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 아닌 잘못
아사쿠라 아키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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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달리는 것이다. / p.124

슬프거나 우울한 상태도 부정적으로 와닿지만 가장 싫어하는 상황 중 하나가 억울할 때이다. 특히, 잘못하지 않았는데 독박을 쓰는 경우에는 분노의 수위가 꽤 많이 올라가는 편이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 주는 피해를 극도로 피하는 편인데 그만큼 반대로 타인이 나에게 주는 피해 역시도 받고 싶지 않다. 그런데 억울한 상황은 대체로 피해를 받는 일이기 때문에 답이 없는 것이다.

이 책은 아사쿠라 아키나리의 장편 소설이다. 사실 소설의 줄거리를 보자마자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했다. 사소한 일로도 억울한 상황에 몰리게 되면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되는데 인생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큰일의 용의자가 되는 신세라면 그야말로 진퇴양난일 것이다.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뭔가 모르게 호기심이 들었다. 아마 소설이기 때문에 흥미가 생기지 않았을까.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야마가타 다이스케는 회사의 영업부장으로서 근무하고 있다. 아내와 자녀를 둔 평범한 가장인데 업무를 하던 중 회사로부터 복귀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이상한 일이기는 했지만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다이스케는 자신이 여대생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히, SNS에서는 여러 증거들을 가지고 다이스케를 살인자로 낙인을 찍은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의 눈빛은 모두 다이스케를 향하고 있었고, 아무도 믿을 수 없이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줄거리를 읽을 때보다 책을 읽으면서 더욱 큰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 또한,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닌 어떻게 보면 주변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와닿기도 했었다. 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가족조차도 의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점점 작아지는 다이스케의 모습을 보니 뭔가 짠한 마음이 들었고, 세상에 믿을만한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읽는 내내 다이스케의 감정과 심리에 공감이 되었고, 무겁고도 혼란스러운 느낌이 내내 짓누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부분에서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는 마녀사냥하는 사람들의 존재이다. 여대생들을 살해한 범인을 쫓는 과정이 주된 이야기이지만 중간마다 사건이 진행되는 흐름에 따라 SNS 이용자들의 댓글이 등장하는데 단순하게 다이스케의 잘못을 꼬집는 내용부터 시작해 말도 안 되는 소문, 가족들에 대한 비난까지 입에 담을 수 없는 댓글은 너무나 현실적이면서도 적나라했다. 다이스케를 범죄자로 인정하는 내용 역시도 직접적으로 밝힌 사안이 아닌 경찰의 수사 내용을 토대로 재조합된 거짓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중반에 이르러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에도 마녀사냥을 하는 이들은 경찰들과 신원이 밝혀진 피해자들에게 잘못을 돌렸다. 끝까지 입과 손으로 저지른 죄에 대해 언급조차도 하지 않는 이들을 보면서 허탈함을 느꼈다.

두 번째는 야마가타 다이스케의 심리 변화이다. 초반에는 금방 혐의가 풀릴 사건이라고 예상했지만 결론적으로 다이스케는 많은 눈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내내 피해다니면서 목숨을 지켜야만 했다. 그런 과정에서 찾아간 이들의 냉대는 마음을 아프게 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전 회사 동료에게 자신에게 원한을 가질만한 사람들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한다. 경멸의 태도로 여러 사람들을 입에 올렸고, 이유까지 구구절절 대답해 주었다. 사실 다이스케가 그 사람들에게 했던 행동들은 회사에서 상사에게 자주 듣거나 보게 되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기분이 나쁠지 모르겠지만 돌이켜 보면 그렇게까지 악의적인 마음을 가질 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다이스케에게는 큰 상처와 함께 회한으로서 다가온 듯했다. 묘하게 다이스케에게 연민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범죄자를 찾아가는 과정도 참 흥미로웠지만 그것보다는 사회적인 문제를 깊게 생각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욱 큰 여운을 얻었던 작품이었다. 극단적인 예시로 다이스케가 살인자로 몰리는 이야기로 표현이 되었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커뮤니티나 인터넷 세상에서는 억울하게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거나 몰리는 이용자가 있을 것이다. 아마 현실성이 맞닿아 있는 소설을 즐기는 독자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한 점에서 입과 손가락이 주는 무게와 책임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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