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헤븐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이지수 옮김 / 책세상 / 2023년 4월
평점 :



친구가 됐으면 해. / p.14
천국이 존재하냐고 묻는다면 믿지 않는다고 대답할 것 같다. 종교가 없을 뿐만 아니라 무신론자에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후세계 자체에도 큰 관심이 없고,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나중에 신념이나 가치관을 뒤흔들 정도의 사건이 발생해 생각이 바뀐다면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렇다.
이 책은 가와카미 미에코의 장편소설이다. 표지가 어느 한 장편소설을 떠올리게 했다. 완전히 똑같은 표지는 아니지만 색부터 느낌이 묘하게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소설이 나름 인상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줄거리를 떠나서 내용이 궁금해졌다. 이후 줄거리를 보았더니 현실 문제와 맞물린 이야기를 담고 있어 나름 생각할 수 있을 소재였기에 더욱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흔히 말하는 사시인 한 소년이다. 니노미야를 비롯한 같은 반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이런 폭력의 수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변기에 있는 물을 먹이는 것은 물론이며, 공을 뒤집어 씌우고 축구를 하는 등 각종 기괴한 방법으로 소년을 괴롭힌다. 어느 날, 필통에 자신의 편이라는 내용을 시작으로 책상 서랍 안쪽에 소년을 향한 따뜻한 시각을 가진 쪽지가 발견된다. 처음에는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무리 중 하나일 것이라고 의심했다. 그리고 고래 공원에서 만나자는 내용의 쪽지를 받은 이후 이름도 모르는 주인과 만나게 된다.
알고 보니 같은 반에서 더럽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고지마라는 소녀가 쪽지를 쓴 사람이었다. 소년은 고지마와 점점 가까워지며, 쪽지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고지마가 더럽게 하고 다니는 이유와 가정사 등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소년은 고지마와 점점 친해지면서 청소년기의 성욕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같은 상황에서 둘이 이를 겪고 있는 이야기와 학교 폭력이라는 주제가 다소 진하게 드러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읽으면서 두 가지 지점이 인상 깊게 남았다. 첫 번째는 소년이 받는 학교 폭력이다. 개인적으로 묘사가 너무 적나라하게 느껴졌는데 분필을 먹인다거나 공을 머리에 씌우고 발로 차는 내용은 읽기에도 거부감이 들었다. 신체적으로 강한 수위의 폭력에 노출이 되어 있음에도 어머니나 선생님의 도움조차 요청하지 않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보통 보복이 무서워 어른들께 알리지 않는 것과 달리 소년은 나노미야 일당에게 그루밍을 당했거나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의지조차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또한, 일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학교 폭력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기에 이 지점이 강하게 와닿았다.
두 번째는 고지마의 생각이다. 고지마가 청결하지 못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의미로 일부러 씻지 않는다고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동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학생들은 이를 이해할 리가 없었고, 나 역시도 굳이 그런 방법으로 해야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조금은 독특한 사고의 소유자로 보였다. 사시를 고치고자 고백하는 소년에게 과도하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렇다. 가장 어려우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훨씬 쉽게 읽을 수 있었지만 감정의 여운과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고 깊었다. 두 친구가 성장해 폭력을 벗어난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냥 현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로 보였다. 결말마저도 판타지가 가미된 시원한 사이다가 아닌 미지근한 온수처럼 김이 빠졌는데 이러한 지점 또한 너무 현실적이었다. 소설의 이야기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했다. 그 지점이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