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서 (스페셜 에디션) - 영혼의 순례자 칼릴 지브란
칼릴 지브란 지음, 로렌스 알마-타데마 그림, 강주헌 옮김 / 아테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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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를게 뭐가 있겠는가. 어제와 같은 하늘이고 어제와 같은 바람이다. 어제와 같은 공기고 어제와 같은 눈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그러면 놀라운 일들이 펼쳐진다. 새로운 공간에서 바라본 세상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 하늘이 다르고 바람이 다르고 공기가 다르며 곁에서 나를 바라보는 이의 눈길이 달라진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1주일은, 1년을 기다릴 수 있을만큼 보석같은 시간이다. 매일매일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문제는 현실적이다. 돈, 그리고 시간.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으며 슬프게도 둘 다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1년에 한 번의 휴가를 아쉬움 속에서 기다려야만 하는 것일까? 반갑게도 좋은 방법이 있다. 시와 노래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은 신비로운 일이지만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시와 노래가 가진 강력한 힘이다.

'칼릴 지브란'은 레바논에서 태어난 시인이자 예술가다. 터키의 속국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프랑스의 위임통치국으로 전락한 조국을 바라보며 그는 세상을 비관하며 좌절하지 않는다. 언어와 예술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창작하며 희망의 여행을 이어갔다. 철학자, 시인, 문학가, 화가 등 당대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해 나갔으며 그 결과물인 시집 <예언자>는 성서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힌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늘 소개할 책 <지혜의 서-영혼의 순례자 칼릴 지브란>은 칼릴 지브란의 글을 모은 스페셜에디션이다. '1부-스승과 제자의 대화'와 '2부-지혜의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스승의 신비로운 경험을 회고하는 제자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분량도 적고 줄거리 자체도 단순한 편이지만 칼릴 지브란의 메세지를 담은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차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볼 수 있을 이야기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소년의 성장'을 떠올려볼 수 있었다. 완전한 세계를 향유하던 한 소년이 '완전한 세계의상실'이라는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겪고 '자신만의 세계'를 다듬어 가는 이야기다. 저자가 좋아했다는 '니체'가 떠오르기도 했고 한편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2부는 갖가지 소재에 관한 저자의 세계관과 상념을 담은 잠언 형식의 시집이다. 1부에서 등장한 스승의 지혜가 집대성된 것으로 그려져 있다. '삶에 대하여', '생각과 명상에 대하여', '결혼에 대하여', '음악에 대하여', '지혜에 대하여', '사랑과 평등에 대하여'등 삶과 일상에서 마주치는 중요한 존재에 대한 저자의 숙고와 성찰이, 비유와 상징으로 드러난 시인의 언어로 그려진다.평소 무심코 지나치곤 하던, 하지만 삶과 세계를 구성하는 소중한 존재들을 향하여 새로운 감각으로 섬세한 관심을 보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p.61

그는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빛이 어우러진 밤하늘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얼마나 많은 천체들이 무한의 공간 속에서 명멸되었던가!

누가 그 신비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했던가?

누가 그 많은 별들을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게 하는가?

저 멀리 떨어진 행성들과 지구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그리고 나는 누구이고, 왜 여기에 있는가?

이런 의문들이 알-하리스의 머리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스승은 백성들을 위한 올바른 정치를 위해 레바논 총독인 '알-하리스'에게 직언을 망설이지 않는다. 그러나 총독은 스승의 말을 귀담아 듣기는 커녕 심헌 형벌에 파문까지 명한다. 그러던 어느 날 총독은 문득 깨달음을 얻고 스승을 사면하고 공직에 임명한다. 총독을 깨닫게 한 것은 특별한 가르침이 아니다. 그의 눈을 트이게 한 것은 '별빛이 어우러진 밤하늘'이었다. 지식을 채워넣음으로써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아주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밤하늘을 보며 깨달음을 얻는다니, 개연성 없고 막연한 이야기 아닌가? 아마 명상을 시작하기 전의 나라면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웠을 때 채워지는 것이 있다. 내려놓았을 때 떠오르는 것이 있다. 고요함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 있다. 명상을 할 때는 마음을 비우려 한다. 관건은 마음을 '어떻게' 비우냐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신기했던 것이 <오픈포커스 브레인>이라는 책에서 읽었던 주의를 확장하는 방식이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닌, 오히려 마음의 시야에 포착된 모든 것들을 주의의 한 켠으로 끌어안는 것이다. 몸으로부터 주변으로, 주변으로부터 공간과 세계로 주의의 범위를 확장시킬때면 자신과 세계의 경계가 흐릿해지는듯한 가벼움마저 들었다. 비움으로서 채울 수 있다는 역설을 넘어, 채움으로서 비울 수 있다는 또 하나의 역설의 발견이었다. 그렇다면 총독의 체험은 어땠을까? '허무함'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승을 불러들여 현실정치를 바로잡을 힘을 보탰을리 없다. 그의 행동은 '책임감'에 가까웠다. 굳이 존재해야 할 당위가 없음에도 빛나는 별들 속에서 그는 존재의 소중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라는 존재의 소중함, 그리고 타인이라는 존재의 소중함 말이다. 나아가 그 소중한 존재들이 '관계'맺고 있다는 사실.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그것이 총독의 시야를 확장시키고 오래된 편협함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책임을 다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p.178

신성한 음악이여,

그대는 사랑의 영혼이 빚어낸 딸이어라!

고통과 사랑이 어우러진 화병이어라!

...

낱말의 조각들에 감추어진

사색의 결합이어라.

아름다움에서 사랑을 설계하고

꿈의 세계에서 우리 가슴에

환희를 안겨주는 포도주이어라.

전사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며

영혼을 강하게 단련시켜주는

자애로움의 대양이고 온유의 바다이어라.

아, 음악이여

그대의 내면에 우리 가슴과 영혼을 묻으리라.

그대가 우리에게 귀로 보고

가슴으로 들으리라고

가르쳐주지 않았던가.

-<9.음악에 관하여> 중에서

음악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음악은 늘 인류의 삶과 함께 해왔다. 사랑, 우정, 헌신, 운명, 투쟁, 승리 등 인간 삶의 서사가 담겨 있으며 용기, 좌절, 치유 등 개인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저자는 그런 음악을 '영혼의 언어'라고 말한다. 앞서서 말했던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위한 여행', 그것을 떠날 때 챙겨가야 할 필수품으로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음악'은 결코 빠져서는 안될 존재일 것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찾아 나서는데에는 분명히 보편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형식적 언어로는 '영혼의 언어'가 가진 힘 때문이 아닐까? 이름이 아닌 영혼으로서 말하기 위해, 이름이 아닌 영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영혼가 영혼이 관계맺고 소통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음악을 곁에 두고 듣는것은 아닐까?

컴팩트한 디자인에 간편한 휴대가 장점인 스페셜에디션이다. 평소 '칼릴 지브란'의 글을 좋아했던 분들께 소장을 권하고 싶다. '여행'에 챙겨가기 위한 목적이라면 무엇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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