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사회 - 진정성에서 프로필성으로
한스 게오르크 묄러.폴 J. 담브로시오 지음, 김한슬기 옮김 / 생각이음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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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경험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측면이 된 것이다. / p.76

요즈음은 SNS 하나 정도는 필수인 세상인 듯하다. 휴대 전화에 무지한 부모님께서도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 등을 통해 최신 소식을 보신다고 한다. 가끔은 그렇게 새로운 세상 소식을 듣기도 한다. 독서 리뷰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SNS를 하지 않았는데 책 리뷰를 올리는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면서부터 이렇게 세상의 문물을 또 하나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책은 한스 게오르크 묄러와 폴 J 담브로시오의 사회학 도서이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세상이다 보니 프로필이라는 게 필수불가결하게 되었다. 예전 문자나 전화였다면 굳이 사진을 올릴 일도 없었을 텐데 카카오톡을 시작하면서부터 프로필 사진과 음악까지 오랜 시간을 소요하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모를 감정이 들었다. 프로필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읽게 되었다.

단순하게 프로필과 개인에 대한 내용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사회적 문제를 다룬 책이었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이렇게 프로필에 대한 역사와 프로필성을 가진 개인이 사회와 시대에 미치는 영향과 이렇게 도래하게 된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의 일화 등으로 프로필에 대한 폭넓은 이야기들을 보면서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 책에서는 프로필성, 성실성,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여기에서 프로필성은 공개적으로 자기 자신을 설명해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진정성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성실성은 규범을 수용하고 역할에 부여된 가치를 내면화해 자신의 역할에 대한 정체성이다. 이는 등장할 뿐만 아니라 주제 전체를 관통할 정도로 중요한 단어들이기도 하다.

프로필 사회가 되면서 모순 지점이 발생한다. 시위대에서 찍힌 하나의 사진이 비판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자신의 꾸미는 일상을 SNS에 게시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등 진정성과 프로필성에는 괴리감이 생기고, 가면으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많아진다. 개인적으로 SNS를 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도 나의 진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으며, 거짓으로 꾸미기는 싫었기 때문이었다. 초반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은 그것 또한 하나의 정체성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것이며, 하나의 현상이라는 점이다. 어차피 완벽한 진정성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이런 부분이 자신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를 그대로 인정하는 자세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고 나니 조금 스스로를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질서 관찰에 대한 내용이 참 인상적이었다. 1차 질서 관찰은 직접 스스로가 상호관계 소통을 한다거나 직접 보는 것을 말한다면 2차 질서 관찰은 휴대 전화나 책 등 다른 것을 통해서 보는 것을 말한다고 느껴졌다. 그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SNS는 작성자가 올린 피드나 글을 본다는 점에서 2차 질서 관찰인데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연출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인다는 내용이다.

사실 SNS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깊이 생각한 적이 없고, 나 역시도 남에게 보이는 모습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이 책을 보면서 생각을 달리 보게 되었다. 책 리뷰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나의 정체성이나 모습들을 보인다는 측면에서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 자신을 큐레이팅하고 있었던 것이다.

프로필 사회에 대한 이야기들을 사회, 역사, 심리, 철학 등 다양한 측면으로 풀어주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너무 전문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때에는 내 부족한 지식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으나, 지금까지 생각했던 성실성과 진정성을 프로필성과 함께 묶어서 나눈 이야기들이 전체적으로 흥미로웠다.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자신을 보여야 살 수 있는 시대에서 필요한 프로필성과 진정성, 성실성에 대해 깊이 고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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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에는 코코아를 마블 카페 이야기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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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입장이 되는 건 어렵네요. / p.69

코코아 하면 딱 두 가지가 떠오른다.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뽑아 주셨던 자판기의 코코아, 그리고 겨울마다 떠오르는 핫초코 광고. 부모님께서 밀크커피를 드시는 동안 어린 나와 동생은 늘 선택의 여지 없이 코코아를 뽑아서 마셨다. 율무차도 하나의 보기이기는 했지만 솔직히 맛만 보면 굳이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부터는 코코아보다는 커피를 선택하는 비율이 높았다.

그러다 보니 코코아의 맛을 잊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으니 최소 십오 년 넘게 코코아를 마시지 않은 것 같다. 아마 지금 코코아를 마신다면 되게 달게 느껴지지 않을까. 어느새 코코아의 달달함보다는 아메리카노의 쓴맛을 선호한 나이가 되었다. 이게 바로 어른의 맛인가.

이 책은 아오야마 미치코의 단편 소설집이다. 일본 소설들을 읽으면서 나름의 매력을 느꼈다. 뭔가 마음 따뜻해지는 느낌. 때때로 불만족스러운 소설들도 있지만 대체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변호사나 기업의 부조리함을 다루는 사회 고발적인 성향의 소설도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만족했던 소설이 많았는데 대놓고 따뜻함을 주는 소설이라고 하니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읽게 되었다.

크게 열두 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시작은 실질적인 운영을 맡고 있는 카페 정직원과 그가 좋아하는 한 여자로부터 시작한다. 우연한 기회에 일하게 된 카페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핫코코아를 주문해 마시는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된다. 늘 같은 자리에서 영어로 편지를 쓰는 여자를 보기만 할 뿐 용기를 내어 고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다른 고객이 이미 그 자리를 앉게 되면서 다른 자리에 앉아 울고 있는 여자를 본다.

이후 그 여자 자리에 앉았던 고객이자 어린이집 교사의 이야기, 교사를 혼내던 상사의 이야기, 상사의 친구 이야기 등 단편 소설이기는 하지만 이전 소설의 인물과 이어진 새로운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한 편의 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읽는 내내 정세랑 작가님의 장편 소설 하나가 떠오르기도 했었다.

처음에 목차를 보고 시드니가 공간적 배경으로 나오는 이야기들이 무척 궁금했다. 일본 작가이기 때문에 도쿄가 나오는 것은 크게 이상함을 느끼지는 못했는데 갑자기 도쿄에서 시드니로 뛴 배경은 무엇일까. 읽고 보니 내 생각이 단편적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도쿄에서 시드니로 가는 설정은 다양하게 표현이 될 수 있는데 말이다.

개인적으로 한 명의 특별한 서사보다는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서사 전체가 마음에 들었다. 어린이집 교사, 누군가의 친구, 짝사랑하는 상대, 여행을 떠난 노부부, 일하는 엄마와 육아하는 아빠 등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사람들의 평범하고도 사소한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와닿았다.

일하면서 느꼈던 부조리함에 퇴사를 꿈꾼 적도, 크게 접점은 없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호감의 감정을 느꼈던 적도, 성향이 다른 친구가 크게 의지가 되었던 경험도 있었다. 또한,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부변의 일하는 엄마도, 자녀들의 이벤트로 해외여행을 떠난 부모님들도 쉽게 만났다. 그렇듯 인물들은 하나같이 가깝거나 먼 누군가의 도움으로 무언가를 깨닫고, 행복을 느낀다.

힘들고 지친 일상을 보내면서 영웅이나 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대리 만족을 느낄 때도 있지만 이렇게 펴놓은 것과 같은 작은 도움과 위로도 때로는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이 책으로 다시 경험하게 되었다. 표지에 적힌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구원한다'라는 글귀가 전적으로 공감이 되었던 이유를 열두 편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찾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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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윌북 클래식 첫사랑 컬렉션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강명순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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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 효과로만 알고 있었던 젊은 베르테르의 사랑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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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윌북 클래식 첫사랑 컬렉션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강명순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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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저의 이 고통을 끝내주십시오. / p.173

나에게 베르테르 라고 하면 심리학 용어인 '베르테르 효과'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유명한 사람이나 선망하던 사람이 자살해 미디어에 노출이 되면 자살률이 올라가는 효과. 전공 수업에서 배웠던 기억도 있고, 연예인의 안 좋은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매체에서도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로 나와서 자주 듣게 되는 용어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용어가 매체에서 들릴 때마다 씁쓸함을 느낀다.

이 책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소설이다. 심리학 용어로서만 베르테르라는 인물을 접했고, 뮤지컬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한 고전 소설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개인적인 독서 취향과 고전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기에 제목 자체로만 친숙한 소설이어서 이번 기회를 통해 생각날 때마다 고전 소설을 하나씩 읽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윌북 출판사에서 나온 W첫사랑 클래식 시리즈의 하나인 바로 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제목에서도 나온 것처럼 베르테르라는 인물이다. 베르테르는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장소에서 일상을 즐기던 중 우연히 로테라는 여성을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로테에게는 알베르트라는 이름을 가진 약혼자가 있었고, 그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없다. 베르테르의 감정과 세 사람의 관계에 대한 내용을 빌헬름이라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이야기이다.

베르테르는 감정적이면서도 예민한 성향인 듯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바에 있어서는 외골수의 기질이 있을 정도로 확고한 편이기도 하다. 반면, 로테는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이고, 알베르트는 베르테르와 정반대의 성향으로 차분하면서 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세 사람이 만드는 소설 속의 긴장감과 베르테르의 감정을 그대로 이입하다 보니 정신이 혼란스럽기도, 마음이 불안하기도 했었다.

읽으면서 단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베르테르는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왜 그렇게 깊이 파고들었고,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이끌었을까. 좋게 말하면 순애보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그저 광기의 사랑에 불과하다. 중간에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로테와 거리를 두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시 로테의 옆으로 돌아왔지만 결론적으로 베르테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알면서도 깊이 파고들었고, 사랑 때문에 미쳐 갔고, 결국은 비극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게 머리처럼 되는 일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베르테르가 로테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과 알베르트에게 보이는 질투의 감정이 주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젊은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함도 소설에서 엿볼 수 있었다. 비록, 그 불안함 역시도 갈수록 원인이 사랑 때문에 심화가 되기는 하지만 청춘이기에 온전히 감당해야만 했던 베르테르의 고뇌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읽는 내내 외나무다리를 걷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이미 끝이 정해진 사랑임에도 그렇게 한 사람을 미치게 사랑했던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연민이 들었다.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하겠지만 나는 숭고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사랑을 위해 안 해 본 것들을 한다고 하고, 다른 일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그 사람이 전부라고도 하고, 더 나아가 나의 평생을 약속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이토록 미칠 수 있을까.

책을 덮고 나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작품이 왜 W클래식 첫사랑 컬렉션 중 하나가 되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사실 베르테르의 첫사랑이 로테인지 잘 모르겠다. 소설속에서 대놓고 등장하지는 않지만 전적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로테를 향한 진심과 감정만큼은 첫사랑에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첫사랑이 주는 강렬함과 순애보가 잘 나타나 있는 소설을 통해 기억에 잊혀졌던 나의 첫사랑도 꺼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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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도시 속 인형들 1 안전가옥 오리지널 19
이경희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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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진짜 나는 거기 없어. / p.78

SF 소설을 읽으면서부터 조금은 현실적으로 가까운 미래의 일처럼 느껴지는 이야기가 있다. 예전에는 로봇과 인간이 친구가 되는 내용은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인공지능에게 사랑의 감정에 빠지는 영화도 그렇다. 흔히 말하는 사이버 도시들이 막연하게나마 그려지기도 한다.

이 책은 이경희 작가님의 사이버펑크 장르의 SF 연작 소설이다. 전작 소설 중 하나에 대한 내용을 지인으로부터 들은 기억이 난다. 조상님의 제사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너무 인상 깊어서 작가님 소설이 궁금했다. 평택이 나에게는 첨단처럼 뭔가 사이버틱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기에 거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기대가 되었다.

소설의 배경은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평택 특별자치구역이다. 미래의 메가 시티로 과학 기술을 사용에 크게 제재가 없는 지역. 또한, 중앙 부처의 치안과 다르게 운영되는 지역. 덕분에 중앙에서 일하는 지역검찰청의 검사와 평택 자치 정부의 경찰은 서로 대립하고 있다. 첨단 기술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사이버 범죄들과의 싸움으로 정신이 없는 곳이다.

주인공은 평택지방검찰청 첨단범죄수사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진강우 검사와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민간 조사사 주혜리이다. 이 둘이 주측이 되어 평택 특별자치구역에서 벌어지는 첨단 기술 범죄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검사이면서도 자리에 앉아 서류를 보는 것보다 직접 뛰어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는 진강우는 무슨 사건이 생길 때마다 주혜리를 불러 함께 사건을 처리하고자 한다. 그런 진강우가 귀찮으면서도 그의 부탁이라면 늘 응한다.

총 다섯 편의 연작 소설과 에필로그가 수록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저 디지털 세계의 좀비들>과 <트윈 플렉스>가 가장 현실에 맞닿은 이야기여서 공감이 되었다. <저 디지털 세계의 좀비들>은 공공임대 메가빌딩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노인들 중 정부에서 제공한 의체를 받은 노인들에게서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 이 성향이 바이러스의 원인이라고 생각해 진강우와 주혜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의수가 아닌 첨단 기술이 포함된 의체라는 게 조금 새롭게 보였다. 그런데 막상 읽으면서 보니 저소득층 노인들의 문제들을 보고 있으니 그 새로움은 잊혀지고 답답함이 올라왔던 이야기였다. 전공을 공부하면서 저소득층에게 현물과 현금으로 제공했을 때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문제점이 내용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서 아마도 더욱 현실감으로 와닿았던 것 같다.

<트윈 플렉스>의 주인공 원현수는 어렸을 때부터 성이 일치되지 않는 사람인 듯하다. 어머니로부터 엄하게 자라오다 트윈 플렉스라는 시술을 통해 원현정이라는 새로운 신체를 만들었다. 정신은 원현수 하나로, 육체는 원현수와 원현정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원현수는 그런 원현정을 학대했고, 법정에 서게 된다.

주인공인 원현수에 대한 감정을 공감할 수 있었다. 여성의 삶을 살고 있는 원현정에게 느끼는 질투심과 사회적인 인식으로 자신의 심리적인 성을 거부당하는 느낌, 생물학적인 성과 심리적인 성이 다름에서 오는 혼란 등 최근 대두되었던 성 소수자들에 대한 이슈들과 맞물려 조금은 심각하게 보게 되었던 내용이었다. 물론, 질투를 느낀다고 해서 원현정에게 폭력을 가하는 행동 자체는 면죄부가 될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동안 동성애에 대한 소설들은 많이 접했는데 시스젠더와 트렌스젠더를 다루는 소설이어서 흥미롭기도 했다.

읽으면서 현실감을 느꼈던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보았다. 분명히 의체를 사용한다는 설정과 트윈플렉스라는 새로운 도플갱어를 만나는 기술, 복제 인간 서바이벌 프로그램 등 소재 자체는 누가 봐도 허무맹랑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언젠가 이루어질 수 있기도 하겠지만 내가 대한민국 어느 땅에 묻히기 전까지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광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현실적인 이유는 저소득층의 복지 문제와 매체로 인기를 얻는 인플루언서의 도를 넘는 조작 행동, 성 소수자의 이슈, 대기업의 횡포 등 소설에서 진강우와 주혜리가 해결하는 사건들이 지금 살고 있는 세계랑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닿았다. 마냥 SF의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보이지 않은 이유였다. 그런 점에서 재미보다는 답답함을 자주 느꼈다. 나에게는 참 불편한 진실을 주었던 소설 이야기들이었다.

반면, 진강우와 주혜리 콤비의 사건 해결 능력은 인정할만했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끝까지 고구마만 먹은 채로 책을 덮었을지도 모르겠다. 답이 없는 평택 특별자치구역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정의를 불태운 진강우와 혼자서 진강우에 대한 욕을 하면서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주혜리가 사건을 해결할 때마다 사이다가 비처럼 쏟아지는 쾌감도 느껴졌다. 현실처럼 둘이 살고 있는 평택 특별자치구역 또한 살만한 세계구나.

연작으로 이어질 다음 샌드박스 시리즈가 기대된다. 첨단 기술 안에서 무엇이든 다 되고 있으나 그게 곧 천국이자 지옥인 세상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꼈다. 2080년 메가시티 평택에서 2020년의 현재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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