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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휘명 지음 / 히읏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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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심이 아닌 곳에서도 도심에 있었다. / p.29


이 책은 오휘명 작가님의 로맨스 소설이자 안성하와 장효빈의 연애와 이별 이야기다. 여기에서는 성의 가장 앞 글자를 따서 A와 Z로 불린다. A는 어떻게 보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제멋대로인 스타일의 여자이며, Z는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조용한 장소를 좋아하는 정적인 스타일의 남자다. 카페에서 조금 황당한 질문과 대답을 첫 만남으로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 둘은 서로의 삶에 관여해서 깊숙이 파고들었다. A가 뜬금없이 보고 싶다고 하면 Z는 늘 기다리고 있었고, Z는 A에게 깊숙이 보고 싶다는 말로 마음을 표현했다. 둘은 그렇게 사랑했다. 온 세상을 핑크빛으로 물들이고 세상에 서로만 존재할 것처럼 살던 두 사람이었다. 그러다 이별을 맞이했다. 명분상으로는 Z가 미국으로 1년간 파견을 가는 것이었지만, Z는 A에게 상처를 주면서 이별을 통보했다.


그들의 사랑 방식들이 인상 깊었지만, 개인적으로 둘의 문자메시지 내용이 조금은 색다르게 느껴졌다. 실제로 대한민국에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사랑을 키우는 A와 Z 커플이 있을 것 같은 느낌. 아무래도 편지 서신보다는 문자메시지가 더욱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목소리로는 전달하지 못할 낯간지러운 이야기들이 텍스트로는 너무나 로맨틱하게 전달이 되어 있어서 보면서도 대리만족을 느꼈다. A가 Z에게 로맨티시스트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 작년 10 월 12 일 오후 10 시 14 분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도심의 카페에서의 A와 도심의 공원에서의 Z의 이야기. Z는 도심에 대해 재정의를 내렸고, 명언과 같은 한마디를 남긴다. A의 사진을 보면서 그녀가 보고 싶어 메시지를 A의 메시지는 문학이 되고, A의 옆모습은 미술이 되고, A와의 전화에서 들려오는 것은 음악이 된다는 내용. 감탄을 자아내는 구절이다. 단순하게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과 메시지, 목소리를 그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지. 아마 나는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이렇게 말하지 못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A보다는 Z의 마음이 공감이 되었다.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과거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사랑에 빠지면 새벽에 문자를 보내는 Z처럼 나 역시도 갑자기 당시 만나던 사람 생각에 새벽에 깨서 장문의 구구절절 감성적인 문자메시지를 보냈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동으로 바꿔놓고 잤던 적도 있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오글거리기도 하고, 하라고 해도 안 할 행동들이었겠지만 말이다.


그들은 보통의 연인들처럼 A와 Z도 사소한 오해들로 서로에게 상처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그것 또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부정적인 감정도 서로를 잘 알아갈 수 있는 감정의 신호탄으로 생각하는 것도 좋았다. 상처를 안 낸다면 다행이겠지만, 상처를 냈더라도 서로가 있으니 괜찮다는 말. 나에게는 다소 뜬구름 잡는 식의 말처럼 느껴졌지만,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성숙하면서도 이상적인 관계로 느껴졌다. AZ에서는 실리지 않은 이후의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가장 이상적인 결말이어서 그것조차도 만족스러웠다. 성장한 그들의 이야기들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했다. 안 본 사이에 닮아 있는듯한 느낌도 받았다.


AZ라는 커플은 과거 연애를 하던 시간으로 나를 가져다주었다. 이불을 차고 싶을 정도로 조금은 부끄러우면서도 자아성찰의 시간이기는 했으나, 오래간만에 연애 감정의 세포를 되살릴 수 있는, 누구라도 사랑을 했었다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조금 불완전하다고 느낄 수 있으나, 그만큼 그들은 성숙한 어른의 연애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와 같이 읽으면서 추억 하나 정도 쌓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 '히읏'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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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목표는 다정해지기입니다 - 나에게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한 행복 루틴 78
이치다 노리코 지음, 윤은혜 옮김 / 언폴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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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겠어. / p.118

이 책은 일본의 프리랜서 에세이스트 이치다 노리코 작가님의 일기이다. 올해의 목표가 다정해지기, 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와서 읽게 된 책이다.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한 루틴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과연 저자는 어떻게 보면 평범하게 보내는 일상에서 어떻게 다정함을 보일 수 있을까,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등 그동안 내가 원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대가 되었다.

저자는 보통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 안에서 있었던 많은 일들과 그걸로 느끼는 감정들, 생각들을 담았고, 감사 또는 반성, 다짐으로 마무리가 된다. 직업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겠으나,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한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모습과 닮았다. 지나가면 보였을 아주머니도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근했다.

일기를 보면서 밑줄을 긋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 그래도 굳이 꼽자면 3 월 18 일, 6 월 23 일, 8 월 13 일의 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3 월 18 일은 '낯선 환경에 뛰어들어 스스로를 바꿉니다.' 라는 주제의 일기이다. 북극권과 주변 지역인 극북의 여행기를 담은 <극북으로> 라는 책을 읽고 느낌을 적었다. 북극이라는 세계를 카누를 들고 떠난 여행가를 보면서 부러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불안, 시행착오, 두려움 같은 것이 생기더라도 어떤 환경에 스스로를 내던진다면 미지의 세계가 열린다는 말로 마무리를 하였는데, 그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다. 결과를 알 수 없는 미래가 두려워 기회를 놓칠 때가 많았는데, 하기 전의 불안보다는 한 후의 자유를 즐기라는 점에서 나에게는 새로운 문으로 인도하는 내용으로 느껴졌다.

6 월 23 일은 '정답이 아니라 다양한 답을 찾습니다.' 라는 주제의 일기이다. <브리콜라주> 라는 단어를 통해 생각의 틀을 깨는 내용을 담고 있다. 브리콜라주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주변에 있는 도구와 재료를 활용해 이를 해결한다는 의미이다. 발효가 재미있는 이유는 정답이 아니라 다양한 답이 있기 때문이라는 빵집 주인의 말을 듣고 일상 속에서 브리콜라주의 방식으로 일상을 살아보는 것을 시도하자는 이야기로 마무리가 된다. 나 역시도 정답 하나만 찾기 위해 노력했다. 어쩌면 엔지니어링의 방식에 맞게 살아온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엔지니어링의 방식이 안정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실패가 적기는 하겠지만, 항상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는 세상에서, 정답만 쫓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브리콜라주 방식이 아닐까.

8 월 13 일은 '어떤 작은 일에도 진실되게 행동합니다.' 라는 주제의 일기이다. 저자의 거짓말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중복으로 의뢰를 한 상황에서 하나는 거절해야 되나, 의뢰한 사람에게 일정이 연기되었다는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은 저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사실대로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메일을 보낸다. 저자는 사과했지만,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의 큰 죄책감과 후회를 한다. 이후 어떤 사소한 일에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면서 이런 경험을 통해 배웠다는 이야기로 마무리가 된다. 과거에 저자와 같은 실수를 했던 적이 떠올라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 작은 거짓말이 큰 소용돌이로 돌아온다는 것을 인식한 이후로 미련할 정도로 솔직하게 보고하는 스타일이 되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다시 마음에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단조로움이나 익숙함이라고 느껴질 수 있으나, 나에게는 섬세함과 관심으로 보였다. 어쩌면 뻔한 이야기들로 느껴졌을 사람들의 말을 경청해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깨닫고, 별 대수롭지 않은 실패에서도 끈기를 보이고, 이를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는 것. 다정함이 아니었다면 보이지도 않았을 평범한 일상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음식이 나오는 일기 하단에 나오는 음식 레시피와 독자를 배려하는 사진 설명 등에서 저자의 따뜻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사실 50 대의 저자이기 때문에 30 대를 살고 있는 내가 겪지 못한 일들도 있었다. 50 대의 내가 읽었다면 더 큰 공감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단 하나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은 50 대의 내 모습이었다. 마치 저자처럼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여유와 다정함을 무기로 살아가는 어른이 되어 있지 않을까. 물론, 저자처럼 작은 변화에서의 만족과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가정이 깔렸을 때 이야기이다. 그 첫걸음으로 올해 목표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다른 시각으로 보기'로 새롭게 정하고자 한다.

<네이버 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 '언폴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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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
마쓰다 아오코 지음, 권서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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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레지스탕스. / p.116

이 책은 아저씨의 눈에 소녀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설정에서 시작하는 소설이다. 여러 기사를 통해 일본이 한국보다 여성에 대한 인권이 낮다고 알고 있다. 일본 페미니스트 작가의 소설이라는 게 첫 번째로 시선이 갔고, 일본에서의 페미니즘에 대한 시각이 궁금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아저씨들이 사라진다는 설정 자체가 너무 흥미롭게 느껴져서 읽게 되었다.

주인공인 게이코는 남자 직원에게 성추행을 당했으나, 역으로 이상한 소문이 퍼져 억울하게 퇴사를 하게 된 인물이다. 그렇게 상처를 받고 한 달동안 캐나다에서 머문다. 캐나다에는 동성과 동거하는 친구 커플이 살고 있는데, 거기에서 친구가 일본에 살았을 때와 다르게 목소리가 커졌으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친구로 변했다는 것을 인지한다.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 여성들이 억압되어 있는 일본 사회 구조를 바라보게 되고,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후 세상에 저항하는 콘셉트의 여자 아이돌 그룹의 XX에게 빠지게 된다. XX는 다른 여자 아이돌 그룹들과 다르게 귀여움이나, 여성스러움, 섹시함 등을 어필하지 않는다. 또한, 무대에서도 다 잡아먹을 것만 같은 눈빛과 무대 매너로 그룹의 센터 자리를 맡고 있다. 게이코는 이러한 XX를 좋아하지만, 최애가 속한 그룹 역시도 남자 프로듀서의 작품으로서 아저씨의 욕구나 니즈에 맞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약간의 흔들림을 가지고 있었으나, 보통 아이돌 그룹에서 볼 수 없기에 더욱 더 깊이 빠져든다. 그러면서 아저씨들의 판타지가 만연한 사회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가장 크게 게이코가 여자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부분들이 공감이 되었다. 남자 아이돌 그룹보다는 여자 아이돌 그룹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감정 이입이 쉬웠던 것 같기도 하다. 소설 중 짧은 치마와 속바지를 보이며 춤추고 노래하는 수많은 여자 아이돌을 보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면서 XX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이와 반대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게이코가 좋아하는 콘셉트의 여자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지는 않으나, 무대를 보면서 힘들어했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자 아이돌 그룹이 음악 프로그램에서 얇고도 짧은 의상을 걱정스럽게 시청했던 과거의 생각들이 떠올랐다. 남자 아이돌 그룹은 잘 차려진 실장님 콘셉트의 수트거나 장난꾸러기 콘셉트의 캐주얼 의상을 주로 입는 반면, 여자 아이돌 그룹은 무릎 이하로 내려간 옷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서 이러한 부분이 팬으로서 마음이 아팠다. 격한 안무에 그렇지 못한 의상이 늘 마음에 걸렸다.

또한, 가장 뒷통수를 맞은 부분으로는 교복에 대한 내용이었다. 게이코는 단순하게 여자 아이돌들의 스쿨룩 콘셉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평범한 여학생들에게 범위로 확장시켰다. 그 부분을 읽는 순간 머리에서는 과거에서부터 스쿨룩을 입었던 많은 여자 아이돌의 얼굴들이 스쳤다. 심지어 매체에 나오는 스쿨룩은 안 보고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일률적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학교 형태의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까지 떠올렸다. 그녀의 말처럼 교복을 입는 평범한 여학생들이 매체에 나오는 그들과 같은 시선으로서 소비가 되는 것이 당연한 사회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문제였다.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른다는 것도, 여자 아이돌 그룹의 콘셉트가 귀여움으로 제한적인 것도, 일본과 한국의 문화 자체가 비슷하면서도 다르기 때문에 전부 통용이 되지는 않는다. 게이코가 반했던 세상을 비판하는 가사를 가진 센 콘셉트가 한국에서는 특정 소속사의 하나의 장르일 정도로 너무 익숙한 일이다. 그래서 소설에서도 한국 여자 아이돌 그룹을 일본 여성들이 좋아한다는 이야기와 일본 여자 아이돌 그룹과 비교를 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러한 점은 한국인으로서 흥미롭게 보였던 부분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일본 소설에서 보였던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으며, 한국인의 정서를 가진 사람이 보기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제쳐두고 보더라도 페미니즘이 하나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고민할 내용이 많았다. 그러한 맥락으로 중간마다 픽션이라는 것을 자꾸 잊게 되었다. 소설이기는 하나,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사회 분야의 서적을 읽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무겁게 느껴졌다. 교복과 여자 아이돌, 출산과 양육 등 지금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어쩌면 한국에서도 당연하게 느껴지고 있을 시선들을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네이버 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 '한스미디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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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상처받은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까 - 불편한 기억 뒤에 숨겨진 진짜 나를 만나다
강현식 지음 / 풀빛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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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는 그 누구보다 소중하다. / p.44

세상에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살면서 누구나 작든 크든 상처 하나씩은 받고 살아간다. 나 역시도 말 한 마디에, 행동 하나에, 상처를 받았다. 그것을 계속 떠오를 때도, 이기고자 없던 취미도 만들어서 노력할 때도 있었다. 왜 내 상처는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의문이었다. 신이 나타나 내 기억을 도려내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데 그것은 쉽지 않다.

이 책은 누다심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시는 강현식 심리상담가님의 책이다. 주위에서 쉽게 겪을 수 있는 첫사랑과 조금 무거운 주제의 성폭행과 학대,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가스라이팅과 펫로스증후군,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 오염강박까지 가까우면서도 먼 주제들이 있어 관심이 생겼다. 또한, 나와의 교집합이 있는 부분들도 있어 처음에는 위로를 받고자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새롭게 느껴진 부분은 첫사랑과 오염강박, 공감이 되었던 부분은 가스라이팅과 펫로스증후군이었다. 사실 첫사랑은 마음 깊이 간직한다는, 조금은 아름다운 무언가로 묘사가 되어 있기에 극복한다는 생각은 깊게 하지 못했다. 첫사랑의 이별 역시도 하나의 상처였을 텐데 말이다. 특히, 사례를 보면 첫사랑의 아픔으로 비혼을 결심하게 되었고, 이를 잊지 못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을 회피하게 되며, 만남이 성사가 되었더라도 죄책감을 느끼는 부분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용 중에서 의미망모형이라는 심리학 용어와 미숙하기 때문에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오염강박은 요즈음 코로나19 팬더믹으로 인해 더욱 심해진 부분이 있어서 관심이 갔다. 오래 자주 씻게 되고, 외부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등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의 결벽증 사례를 보면서 이것 또한 큰 문제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열댓 번 이상 손을 씻을 정도로 과하게 청결을 유지하는 편이기도 하고, 덕분에 늘 거치면서 갈라진 손을 부작용으로 살고 있는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가스라이팅과 펫로스증후군은 경험을 했었고, 지금도 상처를 가지고 있는 부분이기에 마음 깊이 와닿게 되었다. 가스라이팅 사례에 나온 민서 씨가 자존감을 잃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과거가 떠올라 읽기가 힘들었다. 나를 성장시키겠다고, 나를 생각한다고, 내 생각과 능력을 무력화시켰던 가시같은 말들. 아마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상사로부터 상처를 받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보다 큰 공감이 될 수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펫로스증후군은 사랑하는 이를 잃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가족에게도 터놓지 못했던 속마음을 말할 수 있었던 때가 강아지와 있었던 순간이었는데, 하늘로 보내고 나니 잘 챙겨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감정을 교류했던 그 순간들을 잊지 못해 꽤 오랜 시간을 힘들게 보냈다. 사례를 읽으면서 울컥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이야기가 전부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강아지에게 감사 일기를 쓰는 것이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시가 되었는데, 조금 이 책을 일찍 만났더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읽으면서 학대에서는 이해하고 용서하는 방법으로, 교통사고에서는 불안과 반대되는 새로운 조건의 조합으로서, 성폭행에서는 주변에 이를 알리는 것 등 심리학 용어에 따라 조금씩 방법과 내용이 다르기는 하나 다양한 사례에서 해결로서 제시된 것은 직면이라고 여겨졌다. 어떤 부분은 직면을 통해 익숙해지기도, 좋은 기억으로 전환시키기도, 상처를 소거시키기도 한다. 불안과 두려움을 회피하지 말고 부딪히라는 내용들이 많이 나왔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사례를 시작으로 심리학 용어나 실험들을 통해 왜 사람들이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는지, 어떻게 하면 이를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하고도 친절하게 기술이 되어 있어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들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처음에는 정서적인 안정과 편안함을 얻고자 선택하게 되었으나, 생각보다 더 큰 만족을 줄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좋았다.

중간중간 실려 있는 저자의 한마디는 상처를 조금이나마 잊게 해 주었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과 당신은 소중하다는 말. 그것처럼 큰 위로가 어디 있을까. 물론, 위로가 전체를 관통하지는 않는다. 상처를 받은 이들에게 무조건 잘 헤쳐나갈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굳이 강요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갑자기 툭 던지는 진정한 한마디와 그것보다 더 확실하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상처가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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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플랜트 트리플 11
윤치규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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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이라니까. 너는 왜 항상 네가 보고 싶은대로만 봐? / p.17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한 연애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를 다룬 단편소설집이다. 가끔 남의 사랑 이야기를 말하는 라디오 사연을 듣거나 연애를 참견하는 프로그램을 종종 본다. 나의 연애사는 완벽하게 다큐멘터리였으나, 다른 사람의 연애사는 예능이자 드라마 그 자체였기 때문에 같은 맥락으로 연애 이야기가 궁금해 읽게 되었다. 또한, 식물의 방식으로 연애를 본다는 부분이 나에게는 큰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첫 번째 소설은 말레이시아에서 택시를 탄 희주와 그의 남자 친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처음에는 커플의 여행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생각의 소용돌이를 준 작품이었다. 희주는 비혼식을 할 예정이며, 남자 친구에게 야자나무와 팜나무를 구분할 줄 아느냐고 묻고, 그믐달과 초승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또한, 사고가 난 차 번호로 복권을 사면 대박을 칠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사고가 난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다.

 

이러한 희주를 남자 친구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 또한 그랬다. 조금 독특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희주가 상사로부터 성희롱 발언을 듣게 되면서 나의 생각은 정반대로 바뀌게 된다. 그 말을 들은 남자 친구는 상사의 멱살을 잡고 폭행을 하게 되는데, 이후 회사와 남자 친구의 태도가 너무 답답했다. 피해자는 희주이나, 왜 사과와 용서는 남자 친구에게 하는가. 회사 사람들은 왜 당연하게 희주가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해설을 보면서 야자나무와 팜나무, 그믐달과 초승달을 묻고자 하는 태도가 희주에게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희주가 비혼이라는 인덱스를 붙이는 것처럼 그것들에게도 특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해하지 못했던 독자인 나와 소설에서의 남자 친구는 희주의 말처럼 "네가 보고 싶는 것만 본다."라는 말이 딱 맞지 않았을까.

 

두 번째 소설은 신혼여행을 떠난 남녀의 이야기이다. 남자는 신혼여행을 가기 전 식사까지 완벽한 플랜을 가지고 떠났다. 그러나 현실은 술만 마시면서 보냈다. 남자의 플랜을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처음에는 남자의 입장에 공감이 되었다. 전형적인 계획형 인간으로 일을 시간 단위로 정하는 나에게 이러한 일이 어그러졌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소설을 통해서 보게 되니 머리를 부여잡고 보게 되었다.

 

그러다 마지막 날은 꼭 하자는 생각으로 바다 거북을 보러 나간다. 가이드는 뿔이 달린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뿔이 바다 거북을 찌른다는 말. 남자는 믿지 않았으나, 헤엄을 치던 중 이름 모를 무언가에 손을 찔린다. 그리고 바다 거북을 보지 못해 마지막 날도 그렇게 저물었다. 이슬람 음식점에서 물담배와 술을 마시고 돌아온 뒤, 사건이 터지고 이를 바라보면서 끝난다.

 

이 커플 역시 사내 연애였는데, 직원들의 적극적인 공세와 여자를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으로 빠르게 결혼한 결과였다. 수면제를 먹거나 술을 과하게 마시는 여자의 행동들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 행동 변화를 강요하지만, 나중에는 이를 그냥 수용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남자의 입장에 조금 더 공감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현실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케이스 중 하나일 텐데, 이렇게 접하게 되니 뭔가 마음의 한 구석이 답답해지면서 물음표로 끝났다.

 

마지막 소설은 꽃집을 운영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남자는 이혼한 뒤 고백을 꽃으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병적으로 싫어하게 되었다. 그러다 같은 건물의 회사에 근무하는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된다. 저녁을 먹는다거나 이야기를 나누기는 하나, 사적인 이야기는 나누지 않는 관계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그러한 마음을 화분이나 꽃을 통해 전달하게 된다. 그 마음의 매개체가 율마 화분이었다.

 

과거의 자신이라면 돌직구로 나갔을 테지만, 이혼 후 연애와 결혼에 대한 공식이 바뀌게 되어 마음을 말하지 않는다. 주변에서는 여자를 소개시켜 준다고 하거나 얼른 재혼을 하라는 말들을 건네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는다. 그저 화분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처럼 여자를 멀리서 기다리기만 한다.

 

두 남녀의 이야기를 보면서 성숙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 자체도 결국에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심지어 사랑은 시작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가 성숙한 사랑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상대방이 곁을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눈에 내가 들고, 관심과 신경을 쓸 때까지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가는 남자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아무래도 이혼의 상처로 얻은 결과겠지만 말이다. 왜 식물의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고 표현한 것인지, 제목이 러브 플랜트인지 이해가 되었다.

 

단편 소설 세 편과 함께 해설, 작가의 말까지 읽고 나니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사랑은 정형화되지 않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서두에 적었던 것처럼 남의 연애사는 재미있으니 흥미롭게 시작하게 되었으나,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혼란스러움과 여운을 남긴 소설이었다.

 

<출판사 '자음과 모음' 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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