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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불빛들과 내리던 눈 말고 그 순간의 기억은 별로 없었다. / p.13
이 책은 폴 윤이라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그동안 이민자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작품들을 인상 깊게 읽었다. 대부분 한국계로서 다른 나라에 이주하신 분들께서 집필한 소설이었다. 이민진 작가님의 <파친코>를 시작으로 우수수 쏟아지듯 나왔는데 실망했던 작품이 거의 없었다. 최근 상을 받으신 이주혜 작가님의 <작은 땅의 야수들> 역시도 참 재미있게 읽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소설집에는 총 일곱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는 이민자이다. 이민자를 바라보는 이가 될 수도, 또는 이민자 당사자이기도 하다. 어떤 이유로 자신의 뿌리인 나라를 떠나 다른 외딴 곳에 정착했다. 아니, 정착하더라도 순탄하게 그들을 두지 않았다. 편견과 차별, 더 나아가 직접적인 해를 받는 인물들이다. 이민자가 가지고 있는 애환이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들이었다.
술술 읽혀지면서도 어려웠다. 내용 자체는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형용할 수 없이 시처럼 느껴졌다. 어떤 상황에 처하고 있는지 머릿속에 그려지지만 활자와 문장을 서정적으로 공감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그저 소설의 인물들이 겪고 있는 배경 위주로 이들의 감정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300 페이지가 안 되는 작품이었는데 대략 세 시간 정도 걸린 듯하다.
개인적으로 <보선>이라는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보라고 불리는 보선은 오해를 받아 죄를 뒤집어 썼다. 돈도 없고, 인맥도 없던 보선은 어쩔 수 없이 교도소에 갇히게 되었다. 취향찬란한 미국의 뉴욕과 보선은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다. 그가 머물렀던 교도소 역시도 그랬다. 미국에서 그는 어느 곳에서도 섞일 수 없었고,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에게 드는 감정이 안타까움 그 이상으로 한처럼 와닿았다. 같은 한국의 피가 섞였다는 점에서 오는 동질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한번도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기에 온전히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저 보선을 보는 어두운 눈길들이 밉게 느껴졌을 뿐이다. 그러면서 반대로 나 역시도 보처럼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이들에게 비슷한 눈길을 주었는지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디아스포라 문학의 매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사실 그동안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에서 사회적 이슈를 많이 생각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대한민국의 시선들을 자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문학의 맛을 온전히 경험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게 다가온 소설이었다. 더욱 신선했고, 조금 더 깊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