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들 - 방탕하고 쟁취하며 군림하는
루시 쿡 지음, 조은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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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의 본능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한테는 없는 게 분명했다. / p.216

이 책은 루시 쿡의 생물학에 대한 도서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디 가서 무엇을 읽냐고 물어본다면 섣불리 제목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직관적이라고 느껴졌다. 심지어 부제는 더욱 부끄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그래서 더욱 관심이 갔던 것 같다. 조용히 혼자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다윈과 도킨스 등의 생물진화론자들이 주장했던 암컷에 대한 편견을 다양한 동물의 예시와 함께 요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암컷은 수동적인 존재이며, 착취당하는 성이라는 일련의 내용들을 저자는 암컷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만나 이러한 통념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점을 증명한다. 크게 11 장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암컷의 정의부터 암컷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 그동안 암컷에 대한 신화가 조작되었다는 점, 동족을 먹는 암컷 동물들의 사례, 동물들의 모성애와 우수한 정자를 받기 위한 암컷들의 싸움, 동물들의 완경, 동물들의 동성애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져 있다.

읽으면서 암컷들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음과 동시에 조금은 낯간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중심 내용이 성별과 관련된 통념이기 때문에 그동안 읽었던 책에서 볼 수 없었던 직설적이고도 노골적인 용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성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겉으로 표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활자로 보는 게 개인적으로는 조금 부끄러웠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과 별개로 내용 자체로만 놓고 보면 너무 흥미진진했기에 비문학, 그것도 생물학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것치고는 굉장히 빠른 시간에 완독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지점 중 하나는 암오리의 나선형 생식 기관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리는 원하지 않는 교미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수오리가 암오리에게 이를 실행하는 경우가 있다. 그동안 암컷의 통념을 보자면 수동적인 존재이기에 수컷의 정자를 선택하지 못하고 그냥 당하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연구한 학자가 암오리를 해부해 보니 생각하지도 못했던 결과가 나왔다. 오리의 교미 중 30 퍼센트 이상이 강제로 진행되지만 수정하는 경우가 채 10 퍼센트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암오리의 나선형 생식관이 진로를 차단해 싫어하는 수오리의 정자를 막고 스스로 선택한다는 점이다. 알지 못했던 부분이기에 신기함을 느낌과 동시에 소름이 돋았던 부분이었다.

또한, 읽는 내내 동물들에 비해 인간이 편협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과 동물에 대한 큰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 책에서도 동물의 예시를 토대로 동성이 새끼를 키우는 이야기들이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예전에 어느 책에서 '다른 종의 동물들에게 동성애는 흔하다.'라는 뉘앙스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리고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 동물이기에 이성적으로 살고 있는 반면, 동물들은 본능을 앞세워 번식만 생각한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그러한 점을 앞세워 틀을 가두고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으로서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들이 마음을 휘감았다.

진화론이나 생명과학을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따로 공부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들이 가지고 있었던 암컷에 대한 통념을 뒤집어 반박한다는 점에서는 마치 사이다를 마신 듯 통쾌함을 느낀 것은 분명하다. 갈수록 책장 넘어가는 시간이 아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용을 떠나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암컷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며, 그들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 간다는 사실 자체는 제대로 각인되었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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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광기에 관한 사전 - 99가지 강박으로 보는 인간 내면의 풍경
케이트 서머스케일 지음, 김민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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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둠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 p.296

겁이 많은 타입이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것에 공포를 느끼는 편이다. 우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공포부터 시작해 특정 동물에게 보이는 공포,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 느끼는 공포, 전화를 할 때 느끼는 공포 등 손에 꼽기가 힘들 정도로 많은 일과 무언가에 큰 두려움을 느낀다. 대부분 가볍게 대처하지만 일부 공포감은 신체적인 반응이 올 정도로 크게 나타나는 것도 있다.

반면, 특정 분야에는 호기심을 가지고 광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있다. 그것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독서 활동이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는 다독가라고 말하지만 경제적인 상황에 여유가 생긴 다음부터는 단순하게 다독만 하는 것이 아닌 서적을 수집하는 광이 된 듯하다. 심지어 자주 거주하는 자취방이나 본가의 침실은 책이 공간을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책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밖에도 공포만큼 많은 부분에서 광기를 표출한다.

이 책은 케이트 서머스케일의 인문학 도서이다. 제목부터가 참 흥미로웠다. 공포와 광기는 어떻게 보면 약간 반대 의미를 가진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를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는 게 눈길을 끌었다. 사실 공포증의 대부분은 사회와 관련된 단어들이 많다고 알고 있는데 읽으면서 해당이 되는 것도 알고 싶어서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간단하게 한 줄로 요약하자면 공포증과 광기를 설명해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략 스물두 가지의 광기와 일흔일곱 가지의 공포증가 등장한다. 책의 서두에는 이러한 증상들이 정신학 용어가 아님을 명시했다. 동물과 물건에서부터 시작해 사회가 낳은 공포, 사람 관계에서 오는 공포, 신체와 관련된 공포, 집단적으로 느끼는 광기, 강박적인 광기 등 총 여덟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기대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이미 알고 있는 공포증은 나의 상황과 비교하면서 읽었으며, 모르는 공포증은 새로운 정보를 얻는다는 생각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등장하는 사례들이 신기하면서도 나름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보통 인문학 도서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세 시간 이상은 걸리는데 두 시간 정도에 완독할 정도로 푹 빠져서 읽었던 것 같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에 딱 맞았던 책이었다.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을 뽑자면 '전화공포증'과 '환공포증'이다. 먼저, 전화공포증의 경우에는 사회에 나오기 전까지 가지고 있던 공포 중 하나여서 이미 알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러나 과거 사람들과 현재 사람들이 전화에 공포를 느끼는 이유가 다르다는 점이 새롭게 와닿았다. 현대의 사람들은 전화를 하던 중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것에 대한 불안을 이유로 전화에 공포를 느끼는 반면, 기술 발달이 부족했던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전화를 하다가 감전이 될 위험으로 전화를 피했다고 한다. 과거 사람들 중에서도 내향적이거나 순발력이 안 좋은 사람이라면 감전보다는 대처에 스트레스를 받았겠지만 책에 등장한 이유가 참 흥미로웠다.

환공포증 역시도 너무 흔하게 들었던 증상이어서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은 환공포증이 생존에 대한 본능으로 발생했다는 점이었다. 사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느끼는 공포 중 하나인 뱀공포증이나 쥐공포증도 같은 이유에서 느낀다고 하는데 뱀은 독을 가지고 있기에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고, 쥐는 불결한 위생으로 병을 옮길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환공포증과 생존은 쉽게 연결이 되지는 않았는데 책에서는 수포가 이와 비슷한 모양이라고 표현했다. 읽다 보니 고개가 끄덕이게 되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밖에도 현재 아이돌 팬 문화를 대변하는 듯한 비틀즈광,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던 서적수집광, 호모포비아라고 불리는 동성애공포증 등 하나하나 내용들이 참 기억에 많이 남았다. 아마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나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생각만 하고 있었던 공포증과 광기를 주제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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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클래식 라이브러리 6
조지 오웰 지음, 배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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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설마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 p.27

자유가 억압된 사회를 산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한국사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기회가 있었지만 사회에 나오면서부터는 크게 생각을 할 일이 없는 듯하다. 물론, 직장인으로서 신분에 맞게 자유보다는 공익을 먼저 생각해 행동할 때는 있지만 통제를 당했던 적은 많지 않았기에 이제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래도 나름 생각을 해 보자면 많이 답답할 것 같다. 보통 규칙과 주어진 일에 큰 불만 없이 행동하는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자유가 억압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이렇게 책을 읽고 개인적인 의견을 표출할 자유, 무언가 잘못된 일을 당당하게 언급할 수 있는 자유 등 침해될 게 많으면 아마 못 견디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전면에 나서서 이를 바꾸기에는 용기가 부족해 뒤에서 서포트할 듯하다.

이 책은 조지 오웰의 장편소설이다. 너무나 유명한 고전이어서 꼭 한 번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독서 모임으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었던 적이 있는데 그와 비슷하게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품으로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멋진 신세계를 너무나 감명 깊게 읽었기에 스테디 고전인 이 소설을 선택하게 되었다. 취향에 맞는다면 다른 작품인 <동물농장>도 읽을 예정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윈스턴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자유가 통제되어진 사회에서 살고 있다. 심지어 다이어리 하나 살 자유마저 없는 시대이며, 정치적인 의견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전쟁은 평화이며, 자유는 예속이고, 무지는 힘이라는 말도 안 되는 구호 아래에서 억압을 받고 있다. 윈스턴은 이러한 사회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다이어리에 눈에 보이지 않는 통제자이자 권력자인 '빅 브라더를 타도하라.'라는 문구를 도배한다.

고전 자체를 어렵게 느끼는 편이지만 유독 읽혀지지 않았던 작품이다. 그동안 익히 읽었던 문체가 아닐 뿐더러 윈스턴에게 감정 이입이 되어 마치 그 상황에 처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유를 빼앗긴 주인공이 이를 바꾸기 힘든 상황과 그 안에서 느끼는 절망감들이 유독 절절하면서도 강렬하게 와닿았다. 모든 것 하나하나 감시를 받는다는 고통이 무엇인지 활자로 그대로 살아오는 듯했다.

개인적으로 현실감이 느껴졌는데 지금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여졌다. 물론, 현재는 아무렇지 않게 소신 발언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뭐가 같은가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뉴스 기사를 볼 때마다 국민들의 여론이 통제가 되고 있음을 느끼고, 기술의 발달로 모든 것이 드러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또한, 무언가에 날조가 되는 거짓 사실이나 이에 선동이 되어 와해되는 현실도 있다. 아마 윈스턴에게 몰입이 되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이러한 점일 것이다.

이 정도 되니 조지 오웰이 이러한 사회를 미리 예견한 것은 아닌지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지고, 현실에 대입해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독서 모임 또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작품이었다. 아마 다시 읽을 때에는 그만큼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지 않을까. 조금은 어려우면서도 감정적으로 힘들었지만 그만큼 꼭 읽었어야 하는 작품이어서 읽는 내내 감상과 별개로 만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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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 에어포트
무라야마 사키 지음, 이소담 옮김 / 열림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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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적절한 시기야. / p.15

얼마 전 업무상 제주도로 출장을 나간 적이 있다. 작년 가을에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갔기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나름 익숙한 제주도 공항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공항에 발을 내딛으니 설렜다. 물론, 인솔을 해야 하기에 정신없이 바빠 공항을 즐기지는 못했지만 마음만은 여행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공항 하면 설렘이 자동으로 연결이 된다. 적어도 개인적인 생각으로 공항이라는 공간은 출발과 시작이라는 의미를 주는 듯하다. 공항에서 여행의 시작을 한다는 점이 그렇다. 서점과 도서관이 주는 편안함에 비해 약간 부족하기는 하지만 공항도 나름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는 장소이다.

이 책은 무라야마 사키의 장편소설이다. 공항을 주제로 한 힐링 소설이라는 점에서 선택하게 된 책이다. 특히,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공항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좋게 남아 있는 사람이기에 활자로 읽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힐링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되었다.

소설은 크게 네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가장 첫 파트에는 료지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한때 이름을 알렸던 인물이지만 지금은 연재를 하고 있는 만화가이다. 시오리라는 여자와 연애를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이별하게 되었는데 가장 친한 친구와 결혼했다. 그렇게 기대 하나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형이 아프게 되어 일을 돕고자 고향인 나가사키로 내려가기로 결심한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 자화상을 그려 준다는 노신사와 서점 직원을 만난다.

두 번째 파트에는 서점 직원 유메코가 등장한다. 주된 이야기는 유메코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내용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 작가를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공항에서 근무하는 언니를 떠올린다. 항상 어른스럽게 다정한 모습을 보이던 언니에게 고마움과 함께 존경심마저도 드는 듯하다. 자신 역시도 성인으로서 밥벌이를 하기 위해 서점 직원이 되었고,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메구미와 마유리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중학교 때 친구인 두 사람은 현재 배우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종종 철도를 타고 공항에서 데이트를 했지만 사소한 오해로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지냈는데 공항 내 서점에서 두 사람은 조우한다. 그리고 마지막 파트에서는 매지션 마치코의 이야기가 나온다.

읽으면서 기대만큼이나 힐링이 될 수 있는 포인트가 많았다. 거기에 현실적이면서도 소소한 이야기들이어서 후루룩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개인적인 경험에 빗대어 상상하면서 읽으니 그때의 기억이 살아서 돌아오는 듯했다. 등장 인물 한 명씩 전부 공감이 되었고, 그들이 접하고 있는 상황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가볍게 기분 전환으로 읽기에 딱 좋았다.

료지가 만화가라는 직업을 포기하고자 마음 먹었을 때의 그 마음 아픈 심정이 누구보다 가장 인상 깊게 남았으며, 유메코가 자신이 좋아하던 만화가를 보았을 때의 설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던 메구미와 마유리의 깊은 우정까지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생각에 많은 공감이 되었던 작품이다. 공항에서 펼쳐지는 따뜻한 이야기들이 내내 온도를 올리는 듯했다. 공항이 주는 긍정적인 감정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이는 제주도 출장지에서 읽었다면 더욱 생생하게 와닿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언급했던 것처럼 상상하면서 읽으니 더욱 여운이 남았지만 공항에서 읽었다면 느낌이 지금보다 더욱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남지 않았을까. 시기상 안 맞는 것은 어쩔 수 없기에 무언가를 탓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조금만 빨리 읽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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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소설
앙투안 로랭 지음, 김정은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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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렌은 다시 눈을 감았다. / p.18

예전에 소설의 내용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내용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그것도 추리 장르의 소설이었는데 나름 인상적으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 종종 소설을 읽으면서 현실에서 그대로 사건으로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겼다. 물론, 추리나 스릴러 장르에서의 단골 소재인 살인과 범죄 이야기는 허구로만 남았으면 하는 사건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현실에서 등장한다면 조금 놀랄 것 같기는 하다.

이 책은 앙투안 로랭의 장편 소설이다. 익명 소설이라는 제목에 흥미를 가지고 읽게 된 책이다. 사실 소재 자체는 나름 자주 접하는 줄거리여서 크게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익명의 작가가 쓴 이야기라는 점이 어떻게 사건으로 전개될지 그 지점이 궁금했다. 거기에 스릴러 장르인 만큼 긴장감 있는 전개를 기대하면서 읽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비올렌으로 출판사의 원고 검토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어느 날, 그곳으로 소설 투고 메일이 도착한다. 제목은 설탕 꽃들이었으며, 네 명의 남자를 죽이는 내용이다. 원고를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히트를 예감했던 비올렌은 소설 투고자와 접촉하기 위해 만남을 요청하거나 개인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했지만 이를 거절한다. 결국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수단은 메일 주소 하나뿐이었으며, 계약서도 런던으로 우편을 보내 달라고 했다.

이후 소설은 발간되었고, 예감은 적중했다. 설탕 꽃들은 크게 성공했으며, 문학상 중 하나인 콩쿠르 상의 후보에도 오르게 된다. 후보로 오르면서 콩쿠르 상의 담당자와 여러 사람들은 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다. 당연히 원고를 검토했던 비올렌에게 이러한 질문이 쏟아졌는데 그때마다 비올렌은 난감함을 느낀다. 거기에 소설의 내용처럼 남자가 살해되고 있다는 경찰의 주장도 등장한다.

처음에는 설탕 꽃들 작가의 정체에 대해 나름 추리를 하면서 읽었지만 페이지 수가 넘어갈수록 스릴러라는 장르보다는 개인의 서사에 더욱 몰입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특히, 비올렌의 연대기가 펼쳐졌다는 점에서 추리보다는 주인공의 말과 행동에 집중했다. 얇은 페이지 수에 나름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하다 보니 어렵지 않게 완독할 수 있었고,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지점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공간적 배경이다. 익명 소설가의 시점에서 풀어낸 이야기일 것이라는 예상을 가지고 읽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출판사 직원의 시점으로 전개가 되어서 이 부분이 새롭게 느껴져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출판사의 이야기를 다룬 한국 드라마가 떠올랐는데 그동안 몰랐던 책이 발간되어서 나오는 내막을 이 작품을 통해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주인공이다. 비올렌의 이야기 위주로 흘러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감정적으로 이입해서 보았는데 참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온 듯하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갔던 부분이 있었다. 우선, 비올렌은 비행기 사고로 신체적인 장애를 얻었음에도 일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퇴원한 다음 날 바로 출근한 모습만 봐도 그렇다. 거기에 대형 출판사의 원고 검토부 책임자 자리에 오르기까지 부단한 노력을 했었고, 직원들 사이에서 이를 인정받기도 했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직업 의식과 책임감에 대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추리나 스릴러를 기대하고 읽었다면 아마 실망감이 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자신한다. 특히, 프루스트와 스티븐 킹 등 익숙한 작가들의 이름이 자주 등장해 반가움을 느꼈고, 마지막에 이르러 사회적인 문제를 하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소재가 등장하는데 이 지점이 가장 여운을 남겼다. 역시 상처는 평생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기도 했다. 장르를 떠나 나름의 무게감을 주었다는 점에서 뇌리에 오래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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