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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에는 코코아를 ㅣ 마블 카페 이야기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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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입장이 되는 건 어렵네요. / p.69
코코아 하면 딱 두 가지가 떠오른다.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뽑아 주셨던 자판기의 코코아, 그리고 겨울마다 떠오르는 핫초코 광고. 부모님께서 밀크커피를 드시는 동안 어린 나와 동생은 늘 선택의 여지 없이 코코아를 뽑아서 마셨다. 율무차도 하나의 보기이기는 했지만 솔직히 맛만 보면 굳이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부터는 코코아보다는 커피를 선택하는 비율이 높았다.
그러다 보니 코코아의 맛을 잊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으니 최소 십오 년 넘게 코코아를 마시지 않은 것 같다. 아마 지금 코코아를 마신다면 되게 달게 느껴지지 않을까. 어느새 코코아의 달달함보다는 아메리카노의 쓴맛을 선호한 나이가 되었다. 이게 바로 어른의 맛인가.
이 책은 아오야마 미치코의 단편 소설집이다. 일본 소설들을 읽으면서 나름의 매력을 느꼈다. 뭔가 마음 따뜻해지는 느낌. 때때로 불만족스러운 소설들도 있지만 대체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변호사나 기업의 부조리함을 다루는 사회 고발적인 성향의 소설도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만족했던 소설이 많았는데 대놓고 따뜻함을 주는 소설이라고 하니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읽게 되었다.
크게 열두 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시작은 실질적인 운영을 맡고 있는 카페 정직원과 그가 좋아하는 한 여자로부터 시작한다. 우연한 기회에 일하게 된 카페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핫코코아를 주문해 마시는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된다. 늘 같은 자리에서 영어로 편지를 쓰는 여자를 보기만 할 뿐 용기를 내어 고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다른 고객이 이미 그 자리를 앉게 되면서 다른 자리에 앉아 울고 있는 여자를 본다.
이후 그 여자 자리에 앉았던 고객이자 어린이집 교사의 이야기, 교사를 혼내던 상사의 이야기, 상사의 친구 이야기 등 단편 소설이기는 하지만 이전 소설의 인물과 이어진 새로운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한 편의 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읽는 내내 정세랑 작가님의 장편 소설 하나가 떠오르기도 했었다.
처음에 목차를 보고 시드니가 공간적 배경으로 나오는 이야기들이 무척 궁금했다. 일본 작가이기 때문에 도쿄가 나오는 것은 크게 이상함을 느끼지는 못했는데 갑자기 도쿄에서 시드니로 뛴 배경은 무엇일까. 읽고 보니 내 생각이 단편적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도쿄에서 시드니로 가는 설정은 다양하게 표현이 될 수 있는데 말이다.
개인적으로 한 명의 특별한 서사보다는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서사 전체가 마음에 들었다. 어린이집 교사, 누군가의 친구, 짝사랑하는 상대, 여행을 떠난 노부부, 일하는 엄마와 육아하는 아빠 등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사람들의 평범하고도 사소한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와닿았다.
일하면서 느꼈던 부조리함에 퇴사를 꿈꾼 적도, 크게 접점은 없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호감의 감정을 느꼈던 적도, 성향이 다른 친구가 크게 의지가 되었던 경험도 있었다. 또한,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부변의 일하는 엄마도, 자녀들의 이벤트로 해외여행을 떠난 부모님들도 쉽게 만났다. 그렇듯 인물들은 하나같이 가깝거나 먼 누군가의 도움으로 무언가를 깨닫고, 행복을 느낀다.
힘들고 지친 일상을 보내면서 영웅이나 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대리 만족을 느낄 때도 있지만 이렇게 펴놓은 것과 같은 작은 도움과 위로도 때로는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이 책으로 다시 경험하게 되었다. 표지에 적힌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구원한다'라는 글귀가 전적으로 공감이 되었던 이유를 열두 편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찾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