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만물관 - 역사를 바꾼 77가지 혁명적 사물들
피에르 싱가라벨루.실뱅 브네르 지음, 김아애 옮김 / 윌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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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쇼핑을 마치고 마트 계산대 앞에 서 있다. / p.8

어렸을 때에는 소설보다는 비문학을 더욱 좋아했었다. 그 중에서도 역사 이야기를 참 좋아했었던 것 같다. 물건의 역사 이야기를 보면 상식이 조금씩 늘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소설을 경시하게 되었던 이유이기도 한데 요즈음은 소설을 더욱 많이 보고 있다 보니 이런 상식보다는 감정의 확장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은 피에르 싱가라벨루와 실뱅 브네르의 세계사에 관한 책이다. 예전의 향수를 자극하는 책이어서 골랐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과거에 읽었던 내용도 잊었다. 흔하게 사용하는 물건들의 역사를 다시 배우고 머리에 채우겠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책이어서 나름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흔히 사용하는 샴푸부터 시작해 혁명이 되었던 전구까지 총 77 가지의 물건에 대한 역사 그리고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거기에 나름 사용처에 대한 카테고리가 나눠져 있어서 궁금한 물건을 우선적으로 골라 읽는 재미도 있었다. 읽으면서 두 가지에 크게 놀랐고, 또 인상 깊었다. 하나는 의외인 부분이었고, 또 하나는 약간 부정적으로 다가온 부분이 있었다.

첫 번째는 생각보다 아시아에서의 이야기가 많았다는 점이다. 보통 알고 있는 물건들의 역사를 찾으면 대부분 유럽이거나 미국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식민지 시대 또는 그 전부터 단순한 일화를 계기로 생겨난 물건이라고 알고 있다. 흔히 알고 있는 전구도 많은 사람들의 상식처럼 미국의 에디슨이었을 것이고, 콜라 역시도 미국의 코카콜라가 원조라는 것이다. 그런데 샴푸나 분재 등이 인도와 일본 등 동양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새롭게 알게 되었다. 특히, 쪼리로 불리는 플립플롭이 일본이었다는 것은 의외였다.

두 번째는 서양의 독특한 관념들이다. 향수의 유래가 유럽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을 통해 알고 있었다. 잘 씻지 않았던 당시 사회에서 체향을 가리려는 목적이어서 나름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느낌을 비데 편으로부터 다시 느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종교적인 관념으로 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다는 게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위생이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외에도 탐폰도 같은 맥락으로 위생보다는 정절을 더욱 중요시했던 관념이 조금은 다르다고 느껴졌다.

그 외에도 코카콜라의 코카가 알고 있는 마약이었다는 것은 새로웠고, 가시철사가 방어나 보호의 목적보다는 가로막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씁쓸함을 느끼게 했다. 흔히 알고 있는 물건뿐 아니라 프리메이슨 앞치마를 비롯해 쉽게 듣거나 볼 수 없었던 물건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이미 알고 있었던 물건들은 기억을 떠올리게 했고, 새로운 물건들은 상식을 쌓게 했다.

성인이었던 독자들에게도 흥미롭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약간 은밀한 물건들의 이야기가 있어서 걱정이 되기는 한다. 그래도 뭔가 아는 척을 한다거나 지식을 쌓고 싶을 때 읽으면 분명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세계사 만물관이라는 제목이 딱 어울리는 책이었다. 아마 박물관이라고 했다면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을 텐데 마치 보부상이나 세상 만물처럼 누군가는 잡동사니처럼 보였을 물건들의 역사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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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다른 세계에 산다 - 자폐인이 보는 세상은 어떻게 다른가?
조제프 쇼바네크 지음, 이정은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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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참 놀랍다. / p.16

원래 전공의 특성상 친숙한 단어이기는 하지만 최근 인기 드라마의 영향으로 자폐스펙트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심지어 같은 전공이 아닌 다른 지인들로부터는 해당 장애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동안 배우기는 했지만 그렇게 깊이 배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른다고 넘기는 편이다. 아무래도 학문적으로만 배웠던 사람이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조제프 쇼바네크의 에세이이다. 장애와 관련된 책이라고 하면 따지는 것 없이 우선적으로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어서 자연스럽게 잡게 된 책이다. 그동안 지체장애나 정신장애 등을 주제로 한 책들은 가끔 읽었지만 자폐스펙트럼을 주제로 한 에세이는 처음 보는 편이기에 더욱 기대가 되기도 했다. 

저자는 아스퍼거증후군을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에는 말을 할 줄 몰랐고,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지적장애로 의심을 받았다. 학창시절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였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약을 먹었던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명문 대학에 들어갔으며, 독일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점이 많았지만 크게 세 가지 정도가 가장 인상 깊었다. 첫 번째로 자폐증으로 표현하는 부분이었다. 학교에서 배울 때부터 이야기를 나누면 자폐증보다는 자폐장애로 말하게 된다. 요즈음은 분류가 바뀌면서부터 자폐스펙트럼장애로 더욱 말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폐장애라는 용어보다는 자폐증으로 표현을 하는데 나름의 이유도 추측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자폐증에 대한 저자의 태도에 대한 부분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장애로 표현을 하고 있기에 뭔가 편견을 가지고 본다. 나 역시도 상동행동이나 반향어 등 자폐장애에 대한 특징을 배웠기 때문에 그걸 위주로 보는 편이기도 하다. 그런데 저자는 자폐인은 그저 키와 피부색 등의 특징 중 하나라고 말한다. 자폐스펙트럼이라는 용어가 말해 주듯이 자폐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일괄적으로 누구나 눈에 띄는 상동행동을 보인다거나 심한 반향어를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세 번째는 자폐증에 대한 저자 가족들의 반응이었다. 편견일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부모의 경우 더욱 큰 관심을 필요로 하지만 일화를 보면 저자는 가족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듯하다. 혼자 독일에서 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학교와 딜을 해서 저자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받기도 했다. 드라마를 봤던 지인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드라마이기에 가능하다는 말이었는데 읽으면서 저자가 했던 많은 일들이 그렇게 느껴졌다. 특히, 일화 중에서 저자가 했던 일들의 원인을 자폐증으로 돌리는 상황에서 저자의 부모님은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말하라는 대책을 세웠다. 이 부분이 참 흥미로웠다.

그 외에도 저자는 독자들이 내용을 보고 자신을 자폐증을 가진 사람인지 의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약간 비슷한 부분이 있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것 또한 편견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보면서 보통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자폐증에 대한 저자의 진지한 이야기와 전문가가 아니라고 하는 저자의 일화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책을 덮고 나니 제목 그대로 우리는 모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아마 저자의 모습들 중에서 하나도 겹치지 않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다. 같은 모습을 보이더라도 누군가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볼 것이며, 다른 또 누군가는 지능이 모자란 장애인으로 평가할 것이다. 생활에 지장을 주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심한 정도의 장애가 아니라면 자폐증이라는 것 또한 하나의 편견이자 틀이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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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의 뒷모습이 좋다 - 이 책을 읽는 순간 당신은 그 영화를 다시 볼 수밖에 없다
주성철 지음 / 씨네21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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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들은 다 계획이 있구나. / p.424

누군가 인생 영화를 묻는다면 20대에는 주걸륜과 계륜미 주연의 말할 수 없는 비밀을, 30대에는 완벽한 타인을 말한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그동안 나름의 편견이 있었던 외국 영화의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던 영화다. 물론, 지금도 해외 영화보다는 국내 영화를 위주로 보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해 비중이 높아진 편이다. 학교에서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가 참 예쁘게 그려졌던 영화이다. 사랑은 많은 것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었다.

완벽한 타인은 지금까지도 나의 인생 영화에 가장 높은 꼭대기를 차지한다. 특히, 요즈음 들어서 더욱 더 생각나는 영화이다. 사실 줄거리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주인공들이 게임을 하는데 함께 있는 동안 휴대 전화가 울리면 내용을 공유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마음에 와닿았던 포인트는 사생활의 그 날것을 드러내는 과정이었다. 각자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을 막기 위해 배신하고 또 동맹을 맺고 그 일련의 모습들이 참 웃기면서도 씁쓸했다.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들이어서 더욱 크게 기억에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주성철 기자님의 영화 평론집이다. 이렇게 영화 서적으로는 두 번째이다. 평소 영화 관련 직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영화 이야기를 듣거나 보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사실 영화보다 영화 평론이나 프로그램을 더 보거나 듣는 편인데 방구석 1열, 홍진경의 영화로운 덕후생활 등은 거의 재방으로도 즐겨 보는 편이다. 심지어 매일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의 최애 코너는 영화를 소개하는 편이기도 하다. 특히, 전에 읽었던 인터뷰집도 생각보다 만족스러워서 큰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영화 평론집은 크게 네 파트로 나누어졌다. 첫 번째 전시실에서는 감독관으로서 유명한 감독님들의 영화 이야기를, 두 번째 전시실에서는 배우관으로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배우들의 이야기를, 세 번째 전시실은 장르관으로 홍콩 르와르나 B급 영화로 불리는 장르부터 정치적 또는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영화 장르까지의 이야기를, 마지막 네 번째 전시실은 대한민국의 최고 감독님이신 봉준호 감독님과 박찬욱 감독님의 단편 영화를 다루었다. 활자를 읽고 있기는 하지만 목차의 이름 때문인지 몰라도 전시실이나 영화관이 연상되었다.

서두에 말했던 것처럼 영화를 그렇게 즐겨 보는 타입이 아니어서 영화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보다는 앞으로 볼 영화를 추천받는 느낌으로 읽었던 것 같다. 실제로 책에 등장하는 영화들 중에서 절반 이상은 모르는 영화였다. 특히, 감독관에 나오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님과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님 등의 외국 감독님의 경우에는 이름조차 생소했다. 그래도 한국 감독님은 자주 보기도 했었고, 익숙한 영화 제목도 있어서 읽기 수월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파트는 배우관이었고, 흥미로웠던 파트는 단편관이었다. 아무래도 배우 이름은 너무 익숙하다 보니 술술 읽게 되었던 것 같다. 특히, 윤여정 배우님, 전도연 배우님, 설경구 배우님 등의 작품은 적어도 하나 이상은 봤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어렴풋이 그릴 수 있었다. 접속에서 인터넷으로 사람과의 교감, 박하사탕에서의 고통, 미나리에서의 이민자들의 설움 등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1차원의 날것이었다면 책을 읽으면서 조금 더 정제되어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감독님과 작가님의 표현 방식이나 의도 등을 파악할 수 있어서 좋았다. 박하사탕의 경우에도 영화 하나의 단편적인 부분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인간에게 잔인하면서도 현실적인 작품으로 보여졌다. 거기에 이창동 감독님의 초록 물고기와 연관되어서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초록 물고기도 기회가 된다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단편관은 아예 몰랐던 부분이어서 흥미롭게 느껴졌다. 사실 박찬욱 감독님과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는 다른 감독님들의 영화에 비해 나름 많이 보았던 것 같다. 그런데 항상 장편의 상업 영화만 접해서 단편 영화와 매칭이 되지 않았다. 박찬욱 감독님께서는 2010년대 이후부터 거의 매년 단편 영화를 만들고 계시며, 흔한 아이폰 13 프로 기종으로 촬영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거기다 영화 DVD에는 후배 감독들의 단편을 넣어서 발매를 한다는 내용이 와닿았다. 그동안 몰랐던 단편 영화의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그것 또한 하나의 재미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아쉬운 점이 두 가지가 있었다. 이는 모르는 영화가 더 많아서 생긴 아쉬움이다. 첫 번째는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장면은 영화에 비해 너무 단순했다. 디테일하게 떠올렸더라면 저자의 영화 이야기가 더욱 풍성하게 와닿았을 것 같다. 두 번째는 영화를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들과 책에서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더라면 더욱 풍부한 감상이 되었을 것 같다. 영화 관련 도서들은 따로 모아서 영화를 전부 도장 깨기를 하고 난 이후에 다시 보게 된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느낌을 받지 않을까. 저번의 인터뷰집은 가벼운 어른들의 '라떼 이야기'로 느껴졌는데 그것보다는 조금 더 묵직하면서도 진지하게 다가온 책이었다. 

영화 자체에 문외한이었던 독자인 나에게도 어느 정도 와닿은 지점이 있었기에 영화를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저자가 영화에 진심이라는 점을 또 이렇게 느끼게 되었다. 부디 재독할 때에는 저자가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오롯이 와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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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여자들
메리 쿠비카 지음, 신솔잎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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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여자가 나타났는데 그대로 세 명이라는 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네요.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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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의 나라 - 문화의 경계에 놓인 한 아이에 관한 기록
앤 패디먼 지음, 이한중 옮김 / 반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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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리아를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 p.360

초등학교 때부터 외국어에 대한 나름의 합리화를 하면서 공부를 멀리 했었던 것 같다.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항심이 들면 어차피 대한민국에서만 살아갈 사람이기 때문에 굳이 집중해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국어에 취미를 가지고 있었냐고 물으면 그것 또한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이 없는 생각이지만 말이다. 마치 초등학교 일기에 대통령이 되면 시험을 없애겠다는 이야기를 적었던 것과 비슷한 결이었다.(우연히 프로그램에서 모 아이돌 그룹의 멤버의 일기에도 그런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의 띠동갑 수준으로 차이가 나는 그 멤버의 일기를 보니 세대를 초월해서 학생들은 공부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렇게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지 않겠다는 반항심으로 버텼던 내가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 사회복지사로서 맞이한 직장이 공교롭게도 다양한 문화권이 공존하는 현장이었다. 그들은 한국어가 되지 않고, 나는 그들의 언어가 되지 않으니 그나마 종이 한 장 수준의 영어와 몸짓을 섞어가면서 니즈를 파악하거나 소통했었다. 언어의 장벽도 문제겠지만 도저히 내 기준에서 이해할 수 없는 문화로 인한 딜레마로 초반에는 참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문화권의 그들보다는 같은 문화권을 공유했던 일부 한국의 동료들이 더 싫어졌다.

이 책은 앤패디먼의 문화 차이에 관한 인문학 서적이다. 아무래도 일했던 현장의 영향이 있기에 평소에도 문화 충돌이나 갈등에 관한 책을 최대한 보려고 하는 편이다. 처음에는 다른 문화가 참 새로우면서도 신기하게 다가왔지만 공부할수록 대한민국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권의 사람이 살아가는데 생기는 어려움들을 간접적으로 이해하는 측면으로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그러한 맥락으로 주저없이 책을 읽게 되었다.

라오스의 한 부족인 몽족은 다른 나라로 이주를 해왔던 민족이다. 물론, 그들이 원했던 이주라기보다는 역사적 사건으로 터전을 찾아 떠났거나 쫓겨났다는 게 더 정확할 듯하다. 푸아와 나오 카오 역시도 이주를 하는 몽족의 부부이다. 이 부부는 목숨을 걸고 이주를 해오면서 많은 자녀들을 잃었다.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자녀들 중에서 책의 주인공이자 문화의 경계에 놓인 한 아이가 있다. 뇌전증을 앓고 있는 리아라는 이름의 여자 아이이다.

뇌전증은 몽족의 언어로 코 다 페이라고 부르며, 영혼에게 붙들리면 쓰러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뇌전증의 경련이 생길 때마다 '다'라고 불리는 영혼이 리아를 붙들어서 증상을 보인다. 이는 혼을 잃어서 생긴 문제이며, 리아가 이러한 문제가 생기게 된 원인은 리아의 언니 중 한 명이 문을 쾅 닫는 바람에 리아의 혼이 겁을 먹고 몸에서 났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동안 몽족은 나름의 민간요법으로 리아를 치료해왔다.

리아는 미국의 머세드 군의 MCMC라는 병원에 가게 되었다. 몽족의 비중이 높아 보이기는 했지만 의사들은 몽족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았고, 리아의 가족과의 의사소통이 부족한 듯했다. 의사와 간호사는 리아를 성심성의껏 치료했지만 푸아와 나오 카오는 의사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이들을 신뢰할 수 없었다. 리아에게 경련이 일어나거나 상태가 심각해지는 것은 의료진들이 약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거기다 치료를 한다는 이유로 옷을 벗긴다거나 스킨십을 하는 등 무례한 행동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병원의 관계자들이 보기에 리아의 가족들은 그야말로 아동 학대를 하는 부모이다. 거기에 병원에서 민폐를 끼치는 까다로운 환자 가족들이기도 했다. 의료진이 권고하는 투약 지침을 지키지 않았으며, 말도 안 되는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려고 했다. 거기에 이것은 증상이 아닌 문제로 치부해 몽족의 치 넹이라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한다거나 돼지, 소 등의 가축을 도살하는 등의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아동 학대로 신고했고, 일정 기간의 가정위탁 조치가 내려져 리아와 부모는 떨어져 살기도 했다.

이렇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서로의 문화에 대한 오해와 의사소통의 부족이었다. 의사로서 환자의 증상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그들의 문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했다. 반대로 리아의 가족들은 미국의 의료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 두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고, 리아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경을 헤매기까지 했었다.

아무래도 병원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의료적인 윤리에 초점이 맞추어 있지만 사회복지의 시각에서 조금 더 이해가 되었던 것 같다. 내용에서도 등장하기는 했지만 미국의 이민자 정책은 용광로 이론을 가지고 있다.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문화에 동화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말하는데 리아 가족 사례를 보면 그런 부분들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미국 사회는 몽족의 문화를 이해하거나 인지하기보다는 미국의 문화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적응자로 본다. 물론,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줄 아는 지식인의 경우에는 전문직이나 돈을 벌 수 있는 직종에서 나름의 적응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런 부분들이 마음이 아프면서도 답답하게 느껴졌었다. 온전히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라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다른 문화 자체를 인정해 주는 마인드가 필요할 듯했다.

개인적으로 몽족과 병원 관계자 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 중 몽족은 전쟁에 참전해 희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배척하고 있는 미국 병원 사람들과 사회에 불만을 보이고, 병원 관계자는 최선을 다해 리아를 치료하고 있음에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는 리아의 부모에게 서운함을 내비치는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둘 사이의 이해 관계가 없는 제 3자로서는 두 입장에 모두 이해가 되었다. 

또한, 대한민국의 모습이 오버랩처럼 보이기도 했다. 첫 번째는 언급했던 미국의 동화 모형이다. 대한민국 역시도 결혼이민자를 비롯해 대한민국 사회로 들어온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동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느낀다. 고유 문화를 유지하면서 존중해 주기보다는 대한민국의 문화에 적응해 주기를 바라는 점이 그렇다.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문화를 공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들의 시선보다는 대한민국의 시선으로 문화를 교육하고자 한다면 대한민국에서도 리아 가족의 사례처럼 많은 문제점들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이미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는 정책에 대한 자국민들의 태도이다. 내용에서 몽족의 지원금이나 정책 확대를 반대하는 미국인들의 이야기가 일부 등장한다. 책에서 벌어진 일들이 너무 피부에 와닿았는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뉴스 기사만 보더라도 자국민들 중에서 못 사는 사람들이 넘치는데 왜 다문화가정에게 더 많은 복지 혜택을 주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댓글이 많이 보인다. 이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한 복지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의견도 이해가 가지만 대한민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최소한의 복지 정책은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 내용을 보면서 약간 씁쓸했다. 아마 관련 직종에 근무하지 않았더라면 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처럼 반응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는 몽족에 대한 편견과 오해였다. 병원의 관계자들을 비롯해 미국 사람들은 몽족에 대해 오해한 부분들이 많았다. 일할 의지가 없는 게으른 사람들, 더러운 사람들 등 다양한 편견을 가지고 리아의 가족들을 바라본다. 그랬기에 병원에서도 까다로우면서 답답한 환자 가족들로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를 비롯해 리아의 가족들과 가깝게 지낸 미국인들은 무엇보다 자녀들에게 상냥한 태도를 보인 양육자들이었으며, 국가의 보조보다는 일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미국 문화에 대한 적응이 되지 않았기에 그리고 언어가 통하지 않았기에 서툴었을 뿐이었다고 보였다. 이 역시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나라별 편견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남아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들, 중국 사람들은 목소리가 큰 사람들, 일본 사람들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오해한다. 그동안 경험한 바로 대한민국 사람들도 개인마다 성향이 다른 것처럼 그들도 성격이 제각각 다 달랐다. 

리아의 사례를 보면 서로 문화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으로 되어야 할 것으로 보였다. 인간 개인의 존엄성을 인정해 주는 것처럼 다른 문화권의 사람 역시도 문화 자체의 특성을 인정해 주는 자세 말이다. 어디까지나 서로의 문화에 대한 정보 부재로 벌어진 일이었다. 이는 미국과 몽족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도 언제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해한다면 좋겠지만 인정이라도 해 준다면 조금이나마 나은 사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분야이고, 공감이 되었던 내용을 주제로 한 책이다 보니 안 그래도 두꺼운 분량이 더디게 읽혀졌다. 이는 문화 차이로 벌어진 안타까운 일에 대한 답답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에 더욱 깊게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눈으로는 술술 읽힐지 모르지만 머리로는 개인적인 과거에 대한 딜레마들이, 마음으로는 뭔가 묵직한 답답함이 가득 채워졌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단순한 인문학 도서 이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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