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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숙녀 신사 여러분
유즈키 아사코 지음, 이정민 옮김 / 리드비 / 202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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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석하게도 그의 말이 맞다. / p.19
무언가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지만 나중에 보면 괴리감이 들 때가 있다. 깊이 생각하면 분명히 뭔가 이상한 부분인데 이미 인식에 박혔기에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차별이라는 부분이 더욱 그렇다. 나중에 가면 부당하거나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그 지점이 참 불편해진다. 이럴 때는 차라리 과거처럼 무던하게 넘어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 책은 유즈키 아사코의 단편 소설집이다. 한 몇 년 전에 강렬한 표지의 소설을 하나 보았다. 어떻게 보면 무섭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는데 그게 바로 유즈키 아사코의 버터라는 작품이었다. 당시에는 별로 끌리지 않아서 표지만 인상 깊게 박혔던 것 같다. 그러다 우연히 신작 소설집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작품이 취향에 맞는다면 전작도 읽을 생각으로 이렇게 선택하게 되었다.
소설집은 총 일곱 가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대부분 인물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언가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거나 괴리감이 느껴지는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현대의 사회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이 든 작가, 불륜 장소로 유명한 횟집에 갓난 아이를 데리고 온 한 엄마, 여성들이 앉을 수 있는 좌석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남성, 이혼한 며느리 집에 살겠다고 온 시아버지 등 어떻게 보면 사소하다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설정 자체가 조금은 신선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두 편의 소설이 가장 인상적이다. 첫 번째 작품은 <아기 띠와 불륜 초밥>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남자는 직장 동료와 연애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유부남이다. 불륜 장소로 유명한 횟집에서 지금 연애를 하고 있는 여성뿐만 아니라 짧게 만난 이들도 데리고 왔었는데 다들 만족했었던 듯하다. 어느 날은 현재 연애 중인 직장 동료를 데리고 그 횟집을 찾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고급 음식들을 먹으면서 분위기를 잡고 있는데 아기 띠를 한 엄마가 등장한다.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횟집의 주인이 언제든 오라고 했다면서 자리를 잡는다. 다소 어울리지 않는 인물의 등장으로 불쾌감을 가진 손님들도 있었지만 음식 조합이나 정보를 말하는 엄마를 보면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여성 손님들은 호감을 가진다.
처음에는 불륜 장소에서 출산한 여성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여성에게 출산이 하나의 업적이자 신성한 업적으로 보이는 현대 사회에서 불결하다고 보일 수 있는 불륜 커플이 등장하는 점이 그렇다. 거기다 엄마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눈치 하나 없이 목소리 큰, 그리고 오지랖 넓게 이것저것 관여하는 기혼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구현한 듯했다. 그들을 불편해하는 남성 손님들의 태도를 활자로 읽고 있으니 더욱 답답했고, 나중에 결말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통쾌함을 느꼈다. 사실 아이를 둔 여성들도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가 무엇보다 인상 깊게 다가왔다.
두 번째 작품은 <서 있으면 시아버지라도 이용해라>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 소송을 밟고 있는 한 여성이다. 자녀를 두고 집을 나온 싱글맘이기도 하다. 어느 날, 그녀가 살고 있는 집에 시아버지가 찾아온다. 그런데 시아버지의 말이 참 이상하다. 짐을 다 챙겨서 온 시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못 살겠다며 같이 살게 해 달라고 한다. 주인공은 오히려 역정을 냈는데 시아버지는 뭐든지 하겠다면서 설득했다. 결국 주인공과 시아버지의 동거가 펼쳐진다.
소재부터가 파격적으로 다가온 작품이다.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그것도 이혼한 사이에는 더욱 불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읽으면서 시아버지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며느리에게 못된 마음을 가지지는 않을지에 대한 생각이다. 이 또한 어떻게 보면 편견이겠지만 드라마나 영화 등에 소재로 종종 등장했기에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으로 나아갔고, 시아버지가 아닌 한 사람의 파출부 같은 느낌이었다. 결말은 조금 답답했지만 시아버지를 부려먹는 내용이 흥미로웠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저자의 신념이나 태도가 무엇보다 이야기에 잘 녹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점에서 작품 하나하나에 담겨진 의미가 너무나 현실적이면서도 무겁게 다가왔다. 성별이나 지위에 반전을 준다는 점이 더욱 인상 깊었다. 반면, 스토리텔링이나 문체는 술술 읽혀졌고, 그만큼 재미있었다. 사회의 틀을 재치 있게 깨부수는 이야기들이 유쾌하게 그려져서 흐뭇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고, 그 시간이 참 만족스럽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