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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
신다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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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롯해 오늘도 산재를 피한 모든 이들이 그들의 노력에 빚지고 산다. / p.8
대학교 다니던 시절, 현장에서 겪었던 경험을 들었는데 지금까지도 꽤 크게 남아 있는 말이 하나 있다. 아는 동료가 이용인에게 칼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용인을 만날 때에는 두 명씩 짝을 지어야 하는 게 맞다고 했다. 말을 전한 사람이 학교 선배인지 또는 교수님인지 정확히 그 부분까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들으면 소름이 돋는다.
지금 가지고 있는 직종 자체가 현장이라고는 부르지만 우리가 흔히 언급하는 기술직에서 언급하는 현장과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그때 당시에는 적어도 업무 중 사망이라는 게 와닿지 않았다. 물론, 과중한 업무가 원인이 되어 몸의 이상이 오는 경우는 예외겠지만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터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게 생각보다 많은 경우의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 역시도 이 직종에서 자유롭지 못하겠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이 책은 신다은 기자님의 사회학 도서이다. 사회 관련 도서들 중에서 가장 관심이 있는 분야를 뽑자면 아마도 복지와 노동이 아닐까 싶다. 복지는 아무래도 직업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에 당연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분야이며, 노동은 자의적으로 자주 찾아서 보는 편이다. 요즈음 들어 안타까운 사건들을 종종 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읽게 되는 책이었다.
책은 2021 년 평택항 사건으로 잘 알려진 고 이선호 씨의 아버지인 이재훈 씨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이선호 씨는 군 제대 이후 아버지의 직장인 평택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나뭇가지를 주우라는 지시를 처리하던 중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세상을 떠나셨다. 아들의 죽음을 알리고자 했던 이재훈 씨의 노력과 정부의 태도,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들을 언급하면서 산업 재해의 원인과 정부의 태도, 법원 판례, 유족 인터뷰 등을 다루고 있다.
그동안 사건을 접하면서 원청, 하청, 재하청 등 전문적인 용어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없어 인지만 했을 뿐 관심을 가지지 못했는데 무엇보다 기자님께서 국민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설명해 주셔서 불합리한 기업의 구조에 대해 쉽게 인지할 수 있었다. 기사를 쓰는 직업인들이 사건을 이해하고 내용을 잘 풀어서 보도해야 사람들이 관심을 끌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너무 공감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어려울 수 있는 주제임에도 쉽게 읽을 수 있었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선호 씨의 평택항 사건뿐만 아니라 2018 년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한 고 김용균 씨, 전국적으로 불매 운동으로 이어진 SPC 사건 등 익숙하게 자주 보도로 접했던 재해를 보면서 달라지지 않는 사회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사망 사건들을 활자로 접하다 보니 분노가 치밀었다. 유족들이 재판장에서 읽는 호소문의 내용은 울게 했다. 그들이 내 가족이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정부와 원청의 임원진에 대한 생각이다. 원청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하청으로 돌리는 정도의 기이한 방식 자체만 생각했었던 터라 탁상에서 지시만 내리는 원청의 임원진들에 대한 내용은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다가왔다. 정부를 비롯한 공무원들이 현장의 상황을 알지도 못한채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릴 때마다 탁상 행정이라는 단어를 자주 내뱉었고, 그만큼 들었는데 산업 재해 현장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보완보다는 사전에 대비할 수 있는 투자가 필요하지 않을까. 인식이 바뀌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두 번째는 사건이 벌어지고 난 이후 직원들의 태도이다. 고 김용균 씨의 사망이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동료 직원분들의 용기 있는 증언들 때문이라고 한다. 고 이선호 씨 역시도 아버지인 이재훈 씨께서 평택항에서 근무를 하셨기에 사람들 사이에 알려질 수 있었다. 그런데 책에 등장하는 일부 직원들의 태도가 가장 크게 화가 났다. 2021 년 굴삭기 전복 사고로 사망한 고 노치목 씨의 경우에는 생명을 건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119 신고 당시 직원의 거짓말로 초동 대처가 잘못 되어 그 기회를 잃었다. 사건을 발판 삼아 과거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축소시킨다거나 은폐시키기에 급급해 떠나간 젊은 생명들을 생각하니 더욱 괘씸하게만 보였다.
모두 나름의 꿈을 가지고 일터에서 지시에 따라 열심히 업무를 수행했을 뿐인데 그 결말이 죽음이었다는 게 허망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면서 많이 배우고 또 많이 반성했다. 한 사람의 관심이기는 하지만 조금이나마 걱정과 불안 없이 일터에서 온전히 근무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미약한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했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