는것이 그 사람을 안심시키는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릇 아주 오래전부터 그것이 사람의 생존과 번영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독초를 먹은 사람이 배탈을 일으키거나 심지어 죽어나가는 것을 본 사람이 "저 풀은 해로운 풀이구나" 라고 이해하며 다시는 그 풀을 입에 대지 않는 것은, 분명 그 사람의 생존에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풀이 원인이 아니었다면? 사실은 원한관계에 의한 누군가의 독살이 원인이었다면? 오해한 사람은 도처에 널린 건강한 영양섭취의 기회를 놓친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물론 그런 오해가 당장 삶에 커다란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기에 모른채로 살아갈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 오해의 영향이 비교적 큰 경우다. "저 풀은 해로운 풀이다"를 넘어 "저 새는 해로운 새다"로 오해하게 되는 경우다. 참새를 해로운 새로 오해하고 무차별적 사냥을 지시한 마오쩌둥의 한 마디가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큰 기근을 몰고왔던 중국의 사례에서처럼 말이다.

32 특히 많은 일반인이 예측하기 전에 알고 싶어하는 성격 관련 정보 유형은 상대적으로 거의 가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반세기에 걸친 연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상황이나 다른 새로운 상황에서 사람들은 특정인이 어떻게 반응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적어도 한 개인의 성향이나 과거 행동 정보를 근거로 해서는 말이다.

세상의 인과구조를 함부로 오해하는 사례는 물질이나 물건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흔하게 벌어지는 경우는 '사람'이나 '사건'과 관련된 경우다. 사람 B가 쓰러져있다. 그리고 그것을 지나가던 행인 A가 그것을 발견한다. A는 B를 도와줄까? 만약 A가 B를 도와줄지 지나칠지를 예측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는 무엇일까? 보통은 A의 개인적 특성을 떠올릴 것이다. A의 과거 이력이 중요할 수도 있다. 친절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으로 유명한지, 평소 봉사활동은 많이 다니는지, 정치적인 성향은 어떠한지, 과거의 비슷한 상황에서 어떠한 모습을 보였는지와 같은 정보들은 상황을 예측하는데 매우 유용한 단서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니다. 관건은 '상황'이다. 이를테면 '급한 일정으로 이동하고 있는지'와 같은 변수다. 이러한 상황 변수가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지었고 결과를 예측하는데 큰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이 저자의 연구 결과다.

36 사람들은 성격 특성과 성향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믿는다. 그러다 보니 상황요인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데 이를 '기본적 귀인 오류'라고 한다.

79 이 상황주의의 교훈은 배경이 서로 다른 사람과 신념이 다른 사람은 물론 심지어 성격이 명백히 다른 사람들마저 어떤 상황을 동일하게 이해하고 반응한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인간에게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유사한 것으로 밝혀진 적어도 몇 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다.

<사람일까 상황일까>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그것이다. 결과를 결정짓는 원인변수로서 '사람'이 중요할지, '상황'이 중요할지에 관한 질문이다. 일반적인 통념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나쁜놈'이 '나쁜짓'을 하며, '좋은분'이 '좋은행동'을 한다는 것. 허나 연구에 따르면 사람과 상황은 그리 단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성격이 명백히 다른 사람이더라도 상황조건에 따라서 같은 사람인듯이 행동하게 될수도 있다. '나쁜놈'이 '나쁜짓' 했다며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편리하다. 깔끔하며 개운하다. 그렇게 비난하고 처벌하면 기분마저 상쾌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편리함 속에서 우리가 잃는것이 있다면 조금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해로운 풀'을 못 먹는 것을 넘어, '해로운 참새'를 죽임으로써 퍼져나갈 파급효과까지 고려한다면 우리의 성급한 판단으로 잃게되는 것은 생각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키티 제노비스 사건은 아주 유명한 케이스다. 1960년대, 뉴욕시 퀸스 지역의 중산층이 사는 큐가든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폭행범에게 30분 넘게 반복적으로 칼에 찔렸다. 그녀는 계속해서 도와달라고 소리쳤고 적어도 38명이 그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구하러 나서지 않았고 심지어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도무지 상식적이지 못한 이 사건에 많인 사람들이 분노했다. 사람들은 이들 개인의 도덕성을 비난했을 것이다. 한 두명도 아니고 38이나 되는 사람들이 도덕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에 더욱 분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38명이라는 사람은 개입의 가능성을 높여주기는 커녕 오히려 낮춘다. 책임감을 희석시키고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위급 상황 시 주변인의 개입을 실험한 다양한 연구에서 '사람이 늘어날수록' 개입의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이처럼 결과의 원인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단서와 지혜를 늘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484 어린이는 긍정적인 사회적 꼬리표와 그 어린이에게 이미 있는 관련 장점을 연결해 행동을 제안하는 것보다 행동을 바꾸도록 훈계하는 소통 방식에 덜 반응할 수 있다.

484 세 번째 교실은 '긍정 꼬리표' 조건에 배정했다. 이 조건에서는 동일하게 8일에 걸쳐 동일한 소통자들이 단 한 번도 어린이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행동을 바꾸라고 훈계하지 않았다. 대신 어린이들에게 이미 깔끔하다고 칭찬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유익했던 파트는 '8장-사회심리학, 현장에 적용하기'의 교육과 관련된 챕터였다. 8장은 1~7장에서 언급된 실험과 이론을 바탕으로 어떻게 사회와 삶의 현장에 적용해나갈지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는데, 특히 교육과 관련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하나의 실험 결과를 소개한다. '명명'과 '훈계'를 비교하는 실험이다. 먼저 훈계의 경우 말 그대로 가르치고 설득하는 것이다. 쓰레기를 교실에 버리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리도록, 바닥에서 줍도록 어린이들을 설득한다. 반면 '명명'은 이미 깔끔하다고 칭찬하는 것이다. 마치 아이들이 이미 그런 사람이 된듯이 미리 명명하고 칭찬하는 것이다. 결과는 상당한 차이로 '명명'이 효과적이었다. 당장의 효과도 좋았을뿐더러 장기적인 지속효과도 좋았다. 상다잏 놀라우면서도 흥미로운 실험 결과였다. 앞으로의 아이들을 대함에 있어서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아이디어가 될 것 같다. 한편 성장과 자기계발을 강조하는 분들이 제안하던 '이미 그런 사람이 된 듯' 생각하고 느껴보라던 이야기도 떠올랐다.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을 상상하며, 이미 내가 그 사람이 된 듯 생생하게 그려보고 그 감정을 느껴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아이디어를 활용하며 긍정적인 효과를 경험한 바 있다. 이미 그러한 사람이 된 듯 명명하고 생생히 느끼는 것,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스스로를 돌보고 이끄는데도 매우 유용한 기술이 될 것 같다.

책에는 사건의 결과를 결정하는 것이 '사람'인지 '상황'인지에 관한 다양한 실험과 고찰이 담겨있다. 사람과 상황을 움직이는 질서에 관한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고 '제대로 된' 지식을 더함으로써 삶을 더 매끄럽게 이끌어가기 위한 지혜를 얻을 수 있었던 유익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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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러블리의 최강 실무 엑셀왕 - 700만 직장인 인증! 네이버 NO.1 서식 다운로드! 왕초보 최강 입문서
블랙러블리(김상수) 지음 / 진서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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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실무'엑셀을 다룬 책이다. 저저인 필명 블랙러블리는 서울시 공무원을 시작으로 중소기업, 대기업을 거쳐온 현직 직장인이다. 엑셀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700만 직장인이 다녀갈만큼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지난 5년간 저자가 방문자들과 묻고 대답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정리한 실무 엑셀 기본서다. 시중에 나와있는 엑셀 기본서들은 제법 많다. 그러니 독자로서 필요한 안목은 '나에게 필요한 책'을 선별할 수 있는 선별의 눈일 것이다. 마치 수많은 엑셀 기능을 다 배울 수 없으니, 그 중 '나에게 필요한 기능'을 선별해서 배우고 익히는 것이 효과적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참 매력적인 책이다. '개성'이 있기 때문이다. 입문서로서의 일반적인 기본기를 갖춤과 동시에 실무자를 위한 개별적인 특징도 담고있기 때문이다. 즉 일반적인 범용성과 개별적인 실용성을 고루고루 갖추고 있다. 개인적으로 떠올린 이 책의 구체적인 장점은 세가지다. 단계적 구조, 실용적 팁, 실무형 예제다.

먼저 단계적 구조다.이 책은 총 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번째가 '준비마당-정시 퇴근 3배속 일처리! 엑셀 기본기 다지기'다. '일반적'인 파트로 엑셀을 실행하고 사용함에 있어서 알아야 할 기본적인 지식들을 담고 있다. 특히 가장 많이 사용되는 탭인 '파일', '홈', '삽입'의 세가지 탭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많이 사용되는 기능에 많은 힘을 주고 설명하는 태도는 이 책의 전반에 거쳐 일관되게 나타난다. 나머지 5개의 챕터는 '경리&재무팀 엑셀왕', '인사팀 엑셀왕', '총무&경영지원팀 엑셀왕', '자재&생산팀 엑셀왕', '영업팀 엑셀왕' 의 제목으로 각 파트별 업무에 맞게 '개별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실무형 예제파일을 파탕으로 구체적인 작업 상황에서 함수를 적용하는 과정이 실무자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

두 번째는 실용적 팁이다.각 챕터의 미션을 수행해가면서도 말미에 'tip'코너에서 관련된 실무형 팁을 제공한다. 함수의 기본 사용 규칙, 거래내역서 정리 습관, 배경색으로 직위 구분하기 등 알아두면 쓸모있을 꿀팁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실무형 배움의 실용성과 더불어 재미있고 신선한 꿀팁들을 배우는 과정이 독서의 흥미를 더해주었다.

세 번째는 실무형 예제다. 이 책에 담긴 암호코드를 이용하면 73개의 서식을 다운받아 이용할 수 있다. 부서별로 자주 요청받은 서식들 중 가장 쓸모가 많은 73개를 추려 담았다고 한다. 경리&재무팀, 인사, 총무&경영지원팀, 자재&생산팀, 영업팀의 각 부서별 실무형 서식들을 만나본다는 것은 매우 요긴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 책이 갖고 있는 가장 매력적인 특징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이 책은 각 챕터별 미션을 진행하며 '완성서식미리보기'의 이미지를 먼저 제시한다. 즉 "이번 배움을 통해 이걸 할 수 있다"라는 메세지를 먼저 제시한다. 73개의 실무 서식을 직접 활용하고 채워나가는 과정은 성취감이라는 긍정적 감정을 더해주며 배움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주었다.

엑셀 입문자에게도 좋고 실무자에게도 요긴할 것 같다. 친절한 서술과 구체적 사례, 단계적 구성은 독학으로 책을 읽어나갈 독자에게 매우 유용하다. 입문자와 실무자 모두에게, 부담없이 재미있게 독학으로 엑셀을 배워나가기를 기대하는 분들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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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없는 마음
툽텐 진파 지음, 임혜정 옮김 / 하루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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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움으로, 자유로움으로

91 하지만 달라이 라마가 말했듯이 그러한 용기를 통해 우리는 보다 명료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 자기 자신이라는 장막 뒤에 숨어 누군가 내 본모습을 보게 될까 두려움에 떠는 일은 이제 그만두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보이는 순간 우리는 내면의 힘과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사실 그렇게 큰 기대감을 안고 시작한 독서는 아니었다. 명상에 관한 책은 많이 읽었고 자비심에 관해서도 대략적으로 알고 있으며 자비명상 역시 경험해본 바 있다. 자비심이 인간 행복에 주는 긍정적 영향을 믿고 있기에, 자비명상이 나의 행복에 준 긍정적 영향을 기억하고 있기에 이 책을 집어들기도 했다. 그러니 좋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정도로 좋을줄은 몰랐다. 내가 받은 긍정적 영향을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하자면 '자유'다. 이 책을 집어들고 읽어나간 1주일동안, 곁에 두고 책의 내용에 닻을 내린 나 자신을 알아차리며 살아간 그 이후의 1주일 동안, 나의 몸과 마음은 점점 더 가볍고 자유로워졌다. 이 책과 별개로 긴 호흡으로 곁에 두고 읽어나가며 저자의 관점을 체화하고 있는 로버트 라이트 저 <불교는 왜 진실인가>와 더불어 긍정적인 시너지를 일으킨 덕도 있다. 로버트 라이트의 책이 나에게 '명료함'이라는 '인식'의 행복을 덧칠해주고 있었다면 이 책 <두려움 없는 마음>은 '자유로움'이라는 '경험'의 행복을 선물해주었다. '인식'과 '경험'을 오가며 드러나는 '명료함'과 '자유로움'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더욱 생기있게 만들어주었다.

 

 

동의하는, 그러나 어딘가 불편했던

23 자비심의 핵심은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고통과 슬픔에 대한 반응이다.

'진화생물학'과 '자비심'이라는 각기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는 두 책은 한 가지 점에서 분명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납득'이다. 논리적 체계와 구체적 근거, 그리고 텍스트를 넘어 전해져오는 저자의 진정성으로 독자를 납득시킨다는 점이다. 물론 처음부터 뚝딱 납득한 것은 아니었다. 자비심. 말은 참 쉽다. 겉보기에도 좋아보인다. 관대하고 여유있게 상대방을 이해하는 모습, 짐짓 멋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현실이 그리 쉬운가? 삶에서 마주치는 타인들은 자비심은 커녕 인내심부터 시험하게 만든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저런 사람 같지 않은 인간에게도 자비심의 자격이 주어질까?" 라는 의문마저 품게 만든다. <두려움 없는 마음>의 1회독을 마쳤을 때 찝찝함이 남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모든 존재를 향해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11개의 챕터를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동의했다. 하지만 납득은 할 수 없었다. 아주 미묘한 차이다. "'어떤' 존재라면 몰라도 '모든' 존재에게 그래야 할까? 그럴 수 있을까?" 라는 회의감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밑줄을 그으며 다시 읽었다. 하이라이트를 칠하며 또 다시 읽었다. 챕터2에 제시된 '명상'과 '연습'을 실천했다. 길을 걸으며,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며, 과거의 누군가를 떠올리며 자비심의 닻을 내려봤다. 더더욱 불편했다. 도저히 자비심을 가질래야 가질수가 없는 과거의 타인들이 떠오르며 책장을 덮어 치우기도 했다.

자비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91 그동안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타인'이 실은 나와 같은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두려움은 사라지고 내면의 힘이 강해진다. 그리고 자비심은 이러한 자각에서 출발한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내 부족한 부분을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가 말했듯이 그러한 용기를 통해 우리는 보다 명료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

변화는 흔한 일상에서 시작되었다. 지하철을 좌석에 앉아 여느때처럼 핸드폰을 꺼내 뒤적거리다 맞은 편 승객의 얼굴에 시선이 머물렀다. 자연스레 주위를 돌아보았다. '사람'이 보였다. 나와 다를 바 없이 '행복'을 바라고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사람'의 본연이 보였다. 나이와 성별과 직업과 성격과 감정상태를 떠나서, 인간존재로서 갖고 있을 본연적 모습에 대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 누구보다 행복을 바라며 고통을 멀리한다.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구보다 행복을 바라며 고통을 피하기를 바랄 것이다. 공감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자비심은 거기에서부터 드러난다. 나를 공감하고 나를 이해하며 나를 수용함으로써 나를 자비롭게 대하는 것, 너를 공감하고 너를 이해하며 너를 수용함으로써 너를 자비롭게 대하는 것. 우리를 공감하고 우리를 이해하며 우리를 수용함으로써 우리를 자비롭게 대하는 것. 그렇게 세상을 향해 자비의 원을 넓혀나가는 것. 그 모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질 두려움. 두려움 없는 마음으로 경험하게 될 명료하고 자유로운 삶.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바는 분명히 이것이었을 것 같다. 담배를 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담배를 끊은 이후에 경험한 '가벼운 아침' 덕분이다. 그 가벼움을 경험해본 이상 다시 무거운 아침으로 되돌아갈수는 없었다. 그래서 만만치는 않았지만 꾸역꾸역 어렵게 담배를 끊을 수 있었다. 자비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이후로 가장 만족스러운 점은 다름아닌 '가벼움'이다. 마음의 가벼움이다. 물에 사는 물고기가 물의 존재를 모르듯이,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긴장과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헤엄치며 살아왔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되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무거운 아침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나의 행복을 바라며 내가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라는 것. 나와 마주한 존재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라는 것. 이 간결하면서 분명한 열망을 기억하고 알아차리며 살아가고자 한다. 무엇보다 그것이 나의 일상을 생기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두려움 없는 마음으로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기

31 재미있는 점은 자신이 일으킨 자비심의 가장 큰 수혜자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 자비심을 일으키면 더 행복해진다. 행복감을 더 많이 느낀다. 머릿속에 가득한 실망, 후회, 걱정,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자비심을 지니는 것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책 <두려움 없는 마음>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저자인 툽텐 진파는 티베트 승려 출신으로 달라이라마의 통역을 담당한 바 있으며 현재는 맥길 대학교 티베트 불교 철학과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책은 저자가 깨달은 삶의 지혜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두려움 없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두려움 없는 마음으로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며, 마음을 활짝 열고 사람들의 고통과 기쁨에 공감하기를 권한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기꺼이 도움을 나누며 기쁨과 의미로 가득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 '자비심'이 있다. '두려움 없는 마음'은 '자비심'과 함께하는 삶으로써 만들어낼 수 있는 상태다. 자비심이란 곧 타인의 걱정과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찬 시대다. 그런데 타인을 배려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걱정과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순진하거나 종교적이거나 심지어 위선적인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영역의 이야기다. 우리는 자비심을 갖고 살아감으로써 행복에 가까워지며 고통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 자비심과 함께하는 삶에서 우리는 다양한 혜택을 얻는다. 고양된 마음 상태속에서 힘을 얻고, 친절과 유대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으며, 신체 및 사회적 건강에도 좋은 효과를 얻는다. "헬퍼스 하이"라고 불리는 생리학적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삶의 의미를 강화함으로써 목적의식을 또렷이 할 수 있고,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다. 자비심의 효과는 개인적인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친절은 전염되며 우리의 공동체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힘을 보탠다. 저자는 이처럼 개인의 자비심을 바탕으로 우리 공동체가 보다 공정하고 자비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책은 1부를 통해 자비심이 중요한 이유를 강조하고 2부를 통해 자비심을 키울 수 있는 구체적 연습 방법을 제시하며 3부를 통해 자비심을 삶과 사회로 연결한다. 즉 자비심이 왜 중요한지에서 출발하여 어떻게 자비심을 기를지를 제시하고 종국에는 그것을 삶으로 연결하는, 명료하고 체계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더욱 저자의 주장에 납득하면서 나 역시 삶으로 자비심을 가져와야겠다고, 자비심이 이끄는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며 일상에서 실천하게 되었다.

나에게 자비롭게, 내가 행복하기를

178 우리는 신이 아니라 한낱 인간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기 이해와 자기 용서가 시작될 수 있다. ... "자기 자비의 중요한 측면은 과거의 행동을 후회하는 나와 그 행동을 하던 당시의 나를 모두 자비로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178 자신이 과거에 한 행동을 용서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것은 그 행동을 한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신이 그 행동을 할 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178 자신과 다투는 한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과 화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없다.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실수를 통해 배울 것이 없다. 누군가와 싸우고 있거나 누군가를 거부하는 상황에서는 그 사람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실수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지 못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고 자신과 싸움도 끝나지 않는다.

179 스탠포드 자비심 함양 프로그램에서는 자기 수용과 자기 용서를 목적으로 하는 별도의 명상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명상법은 우리의 행동 근저에 깔린 이유와 욕구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러한 이해를 통해 자책하는 태도를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어떤 행동을 하면서 진정으로 자신이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으면 슬픔·좌절감·후회·실망감·절망감 같은 수많은 감정들이 밀려들지도 모른다. 이런 감정들은 본질적으로 보다 수용적인 감정이며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가로막는 죄책감·자기비난·자책과 같은 감정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스스로에게 공감을 하게 된다. ... 채워지지 않았던 자신의 욕구를 이해하는 이 과정을 비폭력 대화 언어로 '애도'라고 부른다... "애도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비난하거나 미워하지 않고도 과거의 실수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도움이 되었던 파트는 '7."내가 행복하기를":자신을 보살피기'라는 제목의 '자기자비'를 다룬 챕터였다. 나는 완벽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잘 하지 못한 부분이나 아쉬운 부분에 주의를 기울이며 후회하고 자책하며 아쉬워하고는 한다. 잘 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 기뻐하기보다는 반대의 영역에 초점을 맞춰 마음을 부정적 정서로 물들이고는 했다. 실수할지 모른다는, 잘 해내지 못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회피적 태도로 이어지며 다채로운 삶의 경험이라는 소중한 기회를 앗아가기도 했다. 스트레스와 긴장은 끊어질 날이 없었고 나의 감정과 욕구는 자연스레 일상에서 소외되었다. 책에 언급된 어느 CCT참여자의 사례처럼 나 역시 나 자신과 단절된 채 살아갔던 것 같다. 변화는 명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불안과 두려움을 알아차림으로써, 그것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나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한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과거의 기억 역시 현존하는 실체가 아니며 마음속의 구름처럼 언제든 흩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임을 알게 된 것 역시 도움이 되었다. 경험 자체보다 중요한 것이 그것에 대한 해석과 의미부여라는 심리학적 통찰 역시 요긴했다. 다만 그동안의 과정은 '인지'적인 측면에 치우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독서를 통해 '수용'과 '정서'측면에서의 접근을 보강함으로써 어딘가 허기졌던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 '애정'을 듬뿍 담은 '자비심'의 눈으로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돌보는 과정을 통해, 한결 깊이 나 자신과 가까워지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불편감과 저항감을 갖고 있었던 과거의 일들을 다시금 탐험하는 과정 속에서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경험할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가볍고 경쾌해질 수 있었다.

자비심, 적극적인 삶의 태도

94 이런 사람에게 똑같이 고통을 주고, 보복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그는 이미 고통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음해하기 위해 애쓰는 동료를 측은하게 여기는 순간 나는 그보다 나은위치에 서게 된다. 평정을 유지하면서 차분하고 분명한 태도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94 자비심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 불의를 행사하는 사람에게 자비심을 갖는 것이 그가 저지른 범죄 행위를 용납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자비심을 가지면 분노와 적대감으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상황을 보다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그 사람 역시 고통을 싫어하고 행복을 원하는 한 인간이라는 관점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혹시 오해하고 있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비심을 갖고 산다는 것은 너무나 소극적이고, 비약해서 말하면 삶으로부터 회피하는 태도는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누구나 지켜야만 하는 무엇이 있다. 가족, 신념, 사랑, 생명이나 건강과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자비심을 갖고 용서해버리면 만만하고 나약한 사람으로 취급당할 수 있고, 지켜야만 하는 무엇을 쉽게 빼앗기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남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불의를 행하는 사람에게 자비심을 갖는 것이 그가 저지른 범죄 행위를 용납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자비심은 회피나 소극적 태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그 대척점에 서 있다. 자비심은 그 무엇보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태도다. 나의 감정을 직시하고 상대의 고통을 마주본다. 흔들리지 않는 차분한 마음으로 "왜?"라고 묻는다. 상대와 상황을 명료하게 파악하며 이해한다. 감정의 동요 없이, 분노와 적대감으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지혜롭게 상황에 대처한다. 자신을 대함에 있어서나 타인을 대함에 있어서나, 행복에 다가가기 위해서나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나, 자비심은 언제나 우리를 용감하고 적극적인 삶으로 이끈다.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89 두려움이 삶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면 판단력을 잃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자기 자비를 길러 자신을 보살피고 타인에 대한 자비심을 길러 다른 사람을 짓밟지 말아야 한다.

종교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책입니다. 물론 종교적 이론을 담고 있지만 체계와 논리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불교를 좋아하지만 불교 신자는 아닙니다. 불교의 이론을 종교적으로 믿는 것이 아닌, 근거와 체계를 갖춘 삶의 지혜로써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스탠포드 대학 연구팀과 공동 개발한 '8주 자비심 함양 프로그램'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적용 방안이 매우 체계적이며 구체적이라는 점이 장점입니다. 즉 실용적입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 "주변 사람들과 더 편안하게 관계맺고 싶다", "용기있고 자유롭고 명료하게 살고싶다" 라는 기대감을 갖고있는 분들께 진심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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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서 (스페셜 에디션) - 영혼의 순례자 칼릴 지브란
칼릴 지브란 지음, 로렌스 알마-타데마 그림, 강주헌 옮김 / 아테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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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를게 뭐가 있겠는가. 어제와 같은 하늘이고 어제와 같은 바람이다. 어제와 같은 공기고 어제와 같은 눈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그러면 놀라운 일들이 펼쳐진다. 새로운 공간에서 바라본 세상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 하늘이 다르고 바람이 다르고 공기가 다르며 곁에서 나를 바라보는 이의 눈길이 달라진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1주일은, 1년을 기다릴 수 있을만큼 보석같은 시간이다. 매일매일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문제는 현실적이다. 돈, 그리고 시간.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으며 슬프게도 둘 다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1년에 한 번의 휴가를 아쉬움 속에서 기다려야만 하는 것일까? 반갑게도 좋은 방법이 있다. 시와 노래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은 신비로운 일이지만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시와 노래가 가진 강력한 힘이다.

'칼릴 지브란'은 레바논에서 태어난 시인이자 예술가다. 터키의 속국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프랑스의 위임통치국으로 전락한 조국을 바라보며 그는 세상을 비관하며 좌절하지 않는다. 언어와 예술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창작하며 희망의 여행을 이어갔다. 철학자, 시인, 문학가, 화가 등 당대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해 나갔으며 그 결과물인 시집 <예언자>는 성서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힌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늘 소개할 책 <지혜의 서-영혼의 순례자 칼릴 지브란>은 칼릴 지브란의 글을 모은 스페셜에디션이다. '1부-스승과 제자의 대화'와 '2부-지혜의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스승의 신비로운 경험을 회고하는 제자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분량도 적고 줄거리 자체도 단순한 편이지만 칼릴 지브란의 메세지를 담은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차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볼 수 있을 이야기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소년의 성장'을 떠올려볼 수 있었다. 완전한 세계를 향유하던 한 소년이 '완전한 세계의상실'이라는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겪고 '자신만의 세계'를 다듬어 가는 이야기다. 저자가 좋아했다는 '니체'가 떠오르기도 했고 한편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2부는 갖가지 소재에 관한 저자의 세계관과 상념을 담은 잠언 형식의 시집이다. 1부에서 등장한 스승의 지혜가 집대성된 것으로 그려져 있다. '삶에 대하여', '생각과 명상에 대하여', '결혼에 대하여', '음악에 대하여', '지혜에 대하여', '사랑과 평등에 대하여'등 삶과 일상에서 마주치는 중요한 존재에 대한 저자의 숙고와 성찰이, 비유와 상징으로 드러난 시인의 언어로 그려진다.평소 무심코 지나치곤 하던, 하지만 삶과 세계를 구성하는 소중한 존재들을 향하여 새로운 감각으로 섬세한 관심을 보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p.61

그는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빛이 어우러진 밤하늘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얼마나 많은 천체들이 무한의 공간 속에서 명멸되었던가!

누가 그 신비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했던가?

누가 그 많은 별들을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게 하는가?

저 멀리 떨어진 행성들과 지구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그리고 나는 누구이고, 왜 여기에 있는가?

이런 의문들이 알-하리스의 머리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스승은 백성들을 위한 올바른 정치를 위해 레바논 총독인 '알-하리스'에게 직언을 망설이지 않는다. 그러나 총독은 스승의 말을 귀담아 듣기는 커녕 심헌 형벌에 파문까지 명한다. 그러던 어느 날 총독은 문득 깨달음을 얻고 스승을 사면하고 공직에 임명한다. 총독을 깨닫게 한 것은 특별한 가르침이 아니다. 그의 눈을 트이게 한 것은 '별빛이 어우러진 밤하늘'이었다. 지식을 채워넣음으로써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아주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밤하늘을 보며 깨달음을 얻는다니, 개연성 없고 막연한 이야기 아닌가? 아마 명상을 시작하기 전의 나라면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웠을 때 채워지는 것이 있다. 내려놓았을 때 떠오르는 것이 있다. 고요함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 있다. 명상을 할 때는 마음을 비우려 한다. 관건은 마음을 '어떻게' 비우냐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신기했던 것이 <오픈포커스 브레인>이라는 책에서 읽었던 주의를 확장하는 방식이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닌, 오히려 마음의 시야에 포착된 모든 것들을 주의의 한 켠으로 끌어안는 것이다. 몸으로부터 주변으로, 주변으로부터 공간과 세계로 주의의 범위를 확장시킬때면 자신과 세계의 경계가 흐릿해지는듯한 가벼움마저 들었다. 비움으로서 채울 수 있다는 역설을 넘어, 채움으로서 비울 수 있다는 또 하나의 역설의 발견이었다. 그렇다면 총독의 체험은 어땠을까? '허무함'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승을 불러들여 현실정치를 바로잡을 힘을 보탰을리 없다. 그의 행동은 '책임감'에 가까웠다. 굳이 존재해야 할 당위가 없음에도 빛나는 별들 속에서 그는 존재의 소중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라는 존재의 소중함, 그리고 타인이라는 존재의 소중함 말이다. 나아가 그 소중한 존재들이 '관계'맺고 있다는 사실.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그것이 총독의 시야를 확장시키고 오래된 편협함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책임을 다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p.178

신성한 음악이여,

그대는 사랑의 영혼이 빚어낸 딸이어라!

고통과 사랑이 어우러진 화병이어라!

...

낱말의 조각들에 감추어진

사색의 결합이어라.

아름다움에서 사랑을 설계하고

꿈의 세계에서 우리 가슴에

환희를 안겨주는 포도주이어라.

전사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며

영혼을 강하게 단련시켜주는

자애로움의 대양이고 온유의 바다이어라.

아, 음악이여

그대의 내면에 우리 가슴과 영혼을 묻으리라.

그대가 우리에게 귀로 보고

가슴으로 들으리라고

가르쳐주지 않았던가.

-<9.음악에 관하여> 중에서

음악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음악은 늘 인류의 삶과 함께 해왔다. 사랑, 우정, 헌신, 운명, 투쟁, 승리 등 인간 삶의 서사가 담겨 있으며 용기, 좌절, 치유 등 개인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저자는 그런 음악을 '영혼의 언어'라고 말한다. 앞서서 말했던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위한 여행', 그것을 떠날 때 챙겨가야 할 필수품으로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음악'은 결코 빠져서는 안될 존재일 것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찾아 나서는데에는 분명히 보편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형식적 언어로는 '영혼의 언어'가 가진 힘 때문이 아닐까? 이름이 아닌 영혼으로서 말하기 위해, 이름이 아닌 영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영혼가 영혼이 관계맺고 소통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음악을 곁에 두고 듣는것은 아닐까?

컴팩트한 디자인에 간편한 휴대가 장점인 스페셜에디션이다. 평소 '칼릴 지브란'의 글을 좋아했던 분들께 소장을 권하고 싶다. '여행'에 챙겨가기 위한 목적이라면 무엇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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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해석하지 않고 읽는 법 - 어떤 영문도 피할 수 없는 Reading Patterns 120
황준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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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해석하지 않고 읽는 법이라니.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영어를 해석해야 우리말로 풀어내고 내용을 이해함으로써 읽어낼 것 아닌가. 영어로 된 문장을 읽고, 한국말로 해석한 뒤, 의미를 이해하는 것. 우리가 영어독해를 할 때 흔하게 실천하는 구조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만큼 접근하기 쉽고 활용하기 편한 방법이기도 하다. 나 역시 이런 식으로 영어를 독해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방법은 한계가 있다. 문장 구조가 간단한 글을 읽을때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진 문장이나 문단을 읽을때면 독해의 속도와 이해의 정도는 확연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어휘가 문제가 아니다. 어휘가 쉽더라도 구조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이해는 어려워진다. 단어와 숙어를 달달 외우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린다. '문장구조', '문장패턴'이 그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수험영어에 자주 등장하는 문법규칙, 즉 '문장을 만드는 조건'이 따로 존재한다. 이러한 규칙과 패턴을 연습하고 체화함으로써 단어를 보고 의미를 떠올리듯, 문장을 보자마자 맥락을 파악하는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영어를 해석하지 않고 읽는 법>은 120가지 문장패턴을 담고 있는 문법책이다. 일반적인 문법책과 다른점이 있다면 철저하게 '문장'과 '읽기'에 중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들어 '패턴14-'완료'가 아닌 '현재'에 주목하면 해석이 필요없다'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현재완료'라는 문법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여느 문법책처럼 완료, 경험, 계속, 결과를 암기하도록 권하지 않는다. '현재'에 주목하여 읽어내림으로써 자연스럽게 문맥과 맥락을 짚어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한다. 책은 이처럼 '패턴6-구워 절을 단숨에 구분하면 해석이 필요없다', '패턴19-사소해 보이는 a를 찾으면 해석이 필요없다', '패턴35-순차 해석하는 관계부사를 찾으면 해석이 필요없다', '패턴36-사라진 주어와 be동사를 찾으면 해석이 필요없다' 등 120개의 패턴을 담고 있다. 이들 패턴을 이해하고 기억하고 체화함으로써 단숨에 문장구조를 파악하고 '해석'이라는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으면서 빠르고 정확하게 영어문장을 읽어내릴 수 있음을 강조한다.

같은 문법이라도 살짝 관점을 비틀어보니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참 신기했다. 어떤 공부든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함을 확인하게 되는 요즘이다. 수험의 목적은 합격이지 공부가 아니다. 문법을 공부하는 목적 역시 문법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아닌 '영어를 잘 읽어내는 것'이다. 한 번의 독서를 통해서 그동안 쌓아온 문법지식을 점검하고 구체적으로 보완해볼 수 있었다. 앞으로 반복적 독서를 통해서 120개의 주요 패턴을 몸으로 익혀보려 한다. 개인적으로 복잡한 문장을 읽다보면 한 번에 눈에 들어오지 않아 두 세번씩 짚어봐야 의미가 짐작되는 경우가 잦은데, 이러한 점을 개선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120개의 문장패턴 뿐만 아니라 각 패턴마다 독해연습을 위한 문단 하나와 연습문제 2개씩도 함께 주어진다. 독해속도를 끌어올림으로써 각종 영어시험에서 성적향상을 기대하는 분들께, 영문법을 빠르게 점검하고 보완하기를 기대하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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