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는 요리학교에서 그날 만든 버터케이크를 가방에서 살며시 꺼내며 먹어보라고 했다. 은박지로 싼 그것을, 나는 다른사람들 몰래 입안에 넣었다. 어느 누구와도 나눠먹고 싶지 않았다.
맛있었다. 달콤하게 입안 가득 퍼지는 맛. 시타마치의 케이크 장인이 만든 맛이었다. 우리들이 자란 동네가 공통된 미각을 길러준 것이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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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나무토막이 입체적으로 쌓인 그림 안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의 나무토막도 포함하여 전부 몇 개가 있는지 계산하는 문제로, 어른인 나도 정신차려보지 않으면 틀리기 십상이었다.
"이 뒤에도 있을 거야. 아니면 쓰러져버리겠지? 그러니까 하나, 둘, 셋...... 이렇게 세어보니 모두 아홉개구나."
아야는 해답란에 ‘9‘라고 적어 넣었다.
"좋아, 이번엔 안 도와준다. 틀려도 좋으니까 세어보고 답을 적어보렴."
아야는 가려진 나무토막을 하나, 둘 세기 시작했다. 이 세상은 누군가 뒤에서 지탱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무너져버리고 만다는 것을 은연중에 가르쳐 주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가 너무 깊은 의미를 두었던 걸까. 단지 그때의 내 기분이 그랬다.
하루와 나가토미의 미래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라고 여기고 싶었다. - P273

"저를 정말로 좋아하게 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싶어요. …..저 이외의 것은 이유로 삼지 말아 줘요. 아야도, 하루도."
하루의 존재가 우리 둘의 관계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가스미는 잘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내가 하루를 잊을 일념으로 무리하게사랑의 감정을 일깨우려는 것도 가스미는 감지하고 있었다. - P274

"맞선 상대를 알선하는 일? 고작 그런 일밖에 못해? 한심한 여자 같으니..…………. 또 다시 실패할까봐 두려운 거지? 실패하면 또 도전하면 되는 거야. 까짓 호적이야 좀 지저분해지면 어때. 그런게 말년에 가서 무슨 흉이 되냐고. 가령 네 아이가 호적을 봤다고쳐. 엄마는 아빠하고 무슨 연애를 이렇게 많이 반복했냐고 물으면 이게 내 노력의 흔적이란다. 이 수많은 X표시는 나의 훈장이란다, 이렇게 말해주면 되는 거라고."
두려운 건 X표시가 아니었다. 그 표시들이 생기기까지 내가 입을 상처, 리이치로가 입게 될 상처였다. 사유리는 상처를 입어도다시 일어서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는 평온하게 살고 싶었다. 언제까지든 싸움만 하다 세월 보내는 인생, 그만하고 싶었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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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란 남편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닌 것 같아." - P202

야마모토 유조(1884~1948, 소설가)가 어떤 소설에서, 부부에대해 이렇게 정의 내린 적이 있었다.
‘오른쪽 신은 왼발에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양쪽이 아니면 한켤레라고는 하지 않는다.‘
아무리 이해하기 힘든 상대일지라도 생활 속에서 단 한 가지라도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게 바로 부부였다. 취미여도 좋고,
섹스여도 좋고, 공감할 수 있는 희로애락이어도 좋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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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사자인 사유리는 사생활로 돌아와도 힐 레슬러 이미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억지로라도 웃음을 잊고 사생활까지 다 바쳐 철저히 악역에 몰두하지 않으면 링 위에서도난폭해질 수 없다고 말하는 가여울 정도로 서툰 레슬러였던 것이다. - P143

이것은 경마나 경륜과 같은 도박이다. 나는 딱 한 번 슬롯머신을 해봤을 뿐 도박에는 무지한 사람이지만, ‘하야세 리이치로에게 2,000점! 을 거는 인생을 즐겨야 한다. 지고 싶지는 않지만, 이기려는 생각도 해서는 안 된다. 본전이면 충분하다. 본전이면 나도 리이치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런 사고회로를 거친 끝에 나온 결론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1년 3개월 후, 서로에게 할당된 점수를 다 써버리고 함께 쓰러져버린 셈이었다.
말하자면 이혼서류는 잃은 점수를 탕감해주는 청산서라 할까.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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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왕 새로운 사랑을 한다면 새로운 만남으로,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저를 새하얀 캔버스로 생각해 주는사람과 사귀고 싶어요."
"제가 당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방해가 된다는 말씀인가요"
"나가토미 씨가 알고 있는 저는 리이치로의 필터를 통과한 거잖아요. 그래서 전 싫어요."
"그럼 기억을 지우겠습니다.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쳐 기억상실이 되겠습니다. 그래도 클럽에 가입한 것만은 기억하고 있을테니까, 풀에서 날렵하게 헤엄치는 하루 씨를 만나 다시 한 번 첫눈에 반하겠습니다. 저를 떨쳐버리는 듯한 말씀은 하지 말아주세요."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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