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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 이야기
이스카리 유바 지음, 천감재 옮김 / 리드비 / 2024년 10월
평점 :
남쪽이라기보다는 서쪽이지만. / p.14
이 책은 이스카리 유바라는 일본 작가의 SF 단편소설이다. 작가보다는 출판사를 보고 선택한 책이다. 종종 SF 작품을 발간하기는 했지만 시극히 사적인 취향으로는 SF보다는 추리 장르의 작품으로 임팩트가 남았던 출판사다. 심지어 예전에 온다 리쿠 작가의 <어리석은 장미>를 읽었음에도 아사이 료 작가의 <정욕>이나 이가라시 리쓰토 작가의 <법정유희> 같은 일본 추리 작품들이 더욱 취향에 맞았다. 새로운 일본 작가를 발굴하는 재미를 주었는데 SF의 새로운 이름은 어떤 매력을 줄지 호기심과 걱정 속에 읽게 되었다.
소설집에는 총 여섯 작품이 실려 있다. 따뜻한 나라를 찾아 이동하는 청년들과 외부 외계인들을 상대하는 지구인 라멘 가게, 감시를 즐겁게 하는 사람들, 투명 인간의 사랑 등 어떻게 보면 평소에 상상할 듯하면서도 멀게만 느껴졌던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읽다 보면 SF 장르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신선하면서도 흥미로운 소재와 내용이다.
쉽게 읽혀지는 작품들은 아니었다. SF 장르를 모르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흔히 학창 시절에 배웠던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 어느 한 분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전체를 아우르고 있어서 지식의 부족함이 피부로 느껴졌다. 특히, 과학적인 지식을 다루는 내용이 등장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회로에서 브레이크가 걸려 이를 이해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전 내내 책을 붙들고 있었다. 중간에 하차를 했을 법도 하지만 스토리 자체는 매력적이어서 결국 완독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즐거운 초감시 사회>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우스이라는 인물이다. 대학생이지만 졸업하기 전에 소설가로서 성공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우스이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는 감시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특별한 원칙을 가지고 서로를 감시하는데 이게 결코 불쾌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재미다. 국가 제도 중 하나인 남녀 교제 형성 이벤트에 참여한 우스이는 대학교 동기인 에마노를 만난다. 서로 필요에 의해 교제 신청서에 싸인을 했는데 볼펜이 바뀌면서 뭔가 묘한 일이 벌어진다.
수록된 작품 중에서 가장 SF와 거리가 있는 작품이어서 잘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작품이다. 읽는 내내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가 떠올랐다. 감시 권력을 풍자하거나 비판하는 작품들을 종종 읽었는데 결이 조금 다르다는 게 흥미로웠다. 상호 감시가 하나의 유희이자 즐거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아마 감시를 하는 것도, 그리고 받는 것도 귀찮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면서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기에 더욱 생각할 지점이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 결말을 읽으면서도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 지배가 되는 것조차도 신기했다.
그밖에도 <증유맛 라멘 가게>에서 보여지는 건조한 유머나 <No Reaction>에서 보여지는 상상력들이 참 취향에 맞았다는 느낌을 주었던 작품집이었다. <겨울시대>와 비슷한 느낌으로 어렵게 다가왔더라면 읽는 내내 끝까지 거리를 두었을 텐데 두 번째 작품부터는 매력적이었다. 초입부가 하나의 언덕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고비를 넘기고 나니 매력과 재미가 배가 되어 돌아왔던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