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와 오류의 세계사 - 딱딱한 뇌를 말랑말랑하게 풀어주는 역사 기행
소피 스털링 외 지음 / 탐나는책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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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기대고 느긋하게 앉기. / p.8

실수와 오류는 용납할 수 없다. 괜히 약점을 보인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를 완벽주의라고 말해 주었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크게 스스로를 다그치는 성향이어서 더욱 경계하는 면이 있다. 그게 대학교 졸업 이전까지는 꽤 심했는데 사회에 나오다 보니 실수와 오류는 늘 세트로 붙어 다니게 되어 지금은 그나마 너그러워진 것 같다. 예전에는 일주일 내내 패닉 상태라고 하면 요즈음은 반나절 안에 털고 일어나려고 한다.

이 책은 소피 스털링의 인문학 도서이다. 실수와 오류는 싫어하는 편이기에 제목에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다. 책을 읽다 보면 실수와 오류에서 세계적인 발명품이 나온다는 내용을 종종 보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믿는 편은 아니었다. 많은 비율로 실패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보면서 스스로 실수와 오류에 조금 더 빠르게 일어나는 위안을 느끼고 싶어서 선택해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두 가지 지점이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는 저자의 유머이다. 서론에 흔히 말하는 아재 개그가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 내용이 등장한다. 그런 유머에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코드가 맞아서 내내 웃으면서 읽었다. 엉뚱하고 이상함을 조금이나마 호기심으로 바꿀 수 있었던 점은 이 유머 코드가 아니었을까. 특히, 초반에 세계적인 문인의 뇌를 한순간의 실수로 잃은 사람에게 그 사람은 이미 죽기 전에 예언을 하고 있었으니 힘내라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그때부터 느낌이 왔다.

두 번째는 답이 없는 엉뚱함이다. 저렇게 생각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는데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느껴졌다. 성경을 먹으면서 병을 고치고자 했던 황제, 우유로 수혈을 했던 사건, 뱀 산책 리드줄 등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읽는 내내 참 엉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성향을 가진 나로서는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는지 뭔가 동물원의 원숭이를 가까이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좋은 의미에서는 상상력이겠지만 이상함의 연속이라는 안 좋은 쪽으로만 읽게 되었다. 그와 별개로 참 재미있는 책이었다. 이는 아마 다른 성향으로부터 나오는 호기심이 아닐까 싶다.

전체적으로 재미있으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다. 아마 나는 하지 못할 일들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풍부한 상상력으로 많은 실수와 오류를 거쳐 이렇게 편리한 세상에 살게 된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이나마 실수와 오류를 관대하게 볼 필요성도 새삼스럽게 느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은 아닌 듯하다.

생각했던 것처럼 위로가 되었던 지점이 있어 좋았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으로 역사 이야기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고, 거기에 세계사는 더욱 불호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마치 호기심 천국이나 스펀지를 본 듯한 이야기여서 만족스러웠고,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인문학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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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데이먼 갤것 지음, 이소영 옮김 / 문학사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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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변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 / p.13

한동안 부커상으로 책 읽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시끌시끌 이야기가 많았다. 가장 큰 주제는 한국 작가인 천명관 작가님의 작품이 최종 후보까지 올라왔다는 점이었지만 말이다. 작년에는 정보라 작가님의 작품이 최종후보에,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한강 작가님의 작품이 있었는데 정작 부커상 관련 작품은 읽은 기억이 없다. 사실 한강 작가님의 작품은 도전했지만 취향과 너무 달랐고, 정보라 작가님의 작품은 기괴하다는 후기를 듣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이번 기회에 천명관 작가님의 작품을 읽을 기회를 보고 있지만 그게 참 쉽지 않다.

얼마 전 부커상 수상작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심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천명관 작가님의 작품이 되기를 기도했었다. 결과는 다른 작가님께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어서 조금 아쉬운 마음도 있다. 그러나 가수와 영화, 스포츠 등 흔히 말하는 K-Culture에 대한민국의 소설도 조금씩 나아가는 것 같아서 뿌듯한 기분으로 달랬다. 부디 다음 부커상에는 대한민국 작가님의 이름 석 자가 보이기를 바라게 되었다.

이 책은 데이먼 갤것의 장편소설이다. 수상작품집을 참 좋아하고, 수상작들도 찾아서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부커상 작품과는 큰 교차점이 없었다. 아무래도 시도했었던 한강 작가님의 작품이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아직도 크게 남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던 중 이번에 신작으로 2021 년 부커상을 수상한 작품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읽게 되었다.

소설은 아모르라는 아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모르가 다니는 학교의 스피커에서 이름이 나왔다. 교장선생님은 그녀를 보고 안타깝다는 말을 꺼냈고, 친척이 학교에 와 있었다. 뭔가 이상한 기분으로 서술이 되고 있는데 그것은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아버지, 언니, 오빠가 순서대로 죽음을 맞이하고 아모르는 가족들이 지키지 않았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떠났던 고향으로 돌아온다.

줄거리 자체는 너무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읽으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작품에 드러나는 백인의 눈으로 보는 폭력적인 시선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배경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탓이다. 이해와 별개로 편견 자체에 대해 불편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만큼 불편함도 많이 느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읽는 것 자체가 매끄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가 가장 인상적으로 남았다. 백인의 폭력적인 시선이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아모르 가족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집단이다. 초반에 아모르의 엄마는 흑인의 가정부인 살로메에게 집을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사망한 이후에도 아버지, 언니, 오빠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각자 저마다의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대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폭력적인 시선이자 편견으로 느껴졌다. 그저 말이 안 되는 이유로만 느껴졌다. 그나마 아모르가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찾아갔지만 살로메 아들의 말을 보는 순간 그마저도 백인의 폭력적인 시선이었다는 점이 참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보면 살로메를 향한 시혜적인 태도가 아니었을까. 그밖에도 몰랐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이나 배경은 참 신기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먼 나라로 생각했기에 그동안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어렵고 또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인종 차별이 아닌 그 이상의 동정적인 태도나 그것 또한 폭력이라는 점을 이 작품으로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그동안 조금 멀게 느껴졌던 부커상이 가깝게 느껴졌으며, 그만큼 흥미로웠다는 점에서 하나씩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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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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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평소의 나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른 나로 변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다. / p.17

유독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들은 비극적인 요소들이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동이 읽는 동화에는 히어로처럼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거나 착한 사람들만 모인 아름다운 세계가 등장하지만, 어른들이 읽는 소설은 그와 반대로 학대를 받아 힘들어한다거나 폭력으로 물든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동화의 스토리에 등장하는 아이는 행복하게 성장하지만 소설의 스토리의 주인공들은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그나마 가상이라는 게 전자에게는 안타까움이자 소망, 후자에게는 다행스러움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에서 보이는 아동들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는 슬픔을 주는 동시에 나도 모르게 끌리는 부분이 있다. 아무래도 늘 관심이 가지고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그런 듯하다. 어른들의 무지와 폭력으로 힘들어하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수도없이 분노했고, 그만큼 더 좋은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같은 어른이 되었다. 아마 잊지 않기 위해 힘들어하면서도 이렇게 아동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클레어 키건의 단편소설이다. 줄거리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조금은 비관적이거나 자극적인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아동들의 이야기를 보았는데 반대로 방치된 아이의 찬란한 순간을 표현한 작품이라는 게 눈길을 끌었다. 조금은 희망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에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가정으로부터 소외를 받는 것도 모자라 어떻게 보면 정서적 학대를 받고 있다. 아이의 관심에도 무시한다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러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얼굴도 모르는 먼 친척에게 짧은 기간 지내게 된다. 이야기는 그 기간동안 친척과 보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읽는 내내 건강한 음식을 먹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별하게 임팩트를 주는 사건의 전개보다는 소소하고 섬세하게 그려진 이야기들이었다. 주인공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거나 반응을 해 주고, 새로운 경험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등 보통의 평범한 가정이라면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좋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드라마틱하게 주인공이 변화된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반에는 달라진 모습이 보이지 않아 의문이 들었지만 중반을 넘어서부터 마치 스며드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 부분이 참 마음에 들었다. 방학 때 할머니 댁에서 만들었던 추억이 지금까지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데 그때가 다시 떠올라서 추억의 여행을 떠나게 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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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별을 뿌리다
구보 미스미 지음, 이소담 옮김 / 시공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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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 인생을 살아야지. / p.53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 이별이라는 것에 관대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상 어른의 나이가 되어서도 이별에는 한없이 어려운 모습을 보인다. 그동안 정이 들었던 친구와의 이별, 늘 그늘이 되어 주었던 조부모님과의 이별, 일하는 현장에서 종종 겪었던 이용인분들과의 이별 등 지금도 경험하고 있지만 늘상 어렵고 또 슬프다. 그저 이별 앞에서는 어린이가 되는 기분이다.

이 책은 구보 미스미의 단편 소설집이다. 딱히 줄거리 정보 없이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이름 하나로 선택하게 된 책이다. 어디까지 개인적인 선호도이기는 하지만 나오키상을 받은 작가나 작품이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물론, 모든 작품이 내 스타일에 맞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평균은 했었다는 점에서 믿음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집에는 다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정보를 모르고 본 상태이다 보니 소재 자체가 조금 당황스럽게 느껴졌다. 그동안 생각하지 않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현실에서 있을 법하거나 충분히 상상 가능한 스토리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주인공의 시점에서 그들의 감정을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술술 읽혀졌지만 감정 자체를 오롯이 느껴지다 보니 조금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처음에 실린 <한밤의 아보카도>라는 작품이다. 처음은 주인공이 아보카도를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다 아보카도 씨앗을 심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심지어 화분에 옮기겠다는 실질적인 방법으로까지 발전되었고, 더 나아가 이야기는 쌍둥이 자매의 죽음과 연인과의 이별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실 연인의 죽음보다는 쌍둥이 자매의 죽음이라는 포커스에 맞춰 읽었고, 그 지점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아무래도 쌍둥이와 비슷힌 환경에서 자란 연년생의 형제자매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주인공이 동생을 잃음으로서 느꼈던 심정과 아보카도 씨앗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더욱 인상 깊게 느껴졌다. 너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은 참 읽으면서도 울컥했다.

어떻게 보면 특별한 사건이나 일들이 휘몰아치기보다는 잔잔하고도 일상적으로 스며드는 이야기들이었는데 그 지점이 여운을 주었다. 또한, 책으로 읽는 이별도 여전히 힘들었다. 마치 이 책을 완독하고 나면 이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활자로 읽는 행위보다는 활자에서 느끼는 감정이 유독 와닿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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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끝에 사람이
전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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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217일째 홀로 이곳에 있다. / p.8

사회파 소설을 참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만큼 보기 고통스럽기도 하다. 마치 치부를 들킨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직접 행하지 않은 일이나 사건은 아니었겠지만 어떻게 보면 당시 살았던 사람으로서의 나름의 책임감을 느끼는 듯하다. 잊지 않아야 하기에 최대한 자주 접하려고 하지만 막상 보면 그 묘한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이 책은 전혜진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이다. 현대에 이슈가 되는 내용들을 SF와 공포 등 다양한 장르로 풀어낸 작품이라고 해서 관심이 갔던 책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사회파 소설들은 현대의 민낯을 비추어 사실적인 분위기를 많이 느꼈던 것 같은데 가상의 다른 장르와 결합이 된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집에는 총 일곱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자주 접했던 5.18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이야기부터 최근 제주도에서 인상 깊게 들었던 4.3사건이 배경이 된 호러 작품들, 그밖에도 비교적 최근이라고 볼 수 있는 모 기업의 정리해고사건을 모티브로 한 SF 소설과 큰 이슈로 다루어지는 전교조 탄압과 군대 내 성범죄 사건 등이 드러난 이야기들이다. 술술 읽혀짐과 동시에 깊게 고민할 내용들이 많아서 읽는 속도가 생각보다 더디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두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첫 번째 작품은 표제작인 <바늘 끝에 사람이>이다. 이는 노동자 정리해고사건을 주제로 가지고 SF 소설로 풀어낸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사이보그로, 몸을 기계로 바꾸기를 원하는 회사의 설득에 넘어갔지만 결국 남는 것 없이 버려지는 신세가 됐다. 그 과정에서 동료들이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지는데 이에 부당해고 농성을 벌이기로 한다. 그렇게 217일째 지구와 떨어진 엘리베이터 카운터웨이트 끝에서 홀로 긴 싸움을 펼치고 있다.

읽으면서 뉴스에서 보았던 여러 사건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높은 곳에서 홀로 복직을 외치던 우리의 아버지들과 천막에 모여 부당함을 말하던 우리의 어머니의 모습들이었다. 너무나 피부에 와닿는 소재였기 때문에 더욱 마음에 와닿았다. 한 회사의 노동자로서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사이보그가 인간의 쓰임에 맞게 사용되다 버려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마치 기계 부품처럼 일하는 근로자과 겹쳐 보였다.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졌다.

두 번째 작품은 <창백한 눈송이들>이다. 이 작품은 공군 내 성범죄를 주제로 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여군으로 새로운 곳에 배치를 받았는데 처음 맞이하는 상관이 영 못마땅한 태도를 보인다. 거기에 같은 학교 선배는 아무렇지 않게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등 여러모로 불편한 상황을 만든다. 그러던 중 짧은 머리의 한 여군을 보았는데 이를 선배에게 고했더니 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 심지어 욕을 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부대 내 고충상담관을 만나 그녀가 누구인지 그리고 사건의 전말을 듣게 된다.

아마 지금까지도 이슈가 되는 소재가 아닐까 한다. 뉴스에서 종종 보았지만 부끄럽게도 기사로 접할 뿐이었다. 그런데 읽으면서 화가 많이 났었다. 주인공에게 수치심을 안겨 주지만 정작 그 말을 뱉은 선배는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모습들과 군대라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집단 안에서 자행되는 성범죄, 이를 정화시키려는 노력보다 감추기 급급했던 이들의 태도가 참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이러한 이슈에 거리를 두었던 스스로가 반성하게 되었다.

책을 덮으면서 관통했던 단어 하나가 있다. 바로 관심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된 사건을 답습하지 않고 현재의 문제들을 변화시키는 해답은 관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잊지 말아야 할, 잊어서는 안 되는 어두운 그림자와 아픔들을 다시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이 작품이 주는 의의가 크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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