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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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핑커턴이요, 언제든지 도움을 드리리다. / p.44

마술을 주제로 했던 쇼들을 보면서 예전에는 그저 놀라움에 흥미를 가졌다.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들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당시에는 마술 스킬을 알려 주는 도서들을 구매해 작은 손으로 동전을 숨겨 사라지는 마술을 하기도 했었는데 서툰 솜씨로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면 마치 마술사가 아닌 마법사가 된 듯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부터 어렸을 때 안 보이던 트릭들이 말하지 않아도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이것 또한 사라졌다는 것보다는 숨겼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성인이 되어 현실에 찌든 삶을 살다 보니 환상의 눈마저 잃은 것 같다. 지금도 마술은 또 하나의 환상이며, 누군가에게는 꿈이 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 책은 조나탕 베르베르의 장편 소설이다. 또 다른 베르베르의 등장이라는 문구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 지금까지 베르베르 하면 고양이와 행성을 집필한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떠올랐는데 새로운 이름이라고 하니 그게 참 신선했다. 또한, 마술사가 심령을 부리는 다른 이들을 추적한다는 내용에 관심이 생겨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제니라는 인물로 마술사이다. 마술사로서 큰 명성보다는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처지로 어떻게 보면 어려운 처지인 듯하다. 가난하지만 할 줄 아는 마술로 겨우 먹고 살아가는 제니에게 R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등장한다. 하루도 아닌 며칠을 먹고 살 수 있는 20 달러를 제안하면서 하나의 조건을 건다. 그것은 다른 마술의 트릭을 알아 맞혀 보라는 것. 마술사로서의 윤리와 금전적인 유혹 사이에서 고민하던 제니는 후자를 택했다. 결국 핑커턴 추리 사무소에서 R이라는 이름의 로버트 핑커턴에게 스카웃된다. 그곳에서 처음 맡게 된 업무는 폭스 자매 사건이다. 폭스 자매는 심령술로 막대한 부와 명예를 얻은 이들이다. 로버트 핑커턴과 그의 동생 윌리엄 핑커턴은 거짓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며, 부당하게 이익을 얻는 폭스 자매를 뒤쫓고 있다는 것이다. 제니는 남편을 여읜 과부로 위장해 폭스 자매와 어울리며 그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제니가 과부로 신분을 바꾸어 폭스 자매에게 접근하는 순간부터는 나도 모르게 조마조마 긴장하는 마음으로 읽었고, 인상 깊었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제니가 폭스 자매와 가까워지면서 다행이다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구보다 로버트 핑커턴은 그들에게 강한 의심을 품었지만 제니는 직원으로서 움직이다 보니 조금은 의심이 흐릿하게 작동하는 듯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페이지 수가 많아서 처음에는 걱정이 되었던 작품이었다. 아무래도 심령이나 마술, 마법 등의 환상적인 이야기에 큰 관심이 없기도 하고, 작가 이름에 먼저 시선이 끌려 선택한 작품이다 보니 크게 공감보다는 재미를 우선적으로 두고 읽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술술 읽혀졌고, 제니가 처한 상황에 너무나 몰입이 잘 될 수 있어서 또 다른 매력을 느꼈다. 또 다른 베르베르의 등장이 너무나 기대되었고, 반가웠던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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