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일까 상황일까
리처드 니스벳.리 로스 지음, 김호 옮김 / 심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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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사건을 바라본 사람이 결과의 원인을 추정하며 인과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일종의 자동적인 패턴같다. '왜'에 대한 해답을 찾는것이 그 사람을 안심시키는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릇 아주 오래전부터 그것이 사람의 생존과 번영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독초를 먹은 사람이 배탈을 일으키거나 심지어 죽어나가는 것을 본 사람이 "저 풀은 해로운 풀이구나" 라고 이해하며 다시는 그 풀을 입에 대지 않는 것은, 분명 그 사람의 생존에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풀이 원인이 아니었다면? 사실은 원한관계에 의한 누군가의 독살이 원인이었다면? 오해한 사람은 도처에 널린 건강한 영양섭취의 기회를 놓친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물론 그런 오해가 당장 삶에 커다란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기에 모른채로 살아갈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 오해의 영향이 비교적 큰 경우다. "저 풀은 해로운 풀이다"를 넘어 "저 새는 해로운 새다"로 오해하게 되는 경우다. 참새를 해로운 새로 오해하고 무차별적 사냥을 지시한 마오쩌둥의 한 마디가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큰 기근을 몰고왔던 중국의 사례에서처럼 말이다.

32 특히 많은 일반인이 예측하기 전에 알고 싶어하는 성격 관련 정보 유형은 상대적으로 거의 가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반세기에 걸친 연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상황이나 다른 새로운 상황에서 사람들은 특정인이 어떻게 반응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적어도 한 개인의 성향이나 과거 행동 정보를 근거로 해서는 말이다.

세상의 인과구조를 함부로 오해하는 사례는 물질이나 물건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흔하게 벌어지는 경우는 '사람'이나 '사건'과 관련된 경우다. 사람 B가 쓰러져있다. 그리고 그것을 지나가던 행인 A가 그것을 발견한다. A는 B를 도와줄까? 만약 A가 B를 도와줄지 지나칠지를 예측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는 무엇일까? 보통은 A의 개인적 특성을 떠올릴 것이다. A의 과거 이력이 중요할 수도 있다. 친절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으로 유명한지, 평소 봉사활동은 많이 다니는지, 정치적인 성향은 어떠한지, 과거의 비슷한 상황에서 어떠한 모습을 보였는지와 같은 정보들은 상황을 예측하는데 매우 유용한 단서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니다. 관건은 '상황'이다. 이를테면 '급한 일정으로 이동하고 있는지'와 같은 변수다. 이러한 상황 변수가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지었고 결과를 예측하는데 큰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이 저자의 연구 결과다.

36 사람들은 성격 특성과 성향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믿는다. 그러다 보니 상황요인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데 이를 '기본적 귀인 오류'라고 한다.

79 이 상황주의의 교훈은 배경이 서로 다른 사람과 신념이 다른 사람은 물론 심지어 성격이 명백히 다른 사람들마저 어떤 상황을 동일하게 이해하고 반응한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인간에게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유사한 것으로 밝혀진 적어도 몇 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다.

<사람일까 상황일까>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그것이다. 결과를 결정짓는 원인변수로서 '사람'이 중요할지, '상황'이 중요할지에 관한 질문이다. 일반적인 통념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나쁜놈'이 '나쁜짓'을 하며, '좋은분'이 '좋은행동'을 한다는 것. 허나 연구에 따르면 사람과 상황은 그리 단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성격이 명백히 다른 사람이더라도 상황조건에 따라서 같은 사람인듯이 행동하게 될수도 있다. '나쁜놈'이 '나쁜짓' 했다며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편리하다. 깔끔하며 개운하다. 그렇게 비난하고 처벌하면 기분마저 상쾌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편리함 속에서 우리가 잃는것이 있다면 조금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해로운 풀'을 못 먹는 것을 넘어, '해로운 참새'를 죽임으로써 퍼져나갈 파급효과까지 고려한다면 우리의 성급한 판단으로 잃게되는 것은 생각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키티 제노비스 사건은 아주 유명한 케이스다. 1960년대, 뉴욕시 퀸스 지역의 중산층이 사는 큐가든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폭행범에게 30분 넘게 반복적으로 칼에 찔렸다. 그녀는 계속해서 도와달라고 소리쳤고 적어도 38명이 그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구하러 나서지 않았고 심지어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도무지 상식적이지 못한 이 사건에 많인 사람들이 분노했다. 사람들은 이들 개인의 도덕성을 비난했을 것이다. 한 두명도 아니고 38이나 되는 사람들이 도덕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에 더욱 분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38명이라는 사람은 개입의 가능성을 높여주기는 커녕 오히려 낮춘다. 책임감을 희석시키고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위급 상황 시 주변인의 개입을 실험한 다양한 연구에서 '사람이 늘어날수록' 개입의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이처럼 결과의 원인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단서와 지혜를 늘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484 어린이는 긍정적인 사회적 꼬리표와 그 어린이에게 이미 있는 관련 장점을 연결해 행동을 제안하는 것보다 행동을 바꾸도록 훈계하는 소통 방식에 덜 반응할 수 있다.

484 세 번째 교실은 '긍정 꼬리표' 조건에 배정했다. 이 조건에서는 동일하게 8일에 걸쳐 동일한 소통자들이 단 한 번도 어린이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행동을 바꾸라고 훈계하지 않았다. 대신 어린이들에게 이미 깔끔하다고 칭찬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유익했던 파트는 '8장-사회심리학, 현장에 적용하기'의 교육과 관련된 챕터였다. 8장은 1~7장에서 언급된 실험과 이론을 바탕으로 어떻게 사회와 삶의 현장에 적용해나갈지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는데, 특히 교육과 관련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하나의 실험 결과를 소개한다. '명명'과 '훈계'를 비교하는 실험이다. 먼저 훈계의 경우 말 그대로 가르치고 설득하는 것이다. 쓰레기를 교실에 버리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리도록, 바닥에서 줍도록 어린이들을 설득한다. 반면 '명명'은 이미 깔끔하다고 칭찬하는 것이다. 마치 아이들이 이미 그런 사람이 된듯이 미리 명명하고 칭찬하는 것이다. 결과는 상당한 차이로 '명명'이 효과적이었다. 당장의 효과도 좋았을뿐더러 장기적인 지속효과도 좋았다. 상다잏 놀라우면서도 흥미로운 실험 결과였다. 앞으로의 아이들을 대함에 있어서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아이디어가 될 것 같다. 한편 성장과 자기계발을 강조하는 분들이 제안하던 '이미 그런 사람이 된 듯' 생각하고 느껴보라던 이야기도 떠올랐다.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을 상상하며, 이미 내가 그 사람이 된 듯 생생하게 그려보고 그 감정을 느껴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아이디어를 활용하며 긍정적인 효과를 경험한 바 있다. 이미 그러한 사람이 된 듯 명명하고 생생히 느끼는 것,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스스로를 돌보고 이끄는데도 매우 유용한 기술이 될 것 같다.

책에는 사건의 결과를 결정하는 것이 '사람'인지 '상황'인지에 관한 다양한 실험과 고찰이 담겨있다. 사람과 상황을 움직이는 질서에 관한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고 '제대로 된' 지식을 더함으로써 삶을 더 매끄럽게 이끌어가기 위한 지혜를 얻을 수 있었던 유익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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