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레즈의 눈에 실비아 플래스의 자살 시도는 진정 죽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기보다는 ‘치명적으로 불발된 구조 요청 신호‘에 가까운 것으로 비쳤던 것 같습니다. 잘 알려져있듯 실비아 플래스는 거의 강박적이라 할 만큼 죽음에 대한 글을 많이 썼던 시인인데요. 알바레즈는 실비아 플래스가 여러 가지 보호 장치를 마련해놓을 정도로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음에도 자살을 시도하는 모순적인 행동을 보인 이유는 첫째로 그녀가 자신의 시들 속에 스스로 불러 모았던 죽음을 추방하고 싶었기 때문이며, 또한 이전의 자살 시도(과거 그녀는 일부러 자동차 핸들을 도로 밖으로 꺾음으로써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습니다)로부터 어느 정도의 ‘해방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했습니다. 즉 역설적인 일이지만 다시 한 번 자살을 시도함으로써, 그리고 다시 한 번 살아남으로써 자꾸만 자신을 붙잡는 죽음에서 해방되고자 했다는 것이지요. - P83
실비아 플래스가 사망한 후로 오십 년 이상 지난 시점을 살고 있는 우리는, 그녀가 첫 번째 자살 시도 이후 어느 정도는 증상이 회복되었던 바 있으며,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뛰어난 시와 <벨 자>가 세상에 나왔지요. 그녀는 스스로에게 십여 년이라는 시간을 벌어주었고, 그 시간 동안 분명히 의미 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이 어떻게 끝나든 간에 그전에 되도록 의미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것이 ‘치료‘의 가장 큰 의미이자 역할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P95
앞서 인지행동치료의 기본 가정이 인지 매개 가설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는 쉽게 말해 인지행동치료가 ‘우리의반응은 어떤 외적인 사건 자체보다는 우리가 사건을 어떻게 지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가정하에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 P102
부정적 인지는 대부분의 경우 본인에게조차 잘 인식되지 않다가 어떤 사건이 생기면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지행동치료자들은 이것을 ‘자동적 사고‘라고 부릅니다. 다만 꾸준히 연습하면 부정적 사고의 ‘패턴‘을 감지할 수 있고, 그것을 다른 대안적인 생각으로 바꾸어가면서 기분과 행동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 P103
절망은 자살의 매우 강력한 위험 요인이라 볼 수 있겠지요. 『벨자』의 에스터의 경우에도 예외는아니어서, 우울증 증상이 심해질수록 무망감을 더욱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경우에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였다. (…) 책에 나온 내용과 내 증상을 비교해보니, 나는 가장 가망 없는 경우와 맞아떨어졌다. (・・・) 매일 엄마와 남동생, 친구들이 내 회복을 기원하며 문병을 오겠지. 그러다가 오는 횟수가 뜸해질 테고, 다들 희망을 접을 거야." 자신의 병증은 치료가 불가능하며, 친구들과 가족들이 틀림없이 자신을 버릴 것이라는 전망은 미래에 대한 절망과 무망감으로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역설적인 말입니다만 우울증이 절대 낫지 않으리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우울증에서 매우 흔하게 관찰되는 증상 중 하나입니다. - P104
뛰어난 작가이자 심리학자이며 우울증 환자인 앤드류 솔로몬은 저서인 『한낮의 우울』을 이런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우울은 사랑이 지닌 결함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잃은 것에 대해 절망할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우울은 그 절망의 심리기제이다." 그리고 이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이따금 우리를 저버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고요.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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