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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도시 속 인형들 1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19
이경희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5월
평점 :

어차피 진짜 나는 거기 없어. / p.78
SF 소설을 읽으면서부터 조금은 현실적으로 가까운 미래의 일처럼 느껴지는 이야기가 있다. 예전에는 로봇과 인간이 친구가 되는 내용은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인공지능에게 사랑의 감정에 빠지는 영화도 그렇다. 흔히 말하는 사이버 도시들이 막연하게나마 그려지기도 한다.
이 책은 이경희 작가님의 사이버펑크 장르의 SF 연작 소설이다. 전작 소설 중 하나에 대한 내용을 지인으로부터 들은 기억이 난다. 조상님의 제사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너무 인상 깊어서 작가님 소설이 궁금했다. 평택이 나에게는 첨단처럼 뭔가 사이버틱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기에 거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기대가 되었다.
소설의 배경은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평택 특별자치구역이다. 미래의 메가 시티로 과학 기술을 사용에 크게 제재가 없는 지역. 또한, 중앙 부처의 치안과 다르게 운영되는 지역. 덕분에 중앙에서 일하는 지역검찰청의 검사와 평택 자치 정부의 경찰은 서로 대립하고 있다. 첨단 기술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사이버 범죄들과의 싸움으로 정신이 없는 곳이다.
주인공은 평택지방검찰청 첨단범죄수사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진강우 검사와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민간 조사사 주혜리이다. 이 둘이 주측이 되어 평택 특별자치구역에서 벌어지는 첨단 기술 범죄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검사이면서도 자리에 앉아 서류를 보는 것보다 직접 뛰어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는 진강우는 무슨 사건이 생길 때마다 주혜리를 불러 함께 사건을 처리하고자 한다. 그런 진강우가 귀찮으면서도 그의 부탁이라면 늘 응한다.
총 다섯 편의 연작 소설과 에필로그가 수록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저 디지털 세계의 좀비들>과 <트윈 플렉스>가 가장 현실에 맞닿은 이야기여서 공감이 되었다. <저 디지털 세계의 좀비들>은 공공임대 메가빌딩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노인들 중 정부에서 제공한 의체를 받은 노인들에게서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 이 성향이 바이러스의 원인이라고 생각해 진강우와 주혜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의수가 아닌 첨단 기술이 포함된 의체라는 게 조금 새롭게 보였다. 그런데 막상 읽으면서 보니 저소득층 노인들의 문제들을 보고 있으니 그 새로움은 잊혀지고 답답함이 올라왔던 이야기였다. 전공을 공부하면서 저소득층에게 현물과 현금으로 제공했을 때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문제점이 내용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서 아마도 더욱 현실감으로 와닿았던 것 같다.
<트윈 플렉스>의 주인공 원현수는 어렸을 때부터 성이 일치되지 않는 사람인 듯하다. 어머니로부터 엄하게 자라오다 트윈 플렉스라는 시술을 통해 원현정이라는 새로운 신체를 만들었다. 정신은 원현수 하나로, 육체는 원현수와 원현정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원현수는 그런 원현정을 학대했고, 법정에 서게 된다.
주인공인 원현수에 대한 감정을 공감할 수 있었다. 여성의 삶을 살고 있는 원현정에게 느끼는 질투심과 사회적인 인식으로 자신의 심리적인 성을 거부당하는 느낌, 생물학적인 성과 심리적인 성이 다름에서 오는 혼란 등 최근 대두되었던 성 소수자들에 대한 이슈들과 맞물려 조금은 심각하게 보게 되었던 내용이었다. 물론, 질투를 느낀다고 해서 원현정에게 폭력을 가하는 행동 자체는 면죄부가 될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동안 동성애에 대한 소설들은 많이 접했는데 시스젠더와 트렌스젠더를 다루는 소설이어서 흥미롭기도 했다.
읽으면서 현실감을 느꼈던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보았다. 분명히 의체를 사용한다는 설정과 트윈플렉스라는 새로운 도플갱어를 만나는 기술, 복제 인간 서바이벌 프로그램 등 소재 자체는 누가 봐도 허무맹랑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언젠가 이루어질 수 있기도 하겠지만 내가 대한민국 어느 땅에 묻히기 전까지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광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현실적인 이유는 저소득층의 복지 문제와 매체로 인기를 얻는 인플루언서의 도를 넘는 조작 행동, 성 소수자의 이슈, 대기업의 횡포 등 소설에서 진강우와 주혜리가 해결하는 사건들이 지금 살고 있는 세계랑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닿았다. 마냥 SF의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보이지 않은 이유였다. 그런 점에서 재미보다는 답답함을 자주 느꼈다. 나에게는 참 불편한 진실을 주었던 소설 이야기들이었다.
반면, 진강우와 주혜리 콤비의 사건 해결 능력은 인정할만했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끝까지 고구마만 먹은 채로 책을 덮었을지도 모르겠다. 답이 없는 평택 특별자치구역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정의를 불태운 진강우와 혼자서 진강우에 대한 욕을 하면서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주혜리가 사건을 해결할 때마다 사이다가 비처럼 쏟아지는 쾌감도 느껴졌다. 현실처럼 둘이 살고 있는 평택 특별자치구역 또한 살만한 세계구나.
연작으로 이어질 다음 샌드박스 시리즈가 기대된다. 첨단 기술 안에서 무엇이든 다 되고 있으나 그게 곧 천국이자 지옥인 세상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꼈다. 2080년 메가시티 평택에서 2020년의 현재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했던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