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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
샬럿 버터필드 지음, 공민희 옮김 / 라곰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바로 그때 맨디가 크게 눈을 뜨고는 곧장 십 대 둘에게 죽을 날짜를 알려주었다. / p.18
상상력이 풍부했던 청소년 시기에 우연히 보았던 인터넷 사이트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생년월일과 생시를 입력하면 사망 날짜를 알려 주는 내용의 사이트였다. 가족들의 정보를 하나씩 입력했는데 이십 년이 넘은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나와 아버지의 사망 연도이다. 거기에 표시가 되었던 연도는 2027년이었고, 아버지의 나이와 계산했을 때 생각보다 젊은 나이여서 꽤 충격이었다. 그런데 그 연도조차도 채우지 못하셨다.
이 책은 샬럿 버터필드라는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제목이 눈길을 끌어 선택한 책이다. 38세에 죽게 된 주인공의 사정이 궁금했다. 사실 제목만 보고 어느 정도 내용이 예상했다. 세상을 어렵게 살아가는 주인공이 38세에 죽기로 하는 그런 이야기이지 않을까. 소설을 읽다 보면 느껴지는 뻔한 스토리일 듯했는데 가끔 익숙한 맛이 그리운 순간들이 있다. 어디까지나 혼자의 착각으로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넬이라는 인물이다. 십 대 시절에 남자 친구와 점을 보러 갔는데 황당한 예언을 듣는다. 바로 서른여덟 살에 죽게 된다는 것이다. 친구가 예언된 날짜에 세상을 떠난 것을 계기로 넬은 마치 시한부처럼 그 예언을 믿고 살았다. 죽기 전날에 코미디언과 함께 짧은 사랑에 빠졌고, 고급 호텔에서 홀로 죽음을 준비한다. 그런데 날이 밝았고, 넬은 살아 있다. 예언을 같이 들었던 남자 친구와 다시 재회하면서 다시 살아가는 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술술 읽혀졌던 작품이었다. 최근에 읽었던 책들에 비해 판형이 조금 커서 생각보다 부담감이 있었다. 물론, 익숙한 스토리를 상상했기에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당연히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실제로도 그렇다. 영미 소설임에도 등장하는 인물이 많지 않고, 현실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등장하다 보니 금방 완독이 가능했다. 370 페이지 정도의 작품이었는데 두 시간 안에 읽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넬의 생각에 의문점을 가지고 읽었다. 생각 자체가 크게 공감되지 않았다. 물론, 친구의 죽음이 예언과 맞아 떨어지기는 했지만 우연의 일치 정도로 생각한다면 자신의 죽음까지 연결짓는다는 게 조금 답답했다. 전 남자 친구의 그렉의 말처럼 그 한마디에 몰입해 인생을 날린 것이 너무 아까웠다. 차라리 스스로 세상을 떠났더라면 이해가 되었을 텐데 마지막 준비는 침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대체 무엇을 믿고 신변을 정리했을까.
넬의 새 출발이 버라이어티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보통의 일자리를 얻고, 톰과 그렉 사이에서 아슬아슬 사랑 저울질도 한다. 그냥 일반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넬의 이야기가 은근히 마음에 와닿았던 작품이었다. 오히려 인생을 실패한 한 여자의 위대한 두 번째 인생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이 보기 좋게 틀려서 그게 조금 머쓱해졌다. 사람 사는 이야기에 로맨스 한 스푼이 얹어진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들에게 안성맞춤일 것 같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