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를 거쳐간 이들이 마음에서 지운 얼룩은 햇빛에 바싹 말리면 꽃잎이 된다. 해가 낙하하는 시간, 가장 빠알갛게 타오를 때 꽃잎을 보내 흔적 없이 태워버린다. 해에게 보내도 타지 못한 꽃잎들은 지은의 곁에서 살게 한다. 지은이 마법을 부릴 때마다 나오는 꽃잎은 백만 년의 세월 동안 해에게 가닿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이고, 상처고, 얼룩이다. - P132

마음의 겨울을 지날 때 우리가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이 계절이 지나갈 거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희망, 그것은 사람을 살게도 하고 죽게도 한다. 마음에 봄이 오고 때론 여름으로 불타고 그 뒤엔 서늘한 가을도 올 것이라는 희망이 사람을 살게 한다. 희망마저 없다면 우리는 이 삶을 어떻게 견뎌낼까. - P157

참 사는 거 이상하죠. 그때는 아파 죽을 거 같아서 제발 그만하게해달라고 하늘한테 애원했는데, 돌아보니 그 상처들도 다 내 삶이었어요. 상처 없으면 나도 없더라고요. - P172

오늘은 순한 밤이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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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얼룩도 그래. 자기 얼룩을 인정한 순간, 더 이상 얼룩이 얼룩이 아니라 마음의 나이테가 되듯이 말이야.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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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영이 미소 짓자 송미영도 따라 웃었다. 둘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이 닮았다는 걸 선미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오래도록 서로를 거울처럼 바라보며 웃었을 두 사람이 상대의 방식으로 웃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그렇게 누가 누구의 웃음을 따라 하는지도 모르게, 스며들어 섞여 버렸으리라. - P166

그 사람들과 선미는 무엇을 주고받았다.
처음엔 이해일 것이라 생각했다. 같은 경험을 공유했거나 예정한 사람들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이해. 그리고 그 이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주고받았다. 알려주고 알게 되었다. 그러자 세상이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어떤 억울함, 어떤 상실감, 어떤 분노와 고민, 선택과 모험이 나 혼자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니 세상이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때로는 나와 닮고 때로는 너무도 다른, 분명한 타인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같은 결론을 내렸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서로를 통해 스스로를 응원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선미는 정말 그들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가 아닐 것도 없었다. 그들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행복을 빌었으니까. - P187

"얼마나요?"
"축의금은 100만 원, 휴가는 근로일 기준 일주일이에요."
"아뇨, 혼인신고 말이에요."
"네?"
"얼마나 늦게 해도 되는 거냐고요."
"글쎄요, 그거까지 지정되어 있진 않아서요."
"한 50년………… 아니다, 30년? 25년? 그 정도 늦어도 되나요?"
그 말에 곽세라는 자신의 건너편에 앉은 사람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 깨달았다. 이유리는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서류의 다음 항목을 읽고 있었다.
"15년이면 괜찮지 않을까요?"
이유리가 고개를 들어 곽세라와 눈을 맞췄다. 그때 두 사람은 그날로부터 몇 달 뒤에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될 줄, 또 15년이 아닌 몇 년 뒤에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까지 하게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창립 이래 첫 사내 결혼이었고, 회사 이름으로 각자에게 100만 원의 축의금이 들어왔다.
...... - P192

"아뇨, 아니에요. 돈이라뇨. 그리고 동성결혼은 불법이 아니라 법제화가 안 된거잖아요. 공문서 위조도 아니에요. 시스템에 멀쩡하게 입력하고 발급된 거였어요." - P205

"아무 대가 없이 한 일입니다. 팀장님, 공무원 한 사람 한사람은 자신이 담당하는 행정 업무에 관계된 법령을 해석하고 그에 맞게 시행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해석하고 판단한 대로 행동했고, 전산 시스템도 오류라고 인식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책임져야 한다면 책임지겠습니다." - P205

바로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에는 혼인신고를 마치고 혼인관계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101쌍의 레즈비언 부부가 있다. 그리고 세상은 망하지 않았다. 해가 서쪽에서 뜨거나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거나 분노한 신이 천둥과 벼락을 지상에 내리꽂는 일은 없었다. 바닷물이 마르고 바위가 녹아내리는 일도, 사막의 모래 폭풍이 온 세상을 뒤덮고 식물들이 모조리 말라 죽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어떤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해졌을 뿐이다. - P207

"불문경고로 처리할 거야."
불문에 부치며 다만 경고한다.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파고들지 않고,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만 인지시킨다. 공무원법상 정식 징계는 아니지만 인사기록카드에 적혀 승진이나 포상에서는 불이익을 받게 되는 조치. 한마디로 딱지 붙은 사람이 되는 거다. - P209

공무원의 경조사 휴가는 결혼, 출산, 입양, 사망과 관련해 주어진다. 사망의 경우 망자가 배우자 혹은 본인 및 배우자의부모일 때는 5일, 본인 및 배우자의 조부모와 외조부모는 3일, 자녀와 그 자녀의 배우자도 3일, 본인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는 1일로 휴가 일수가 정해져있다. - P215

사망신고는 무연고자가 아니라면 친족이 해야 한다. 사망신고서에는 신고자의 자격과 관계를 적는 칸이 있다. 친족의 범위는 배우자,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이다. 이가경은 하주시청 가족관계팀에 일하며 사망신고 수백 건을 접수했다. 규정과 절차에 대해서라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순영도, 송미영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 혼인관계증명서가 필요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왈칵 눈물이 솟았다. 병원에서마지막으로 보았던 송미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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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과 어울려 그들 속에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삶‘을 흉내내려고 애쓰던 선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선미가 왜 떠났는지, 그 이유를 그 누구도 모른다는 사실. 그 사실에 선미는 안도했다. 분명 그랬다.
하주에 와서도 다르지 않았다. 사생활을 거리낌 없이 나누고 서로에게 간섭하는 것을 애정으로 포장하는 조직 문화가 항상 부담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경사에 함께 웃고, 조사에 눈물을 아끼지 않는 모습은 부러웠다. 하지만 동료로 만나 친구가 된 이들이나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기까지 하는 이들을 볼 때면 더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 애썼다. 차가운 사람, 정이 없는 사람, 곁을 내주지 않는 사람, 가식적인 사람이라는말을 들으면서 안심했다. 그들과 자신이 다른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 P118

"그거면 돼요."
정말요?
정말 그거면 될까요. 보고나면 더 욕심나지 않을까요. 다시 빼앗기기 싫고 억울하지 않을까요. 선미는 손에 들린 포크를, 그 끝에 꽂혀 있는 사과를 보았다. 고작 사과 한 조각도 제 손에 들리면 제 것이라 생각하게 되는 게 사람인데, 손에서 놓쳐 바닥에 떨어진다면 왜 더 세게 쥐고 있지 않았을까 후회가 될텐데. - P127

"일선에서 가족관계등록사무를 처리하며 노고가 많으신 지방행정 공무원 여러분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잘 아시다시피 가족관계등록 사무는 대법원이 관장하되 각 시, 구, 읍, 면의장에게 위임하여 신고나 신청 등 등록 신고를 수리하고 등록부에 기록하는 사무와 증명서를 발급하는 사무, 장부 정리와 감독법원의 송부 사무를 처리하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감독법원인 우리 법원에 신고 장부와 신고서를 송부하고 시정사항 및 개정된 법규를 교육받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모이셨습니다. 신고서는 다들 제출하셨지요? 그럼 지금부터 이달의 교육 내용을 소개드리겠습니다."
대형 스크린에 ‘1. 시정조치 사례‘라는 글자가 떴다. 첫 번째로 A시 G구에서 신고서를 접수받는 공무원이 사망신고서의 내용을 잘못 확인하여 사망자인 어머니와 신고자인 딸의 정보를 반대로 전산에 입력한 사례가 소개되었다. 다행히 내부 결재 과정에서 발견되어 해프닝으로 끝났다고 했다.
"해당 공무원은 사망자와 신고자가 한 가구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혼동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이 점을 주의하시고 각별히 챙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P147

해당 외국인은 서류상 미혼으로 기재된 나라에서 국내 혼인신고에 필요한 서류들을 발급받았기에 아무런 문제 없이 국내에서 혼인신고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가 이중 국적자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배우자가 개인적으로 알아보던- 타국에서 기혼 상태인 것을 발견하여 혼인 무효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방송이나 기사를 통해 보신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이 외국인이 의도적으로 사기 결혼을 하려 한 것이 드러나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 사례를 통해 혼인신고 접수시에 이중국적자 및 복수국적자의 경우 국적을 가진 모든 나라에서 미혼증명서를 발급받아야만 접수가 가능하도록 법률개정이 필요할지 논의 중이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사무관은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국민적인 관심이 쏠리고있으니 당분간 국제결혼의 혼인신고를 접수받을 때는 주의를기울여달라고 덧붙였다. - P149

"이 역시 잘 아시다시피, 국내에서 동성간의 혼인신고는현행법상의 근거를 찾을 수 없기에 불수리를 원칙으로 하고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신고서를 접수 후 신고자에게 불수리 통지서를 전달하는 것으로 매뉴얼 교육을 받으셨을 겁니다. 그런데 O읍 행정복지센터의 담당 공무원은 미처 교육을받지 못한 신규 임용자로 몹시 당황하여 서류 접수 자체를 거부하여 신고자와 실랑이를 하게 됩니다."
스크린에는 커다란 글씨로 몇 개의 단어들이 띄워졌다.
동성 결혼은 불법.
혼인신고에 반대.
혼인신고서 제출은 업무 방해 행위.
사무관은 말없이 스크린을 바라보다가 두 손으로 짧게 마른세수를 했다.
"해당 공무원은 개인의 사견과 독단으로 신고자에게 보시는 바와 같은 발언을 하였는데, 이 모습이 당시 행정복지센터에 있던 다른 주민에 의해 동영상으로 촬영되어 인터넷에 유포되었고 해당 지자체로 항의 민원이 빗발쳤습니다."
사무관은 이 속한 C시의 홈페이지 게시판은 해당 공무원의 문책과 징계를 촉구하는 내용과 신고자들을 향한 인신공격성 비난이 뒤섞여 한동안 혼란스러웠다고 덧붙였다. 스크린에 띄운 O읍의 공무원이 했던 발언들 위로 C시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들이 더해졌다. 선미는 스크린의 글자들이 마치 자신을 향해 화살을 쏘는 활 같다고 느꼈다. 영원히 화살이 떨어지지 않는 활. 끊임없이 시위를 당기고, 다시 당기고, 또 당기는 활. 당장 단상으로 달려가 날카로운 칼로 스크린을 갈기갈기찢어버리고 싶었다. - P151

고등학생 시절, 선미는 자주 앨범을 펼친 채 시간을 보내곤 했다. 사진 속 어린 자신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힌트를 찾듯이 지금의 자신을 만든 과거의 결정적 사건을 발견하려는 듯이. 그러면 모든 수수께끼를 푼 탐정이 되어 범인을 잡아 낼 수 있을 것처럼.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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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첩장을 300장씩 돌려서 결혼식을 열고 신혼여행은 발리로 다녀왔어. 나 그때 축의금도 10만 원이나 냈잖아. 결혼식 전에 혼인신고 하고 신혼부부 특별 공급으로 아파트 분양받았으면서 자기 남편이 동거인이래. 그냥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이래. 그러면 뭐 되게 쿨하게 보일 줄 아나? 진짜 웃기고 있어. 프로필 사진도 웨딩 사진이면서!"
은경은 비웃듯이 말을 꺼냈다가 점점 화를 내더니 결국 울먹였다. 얄밉고 분하다고, 약이 오른다고 했다. 그 사람이 동거인이라고 자신의 남편을 칭할 때,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그 단어가 남편의 다른 표현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사람에게 동거인이라는 말을 빼앗긴 친구가 동성 연인과 함께 살고 있다는 걸 그 사람은 모른다고. 그 사실이 은경의 마음을 시시때때로 비틀리게 한다고 했다. - P94

"선택할 수 있다는 거,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권력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잖아."
은경은 친구가 자신의 연인을 동거인이라고 표현할 때, 그말에는 분명 자조가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연인 관계를 가장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고작 동거인일 때, 그럼에도 그 말이 아무것도 속이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들, 영영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긋지긋하다고. - P95

선미도 알았다. 레즈비언만 가입할 수 있는 사이트에 자기소개를 올려서 만난 사이, 다른 레즈비언 친구에게 소개받아 만난 사이, 서로를 알아보고 정체성을 고백해 만난 사이. 그런사이를 연인이라고 소개하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에둘러 친구나 룸메이트, 사이좋은 언니 동생이라고 포장해야 할 때 반발심이 들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일 것이다. 그러니 동거인이라는 ‘증명‘할 수 있는 단어로 둘 사이를 표현하면서 느끼는 안도감은 당연히 열패감을 동반할 수밖에. 싸움인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매번 질 수밖에. - P95

혼인신고의 처리 절차는 가경이 가족관계팀으로 발령받고서 제일 먼저 배운 것 중 하나였다. 창구에 혼인신고서가 들어오면 누락된 곳이 없는지, 신고자가 실수한 부분은 없는지 살핀다. 다시 작성해야 하는 곳이 있으면 신고자에게 상세히 안내한다. 신고서에 이상이 없으면 전산 시스템에 해당 내용을 입력해 접수 창을 채운다. 입력이 완료되면 ‘접수‘ 버튼을 누른다. 접수된 순서대로 신고서 원본을 정리한다. 거기까지가 가경이 맡은 접수 업무였다. 접수가 완료된 신고서는 ‘기록‘ 단계로 이관된다. 가족관계팀의 차석이 담당하는 일이다. 하루 동안 접수된 신고서가 다음 날 차석에게로 전달된다. 차석은 접수된 신고서에 이상이 없는지, 제대로 전산에 입력이 되었는지 다시 확인한다. 문제가 없으면 ‘기록‘ 버튼을 누른다. 이렇게 하루 동안 기록된 신고서들을 그다음 날 팀장이 최종 결재한다. - P105

최종 결재가 되면 혼인신고 절차가 마무리된 것이고 혼인관계증명서가 발급된다.
"접수도 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될것 같더라고요. 일단 접수가 되면 기록 버튼을 눌러줄 사람, 결재할 사람만 있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 기록 버튼을 눌러줄 사람이 나군요."
선미는 가경의 계획을 이해했다. 그리고 곧바로 계획의 허점도 깨달았다.
"내가 기록한다고 해도 팀장님이 결재하셔야 해요. 설마 팀장님도 끌어들이겠다는 건 아니죠?"
"팀장님은 휴가 때면 차석에게 대결을 맡기고 가세요. 다음주에 사모님 수술 때문에 사흘 동안 휴가 가시고요."
가경이 예상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에 선미는 당황했지만 티내지 않으려 하면서 말했다.
"그래요, 그렇게 한다고 쳐요. 하지만 내가 대결해서 결재까지 한다고 해도 월 점검 때 걸릴 거예요."
시청에 접수된 혼인신고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원본을 모아 가정법원에 제출한다. 혼인신고서뿐만이 아니라 가족관계팀에 접수되는 출생신고서, 사망신고서, 이혼신고서 모두 그렇게 한다. 가족관계 등록 업무는 원래 가정법원의 일이고 지방 자치 단체에위임한 것이기 때문이다. - P106

하주시청 가족관계팀은 매달 첫 번째 목요일마다 지난달에 접수된 신고서를 들고 관할 가정법원에 가서 제출하고 업무 관련 교육을 받았다. 그 제출 전에 한 달 치 신고서를 다시 들여다보며 전산 시스템에 실수가 없었는지 살피는 것이 ‘월 점검‘이었다. 월 점검은 접수와 기록을 담당한 직원이 아닌 다른 직원이 맡았다.
"그거면 돼요."
"그거면 된다고요?"
"결재까지만 되면 혼인관계증명서는 발급받을 수 있잖아요."
"그건 아무런 효력이 없는 문서가 될 거예요."
"그래도 그 순간엔 진짜잖아요."
"진짜를 가졌다가 잃으면, 그렇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면 두 분께 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어요."
월 점검 때 그 기록이 발견되면 바로 ‘직권정정‘ 될 것이다.
혼인은 무효가 되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
"아뇨. 예전과 같지 않아요. 정정 기록이 남잖아요. 두 사람이 짧게나마 혼인관계였다고. 그런데 그게 무효가 되었다고.
정정을 하면 무엇을 정정했는지 밝혀 적어야 하니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다 기록하는 거. 그게 대한민국 행정이잖아요."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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