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면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라는 원칙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알고 있지만 말고 실천하라. - P200

주인공은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다가 어느 순간 행동의 필요성을 받아들이고 움직인다. 하지만 주인공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전에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주인공이어야 한다. 만약 그가 행동에 나서길 외면한다면 멘토나 협력자가 끼어들어 격려해야 한다.
주인공은 이야기의 초반에는 소극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클라이맥스와 결말에 이르는 전체를 두고 보면 가장 많이 선택하고 행동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캐릭터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인공이 아니다. - P202

캐릭터를 특별하게 하는 건 그가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캐릭터는 특성에 따라 세상을 경험한다. - P211

생각해보자. 우리는 어떤 상대에게 유대감이나 호감을 느낄까?
그와 내가 서로 비슷한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낄 때,
혹은 세상을 보는 렌즈는 다르지만, 상대방의 관점을 통해 내가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게 될 때, 그리고 그가 자신을 진정으로 솔직하게 드러낼 때다. - P213

감정 묘사는 정말 중요하다. 인간은 종종 강력하거나 모순되는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끼지만, 그것을 공공연하게 표현하지는 않는다. 보통은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감정을명백하게 드러내고, 모순적인 감정은 억누르거나 자신만 알도록 숨긴다. 그러나 아무리 숨겨도 몸짓이나 표정, 말(실수)에서드러나게 된다. 작가도 이러한 단서를 제공해야 한다. 캐릭터가모순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걸 공공연하게 밝히기보다는 미묘한 암시로 ‘뉘앙스‘를 만들어야 한다. - P221

‘말하지 않고‘ 한 장면에서 두 가지 감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려면 감정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 더 폭발적이고 압도적인 감정은 행동과 대화를 통해 표현되며, 내적인 감정은 생각과 보디랭귀지를 통해 드러나야 한다. - P222

먼저 좋아하는 책이나 유독 캐릭터 묘사가 좋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책들을 골라 책상 위에 두고, 포스트잇과 연필을 준비하자. 그다음 책을 한 권씩 읽으며 눈에 띄는 표현과 문장, 묘사를 표시한다. 관심을 끄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표시한 문장들을 쭉 살펴보면서 패턴을 찾아보자.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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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자주 하던 밤샘 작업을 이제는 더이상 하지 않는다. 일탈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할 때는 철저하게 생활을 지켜요. 만약 아파서 글을 못 쓰면 나 때문에 여러 사람 고생하니까. 일하면서 아프다, 힘들다 얘기하는 게 싫어요. 그런 말을 안 할 수 있는 건 이 루틴을 지키기 때문이에요. 좋은 루틴이 가져다주는 효과가 커요. 현재에 집중하면 무의식이 일을 합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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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웬." 제러미는 조용히 나를 부르더니, 문틀에 이마를 기대고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소."
나는 애써 심각한 표정을 짓지 않으려고 했지만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그의 말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우리가 오늘 밤 나눴던 대화를 떠올려보았다. 그전에 나눴던 대화들도. "무슨 거짓말을 했는데요?"
"베러티는 당신 책을 읽지 않았소."
나는 뒤로 물러서고 싶었다. 실망하는 표정을 그가 보지 않도록 어둠에 숨고 싶었다. 그런데도 방문의 손잡이를 잡은 채 그에게 물었다.
"사실이 아닌데 왜 그렇게 말한 거죠?"
제러미는 잠시 눈을 감고 짧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더니 천천히 내쉬며 눈을 뜨고 팔을 들어 문틀의 윗부분을 잡았다. "당신 책을 읽은 사람은 바로 나요. 좋은 작품이었소. 글솜씨가 매우 뛰어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편집자에게 당신을 추천했던 거요." 제러미는 고개를 약간 숙여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말했다. "당신의 글은 나에게 큰 의미를 주었어, 로웬." - P229

제러미는 베러티가 그런 일을 꾸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장담할 만큼 자기가 그녀를 잘 안다고 믿고 있다. 그렇지만 나만 알고 제러미는 모르는 단 하나의 사실이 있다면………… 그건, 그가 베러티라는 사람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 P254

나는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미소를 지었다. "셔츠에서 당신 냄새가 나서 좋아요."
제러미가 웃었다. "어떤 냄새가 나는데?"
"페트리코어."
"그게 어떤 냄새인지 모르는데." 제러미는 입술로 내 배를 훑으며 웅얼거리듯 말했다.
"따뜻한 날, 비가 내린 후에 땅에서 풍겨오는 냄새 말이에요. 비 냄새라고도 하죠."
"그런 냄새를 지칭하는 단어가 있는 줄은 몰랐네." 제러미가 내 얼굴을 향해 다가와 입술을 포개며 말했다.
"모든 것에는 그것을 가리키는 단어가 있어요." - P299

나는 잠을 잘 수 없었어. 그래서 서재로 가서 여섯 달 만에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기 시작했던 거야.
상상해 봐. 딸 둘을 모두 잃고 슬픔에 빠져 있는 엄마가 두 딸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살해하는 이야기를 지어내서 쓰고 있는 걸 말이야.
그건 정말 끔찍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일이지. 나도 그래서 타이핑을 하면서 계속 울었어. 그렇지만 이런 생각이 들기는 했어. 나의 죄책감과 슬픔을 내가 만들어낸 악인에게 모두 전가할 수 있다면, 좀 왜곡된 방법이기는 하지만 내가 그 상황을 버텨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채스틴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하퍼의 죽음에 대해 쓰기 시작했던 거야. 그리고 시작 부분에도 복선 같은 것을 넣어서 우리가 맞이하게 된 비통하고 어두운 현실에 들어맞게 손을 보았어. - P344

그러한 작업들이 나의 죄책감과 고통을 덜어내는 데 도움이 되었어. 현실 속에서 나를 향해 날아드는 비난이나 자책을 작품 속의 또 다른 나에게 전가할 수 있었으니까.
작가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당신에게 설명할 수는 없어, 제러미. 더구나 대부분의 작가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절망적인 상황을 겪은 나의 심정을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겠지. 작가는 현실과 작품 속의 세계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어떤 면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두 개의 세계에 산다고 할 수도 있을거야. 나의 현실 세계가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나는 그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그래서 밤새도록 글을 쓰면서 현실보다 더 어두운 소설 속의 세계로 도피했던 거지. 그렇게 글을 쓰고 노트북을 닫을 때는 어느 정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 내가 만들어낸 악인을 그 안에 남겨 두고, 나는 조금은 덜 자책하는 마음으로 서재 문을 나섰던 거지.
그런 것뿐이었어. 상상으로 만들어낸 세계는 내가 실제로 사는 세계보다 더 어두워야 했어. 그렇지 않으면 두 세계 모두를 떠나버리고 말 것 같았거든. - P345

어떻게 생각해 보아도 분명한 것은 베러티가 진실을 조작하는데. 능숙했다는 것이다. 다만 그녀가 조작한 진실이 어느 쪽이었는가가 의문으로 남아 있을 뿐.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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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레즈의 눈에 실비아 플래스의 자살 시도는 진정 죽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기보다는 ‘치명적으로 불발된 구조 요청 신호‘에 가까운 것으로 비쳤던 것 같습니다. 잘 알려져있듯 실비아 플래스는 거의 강박적이라 할 만큼 죽음에 대한 글을 많이 썼던 시인인데요. 알바레즈는 실비아 플래스가 여러 가지 보호 장치를 마련해놓을 정도로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음에도 자살을 시도하는 모순적인 행동을 보인 이유는 첫째로 그녀가 자신의 시들 속에 스스로 불러 모았던 죽음을 추방하고 싶었기 때문이며, 또한 이전의 자살 시도(과거 그녀는 일부러 자동차 핸들을 도로 밖으로 꺾음으로써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습니다)로부터 어느 정도의 ‘해방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했습니다. 즉 역설적인 일이지만 다시 한 번 자살을 시도함으로써, 그리고 다시 한 번 살아남으로써 자꾸만 자신을 붙잡는 죽음에서 해방되고자 했다는 것이지요. - P83

실비아 플래스가 사망한 후로 오십 년 이상 지난 시점을 살고 있는 우리는, 그녀가 첫 번째 자살 시도 이후 어느 정도는 증상이 회복되었던 바 있으며,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뛰어난 시와 <벨 자>가 세상에 나왔지요. 그녀는 스스로에게 십여 년이라는 시간을 벌어주었고,
그 시간 동안 분명히 의미 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이 어떻게 끝나든 간에 그전에 되도록 의미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것이 ‘치료‘의 가장 큰 의미이자 역할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P95

앞서 인지행동치료의 기본 가정이 인지 매개 가설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는 쉽게 말해 인지행동치료가 ‘우리의반응은 어떤 외적인 사건 자체보다는 우리가 사건을 어떻게 지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가정하에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 P102

부정적 인지는 대부분의 경우 본인에게조차 잘 인식되지 않다가 어떤 사건이 생기면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지행동치료자들은 이것을 ‘자동적 사고‘라고 부릅니다. 다만 꾸준히 연습하면 부정적 사고의 ‘패턴‘을 감지할 수 있고, 그것을 다른 대안적인 생각으로 바꾸어가면서 기분과 행동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 P103

절망은 자살의 매우 강력한 위험 요인이라 볼 수 있겠지요. 『벨자』의 에스터의 경우에도 예외는아니어서, 우울증 증상이 심해질수록 무망감을 더욱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경우에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였다. (…) 책에 나온 내용과 내 증상을 비교해보니, 나는 가장 가망 없는 경우와 맞아떨어졌다. (・・・) 매일 엄마와 남동생, 친구들이 내 회복을 기원하며 문병을 오겠지. 그러다가 오는 횟수가 뜸해질 테고, 다들 희망을 접을 거야."
자신의 병증은 치료가 불가능하며, 친구들과 가족들이 틀림없이 자신을 버릴 것이라는 전망은 미래에 대한 절망과 무망감으로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역설적인 말입니다만 우울증이 절대 낫지 않으리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우울증에서 매우 흔하게 관찰되는 증상 중 하나입니다. - P104

뛰어난 작가이자 심리학자이며 우울증 환자인 앤드류 솔로몬은 저서인 『한낮의 우울』을 이런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우울은 사랑이 지닌 결함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잃은 것에 대해 절망할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우울은 그 절망의 심리기제이다." 그리고 이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이따금 우리를 저버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고요.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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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식과 완전히 같은 뜻은 아니지만, 그와 관련 있는 특성으로 자기 초점적 주의 self-focused attention 도 있습니다. 말그대로 주의가 자기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자기 초점적 주의가 두드러지는 사람은 타인과 상호작용하는상황에서도 상호작용 그 자체에 몰입하지 못하고 그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만 신경 쓰게 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불안을 경험할 수밖에 없지요. 게다가 사람이 소화할 수 있는 주의와 생각의 양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과도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상대에게 온전히 주의를 쏟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사회적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온전한 관심을 보이며 친밀한 관계를 쌓기보다는,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떻게 보였는지, 그 상황에서 얼마나 잘하거나 잘못했지만 신경쓰며,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매 순간이 심판받는 순간인 양살아가게 되지요. 그러니 요조의 높은 자의식과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특성은 어찌 보면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겠으며, 부끄러움 많은 생애를 살아온 것과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역시 깊은 관련이 있다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 P36

사실 소속감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입니다. 기본적인 욕구라 함은, 마치 생리적 욕구처럼 적절히 충족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운 욕구라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소속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언급한 여러학자 중에서 대표적으로 사회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F. Baumeister, 1953~)와 마크 리어리(Mark R. Leary, 1954~)를 들 수 있겠는데요, 이들은 소속욕구need to belong란 "지속적, 긍정적이며 중요한 대인관계를 최소 수준 이상으로 형성, 유지하고 싶은 지속적인 욕망이라고 정의하였으며, 관계로부터 배제되는 것은 많은 심리적 고통을 초래한다는 것을 여러 실험과 연구를 통해 밝혀냈습니다. - P42

자살 소망을 이루는 또 다른 한 축인 ‘짐이 된다는 느낌‘은 문자 그대로 ‘내가 없는 게 더 낫겠다‘ ‘주변 사람들을 위해 내가 사라져줘야겠다‘는 느낌, 자신은 무능하고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말합니다. 그저 살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주변 사람에게 폐가 된다는 죄책감이 지속되어, 결국 자신이 사라져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요. - P44

시즈코와 헤어지던 날, 요조는 여느 때처럼 만취하여 겸연쩍은 마음으로 귀가하다가 시즈코와 시게코 모녀가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됩니다. (시게코는 시즈코가 이전 결혼에서 낳았던 딸입니다.)

"왜 술을 마시는 거야?"
"아빠는 말이야, 술이 좋아서 마시는 게 아니에요.
너무 착한 사람이라, 그래서………"

그러면서 모녀는 그날 집에 데려온 토끼를 바라보며 즐거워합니다. 무척 평화롭고 행복한 모습이지요. 모녀의 대화를 들은 요조는 흐느끼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행복할 거야, 이 사람들은 나 같은 멍청이가 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면 이제 곧 두 사람을 망쳐놓을 거야." 요조는 그 길로 집을 나가 두 번 다시 모녀의 앞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자신이 없는편이 두 사람에게 훨씬 더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좌절된 소속감‘과 ‘짐이 된다는 느낌‘이 죽고자 하는 욕망을 구성하는 요인들이라면, 습득된 자살 실행 능력acquiredcapability for suicide‘은 이를 실현하는 요인입니다. - P45

여기서 자살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인생을 살면서
‘습득되는 것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는 즉,
사람이 여러 가지 이유로 신체적인 고통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거기 익숙해질 경우 참아낼 수 있는 상해나 부상의 수준이 높아지게 되며, 결국 의학적으로 치명적인 수준의 고통에도 무뎌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 P46

고통에 내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자살 실행 능력을 습득하게 되는 경로로는 반복적인 자해나 자살 시도, 어린 시절 경험한 학대, 자신이나 타인의 부상에 거듭해서 노출되는 일(외과 의사, 운동선수등이 이에 해당하겠습니다) 등이 있습니다. - P47

친밀하게 지내던 사람의 자살을 겪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본다면, 이 ‘치유‘라는 단어가의미하는 바를 좀 더 잘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살은 다른 종류의 죽음과는 달리 사망자가 그 죽음을 의도한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했을 경우 그 주변인들은 망자가 도대체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혹시 자신이 그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닌지, 그 죽음을 미연에 방지할수는 없었을지 고민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고민에 시달리던 사람이 자살을 이해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을가지게 된다는 것은 고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하나의 방법을얻는 일이 될 것입니다.
또한, 조이너 그 자신이 말했듯 한편으로는 "(자살이)유가족의 탓이 아니라 자살자가 지녔던 느낌‘ 때문이었음을알게 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요. 이는 자살자의 유가족에게 위안을 줄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 혹은 지금 소중한 사람이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 P51

베르테르 효과가 발생하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어,
어떤 한 가지 이론이 모든 현상을 설명해주지는 못합니다.
다만 많은 임상가들은 기존에 자살에 취약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미디어에서 유명인의 자살을 접함으로써 자살에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그 사람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고 공감하면서(예를 들면 "오죽하면 자살을 했을까"와 같은 생각) 자살에 대한 욕구를 키워가게 되는 것이리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디어에 구체적인 자살 방법이 보도된 경우, 이들에게 자살 방법에 대한 정보를 주는 셈이 되어 자살에이를 가능성이 더 높아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 P57

두 번째 단계인 동기 단계는 동기-결단 모형의 중심이되는 부분으로, 여기서 자살 사고suicidal ideation와 자살 의도suicidal intent 가 형성되는 과정이 설명됩니다. 오코너와 동료들은 자살하겠다는 생각과 의도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는핵심적인 심리 요인이 패배감defeat 과 굴욕감humiliation이라고설명합니다. 패배감과 굴욕감은 개인에게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상실했거나 그것을 얻는 데 실패했을 때, 혹은 사회적으로 거절당하거나, 공격을 받을 때 경험하게 되는 감정들입니다. 그리고 이 고통스러운 감정들이 제대로 해소되거나 다루어지지 않으면, 이것들은 덫에 걸린 느낌feelings of entrapment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덫에 걸린 느낌은 말 그대로 함정에빠진 듯한 느낌, 도무지 자신에게 패배감과 굴욕감을 겪게 한 상황에서 빠져 나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박한 느낌이지요. 결국 덫에 걸린 느낌은 자살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 P65

덫에 걸린 느낌은 자살 시도 가능성을 비교적 잘 예측한다고 알려져 있던 기존 지표인 무망감hopelessness, 우울, 과거의 자살 시도 경력과 자살 사고 등의 요인과 비교했을 때, 반복적인 자살 관련 행동을 더 잘 예측해주는 요인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 P67

2011년 자살에 대한 동기-결단 모형을 처음 발표한 오코너는 2018년에 이 모형에 대한 수정·보완안을 발표하였는데요. 가장 주요한 추가 사항 중 하나는 자살 행동 자체가 자살 사고를 강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즉, 자살 사고가 자살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역도 성립한다는 내용입니다. 즉 일종의 악순환이 일어난다는것인데, 이런 순환 모형을 보고 있자면 연구자이자 치료자인저는 어느 순간 무력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증상이 증상을 악화시킨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개입해야 하나 싶어 막막해지니까요. - P93

말년의 괴테가 자신의 작품을 두고 한 말도 재미있는데요. 동료 작가 요한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된 뒤 그 소설을 거의 읽어보지 않았다고 고백하면서 "나는 그것을 보기만 해도 무서워져 그것을 낳게 한 병적인 상태를 다시 느끼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거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는 마치 괴테가 자신의 책에 마음의 격랑을 일으키는 괴물을 가둬두워서 책을 열면 다시 그 괴물이 뛰쳐 나올까봐 두려워 하기라도 했던 것 같다는 인상을 줍니다. - P75

오스트리아의 작가 에리히 프리트가 말했듯 많은 경우 문학은 "삶을 혐오하여 쓴 것도 사실은 삶을 위해 쓴 것"이며, "죽음을 찬양하여 쓴 것도 사실은죽음을 이기기 위하여 쓴 것 같습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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