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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저벨
듀나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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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모르는 대로 즐거운 독서가 가능하지 않을까. / p.301
원래 스타일은 이야기가 작가의 의도에 맞게 이해하고 있는지 검열하면서 읽는 편이다. 인터넷의 리뷰를 보면서 줄거리를 맞게 인지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을 나 역시도 보편적으로 느끼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도 했다. 약간 다른 시각이라면 뭔가 모를 이상한 감정에 빠질 때도 있었다.
그러다 리뷰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스스로 느낀 감정과 생각을 믿게 되었다. 같은 감정을 느꼈더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표절을 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것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이런 생각도 있었다라는 것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생긴 하나의 습관이 줄거리를 이해하면서 리뷰의 가닥을 잡아가는 것이다. 읽으면서도 이런 내용을 어떻게 정리해서 리뷰에 남겨야겠다는 일종의 계획을 세우면서 읽게 된다. 온전히 줄거리에 몰입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지독한 계획형인 나에게 아직까지는 이 습관은 잘 맞는 듯하다.
이 책은 듀나 작가님의 연작소설이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듀나 작가님의 소설을 본의 아니게 도장 깨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가장 먼저 접했던 미스터리 소설은 새로웠고, 최근에 읽었던 단편 소설은 나름 뒤로 갈수록 물음표가 들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공감하면서 잘 읽었다. 그리고 세 번째 접하는 연작소설이어서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에서 크루소라는 변비 행성이 등장한다. 변비 행성은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갈 수는 없는 그런 행성을 뜻하는데 나라는 화자가 크루소 안에서 만난 사람과 벌어진 사건 등을 연작 소설의 형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성별을 알 수 없는 선장이 등장하고, 글을 쓰는 46호라는 사람이 등장하고, 의사와 군인으로부터 각각의 사건을 듣는다. 크루소 행성에서 벌어진 역사와 이야기들을 말이다.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익숙함과 낯섬의 경계를 느꼈다. 한국 작가의 소설인데 뭔가 모르게 이국적인 향기가 풍긴다. 등장하는 우주선부터 인물까지 마치 외국에서 온 듯하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크루소라는 이름부터 제목인 제저벨, 그 외에도 올리비에와 레번튼 등 불리는 명칭에서 낯설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용을 하나씩 정리해서 읽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도 했다. 반가운 이름들도 등장했는데 자궁, 노르망디가 가장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이 이름들 속에서도 낯선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의 뜻과 다른 우주선이라든지 뜻을 담고 있어서 알고 있던 무언가와 소설속에서 드러나는 의미의 충돌이 있었다. 더욱 배경과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마치 전에 읽었던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에서 등장한 브로콜리의 존재에 당황했던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는 친절하면서도 불친절하다는 생각이다. 전개 자체가 상당히 불친절하다. 어느 정도의 진행 상황이나 이해할 수 있는 사전적 배경들을 알려 주어야 하는데 이를 전부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긴 것 같았다. 상상력이 너무나 부족했기에 줄거리를 이해하는 게 참 어려웠다. 그런데 반대로 등장 인물의 말은 또 친절하다. 말투의 친절함이 아닌 자신이 겪은 일들을 너무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는 점이다. 문어체로 시작하다가 갑자기 구어체가 되어서 보면 누군가 주인공에게 전달하는 과정의 내용이었다. 그런 구어체가 최소 한 페이지 이상이다. 세계관 안의 주인공에게는 너무나 쉽고 친절하게 이해할 수 있겠지만 정작 세계관 밖의 독자인 나에게는 불친절하다고 느껴졌다.
사실 읽는 내내 걱정이 앞섰고, 읽고 나니 막막한 소설이었다. 덮고 나니 '이게 뭐지?' 싶은 생각으로 리뷰의 방향성이 잡히지 않았다. 줄거리를 제대로 이해한 것도 아니고, 인물의 감정은 더욱 모르겠다. 뭘 알아야 한 글자라도 적을 텐데 아무것도 없는 내 머릿속은 그야말로 비상이다. 나름 SF 소설을 좋아해 수시로 작품을 읽기는 했지만 나처럼 SF 초보 수준의 사람들에게는 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적어도 중수 이상은 올라가야 작가의 광활한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는 난해하면서도 강렬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불쾌한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모르는 느낌의 독서가 신선했다. 머리와 눈이 싸우는 듯한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 작가의 말처럼 모르면 모르는 대로 즐거운 독서가 된 듯하다. 어차피 다시 읽는다고 해도 물음표가 떠오를 테니 SF 소설의 경험치가 쌓이고 나면 다시 읽고 싶다는 다짐을 들게 한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