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리아의 나라 - 문화의 경계에 놓인 한 아이에 관한 기록
앤 패디먼 지음, 이한중 옮김 / 반비 / 2022년 9월
평점 :

내가 리아를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 p.360
초등학교 때부터 외국어에 대한 나름의 합리화를 하면서 공부를 멀리 했었던 것 같다.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항심이 들면 어차피 대한민국에서만 살아갈 사람이기 때문에 굳이 집중해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국어에 취미를 가지고 있었냐고 물으면 그것 또한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이 없는 생각이지만 말이다. 마치 초등학교 일기에 대통령이 되면 시험을 없애겠다는 이야기를 적었던 것과 비슷한 결이었다.(우연히 프로그램에서 모 아이돌 그룹의 멤버의 일기에도 그런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의 띠동갑 수준으로 차이가 나는 그 멤버의 일기를 보니 세대를 초월해서 학생들은 공부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렇게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지 않겠다는 반항심으로 버텼던 내가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 사회복지사로서 맞이한 직장이 공교롭게도 다양한 문화권이 공존하는 현장이었다. 그들은 한국어가 되지 않고, 나는 그들의 언어가 되지 않으니 그나마 종이 한 장 수준의 영어와 몸짓을 섞어가면서 니즈를 파악하거나 소통했었다. 언어의 장벽도 문제겠지만 도저히 내 기준에서 이해할 수 없는 문화로 인한 딜레마로 초반에는 참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문화권의 그들보다는 같은 문화권을 공유했던 일부 한국의 동료들이 더 싫어졌다.
이 책은 앤패디먼의 문화 차이에 관한 인문학 서적이다. 아무래도 일했던 현장의 영향이 있기에 평소에도 문화 충돌이나 갈등에 관한 책을 최대한 보려고 하는 편이다. 처음에는 다른 문화가 참 새로우면서도 신기하게 다가왔지만 공부할수록 대한민국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권의 사람이 살아가는데 생기는 어려움들을 간접적으로 이해하는 측면으로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그러한 맥락으로 주저없이 책을 읽게 되었다.
라오스의 한 부족인 몽족은 다른 나라로 이주를 해왔던 민족이다. 물론, 그들이 원했던 이주라기보다는 역사적 사건으로 터전을 찾아 떠났거나 쫓겨났다는 게 더 정확할 듯하다. 푸아와 나오 카오 역시도 이주를 하는 몽족의 부부이다. 이 부부는 목숨을 걸고 이주를 해오면서 많은 자녀들을 잃었다.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자녀들 중에서 책의 주인공이자 문화의 경계에 놓인 한 아이가 있다. 뇌전증을 앓고 있는 리아라는 이름의 여자 아이이다.
뇌전증은 몽족의 언어로 코 다 페이라고 부르며, 영혼에게 붙들리면 쓰러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뇌전증의 경련이 생길 때마다 '다'라고 불리는 영혼이 리아를 붙들어서 증상을 보인다. 이는 혼을 잃어서 생긴 문제이며, 리아가 이러한 문제가 생기게 된 원인은 리아의 언니 중 한 명이 문을 쾅 닫는 바람에 리아의 혼이 겁을 먹고 몸에서 났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동안 몽족은 나름의 민간요법으로 리아를 치료해왔다.
리아는 미국의 머세드 군의 MCMC라는 병원에 가게 되었다. 몽족의 비중이 높아 보이기는 했지만 의사들은 몽족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았고, 리아의 가족과의 의사소통이 부족한 듯했다. 의사와 간호사는 리아를 성심성의껏 치료했지만 푸아와 나오 카오는 의사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이들을 신뢰할 수 없었다. 리아에게 경련이 일어나거나 상태가 심각해지는 것은 의료진들이 약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거기다 치료를 한다는 이유로 옷을 벗긴다거나 스킨십을 하는 등 무례한 행동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병원의 관계자들이 보기에 리아의 가족들은 그야말로 아동 학대를 하는 부모이다. 거기에 병원에서 민폐를 끼치는 까다로운 환자 가족들이기도 했다. 의료진이 권고하는 투약 지침을 지키지 않았으며, 말도 안 되는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려고 했다. 거기에 이것은 증상이 아닌 문제로 치부해 몽족의 치 넹이라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한다거나 돼지, 소 등의 가축을 도살하는 등의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아동 학대로 신고했고, 일정 기간의 가정위탁 조치가 내려져 리아와 부모는 떨어져 살기도 했다.
이렇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서로의 문화에 대한 오해와 의사소통의 부족이었다. 의사로서 환자의 증상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그들의 문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했다. 반대로 리아의 가족들은 미국의 의료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 두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고, 리아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경을 헤매기까지 했었다.
아무래도 병원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의료적인 윤리에 초점이 맞추어 있지만 사회복지의 시각에서 조금 더 이해가 되었던 것 같다. 내용에서도 등장하기는 했지만 미국의 이민자 정책은 용광로 이론을 가지고 있다.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문화에 동화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말하는데 리아 가족 사례를 보면 그런 부분들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미국 사회는 몽족의 문화를 이해하거나 인지하기보다는 미국의 문화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적응자로 본다. 물론,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줄 아는 지식인의 경우에는 전문직이나 돈을 벌 수 있는 직종에서 나름의 적응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런 부분들이 마음이 아프면서도 답답하게 느껴졌었다. 온전히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라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다른 문화 자체를 인정해 주는 마인드가 필요할 듯했다.
개인적으로 몽족과 병원 관계자 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 중 몽족은 전쟁에 참전해 희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배척하고 있는 미국 병원 사람들과 사회에 불만을 보이고, 병원 관계자는 최선을 다해 리아를 치료하고 있음에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는 리아의 부모에게 서운함을 내비치는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둘 사이의 이해 관계가 없는 제 3자로서는 두 입장에 모두 이해가 되었다.
또한, 대한민국의 모습이 오버랩처럼 보이기도 했다. 첫 번째는 언급했던 미국의 동화 모형이다. 대한민국 역시도 결혼이민자를 비롯해 대한민국 사회로 들어온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동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느낀다. 고유 문화를 유지하면서 존중해 주기보다는 대한민국의 문화에 적응해 주기를 바라는 점이 그렇다.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문화를 공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들의 시선보다는 대한민국의 시선으로 문화를 교육하고자 한다면 대한민국에서도 리아 가족의 사례처럼 많은 문제점들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이미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는 정책에 대한 자국민들의 태도이다. 내용에서 몽족의 지원금이나 정책 확대를 반대하는 미국인들의 이야기가 일부 등장한다. 책에서 벌어진 일들이 너무 피부에 와닿았는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뉴스 기사만 보더라도 자국민들 중에서 못 사는 사람들이 넘치는데 왜 다문화가정에게 더 많은 복지 혜택을 주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댓글이 많이 보인다. 이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한 복지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의견도 이해가 가지만 대한민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최소한의 복지 정책은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 내용을 보면서 약간 씁쓸했다. 아마 관련 직종에 근무하지 않았더라면 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처럼 반응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는 몽족에 대한 편견과 오해였다. 병원의 관계자들을 비롯해 미국 사람들은 몽족에 대해 오해한 부분들이 많았다. 일할 의지가 없는 게으른 사람들, 더러운 사람들 등 다양한 편견을 가지고 리아의 가족들을 바라본다. 그랬기에 병원에서도 까다로우면서 답답한 환자 가족들로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를 비롯해 리아의 가족들과 가깝게 지낸 미국인들은 무엇보다 자녀들에게 상냥한 태도를 보인 양육자들이었으며, 국가의 보조보다는 일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미국 문화에 대한 적응이 되지 않았기에 그리고 언어가 통하지 않았기에 서툴었을 뿐이었다고 보였다. 이 역시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나라별 편견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남아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들, 중국 사람들은 목소리가 큰 사람들, 일본 사람들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오해한다. 그동안 경험한 바로 대한민국 사람들도 개인마다 성향이 다른 것처럼 그들도 성격이 제각각 다 달랐다.
리아의 사례를 보면 서로 문화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으로 되어야 할 것으로 보였다. 인간 개인의 존엄성을 인정해 주는 것처럼 다른 문화권의 사람 역시도 문화 자체의 특성을 인정해 주는 자세 말이다. 어디까지나 서로의 문화에 대한 정보 부재로 벌어진 일이었다. 이는 미국과 몽족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도 언제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해한다면 좋겠지만 인정이라도 해 준다면 조금이나마 나은 사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분야이고, 공감이 되었던 내용을 주제로 한 책이다 보니 안 그래도 두꺼운 분량이 더디게 읽혀졌다. 이는 문화 차이로 벌어진 안타까운 일에 대한 답답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에 더욱 깊게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눈으로는 술술 읽힐지 모르지만 머리로는 개인적인 과거에 대한 딜레마들이, 마음으로는 뭔가 묵직한 답답함이 가득 채워졌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단순한 인문학 도서 이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