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신학에서 마귀나 데몬이 인간의 몸이나 동물의 몸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마녀사냥을 정당화하는 각종 학설이나 논거가 지지를 받게 되었다. 정상적인 사람은하느님 안에서 평온하지만 마귀나 데몬이 몸으로 스며들게 되면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며 인간을 해치고 날씨를 나쁘게 만드는등의 악행을 저지르게 되니 이를 응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힘을 행하는 자들을 마녀라고 칭하게 되었으며(이 책에서는 마귀나사탄, 데몬, 악령 등을 모두 ‘마귀‘로 통일하여 서술하였다) 이들을 처단할이론적 기반도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P16
사학자 마이어 Meyer는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당시의 민중은 곤궁과 가난에 찌들었고 하루하루 생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도피처를 찾아다녔다. 즉 식물에서 추출한 액체를 마시고 황홀이나 흥분, 무아경 속으로 피신했던 것이다. 그 액체를 마시면 마실수록점점 더 강렬한 자극제나 흥분제를 필요로 했고, 그러다가 중독증상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었다." 마이어는 이런 상황을 마녀와도 연관 짓는다. 그 증명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헥센바인 Hexenwein‘, 이름 그대로 ‘마녀와인‘이다. 이와인은 일반 와인과는 달리 씁쓸한 맛인데 마취제를 섞어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P19
란덴 지방에 남아 있는 금기 자료
이번에는 독일 란덴Landen 지방에 남아 있는 1652년 경의 금기자료를 살펴보자.
발푸르기스의 밤(Walpurgisnacht, 4월30일의 밤부터 5월 1일의 밤을 지칭하며 이날 마녀들이 독일 하르츠Harz 산맥의 최고봉 브로켄Brocken 산상에 모여 술을마시고 춤을 추며 논다고 알려져 있다)에 십자로에서 휘파람을 불면 마녀를불러내는 행위로 간주한다. ** 발푸르기스의 밤에 마녀의 성으로 올라가면 당장 마녀로 몰린다. *빗자루를 들고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가 보면 그 사람이 마녀인지 아닌지 당장 알 수 있다(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녀는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난다‘는 주장과 관련이 깊다. 이런 주장은 오랜 옛날부터 각 문화 속에 전승되어 오다가 문명화와 더불어 사라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 누구도 이웃에게 응고된 우유가 담긴 냄비를 빌려 주어서는 안 된다. 그 냄비에 저주가 걸려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P25
대부분의 수도자는 첩이나 자식을 데리고 살았다. 여기에 관해서는 문화사로서도 많은 자료가 남아 있다. 수도자의 독신제도는 교황 그레고리오 10세(Gregor X, 재위 1271~1276)가 정착시켰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교황권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교황의 힘을 이런 방법을 통해 복원하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볼 수 있다. 거듭 이야기했듯이 당시 가톨릭은 면죄부 판매와 폭력, 각종음모로 인해 신망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수도자의 독신제도는가톨릭이 내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개혁이자 구제책이었다. 그런데 당시 마녀사냥이 날뛴 여러 이유 중의 하나를 사제의 독신제도에서 찾는 학자들도 있다. 독신제도에 갇힌 사제들이 억압된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마녀사냥에 열심히 매달렸다는 주장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지닌 자연스러운 성적 본능을 강압적으로 누르다 보니 민중, 특히 여자들에게 그 화살을 돌려 본능을 해소했다는 것이다. 여자 하나를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하고 나면다시 다른 희생양을 찾아 나서길 반복하면서 억압된 성욕을 분출했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마녀사냥을 이런 의미로 해석한다면 이들의 행동은 살인이나 다름없다고 사학자 로버트 마스터즈(Robert Masters, 1713~1798)는 주장했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마녀사냥의 또 다른 동참자들이 나타났다. 의사, 법률가, 공무원 등이다. 이들은 그리스도교가 터준 길과 신학자들이 제공해준 이론으로 무장하여 잔혹한 마녀사냥에 기꺼이 동참했다. - P37
마녀는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었다. 만일 마녀의 아이가 태어나면 이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었다. 하나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부모에게 버림받고 사회에서 평생 천덕꾸러기로살아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마녀가 이 아이들을 죽여 가루로만든다는 것인데 마녀가 만든 가루는 ‘마녀연고‘라고 불렸으며 사람들을 병들게 하거나 죽이는 용도로 쓰인다고 믿었다. 1598년 7월 11일, 프랑스 베통쿠르Betoncourt 출신인 앙티드 Antidecolas 라는 여자가 외과의사인 니콜라우스 Nicolas Milliere에게 검진을 받는 도중 이상한 것이 발견되었다. 그녀의 배꼽 밑에 또 하나의 여성 생식기가 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제자리에 있는 정상적인성기는 남편과 성교할 때에 사용하고 마귀와 성관계를 할 때는 배꼽 밑에 있는 생식기를 사용한다고 고백했다. 사람들은 마녀재판을 열어 그녀를 감옥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의사의 진단을받게 했는데 그 사이에 그녀의 두 번째 생식기가 닫히고 흉터만남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두 번째 생식기가 사라졌지만 1599년 2월 20일, 그녀는 마녀로 몰려 불에 태워 죽임을 당했다. - P55
1750년 8월 16일자 포시쉐 자이퉁Vossische Zeitung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독일 중동부의 할레Halle에서 약간 떨어진 마을에 사는어느 농부의 아내가 마귀와 성관계를 맺어 임신을 한 혐의로 불에 태워져 죽임을 당했다. 그녀가 낳을 아기가 마귀의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그런데 죽은 그녀의 몸을 해부해보니 몸안에 커다란 혹이 들어 있었다. 그 혹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이리저리 뱃속을 굴러다녀서 임신으로 착각한 것이다. 오늘날의 진단으로는 분명 종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는 평범함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모든 것이 마법이고 마녀라는 누명을 쓸 수밖에 없는 세상이었다. - P58
그는 『차가운 물을 통한 마녀시험과 심문에 관하여Von Enhwanaging th Pro the auternmen durchskate waser 라는 저서에서 마녀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방법으로 ‘물 시험‘이 가장 정확하다고 주장했다. 물 시험 중첫 번째는 마녀로 의심받는 사람을 물에 빠뜨려 마녀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물은 고대부터 신성한 것으로 여겼기에, 그신성함이 마녀를 구분해 줄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큰 호응을 얻었다. 마녀로 의심되는 사람의 손과 발을 묶어 깊은 물속에 던진 뒤가라앉으면 죄가 없으니 다시 건져서 살려주겠다는 이 시험은 사실 구실에 불과했다. 건지기도 전에 익사한 사람이 대부분이었기때문이다. 반대로 물에 뜨면 마녀라고 의심하였다. 마귀가 도와주어서 가라앉지 않고 물에 뜰 수 있었다면서 말이다. 두 번째는 뜨거운 물로 하는 시험이다. 이것은 찬물 시험보다더 오래된 방법이다. 마녀로 의심받은 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맨손으로 끓는 물속에 들어 있는 작대기나 돌을 꺼내야 한다. 그후 손에 붕대를 감아두었다가 며칠 후 풀었을 때에 상처가 곪지않았다면 마녀가 아닌 것으로 판별했다. 신의 도움으로 상처가 곪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대로 상처가 곪아 터진 경우에는 두말할 것도 없이 마녀로 몰렸다. - P64
예수회 신부이자 시인이었던 프리드리히 슈페(Friedrich Spee, 1591~1635)는 사회 전체가 마녀사냥 때문에 어지러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켰다는 사실에 경악하여 마녀재판과 고문을 반대하는내용을 담은 『재판관에 대한 경고Cautino Criminails』라는 책을 저술했다. 그는 이 책에서 재판과정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했다가 수 - P68
도원 안의 동료들에게 거센 비판을 받았다. 독일 파다본Paderborn의주교 펠킹(Johannes Pelking, 1573~1642)은 이 책을 ‘신을 모독하는불경한 저서‘라로 간주했지만 그의 책 덕분에 유럽 곳곳에서 일어났던 마녀사냥의 광기가 차츰 누그러질 수 있었다. 만약 그의 책이 출간되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며 후세의 학자들은 그의 행위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 책의 출간 과정에 관한 뒷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는 자신이다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처음에는 이 책을 익명으로 출간하였다. 하지만 나중에는 용기 있게 자신이 이 책을 썼노라고 이름을 밝혔다. 만약 그가 처음부터 자기 이름을 내세워 책을 출간하였다면 이 책이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전에 그 역시 마녀로 몰려 마녀재판에 넘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그가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동기는, 그가 사제로서 직접 경험하고 체험한 일들 때문이었다. 그는 마녀재판에 끌려가는 사람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주는 영적 지도신부로 동행한 적이 많았고, 마녀사냥으로 고통 받는 민중을 꼼꼼하게 살펴볼 기회도 있었다. 날씨 변동이나 흉년 등 자연재해로사람들이 굶어 죽어도 마녀의 짓으로 돌리는 세상의 여론이 못마땅했고 종교 분파가 생겼을 때에는 이것 또한 마귀의 저주로 여기는 교회 사람들이 그에게는 온전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는 사제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은 사람 중 하나였다. 그가 쓴 책의 내용처럼, 마녀재판은 억울한 사람에게 죄를 덤터기 씌우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마녀로 몰려 화형당한 희생자의 약 - P69
팔십 퍼센트는 여자였고 그들 중 대부분은 과부와 가난한 사람, 또한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웃이 이웃을 고발하는 등 밀고가 점점 심해지자 그는 억울한 마녀사냥을 막기 위해마녀재판 자료를 찾아 연구하였고, 마녀로 몰린 사람을 심문할 때나 재판할 때에 함께 참여하거나 감옥에 갇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료를 모았다. 그는 힘없는 사람들일수록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자신을 변호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것을 통감했다. 또한 마녀재판관들이 혐의자를 고문할 때는 이미 시나리오를 짜놓은 상태에서 자신들의 목적에 합당한 자백을 받아 내기 위하여갖은 악랄한 방법을 동원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가 밝힌 바에 의하면 많은 사람이 진짜 마녀가 아니라 그냥술을 많이 마신다는 이유로 혹은 이웃의 시기나 질투, 복수나 해코지의 목적으로 밀고를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억울하게밀고 당한 이가 처참하게 불에 타죽는 것을 목격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신학자들이 탁상공론 속에서 만들어 낸가상의 인물이 마녀이고 마녀사냥이다. 이들은 이 가상의 인물이실제로 있다고 믿고 의심되는 사람을 잡아다 심한 고문을 하느라정작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 그는 진정한 인간의 가치는 무엇인지, 인간이 인간에게 관용을베푸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갔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도 경계선은 있다. 죄를 지은 모든 사람을 풀어주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 행해지는 고문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자비하니 그것을 막자는 주장이다. 죄 없는 자들도 - P70
분명 있을 것이고 잘못된 심문도 분명 많을 터인데, 사람으로서견디기 어려운 고문을 동반하여 심문한다면 그 고통을 참지 못해허위 자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법 앞에서 무죄 고백을 할 기회가 없는 힘없는 사람들을 기득권의 심판에 따라 가차없이 죽이는 제도를 바꾸자는 것이 그가 주장한 내용의 핵심이다. 그의 책은 제후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스웨덴의 여왕 크리스티나(Alexandra Christina, 1626~1689)는 1649년 마녀사냥을 금지하라고 명하는 동시에 그 당시 진행 중인 모든 마녀재판을 중지하였다. 그녀는 지금까지 마녀로 몰려 잡힌 이도 모두 풀어 주었다. 1740년 프리드리히 2세(Friedrich II, 1712~1786)도 마녀재판에서 고문을 금지하는 한편, 아직 많은 여성이 억울하게 마녀라는덫에 걸려있다며 이들을 풀어주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조처했다. 한 스페인 신부가 저술한 책이 이토록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이처럼 마녀사냥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슈페 신부의 말년은안타깝게도 그리 좋지 못했다. 그는 이 책을 집필한 후 동료와 교회 수장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고 불리한 조건의 근무지로 이동을 지시받았다. 그가 마인츠에 근무할 때 페스트가 발병했는데, 그는 가난한 병자들을 돌보다 페스트에 전염되어 목숨을 잃었다. 그의 나이 44세 때였다. - P71
『재판관에 대한 경고』에서 그가 주장한51가지 중 몇 가지를 요약해 본다.
*물론 진짜 마녀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바로는 그들은 전부 마녀가 아니었다. 마녀로 몰려 잡혀 온 자 중 진짜 마녀와마녀가 아닌 사람을 신중하게 관찰하여 구별해야만 한다. * 진짜 마녀가 있다 하더라도, 인간을 불에 태워 죽이는 것은 마녀 행위보다도 더 악의적이고 음흉하다. * 마녀를 고문하는 기구는 도저히 있을 수 없으며 잘못된 것이다. 이런기구를 사용하는 것은 전쟁보다 더 심각하게 민중을 초토화시킨다. 절대로 그런 방법으로 사람을 심문하고 고문해서는 안 된다. * 밀고나 고발이 들어왔을 때에 무조건 그 말만 믿고 혐의자를 잡아들여서는 안 된다. 반드시 신중하게 사실 여부를 점검해야만 한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시기와 질투에 의한 밀고로 잡혀 온 사람들도 있다. 억울하게잡혀 온 것도 문제지만, 이들이 받는 심문과 고문 역시 지나치게 무섭다. "재판관은 이유 없이 타인을 비방하는 자들에게도 엄중한 조처를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죄 없는 자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재판관 중 많은 사람이 뻔뻔하고 교만하며 물욕이 넘치고 무지하다. 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단지 하나, 인간이 흘리는 피다. 마녀재판은 단지지식만 갖고 있는 학자들이 하면 안 된다. 인간적인 기본 소양을 갖춘 현명한 사람들이 재판해야만 올바른 판결을 내릴 수 있다. * 마녀사냥에서 혐의자의 재산은 압수해서는 안 된다. 이런 몰염치한 일은 즉각 중단해야만 한다. 고발당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변호인을 붙여 주어야 하고, 고문을 통해강제자백을 받아내는 일은 중단해야 한다. 무시무시한 고문을 당하면 고통스러운 나머지 죄가 없어도 억지 자백을 하기 마련이다. * 마녀재판에서 행해지는 무시무시한 고문은 신 앞에 그리고 모든 정의 앞에 부끄러운 일임을 알아야 한다. 재판관과 사형집행인은 순전히 그들이 원하는 자백을 받기 위해 고문을 한다. 붙들려온 사람 중에는 죄 없는사람도 있을 터인데, 이들의 억울한 인생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 고문은 가장 비인간적인 방법이다. 생각해보라. 인간이 인간을 고문한다는 것은 인간의 진정성을 상실한 것이다. * 감방에 있는 사람들을 고문하기 전에, 그들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도범죄이자 악습이다. * 진정 고문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올바른 전문가를 동원해 마녀인지 아닌지 판단한 다음 고문하도록 하라. - P72
식민지에서 자행된 마녀사냥
유럽 바깥의 식민지에서 마녀사냥이 자행된 이유는 여러 가지로 찾을 수 있다. 당시 유럽에서는 새로운 유토피아라 불리는 신대륙을 찾아 나서는 탐험가가 많았다. 새로운 부를 축적하겠다는욕심으로 신대륙을 찾아 나선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그중에는 당시 마녀사냥 등으로 사회가 어수선해지자 언젠가 자신도 마녀 혐의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유럽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도다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자신들이 도착한 신대륙에서 자국의 마녀사냥과 유사한 방법으로 마녀재판과 고문 - P86
을 행하며 본토인들을 괴롭히는 가해자가 되었다. 유럽 내에서는마녀사냥이 사라지고 있었지만, 식민지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이름으로 또 다른 마녀사냥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에 이들을 비판했던 성서 구절은 마태오복음 23장 15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물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때문이다." 당시 스페인을 떠나 신대륙으로 건너간 사람이 약 500만 명 정도에 이르는데, 이들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식민지에서 그리스도교의 이름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16~17세기에 넘치는 힘을 자랑하던 스페인은 이 시기에 많은식민지를 확보하여 자신들의 영토를 확장했다.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필리핀, 북아프리카, 지중해 등으로 식민지를 개척한스페인은 15세기 초부터 자국에서 하던 마녀사냥을 식민지로 옮겨 그 악랄함을 이어 갔다. 자국에서도 그리스도교의 기본교리와약간만 다르게 행동해도 마녀로 몰았는데, 자신들이 정복한 곳의본토인들이 믿었던 전통종교에 대해서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겠는가? 이들은 본토인의 전통종교는 철저하게 미신으로 규정했고이를 믿는 본토인들을 ‘마귀 추종자 Teutels Anhaenger‘라고 부르며 무시무시하게 탄압했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인이나 아메리카 인디언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었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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