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가 XXX였던 건에 대하여
정해연 외 지음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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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건 오PD의 말처럼 저 녀석들이 앞으로 뭐가 될 줄 모르는 존재들이기 때문이었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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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를 묻는 질문에 늘 난감한 웃음을 짓게 된다. 누군가는 한때 학창시절에 큰 추억을 선사해 준 우상이었고, 또 다른 이는 긴 시간 동안 나의 이메일 아이디를 차지했고, 지금까지 내 휴대 전화 뒷자리에 생년월일로 남은 이도 있다. 열광하게 만들어 준 것만큼은 고마운 일이지만, 차마 말하기 창피하다. 같은 존재가 아님에도 그 사람의 과오로 나 역시 똑같은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야말로 최애가 XXX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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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아 있지 않은 최애들을 떠올리면서 선택한 책은 정해연 작가님과 김아직 작가님, 정명섭 작가님, 박지선 작가님께서 참여하신 앤솔로지 소설집이다. 처음에는 제목에 혹했다. 언급한 것처럼 내 과거의 최애들은 하나같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이들이었다. 거기에 작가님들의 라인업이 흥미로웠다. 지우고 싶은 내 최애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지점에서만큼은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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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에는 작가님별로 한 편씩, 총 네 편이 수록되었다. 음악 방송 1위 기념으로 떠난 MT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에 휘말린 인기 아이돌 그, 외딴 행성의 서바이벌에 참가하게 된 비인기 그룹의 멤버, 콘셉트를 위해 떠난 다른 나라에서 군사기업으로 오해받은 아이돌, 요괴를 쫓는 능력을 가진 아이돌 그룹의 보컬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개성이 뚜렷해 다채로운 매력이 느껴지는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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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히는 소설집이었다. 누군가를 덕질했던 아이돌 팬이었다면 충분히 공감할 이야기가 아닐까. 한 권의 소설집 안에 SF부터 스릴러, 판타지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다가왔다. 참여하신 작가님들의 작품을 읽고 취향에 맞았다면 이 작품집도 추천한다. 처음 접하는 작가님의 작품도 꽤 흥미로웠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읽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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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김아직 작가님의 <엔딩 요정의 비밀>이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선유다. 선유는 '노 웨이 아웃: AT37'에 출연한다. 인기 아이돌 그룹에게 먼저 제의가 갔지만, 이를 거절하면서 선유에게 기회가 돌아온 것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다른 그룹의 팬들이 두려워 몸을 사릴 생각이었는데 제작진은 제작진은 선유를 불리한 구도로 몰아간다. 과연 선유는 우승할 수 있을까. 예전에 시청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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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의 과거 최애들은 진짜 XXX이기만 했던 것일까. 실제로 뉴스 사회면을 도배했던 이들도 있었으니, XXX는 확실히 맞는 말이다. 내 추억을 도려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때도 있다. 읽는 내내 나름의 직업 정신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는 이들의 고군분투에서 연민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이들의 팬이라면 최애를 부끄럽게 여기지는 않을 것 같았다. 가상의 세계에서 얼마 없을 그 팬들이 참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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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야옹 씨의 조그만 상실에 관하여 ㅣ HiP 시리즈
정보라 지음 / 텍스티(TXTY)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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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놈은 그저 벌레에 불과하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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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를 넘는 것은 좋은 것이다. 안주하는 것보다는 도전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전형적인 회피형 인간으로서 많은 것을 맞닥뜨리기보다는 피하는 게 편하다고 여기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럼에도 어려웠던 작가의 작품을 계속 접하게 되는 것은 내가 하는 저돌적인 도전이다. 과거에는 이해가 안 되었던 세계관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그 순간에 형용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물론, 이게 뭐 대단한 것이냐고 되묻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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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게 되는 작품이 바로 정보라 작가님의 소설이다. 얼마 전에 <이름 없는 것들의 밤>이라는 작품을 읽었는데 벌써 또 신간이 나왔다. 그것도 미출간 단편선이었다.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신작을 연달아 읽게 된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데 그래도 늘 믿고 읽으니 무조건 접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이번에는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 나도 모른다. 그럼에도 기대와 설렘을 안고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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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집에는 총 세 편이 수록되었다. 이름을 빼앗기는 세상에서 '내 이름을 불러 줘'라는 희미한 소리를 듣게 된 한 경비대원 여자의 이야기, 이십 년마다 처녀를 요물에게 바치는 마을에서 금지된 사랑을 했던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 누군가에게 새끼를 살해당했지만, 인간으로부터 새로운 삶을 얻게 된 길고양이 귀야옹 씨의 이야기. 모두 여성이거나 암컷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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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작가님의 작품 중 가장 난이도가 낮은 편에 속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짧게 시작해 굵직하게 끝맺는 이야기지만, 독자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확고하다. 거기에 결말 또한 명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정보라 작가님의 작품이 낯설게 다가왔던 독자들이라면 이 작품으로 입문해도 좋을 것이다. 세계관은 뚜렷하게 느낄 수 있되, 이해하기는 훨씬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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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바늘 자국>이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요물에게 몸을 내어야만 하는 한 처녀의 이야기다. 다른 마을 주민들은 말로써 위로하는 듯하지만 정작 그녀를 이해해 주는 것은 몸종 애련뿐이다. 애련과 주인공은 깊은 관계로 발전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요물에게 가게 되었지만, 가까스로 탈출했다. 다시 돌아온 마을에는 애련의 시신이 있었다. 그녀는 애련을 묻고, 이 모든 것을 복수하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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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고 약한 곳으로 향하는 게 인간의 선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누구나 권력에 욕심을 부리게 되고, 높은 곳을 본다. 작가님의 작품은 늘 지름길의 이정표였다. 이름을 빼앗겼던 이에게 이름을 되찾아 주고, 순결을 잃은 이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길고양이의 상실을 생각해 주는 것. 허구의 세계라도 따뜻한 선을 잃지 않게 만드는 것이 정보라 작가님의 작품에 계속 도전하게 만드는 힘이자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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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대연쇄
단요 지음 / 사계절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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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실존하는 신에게 악의 문제를 따지기란 중력이 중력인 까닭을 두고 세계와 다투는 일과 같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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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부터 매주 한 번씩 온라인 독서모임으로 천문학자 칼 세이건 님의 <코스모스>을 함께 읽는 중이다. 절대로 혼자 페이지를 안 넘길 책이지만 독서가로서 한번쯤은 접해야만 하는 불멸의 고전 도서이기 때문에 부담감을 안고 참여했다. 그 시간동안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손목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감히 위대한 책을 앞에 두고 그런 잡생각을 한다는 게 스스로도 민망했다. 역시 과학은 너무나 큰 벽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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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멀고도 깊은 과학 분야이지만 그래도 그나마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지점은 SF인 듯하다. 그렇게 접한 이 작품은 단요 작가님의 단편소설집이다. 작가님의 작품은 그래도 자주 접했다. 특히, 쌍둥이 이야기를 다루었던 <트윈>은 흥미롭게 다가왔고, 선악을 주제로 했던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는 SF이지만 철학적인 느낌이 매력적이었다. 나름 믿고 읽었던 작가님의 신작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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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에는 총 여섯 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각 작품은 컴퓨터 기술과 철학, 종교학 등 다른 학문과 융합해 작가님만의 독창적인 세계관 이야기를 다루었다. 교통사고로 죽은 딸을 살리고자 하는 엄마, 종교 연구자와 기술직 사무관의 대화 등 어느 정도는 현실과 연결된 지점이 있기는 하지만, 주로 등장하는 세계는 가능성이 없는 아득한 미래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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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많이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언급했던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도 도전처럼 느껴졌던 작품이었는데 그 이상의 넓은 소재를 다루고 있어 읽는 내내 많은 힘이 들었다. 그래도 나름 책 좀 읽는 사람으로서 자부심에 스크래치가 생겼던 순간도 있었지만, 힘겹게 따라간 만큼 세계관 하나만큼은 참 흥미로웠다. 다차원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접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아마 상상 그 이상의 매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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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종교 역사를 다루는 학자와 송전탑을 관리하는 기술직 사무관으로, 이들의 전화 내용이 곧 줄거리다. 학자는 삼천 년 전에 온도를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 있다는 가정을 말한다. 고대 그리스부터 현재를 아우르는 것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의 영적인 시야 관념까지, 처음에는 뭐 이렇게까지 생각하나 싶지만 어느 순간 빠져들게 되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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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나오지 않는 철학과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 종교는 가볍게 생각하면 과학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비교적 과학은 명확한 답이 있고, 눈에 보이게끔 증명하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세계관들을 접하면서 나름의 공식이 산산이 부서졌음을 체감하게 되었다. 철학도 어렵고, 종교도 어렵고, 과학은 더 어렵다. 그 사이 어디쯤에서, 설명되지 않는 여운 하나가 남았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붙든 시간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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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집 - 재일 이주 여성의 자리를 엮다
조경희 지음 / 사계절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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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사계절'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소수자 혐오는 오늘날 전 세계에 만연한 현상이지만, 혐오의 주요 대상과 표출 강도 등은 사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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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세계를 다루는 것도 좋지만, 실제 부류에 속하는 이들의 현실을 듣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경험하지 못했거나, 앞으로도 경험하기 힘든 세상을 책으로써 접한다는 것은 도전이면서 공부와 같은 일이다. 그렇다고 온전히 인간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제일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의 역사도 나와는 다르다.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다가가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세계를 접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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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선택한 책은 조경희 작가님의 사회학 도서다. 재일한국인이라고 칭하는 자이니치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작품들을 접하게 되면서 관심이 생겼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문화를 습득한 이들은 과연 어떻게 바라볼까.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사람으로서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이를 배우고 싶었다. 이미 어려울 것을 예상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기대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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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께서는 일본에서 태어나 성장하신 분이다. 조부의 고향은 경상북도 경주이며, 작가님은 현재 한국의 한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시다. 책에는 작가님께서 한국과 일본을 다니시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는 이주민들의 경험을 통해서 한국의 시민권이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지를 묻는다. 두 번째는 이주민들을 위협하는 혐오의 양상을, 세 번째는 이주민의 '여성'이 곧 주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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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우선, 나는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한때 다문화사회의 현장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다. 전문적으로 자이니치 사회를 직접적으로 경험했다거나 이주민 당사자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는 독자로서도 개념이나 담론이 어렵게 다가왔다. 아마 처음 이들의 이야기를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을까. 처음부터 깊고 넓게 급진적으로 다루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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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정당마다 접근 기준이 달랐던 다문화 정책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2008년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제정되었고, 2012년에는 당시 새누리당에서 필리핀 결혼이주여성인 이자스민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또한, 진보인 민주당은 한국어 교실을, 보수인 새누리당은 자국어 배움 교실을 주요 프로그램으로 내세웠다. 흔히 진보로 생각했던 다문화 정책을 보수 정당이 다룬다는 것을 의아하게 느껴졌던 사람으로서 이 부분은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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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사회 시간에 선생님께서는 대한민국을 '백의민족', '한민족'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배우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그 표현들이 누군가에게는 배제로 다가올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모습을 한 이들이 대부분이겠지만, 그만큼 다른 생김새를 가진 이들도 많다. 이미 다양한 사람들이 많은 이 사회를 지금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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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 재앙의 책
오다 마사쿠니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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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하라 씨, 당신은 자신이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갑갑함을 느낀 점은 없습니까? / p.100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고통을 주었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약이 되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이 문장에 온전히 공감했다면 최근 들어 조심스럽게 느껴진다. 당장 죽고 싶다는 생각을 안겨 주는 주변 인물들도 과연 나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선악이라는 기준 자체가 워낙 모호하고 주관적이어서 이를 무 자르듯 쉽게 단정 지을 것은 아니다. 일부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은 있지만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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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재를 생각하면서 선택한 책은 오다 마사쿠니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표지만 보면 취향과 거리가 먼 책이다. 많이 접하는 장르는 아니어서 망설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인간이 겪을 수 있는 '화'를 다루어서 관심이 갔다. 살아가면서 무수히 겪게 될 화와 소설에 드러나는 화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작품의 세계에 온전히 빠지고 싶다는 기대를 안고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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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에는 기괴하고도 환상적인 일곱 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귀와 관련된 특이한 능력을 가진 남자와 먹어서는 안 될 무언가를 먹기 시작한 소설가, 갑자기 다른 취향의 몸매를 가진 여성에게 끌리는 남자, 머리카락을 신으로 모시는 신흥 종교, 전철에서 사람들을 전라 상태로 만드는 혼란의 바이러스까지 각 단편은 인간의 어느 부위 또는 관련이 되는 어느 부분을 주제로 펼쳐진 괴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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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따라 몰입도에 큰 차이를 보이는 작품집이었다. 머릿속으로 세계관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소설이 있었지만, 반대로 몇 번을 곱씹어도 당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소설도 있었다. 그럼에도 완독할 수 있었던 것은 현실적인 상황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허구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흐름에 낯섦과 신선함을 동시에 경험했기 때문이다. 몽환적인 괴담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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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부드러운 곳으로 돌아가다>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네 번째 실린 작품으로, 소설의 화자에게 아내 유키에의 마른 체형이 어느 순간부터 볼품없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회사에 출근하다가 옆자리에 앉은 풍만한 체형의 여성에게 성적인 욕망을 느끼게 된다. 그 여성 역시 화자에게 대담하게 손길을 건넨다. 비판할 수 있는 지점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현실적인 주제를 담고 있기에 머릿속에 오래 남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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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책으로 바꾸어 보면 의미는 더욱 명확해진다.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 어떤 책이든 분명히 무언가를 남긴다. 이 작품에서 여성을 다루는 방식과 바라보는 시선은 지극히 폭력적이다. 특히, 언급했던 단편은 남성의 시선에서 쓰인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는 이야기다. 같은 여성이기에 느끼는 불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비판적으로 사고하게 되는 것 또한 책이 주는 메시지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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