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식과 완전히 같은 뜻은 아니지만, 그와 관련 있는 특성으로 자기 초점적 주의 self-focused attention 도 있습니다. 말그대로 주의가 자기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자기 초점적 주의가 두드러지는 사람은 타인과 상호작용하는상황에서도 상호작용 그 자체에 몰입하지 못하고 그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만 신경 쓰게 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불안을 경험할 수밖에 없지요. 게다가 사람이 소화할 수 있는 주의와 생각의 양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과도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상대에게 온전히 주의를 쏟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사회적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온전한 관심을 보이며 친밀한 관계를 쌓기보다는,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떻게 보였는지, 그 상황에서 얼마나 잘하거나 잘못했지만 신경쓰며,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매 순간이 심판받는 순간인 양살아가게 되지요. 그러니 요조의 높은 자의식과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특성은 어찌 보면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겠으며, 부끄러움 많은 생애를 살아온 것과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역시 깊은 관련이 있다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 P36
사실 소속감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입니다. 기본적인 욕구라 함은, 마치 생리적 욕구처럼 적절히 충족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운 욕구라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소속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언급한 여러학자 중에서 대표적으로 사회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F. Baumeister, 1953~)와 마크 리어리(Mark R. Leary, 1954~)를 들 수 있겠는데요, 이들은 소속욕구need to belong란 "지속적, 긍정적이며 중요한 대인관계를 최소 수준 이상으로 형성, 유지하고 싶은 지속적인 욕망이라고 정의하였으며, 관계로부터 배제되는 것은 많은 심리적 고통을 초래한다는 것을 여러 실험과 연구를 통해 밝혀냈습니다. - P42
자살 소망을 이루는 또 다른 한 축인 ‘짐이 된다는 느낌‘은 문자 그대로 ‘내가 없는 게 더 낫겠다‘ ‘주변 사람들을 위해 내가 사라져줘야겠다‘는 느낌, 자신은 무능하고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말합니다. 그저 살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주변 사람에게 폐가 된다는 죄책감이 지속되어, 결국 자신이 사라져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요. - P44
시즈코와 헤어지던 날, 요조는 여느 때처럼 만취하여 겸연쩍은 마음으로 귀가하다가 시즈코와 시게코 모녀가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됩니다. (시게코는 시즈코가 이전 결혼에서 낳았던 딸입니다.)
"왜 술을 마시는 거야?" "아빠는 말이야, 술이 좋아서 마시는 게 아니에요. 너무 착한 사람이라, 그래서………"
그러면서 모녀는 그날 집에 데려온 토끼를 바라보며 즐거워합니다. 무척 평화롭고 행복한 모습이지요. 모녀의 대화를 들은 요조는 흐느끼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행복할 거야, 이 사람들은 나 같은 멍청이가 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면 이제 곧 두 사람을 망쳐놓을 거야." 요조는 그 길로 집을 나가 두 번 다시 모녀의 앞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자신이 없는편이 두 사람에게 훨씬 더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좌절된 소속감‘과 ‘짐이 된다는 느낌‘이 죽고자 하는 욕망을 구성하는 요인들이라면, 습득된 자살 실행 능력acquiredcapability for suicide‘은 이를 실현하는 요인입니다. - P45
여기서 자살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인생을 살면서 ‘습득되는 것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는 즉, 사람이 여러 가지 이유로 신체적인 고통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거기 익숙해질 경우 참아낼 수 있는 상해나 부상의 수준이 높아지게 되며, 결국 의학적으로 치명적인 수준의 고통에도 무뎌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 P46
고통에 내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자살 실행 능력을 습득하게 되는 경로로는 반복적인 자해나 자살 시도, 어린 시절 경험한 학대, 자신이나 타인의 부상에 거듭해서 노출되는 일(외과 의사, 운동선수등이 이에 해당하겠습니다) 등이 있습니다. - P47
친밀하게 지내던 사람의 자살을 겪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본다면, 이 ‘치유‘라는 단어가의미하는 바를 좀 더 잘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살은 다른 종류의 죽음과는 달리 사망자가 그 죽음을 의도한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했을 경우 그 주변인들은 망자가 도대체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혹시 자신이 그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닌지, 그 죽음을 미연에 방지할수는 없었을지 고민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고민에 시달리던 사람이 자살을 이해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을가지게 된다는 것은 고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하나의 방법을얻는 일이 될 것입니다. 또한, 조이너 그 자신이 말했듯 한편으로는 "(자살이)유가족의 탓이 아니라 자살자가 지녔던 느낌‘ 때문이었음을알게 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요. 이는 자살자의 유가족에게 위안을 줄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 혹은 지금 소중한 사람이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 P51
베르테르 효과가 발생하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어, 어떤 한 가지 이론이 모든 현상을 설명해주지는 못합니다. 다만 많은 임상가들은 기존에 자살에 취약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미디어에서 유명인의 자살을 접함으로써 자살에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그 사람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고 공감하면서(예를 들면 "오죽하면 자살을 했을까"와 같은 생각) 자살에 대한 욕구를 키워가게 되는 것이리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디어에 구체적인 자살 방법이 보도된 경우, 이들에게 자살 방법에 대한 정보를 주는 셈이 되어 자살에이를 가능성이 더 높아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 P57
두 번째 단계인 동기 단계는 동기-결단 모형의 중심이되는 부분으로, 여기서 자살 사고suicidal ideation와 자살 의도suicidal intent 가 형성되는 과정이 설명됩니다. 오코너와 동료들은 자살하겠다는 생각과 의도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는핵심적인 심리 요인이 패배감defeat 과 굴욕감humiliation이라고설명합니다. 패배감과 굴욕감은 개인에게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상실했거나 그것을 얻는 데 실패했을 때, 혹은 사회적으로 거절당하거나, 공격을 받을 때 경험하게 되는 감정들입니다. 그리고 이 고통스러운 감정들이 제대로 해소되거나 다루어지지 않으면, 이것들은 덫에 걸린 느낌feelings of entrapment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덫에 걸린 느낌은 말 그대로 함정에빠진 듯한 느낌, 도무지 자신에게 패배감과 굴욕감을 겪게 한 상황에서 빠져 나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박한 느낌이지요. 결국 덫에 걸린 느낌은 자살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 P65
덫에 걸린 느낌은 자살 시도 가능성을 비교적 잘 예측한다고 알려져 있던 기존 지표인 무망감hopelessness, 우울, 과거의 자살 시도 경력과 자살 사고 등의 요인과 비교했을 때, 반복적인 자살 관련 행동을 더 잘 예측해주는 요인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 P67
2011년 자살에 대한 동기-결단 모형을 처음 발표한 오코너는 2018년에 이 모형에 대한 수정·보완안을 발표하였는데요. 가장 주요한 추가 사항 중 하나는 자살 행동 자체가 자살 사고를 강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즉, 자살 사고가 자살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역도 성립한다는 내용입니다. 즉 일종의 악순환이 일어난다는것인데, 이런 순환 모형을 보고 있자면 연구자이자 치료자인저는 어느 순간 무력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증상이 증상을 악화시킨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개입해야 하나 싶어 막막해지니까요. - P93
말년의 괴테가 자신의 작품을 두고 한 말도 재미있는데요. 동료 작가 요한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된 뒤 그 소설을 거의 읽어보지 않았다고 고백하면서 "나는 그것을 보기만 해도 무서워져 그것을 낳게 한 병적인 상태를 다시 느끼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거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는 마치 괴테가 자신의 책에 마음의 격랑을 일으키는 괴물을 가둬두워서 책을 열면 다시 그 괴물이 뛰쳐 나올까봐 두려워 하기라도 했던 것 같다는 인상을 줍니다. - P75
오스트리아의 작가 에리히 프리트가 말했듯 많은 경우 문학은 "삶을 혐오하여 쓴 것도 사실은 삶을 위해 쓴 것"이며, "죽음을 찬양하여 쓴 것도 사실은죽음을 이기기 위하여 쓴 것 같습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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