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나무토막이 입체적으로 쌓인 그림 안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의 나무토막도 포함하여 전부 몇 개가 있는지 계산하는 문제로, 어른인 나도 정신차려보지 않으면 틀리기 십상이었다. "이 뒤에도 있을 거야. 아니면 쓰러져버리겠지? 그러니까 하나, 둘, 셋...... 이렇게 세어보니 모두 아홉개구나." 아야는 해답란에 ‘9‘라고 적어 넣었다. "좋아, 이번엔 안 도와준다. 틀려도 좋으니까 세어보고 답을 적어보렴." 아야는 가려진 나무토막을 하나, 둘 세기 시작했다. 이 세상은 누군가 뒤에서 지탱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무너져버리고 만다는 것을 은연중에 가르쳐 주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가 너무 깊은 의미를 두었던 걸까. 단지 그때의 내 기분이 그랬다. 하루와 나가토미의 미래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라고 여기고 싶었다. - P273
"저를 정말로 좋아하게 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싶어요. …..저 이외의 것은 이유로 삼지 말아 줘요. 아야도, 하루도." 하루의 존재가 우리 둘의 관계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가스미는 잘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내가 하루를 잊을 일념으로 무리하게사랑의 감정을 일깨우려는 것도 가스미는 감지하고 있었다. - P274
"맞선 상대를 알선하는 일? 고작 그런 일밖에 못해? 한심한 여자 같으니..…………. 또 다시 실패할까봐 두려운 거지? 실패하면 또 도전하면 되는 거야. 까짓 호적이야 좀 지저분해지면 어때. 그런게 말년에 가서 무슨 흉이 되냐고. 가령 네 아이가 호적을 봤다고쳐. 엄마는 아빠하고 무슨 연애를 이렇게 많이 반복했냐고 물으면 이게 내 노력의 흔적이란다. 이 수많은 X표시는 나의 훈장이란다, 이렇게 말해주면 되는 거라고." 두려운 건 X표시가 아니었다. 그 표시들이 생기기까지 내가 입을 상처, 리이치로가 입게 될 상처였다. 사유리는 상처를 입어도다시 일어서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는 평온하게 살고 싶었다. 언제까지든 싸움만 하다 세월 보내는 인생, 그만하고 싶었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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