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척
레이철 호킨스 지음, 천화영 옮김 / 모모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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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 있다. / p.46

겁이 많은 성향 때문인지 작은 일에 많이 놀라는 편이다.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는 도중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 때문에 놀라고, 길을 가던 중 보이는 낙엽을 보고 놀라고, 컴퓨터를 하고 있을 때 뒤에서 부르는 부모님의 말씀에 놀란다. 오늘만 해도 잠깐 나왔다 집으로 가던 중 재활용품 정리를 하고 계시는 경비원 아저씨의 인기척에 또 놀랐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참 많이 놀림을 당하기도 한다. 특히, 회사나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 인기척에 놀라는 경우다. 이미 사람이 온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뒤로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표정부터 변한다. 놀라는 모습을 평생 볼 일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주변 사람들은 아마 가지고 있는 표정 중 제일 큰 표정일 것이라고 웃는다.

이 책은 레이철 호킨스의 장편 소설이다. 표지부터 줄거리까지 뭔가 묘하게 영화처럼 모습이 그려져 고른 책이다. 뭔가 사람 한 명이 있으면 영화 기생충인 것 같기도 하고, 줄거리를 보니 무슨 사랑에 대한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사실 바람 같은 치정극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는 하지만 신비로운 느낌을 받아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제인과 베, 에디라는 세 사람으로 이들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히, 이 중에서도 제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제인은 손필드라는 부자 동네에서 주거인들의 개를 산책시키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거기에 주거인들의 물건을 하나씩 훔쳐 용돈벌이를 하는 도둑이다. 현재는 능력 하나 없는 남자 친구의 집에 얹혀 살고 있기도 하다. 여느 날처럼 개와 함께 산책을 하던 중 에디라는 매력적인 남자를 만난다. 에디는 재력이 있는 남자로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와 전혀 반대의 사람이었다. 신분 상승의 기회를 노리는 제인은 남자 친구의 존재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자신에 대한 정보를 숨기거나 속인다. 결국 에디와 조금씩 가까워졌고 결혼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다.

제인은 개 주인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에디가 살인 사건으로 베라는 이름의 부인을 잃은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베의 살인 사건에 대한 전말을 듣기도 한다. 베라는 인물은 큰 회사를 가지고 있는 능력 있는 여성으로서 친구인 블랜치와 함께 별장에서 놀던 중 봉변을 당한다. 블랜치는 살해가 된 채 발견이 되었고, 베는 아직 실종 상태이다. 그러면서 블랜치와 베의 관계 역시도 베의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읽으면서 살인 사건의 범인보다는 제인, 에디, 베의 심리와 감정에 더욱 몰입이 되었다. 교회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누가 봐도 추한 모습의 남자 친구와 개를 산책시키고 있는 자신의 신분에 만족하지 못하는 제인, 누가 봐도 완벽한 외모와 재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뭔가 묘하게 비밀스러운 모습을 가진 에디, 능력 있는 여자인 듯 보이지만 남들이 알 수 없는 과거를 가진 베까지 뭐 하나 드러나는 인물이 없다. 등장 인물들은 너무나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가뭄에 콩이 나듯 하나씩 진실을 말했다고 하지만 그마저도 거짓이자 비밀로 들렸다. 혼란스러움의 연속이다. 

분위기에 압도되는 매력이 가장 크게 와닿았다. 마치 나에게 없는 비밀을 손에 쥔 듯한, 에디에게 마치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 읽는 내내 베의 존재를 파헤치려고 하며, 베를 살해한 용의자로 에디를 의심하고, 과거의 잘못과 수치가 드러날까 봐 마음 졸이는 감정까지 느껴졌다. 중반에 이르러 제인이라는 착각까지 들게 했다. 그만큼 묘한 분위기와 감정을 주었던 소설이다.

분위기와 심리에는 크게 가닿는 부분이 있었지만 등장하는 인물 누군가에게 공감이 되지는 않았다. 그저 인물들의 추악한 민낯을 보는 것 같았다. 아마 내가 제인이거나 에디이거나, 혹은 베 중 한 명이었다면 나체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을 듯하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추악한 감정을 모두 드러내고 있기에 그 누구에게도 연민조차 들지 않았다. 물질을 가지고 싶다는 탐욕, 타인을 향한 질투와 시기, 어쩌면 그 이상의 욕망까지도 온전히 느껴졌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재미를 느끼는 독자보다는 스릴러 특유의 쫄깃한 심리 묘사를 즐기는 독자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그런 의미로 보았을 때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보다는 인물들의 심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더욱 선호하는 편이어서 취향에 맞았다. 4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순식간에 읽을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한 작품이었다.

그들에 대해 아는 정보가 하나도 없었기에 비밀을 알아가는 마음보다는 비밀이 밝혀져 자신들의 허물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더욱 묘사가 되어 이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소설 속에서는 수면 아래에 가라앉은 세 인물에 대한 비밀이 쌓여 있겠지만 소설을 읽은 바깥 세상의 독자들에게는 그들의 비밀따위는 없다. 책을 덮고 나니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는 말이 떠올랐던 이야기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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