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 시대의 강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고민들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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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앞에서 인간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 p.191

가벼운 일은 그냥 화를 내면서 넘어갈 것이겠지만, 뜻대로 상황이 굴러가지 않을 때 인생에 대한 깊은 불신을 느낀다. 과연 내가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다. 뭔가 실패한 느낌이 든다. 어떤 상황에서도 웃고 넘어가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듣기는 했었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이 책은 정지우 작가님의 인문 서적이다. 올해 초에 글쓰는 삶에 대한 에세이를 읽었다. 가지고 있던 고민과 걱정, 불안을 그대로 적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때부터 정지우 작가님의 팬이 되었다. 이후부터 시간이 될 때마다 조금씩 작가님의 책을 읽고 있다. 그러다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좋은 기회에 출판사의 이벤트로 서적을 받게 되었다. 

제목부터가 참 인상적이었다.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중심을 잡기 위한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사람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또한, 다른 사람을 보면서 질투심을 느끼지는 않지만 스스로의 자책감을 심하게 가지는 편이다. 어쩌면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에 대한 답과 나아갈 수 있는 방향성을 잡아 줄 것 같았다.

크게 세 가지의 목차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장은 사람과의 관계, 두 번째 장은 세대나 시대의 현상, 세 번째 장은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이해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장과 세 번째 장은 연결해서 보이기도 했다. 기대한 측면은 첫 장의 내용들이었지만 묘하게 두 번째 장과 세 번째 장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첫 번째 장에서 지렁이가 비를 좋아하는 줄 알았지만 살기 위해 비가 오는 날에 나왔다는 이야기를 통해 다가오는 사람이 무조건적으로 이기심과 자신의 이득을 위해 찾아오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었다. 또한, 요즈음 인기 있는 MBTI가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는 수단으로 사용됨과 동시에 상대방을 규정하는 수단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이는 경각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두 번째 장에서는 집단주의의 압박이라는 파트와 개인을 옹호한 대법원 판결이었다. 집단주의 압박은 주인이 아는 척하면 다른 곳으로 옮겨 간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해 집단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개인의 문제로서 자살, 우울 등을 이야기했다. 이와 연결지어서 개인을 옹호한 대법원 판결은 군대 내 동성 간 성관계를 대법원이 판결하면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해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아무래도 군대 자체가 집단주의가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집단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도 개인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보기에 저자의 생각에 큰 공감을 하게 되었던 파트이다.

세 번째 파트는 공감보다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깨었다는 의미로 인상적이었다. 특히, 태권도장이 문을 닫으면 경력단절여성이 늘어난다는 파트가 머리에 강하게 남았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의 영향으로 실내에서 단체 운동을 하는 곳들이 휴업을 하거나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아이들이 학원이나 태권도장을 가지 못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양육자인 어머니가 직장을 그만 두고 육아를 하면서 경력이 단절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 이렇게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충격이었다. 그러고 보니 맞벌이 가정인 동생이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된다면 학원을 돌려야 한다는 고민을 터놓았던 일이 떠올랐다.

한번에 훅 읽는 것보다는 바깥에 나갈 때 들고 다니는 책의 용도로 느리게 읽었던 책이다. 그러나 이렇게 완독을 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어지럽다. 온전히 저자의 이야기를 이해했는지 의문도 든다. 너무나 일상에서 느끼고 있던 내용과 단순한 문체이기는 하지만 읽으면서 내내 곱씹는 내용들이 많았기에 안 그래도 느린 속도에 더욱 제어가 걸렸다. 아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이후에 재독이 필요할 듯하다. 공감과 별개로 조금 더 깊이 생각을 해 보고 싶다.

전에 읽었던 글쓰기 에세이가 작가의 개인적인 삶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감을 주었다면 이번에 읽은 책은 세상에 대한 시각과 방향성을 주었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었다는 측면에서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도 그랬던 것처럼 정지우 작가님의 책은 믿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세상을 잘못 살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 중심을 잡는 고민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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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이는 사람들 - 영국 최고 법정신의학자의 26년간 현장 기록
리처드 테일러 지음, 공민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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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평가를 바로 내가 하게 된 것이다. / p.16

즐겨 보는 프로그램들이 독서만큼이나 편향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범죄학과 심리학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사실 법의학자, 범죄심리학자 등의 직업도 매체를 통해 배우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나에게는 다른 직업보다 그 직업들이 더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조금 더 어린 시절에 흥미를 가졌더라면 장래희망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법의학자나 범죄심리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이 책은 리처드 테일러의 범죄와 관련된 서적이다. 매체로 친숙한 분인 박지선 교수님의 추천 도서라는 문구가 가장 눈에 띄었다. 거기에 법정신의학자라는 직업 자체에 관심이 갔다. 범죄 이야기 자체에 늘 흥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읽게 되었다. 

저자는 26년간 법정신의학자로 활동하면서 영국, 미국 등 서양의 다양한 국가에서 범죄자를 만나 면담과 치료를 해왔다. 성적 살인과 영아 살인, 연인을 살해한 남자와 여자, 정신 질환을 가지고 사람을 살해한 경우뿐만 아니라 잘못된 믿음으로 테러를 저지르는 사람들까지 생각보다 광범위한 사례가 등장했다. 중반까지는 어느 정도 뉴스나 매체로 접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하면 뒤로 갈수록 쉽게 볼 수 없는 테러 범죄자들의 이야기가 조금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읽으면서 그들의 심리와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조금은 실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실 법정신의학자라는 직업이 가장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그것이 알고 싶다, 표리부동, 당신이 혹하는 사이 등 범죄심리학자 또는 프로파일러의 직업이 먼저 떠오르는데 이 직업과 차이점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읽으면서 느꼈던 차이점은 '의학'이라는 부분이 포함되는지 여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해자나 범죄자를 만나 심리를 파헤치는 것은 맞지만 정신의학 측면으로 풀어내는 게 개인적으로 느낀 차이점이었다. 물론, 내용을 읽다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등장하기는 한다. 거기에 개선에 필요한 약물이나 인지치료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다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연인이나 배우자를 살해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자와 여자를 따로 분리해 사례를 정리했는데 이유가 다르다는 점이 와닿았다. 남자는 가정 폭력의 정도가 점점 심해져서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이다. 주된 이유는 연인이나 배우자로부터 모욕감을 받았다거나 다른 이성과 있는 모습을 보고 질투를 느끼는 등의 모습이었다. 읽으면서 동등한 입장이 아닌 권력을 가진 아랫 사람으로서 살인을 저지른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바람을 피우는 상황에서 상대를 구속하려는 가해자들의 사례는 말을 잃게 했다.

반면, 여자의 살해 의도는 매 맞는 아내 증후군이라는 말로 표현이 되었다. 가정 폭력으로 고통을 받다 한계치에 이르렀을 때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칼을 휘두루는 것이다. 보통 그렇게 남자를 살해한 여자들은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로서 저자와 만나 상담을 받았다. 물론, 모든 사례가 다 그렇다는 점은 아니었겠지만 주요 이유를 보면서 참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저자의 이모 사례가 책 내용에 수시로 등장한다. 이모는 저자의 사촌이자 이모의 자녀를 살해한 적이 있고,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다. 읽는 내내 저자가 법정신의학자로 진로를 결정하는데 이모의 영향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가족의 어두운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펼쳐 보이는 게 어려웠을 텐데 말이다. 결국 이모와 다른 사촌들도 안 좋은 결말을 맺게 되었지만 저자의 시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미국과 영국 등의 사례가 등장하지만 테러를 제외한 다른 살인 사례들은 대한민국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공감이 되는 사례들도 있었다. 가해자들의 정신을 파헤친다고 하지만 아마 평생을 살아도 다른 이들의 생명을 훔친 범죄자들의 심리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정신 질환이 있다는 사실이 목숨을 빼앗은 것에 대한 합리화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은 여전하다.

책을 덮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단 한 가지의 바람이 자리 잡았다.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이 찍히지 않는 사회, 목숨을 빼앗은 범죄자가 정신 질환을 이유로 감형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남녀노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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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저 노트, 여왕의 비밀 수사 일지 첩혈쌍녀
소피아 베넷 지음, 김원희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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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어왔던 추리 소설과 다른 여왕님의 우아하고도 고풍스러운 추리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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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의 밤
블레이크 크라우치 지음, 이은주 옮김 / 푸른숲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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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한한 해변에서 모래알을 찾고 있다. / p.365

어렸을 때에는 가끔 엉뚱한 가정을 할 때가 많았다. 특히, 책을 보면 너무나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들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편이었다. 현재는 시간이 흐르고 사회의 때가 많이 묻은 사람이어서 누구보다 헛된 상상을 하지는 않지만 당시에는 누가 봐도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는 꼬마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 책은 블레이크 크라우치의 장편 소설이다. 소재 자체가 흥미로웠다. 느낌으로 고를 때가 많기는 하지만 줄거리를 보고 이끄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이 딱 그 케이스였다. 나의 모습을 한 나에게 납치가 되었다는 설정에 관심이 갔다. 특히, 어렸을 때 했었던 허무맹랑한 생각 중 하나가 다른 세상에 나의 얼굴을 한 누군가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나름 공감이 될 수 있을 듯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지역 대학의 물리학 교수인 제이슨은 아내인 다니엘라, 십 대 아들 찰리와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남성이다. 과거 물리학자로서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다니엘라의 임신으로 이를 포기하고 결국 가정을 선택했다. 아내 역시도 촉망 받는 화가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으나 제이슨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전업 주부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기에 제이슨과 다니엘라, 찰리는 서로에게 충실하면서 단란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물론, 친구의 수상 소식을 들으면서 씁쓸함은 어쩔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친구의 수상 파티를 축하해 주고 오는 길에 제이슨은 복면을 쓴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한다. 눈을 뜨니 모르는 한 교수가 말도 안 되는 설명을 하면서 자신을 붙잡고 있다. 다니엘라와 찰리에게 돌아가고 싶었던 제이슨은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것 또한 곧 잡혀 다시 돌아온다. 무기력한 생활을 하면서도 가족을 생각했던 제이슨은 계속 가족을 찾아 나설 방법을 찾고, 소설은 이러한 제이슨의 여정과 납치된 비밀을 알게 된다. 

제이슨의 가족은 겉으로 보기에 참 화목한 가정이다. 무엇보다 부인을 사랑하는 남편, 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역할, 거기에 아내 역시도 남편과 같은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뭔가 묘하게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제이슨에게서 과거 선택으로 이룬 지금 환경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가족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을 테지만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은 가지고 있는 듯했다. 내내 가족을 생각하는 모습들을 보이기는 했지만 어느 한 편에서는 이러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막연하게 다른 시공간에서는 나의 모습을 한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가정을 했었던 때가 있었기에 그때의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제이슨을 예로 든다면 아내의 임신 소식을 알았을 때 가족이 아닌 커리어를 생각했던 제이슨 2라는 인물이 있을 것이다. 그밖에도 소설에서는 전염병으로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제이슨과 다른 직업을 가진 제이슨이 등장한다. 과연 나의 또 다른 내가 나타난다면 어떤 느낌일까. 지금의 전공을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능력치의 내가 등장한다면 그를 막연하게 부러워 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지금의 나보다 어려운 상황의 나라면 측은함이 들었을 것 같다.

소재 자체도 좋았지만 제이슨의 생각이 가장 인상 깊었다. 선택이라는 것은 완벽하지 않다고 하거나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라는 우물에서 살고 있는 물고리 한 마리에 불과하다는 예시 등 다소 철학적으로 느낄 수 있는 혼잣말 또는 말들이 자주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진짜 이상한 미치광이의 말이라고 보일 수도 있는데 그 안에서 지금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의 주인공은 자신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어떤 선택을 하든 결국은 결과는 나오기에 일생에서의 많은 선택은 그저 별거 아니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제이슨이 과거 선택에 대한 옅은 미련에 대한 죄로서 다중 우주에 갇힌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소재 자체가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SF 소설이기 때문에 이론 자체가 어렵게 느껴지기는 했다. 다중 우주라든지 양자역학의 경우에는 전혀 지식이 없는 물리학 이론들이어서 관련 내용은 나름 어렴풋이 해석하는 느낌으로만 읽었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지만 조금 더 풍부한 이해를 하지 못한 점은 조금 아쉬울 것 같다. 아마 과학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더욱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흥미로운 이야기여서 읽는 내내 몰입할 수 있었고, 시나리오 작가인 저자의 경력처럼 제이슨를 둘러싼 이러한 사건들이 하나의 영화처럼 재생이 되었다. 마치 다른 제이슨들이 쫓는 장면은 하나의 액션 영화처럼 그려졌고, 다중 우주를 넘어가는 장면들은 스케일이 큰 SF 영화처럼 보였다. 어려운 이론이 나왔음에도 그나마 쉽게 해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상상들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SF의 관심을 떠나서 초보부터 고수까지 전부 만족할 수 있을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초보에게는 스펙타클한 스릴러의 쫄깃한 묘미를, 고수에게는 다른 차원의 다중 우주를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스릴러 소설처럼 손에 땀을 쥐고 보게 되었지만 SF 소설의 매력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영상화로 펼쳐지는 이 소설이 더욱 기대가 되는 이유다. 과연 내가 그리는 이 스케치 수준의 영상들이 색을 입는다면, 얄팍한 지식으로 이해했던 다중 우주의 큰 세계들이 자본을 들이면 어떤 모습으로 탄생이 될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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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합
다지마 도시유키 지음, 김영주 옮김 / 모모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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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연못의 요정이야. / p.23

편견이라는 것은 가장 경계하고 있는 것이지만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야를 좁혀서 상황을 일방적으로 재단하는 것. 분명 맞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에 몰입해서 안 맞는 사람이라고 단정 짓게 되는 것. 결국 편견으로 기회를 놓치거나 인연을 보내는 일들이 있다. 있는 그 자체로 인정하거나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책은 다지마 도시유키의 장편 소설이다. 제목 자체가 조금 의문이 들었던 책이었다. 백합은 흔히 흰색으로 알고 있다. 태어나서 흰색의 백합은 많이 봤지만 흑색 백합은 본 적이 없다. 과연 흑백합이라는 게 뭘까. 거기에 모든 것이 복선이면서 단서라는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게 관심이 갔다. 흑백합과 미스터리는 또 무슨 연관이 있을까. 마치 살인 사건에 범인이 흑백합으로 자신의 정체를 알린다는 뜻인가. 여러 생각을 하면서 펼쳤다.

소설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초반에는 열네 살의 소년 두 명과 소녀 한 명이 등장한다. 스스무라는 소년의 시점으로 전개가 되는데 아버지 친구의 초대로 간사이 지방의 시골 별장에서 여름 방학을 보낸다. 아버지 친구에게는 가즈히코라는 동갑의 소년이 있었고, 둘은 근처 연못에서 놀던 중 가오루의 이름의 소녀를 만난다. 스스무와 가즈히코는 동갑의 그 소녀에게 마음이 갔다. 세 사람의 풋풋하고도 서툰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다.

내용이 전개가 되면서 스스무 아버지와 가즈히코의 아버지, 대기업의 회장, 롯코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여자, 가오루의 고모인 히토미, 히토미의 남편, 히토미의 오빠 등 다양한 어른들이 등장한다. 갑자기 30년대의 독일 베를린으로 가 아이다 미치코라는 여성까지 나오는데 이들을 둘러싼 관계와 롯코의 여왕과 아이다 미치코의 존재는 누구인지 등 다양한 의문을 품는 이야기들이 시공간을 넘어 전개가 된다.

사실 초반에 읽으면서 미스터리보다는 로맨스 소설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었다. 자주 예시로 들 수도 있겠지만 황순원 작가님의 소나기의 삼각관계 버전처럼 느껴졌다. 첫눈에 반한 두 소년과 한 소녀의 사랑 이야기. 대놓고 서로 소녀와 연애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벌이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소녀와 더욱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일 때 소년들의 질투와 반응, 말도 안 되는 고백 등 십대 청소년이기에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었던 순수한 사랑 이야기들이 웃음을 짓게 했다.

더불어 중반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바람을 피우는 불륜의 사랑이나 목숨을 걸고 하는 사랑 등 순수했던 아이들의 사랑과 또 다른 류의 어른의 사랑이야기도 등장했다. 약간 흑과 백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독일에서 스스무 아버지와 가즈히코 아버지, 대기업 사장님이 만났던 아이다 미치코의 존재와 히토미의 사랑 이야기가 가장 시선을 끌었다. 아이다 미치코는 뭔가 차가우면서도 도울 것은 돕는 존재처럼 그려졌는데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낯선 독일이라는 장소에서 친숙한 일본인을 만난 것에 대한 뭔가 이중적인 느낌을 받은 듯했는데 베일에 싸인 이 존재가 계속 눈길이 갔다. 또한, 히토미는 누구보다 살뜰하게 조카인 가오루와 두 소년을 챙겨 주는 다정다감한 고모로 등장하는데 갑자기 이어지는 어른의 순정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이들의 사랑과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로맨스 소설이라는 생각에 약간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터리 소설이라는데 심장 쫄깃한 추리도 아니고, 잔잔하게 인물들의 심리를 파헤치는 스릴러도 아닌 뭔가 속은 듯한 기분이라고 할까. 어떻게 보면 뻔한 추리 소설처럼 느껴졌다. 모든 인물이 상상 가능했고, 추리를 할 것도 없었다. 읽는 내내 구멍이 숭숭 뚫린 그물과 같은 소설처럼 느껴졌다. 100% 속는다는 게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인가.

그러다 마지막 이야기를 읽고 옮긴이의 말을 보는데 망치로 제대로 한방 맞았다. 그동안 당연하게 믿었던 내용들이 하나같이 나의 편견으로 인식된 허구였던 것이다. 이렇게 편견이 무섭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사실 이런 류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다. 편견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결말에 그때도 똑같은 충격을 받았는데 시간이 흘러도 편견을 접고 소설을 읽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편견이라는 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터리 소설을 떠나 자신이 갇힌 무언가를 깨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단정 짓지 않고 읽는다면 재미가 반감될 소설이겠지만 이 책을 읽었던 사람들이라면 이미 머릿속에 그려진 어느 편견으로 단정을 지어놓고 보지 않았을까. 나부터도 그랬던 것 같다. 아마 이런 류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결말이 신선할 것이고, 얼마나 단편적으로 소설을 읽어왔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충격이면서도 그렇게 깨지는 느낌이 좋았던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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