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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가면 마트에 가면 ㅣ 새소설 12
김종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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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이곳을 유지하는 단 하나의 질서였다. / p.9
이상하게 마트만 가게 되면 돈을 많이 사용하게 된다. 군것질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괜히 사탕이나 과자 진열대에 가서 양손 가득 들고 오고, 탄산 음료보다는 탄산수를 더욱 선호하면서도 손에 하나씩 제로 탄산 음료를 카트에 담는다. 어차피 많이 먹지도 않을 것인데 왜 이렇게 카트를 채우냐는 부모님의 잔소리는 덤이다. 결론적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거나 유통기한 끝까지 보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소설은 김종연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제목을 보자마자 마트에 가면 무언가 능력을 발휘한다거나 마트와 관련된 사건을 다루는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서두에 언급했던 일화들은 비단 개인적인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작품을 읽으면서 나름의 공감을 받고 싶었다. 마트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상상되면서 호기심을 자극했기에 이렇게 기대감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성결이라는 인물이다. 국가적 재난 상황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은 공공의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에 모여 산다. 신에 의지하는 어머니와 자신을 무시하는 동생, 그리고 이를 방관하는 듯한 아버지는 성결과 다른 곳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성결만 이마트에 거처를 둔다. 그곳에서는 노부부를 비롯해 헬스를 좋아하는 아저씨, 그밖에도 조기축구회에서 운동하시는 분까지 다양한 사람이 있다. 또한, 재희라는 인물의 여성도 있다.
어느 날, 마트 안 여자 화장실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린 아이가 발견된다. 처음에는 종종 소문이 돌았던 두 청소년의 결실인 줄 알았지만 결론적으로는 부모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디에서 왔는지조차 알 수 없는 이 아이에게는 겨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밖에도 소설의 내용은 성결을 중심으로 생존의 현장인 마트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예상과는 달리 마트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시인이라는 저자의 이력처럼 문장 자체가 되게 시적으로 느껴져서 조금 낯설었지만 이 지점이 되게 신선하게, 그리고 새롭게 다가와 금방 완독할 수 있었다. 성결이라는 인물 자체가 청년층의 현실을 대변하는 듯했는데 비슷한 또래의 나이이기 때문에 몰입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읽는 내내 성결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읽으면서 크게 두 가지에 집중하면서 읽었다. 첫 번째는 소설에 비춰진 현실이다. 성결이라는 인물을 통해 현재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많이 녹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출 나지 않은 가정사부터 시작해 미래에 대한 걱정 등이 그랬다. 특히, 소재의 특성상 주거에 대한 문제들이 많이 드러나 있다 . 재난 위기의 대책으로 주택을 제공해 준다는 내용은 청년 주택 등의 정부 정책들이 떠올랐으며, 성결이 가지고 있는 불안정한 주거에 대한 걱정들은 지금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재희와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연애와 출산, 겨울을 통해 드러나는 양육에 대한 문제들이 가깝게 느껴졌다.
두 번째는 재난 소설이다. 사실 마트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예상을 할 수는 있었겠지만 그게 재난과 거처라는 단어가 조합이 상상이 되지는 않았다. 평소에 마트는 잠깐 스쳐서 지나가는 곳이며, 재난과 연결되면 생존에 필요한 식량만 구입하는 곳이라는 정도로만 인식했을 뿐이다. 그런데 마트와 사람이 묵는 곳이라는 게 동일시되어지는 상황들이 참 재미있게 그려졌다. 마트 안에 약국과 작은 병원, 미용실 등 편의 시설이 있기에 어떻게 보면 재난 시에는 임시 거처로서는 안성맞춤이었을 텐데 마트와 거처를 동일 선상에서 상상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읽는 내내 이 지점이 참 흥미롭게 다가와서 인상 깊었다.
재난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등장 인물들의 막막한 미래 속에서 우울하게 진행되는 것과 달리 작품은 참 웃기게 느껴졌다. 마치 블랙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거처가 아이들이 노는 풀장이라거나 머리가 복잡해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는 등 마트라는 공간의 특성상 우리가 흔히 경험할 수 없는 작품 속 장면들이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는 웃기게 다가왔다. 또한, 귀로 닿기 전에 입으로 먼저 나오는 마트의 로고송은 더욱 재미를 느끼게 했다. 이런 내용들이 재난 소설의 비관적인 요소를 줄이고, 낙관적인 요소를 느끼게 하는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다.
여러 모로 참 웃겼던 작품이었다. 그와 동시에 현실과 맞물려 생각하니 조금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설의 서두에 나오는 낙관론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성결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리고 재난 속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마트 안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내 마음에 와닿았던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