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심장은 개뿔."
"절망이구나. 나 절망에 대해 쓰고 있었구나."
"좋은 거야. 남자들은 죽었다 깨도 여자만큼 절망에 대해 쓸 수 없어. 아예 특장으로 살려봐." - P132

"이불 속에 남편이 있으면 하나도 안 추운데!"
"그렇게 물건 하나 장만하라는 식으로 말해도 소용없어."
"에잇, 전기담요 두 개 줄게."
"하나는 깔고 하나는 덮으라고? 와플 기계도 아니고 됐어. 하나만 있으면 돼." - P135

"초등학교 때 모둠 비빔밥을 해먹으면 꼭 돈가스를 해오는 애들이 있었어. 아마 엄마한테 알림장을 보여주지 않았던 거겠지. 그런데 비빔밥에 들어간 그 엉뚱한 돈가스가 의외로 또 맛있었다? 다 부서지고 눅눅해지고 그랬는데도 맛있었어. 그 돈가스처럼 오빠가 좋았어."
".....…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 못하겠어."
"전혀 내 타입 아닌데, 안 어울리는 거 아는데도 좋았다고."
"난 우리가 꽤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여자친구가 웃는지 찡그리는지 알 수 없는 얼굴을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오빠가 어이없을 정도로 나쁜 발음으로 ‘안녕‘이라고 말하는 게 좋았어. 말도 안 되게 나쁜 발음인데 그게 좋았어." - P158

"아침에 거기가 딱딱해질 때마다 내 생각이나 나라, 이건저주야!"
"야, 야."
"으헝헝."
"네 생각이 날 거야."
용기가 손을 뻗어, 여자친구의 손을 잠시 잡았다. 핑크와 옐로의 도트 무늬 손톱을 들여다보고 웃었다. 지지난주엔가, 이쑤시개로 애써 점을 찍으며 네일 따위 돈 주고 받을여유 없다고 툴툴거렸었다. 그정도는 시켜주고 싶었다. 또뭐가 해주고 싶었었지? 아, 편한 신발을 사주고 싶었다. 발가락뼈를 튀어나오게 하지 않는, 균형이 잘 잡힌 신을 샴페인 색깔의 화장품도 사주고 싶었다. 볼살이 빠지면 그런 골드가 어울릴 것 같은 얼굴이었는데.
가볍게 손톱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여자친구도 입맞춤의 의미를 깨닫고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대단한 사랑, 세계가 기억할 사랑을 얻기를. 나는 줄 수없었지만 꼭 그랬으면 좋겠어.
용기는 여자친구와 그렇게 헤어졌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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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인생이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없고, 엉뚱한 것이 주어지는데 심지어 후자가 더 매력적일 때도 있다. 그렇게 난감한 행운의 패턴이 삶을 장식하는 것이다. 물론 매력적인 후자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최초의 마음, 그 간절한 마음은 쉽게 지워지지 않아 사람을 괴롭히기도 하고. - P90

재화는 온갖 걸 신경써야 하는 게 슬퍼졌고, 슬프니까 진한 녹차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다. 그놈의 짜장 때문에 메슥거려서 먹을 수 없으니 더더욱 딱딱할 정도로 진하고 단맛은 안 나는 녹차 아이스크림이 생각났다. 이건 어른의 맛이야 라고 느끼면서 천천히 먹을 수 있다면…………스스로가 그런 초록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맛은 안 나는 초록색. 언젠가 용기도 그런 얘기를 했었다. 초록색 아이스크림 같다고, 아마 욕이었던 듯하지만 말이다. 녹차가 아니라 다른 맛이었는데 뭐였더라? 전화해서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용기에게 전화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면, 아무렇지 않게 보안 시스템을 싸게 좀 설치해달라고 할 수 있는 뻔뻔스러움이 있었다면 인생이 쉬웠을 것 같았다. 초록색이 아니었거나, 초록색이라도 초콜릿 칩 정도는 들어 있었을지 몰랐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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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화의 눈을 기억한다. 아주 검은 눈. 막이 하나 씌워져있는 것 같았다. 가끔 그 막이 두터워져서, 재화의 안을 전혀 들여다볼 수 없었다. 불법 선팅 차창처럼 바로 옆에 용기가 있는데도 초점이 어긋났다. 용기는 운동할 때 지르는 함성으로 재화를 놀라게 해서, 다시 곁으로 돌아오게 하고싶을 때가 있었다. 어디를 보는 거야? 나를 보라고 이렇게 커다란 내가 있는데 어째서 나를 보지 않아. 재화의 작은 머리 안에서 끊임없이 가장자리가 확장되어가는 어둡고 무서운 세계를 용기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 느끼고 있었다. 180대 후반에 육박하는 럭비팀 울브스Wolves의 등번호 4번 록Jock이었던 용기였지만, 그때만은 길잃은 아이처럼 작아졌다. 재화와 헤어지고 나서 재화가 글을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제야 조금, 재화가 침잠하거나 부유할 때 어디에 가 있었는지 이해가 되었지만. - P48

인생이 테트리스라면, 더이상 긴 일자 막대는 내려오지 않는다. 갑자기 모든 게 좋아질 리가 없다. 이렇게 쌓여서, 해소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안고 버티는 거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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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는 문득 어려웠던, 정말 역경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어려웠던 전 여자친구가 떠올라 몸서리를 쳤다. 도무지 안고 있을 때도 안고 있는 것 같지 않은 상대였다. 만지고 있을 때에도 만져지지 않았다. 피스타치오인지 피스타키오인지, 그런 알 수 없는 초록색 맛이 나던 여자애 여전히 그렇게 혼란스럽게 곤란한 인간일까? 어딘가 나사가 빠졌던 건지, 도무지 똑바로 직선적으로 말하는 법이 한 번도 없었다. 표정도 늘 떨떠름한 초록색이었다. 용기가 미세한 감정을 읽는 데 능숙한 편이 아니긴 했지만, 다른 누구여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미로도 그런 미로가 없었다. 부비트랩이 가득한 미로 같았다.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하지, 그땐 어떻게 그걸 연애라고 했었는지 몰라. 껄끄러운 거리감을 지우려고 이를 악물고 애썼던 예전의 자신을 떠올리자, 지금의 만족감은 축복 같았다.
잠든 여자친구를 꼭 껴안았다. 지금 이대로 계속 흘러가줘. 쉽게 휘지 말고 똑바로
"절대로 초록색 아이스크림 따위는 되지 마." - P27

"이기고 지는 문젠가? 어리다며?"
"새파랗게 어려, 경단 같아."
"경단? 떡 말하는 거야?"
"응. 하얗고 동그랗고 포슬포슬해."
"귀엽겠네."
"너는 너는・・・・・・ 파이팅이 없어. 그거 문제야."
"에이, 이길 생각도 없고 어떻게 이겨. 젊고 똑똑하고. 요즘 회사에 고무줄놀이도 한 번 안 해본 애들이 들어오는 거알아? 뭐하고 놀았냐니까 킥보드 탔대. 킥보드 세대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어."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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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부적절한 이야기를 써야지. 모두 입을 모아 부적절하다고 말할 만한 이야기를. - P20

몇 년 뒤에, 미래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을 칭찬해줬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유효한지 확신도 없으면서 멈추지 않았다는 것에, 토닥토닥하고.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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