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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빗
고혜원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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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50년 여름이었다. / p.15
얼마 전에 전쟁에 참여했던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읽으면서 나름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리뷰에도 적었던 내용이지만 전쟁이라고 하면 남성의 전유물로서 생각했었는데 누구보다 강인한 소녀들이 전쟁에서 총을 쏘고 참여한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깨졌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 그런 작품들이 조금씩 성장시키는 느낌이 들어서 자주 찾아 읽을 계획이다.
이 책은 고혜원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그러한 맥락으로 찾게 된 작품이다. 언급했던 작품은 다른 나라의 전쟁 이야기가 실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대한민국 소녀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물론, 전쟁을 견디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도 좋지만 이렇게 당당히 맞서는 소녀들의 이야기도 좋아하기에 이렇게 선택하게 되었다.
소설의 배경은 1950년대를 다루고 있다. 실제로 한국 전쟁 당시에 여성 첩보원의 이야기인데 켈로 부대 소속의 래빗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인 홍주는 그들 중 고참으로 여러 위기에서 살아 남은 첩보원이다. 이런 점이 오히려 의심을 받지만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신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친구인 윤옥을 잃고, 울보인 통역병 친구를 챙기면서 첩보원 생활을 하는 중이다.
래빗으로 수행을 하다가 동갑의 친구인 유경을 만난다. 원래 래빗은 서로에게 목적지나 작전을 알려 주지 않는 등 비밀로 하여야 하지만 공통 분모가 있던 둘은 쉽게 친해진다. 그러던 중 둘이 하나로 엮이게 되는 작전이 생긴다. 짧은 시간에 정이 든 두 사람은 각자의 작전을 수행하면서 서로의 안녕을 빈다. 배우인 유경의 연극을 보러 가겠다는 약속, 그렇게 다시 만나자고 한다.
읽는 내내 주인공 두 사람이 상대에게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면 안 되는 신분의 특성상 더욱 긴장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심지어 추리 스릴러 장르의 작품이 아님에도 그렇게까지 마음을 졸이게 되는 감정도 참 오랜만이었다. 더불어, 나도 모르게 두 사람의 안녕을 빌고, 전쟁의 참혹함이 느껴졌다. 더 나아가 활자 너머로 보는 독자이지만 동지애가 생기기도 했다. 이야기에 등장한 첩보 환경 자체가 너무 잔인하면서도 위험하게 느껴졌다.
윤옥과 홍주, 유경, 윤정에 이르기까지 많은 소녀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렸다. 그밖에도 자신의 목숨보다 래빗 첩보원을 먼저 생각했던 강지원 소위, 친구의 안위를 누구보다 걱정했던 현호까지 인물 하나하나에 애정이 갔다. 누구보다 각자의 꿈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포기하고 조국을 위해 전쟁터로 나간 이들이 결국에는 이름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어느 누군가는 기억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화라는 점이 더욱 마음이 무겁게 와닿았던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