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웬." 제러미는 조용히 나를 부르더니, 문틀에 이마를 기대고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소."
나는 애써 심각한 표정을 짓지 않으려고 했지만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그의 말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우리가 오늘 밤 나눴던 대화를 떠올려보았다. 그전에 나눴던 대화들도. "무슨 거짓말을 했는데요?"
"베러티는 당신 책을 읽지 않았소."
나는 뒤로 물러서고 싶었다. 실망하는 표정을 그가 보지 않도록 어둠에 숨고 싶었다. 그런데도 방문의 손잡이를 잡은 채 그에게 물었다.
"사실이 아닌데 왜 그렇게 말한 거죠?"
제러미는 잠시 눈을 감고 짧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더니 천천히 내쉬며 눈을 뜨고 팔을 들어 문틀의 윗부분을 잡았다. "당신 책을 읽은 사람은 바로 나요. 좋은 작품이었소. 글솜씨가 매우 뛰어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편집자에게 당신을 추천했던 거요." 제러미는 고개를 약간 숙여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말했다. "당신의 글은 나에게 큰 의미를 주었어, 로웬." - P229

제러미는 베러티가 그런 일을 꾸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장담할 만큼 자기가 그녀를 잘 안다고 믿고 있다. 그렇지만 나만 알고 제러미는 모르는 단 하나의 사실이 있다면………… 그건, 그가 베러티라는 사람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 P254

나는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미소를 지었다. "셔츠에서 당신 냄새가 나서 좋아요."
제러미가 웃었다. "어떤 냄새가 나는데?"
"페트리코어."
"그게 어떤 냄새인지 모르는데." 제러미는 입술로 내 배를 훑으며 웅얼거리듯 말했다.
"따뜻한 날, 비가 내린 후에 땅에서 풍겨오는 냄새 말이에요. 비 냄새라고도 하죠."
"그런 냄새를 지칭하는 단어가 있는 줄은 몰랐네." 제러미가 내 얼굴을 향해 다가와 입술을 포개며 말했다.
"모든 것에는 그것을 가리키는 단어가 있어요." - P299

나는 잠을 잘 수 없었어. 그래서 서재로 가서 여섯 달 만에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기 시작했던 거야.
상상해 봐. 딸 둘을 모두 잃고 슬픔에 빠져 있는 엄마가 두 딸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살해하는 이야기를 지어내서 쓰고 있는 걸 말이야.
그건 정말 끔찍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일이지. 나도 그래서 타이핑을 하면서 계속 울었어. 그렇지만 이런 생각이 들기는 했어. 나의 죄책감과 슬픔을 내가 만들어낸 악인에게 모두 전가할 수 있다면, 좀 왜곡된 방법이기는 하지만 내가 그 상황을 버텨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채스틴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하퍼의 죽음에 대해 쓰기 시작했던 거야. 그리고 시작 부분에도 복선 같은 것을 넣어서 우리가 맞이하게 된 비통하고 어두운 현실에 들어맞게 손을 보았어. - P344

그러한 작업들이 나의 죄책감과 고통을 덜어내는 데 도움이 되었어. 현실 속에서 나를 향해 날아드는 비난이나 자책을 작품 속의 또 다른 나에게 전가할 수 있었으니까.
작가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당신에게 설명할 수는 없어, 제러미. 더구나 대부분의 작가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절망적인 상황을 겪은 나의 심정을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겠지. 작가는 현실과 작품 속의 세계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어떤 면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두 개의 세계에 산다고 할 수도 있을거야. 나의 현실 세계가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나는 그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그래서 밤새도록 글을 쓰면서 현실보다 더 어두운 소설 속의 세계로 도피했던 거지. 그렇게 글을 쓰고 노트북을 닫을 때는 어느 정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 내가 만들어낸 악인을 그 안에 남겨 두고, 나는 조금은 덜 자책하는 마음으로 서재 문을 나섰던 거지.
그런 것뿐이었어. 상상으로 만들어낸 세계는 내가 실제로 사는 세계보다 더 어두워야 했어. 그렇지 않으면 두 세계 모두를 떠나버리고 말 것 같았거든. - P345

어떻게 생각해 보아도 분명한 것은 베러티가 진실을 조작하는데. 능숙했다는 것이다. 다만 그녀가 조작한 진실이 어느 쪽이었는가가 의문으로 남아 있을 뿐.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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