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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무래도 이 소설은 지은이가 더 눈길이 가는 것 같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배우 차인표, 그가 소설을 썼다니.. 놀랄 따름이다. 또한 이 소설의 소재가 위안부 할머니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더 궁금증이 일었던 책이었다.
작가는 1997년.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로 강제 징용되어 캄보디아에 끌려가셨다가, 지난 1997년 잠시 한국에 오셨던, 작은 몸에 크고 고운 눈을 가진’ ‘훈 할머니’의 이야기를 보도한 TV 뉴스를 보게 된 것을 계기로 책을 쓸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뉴스를 보았을 텐데,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부분을 주목하고, 마음에 담고, 10여 년 동안 이 이야기를 써왔다는 것에서부터 단지 차인표를 배우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평가절하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치열한 마음이 그에게 잠재되어 있엇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을까 싶다.
소설의 무대는 1930년대 백두산 자락의 호랑이 마을. 엄마를 해친 호랑이를 잡아 복수하기 위해 호랑이 마을을 찾아온 소년포수 용이, 촌장 댁 손녀딸 순이, 그리고 일본군 장교 가즈오를 주인공으로 전개된다. 특히 나는 이 소설에서 용이와 순이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일본군 장교 가즈오의 편지가 참 마음에 와닿았다. 아마 그 시절 가즈오같은 일본군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 조국의 미래를 위해 피끓는 청춘을 위해 입대한 그곳에서 아마도 그들은 원치않는 현실과 맞닦뜨려야 했을 것이다. 물론 그와중에, 애국심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양심의 그늘에 덮어두고 일체화되었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가즈오처럼 번민을 하면서 나름대로의 인간다운 삶을 찾아가려고 했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비록 일본에 대해서 아직도 많은 앙금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그네들중에는 인간적인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생각하며 위로를 해본다.
저자는 시종일관 참 순수하고 맑은 느낌의 글로 써내려간다. 그래서 옹기종기 모여앉은 호랑이 마을의 순수한 이들이 마치 내 눈앞에 있는 것 같다. 가즈오와 용이가 그토록 지키려고 했건만 결국 위안부로 끌려간 순이는 결국 인생의 끝자락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용서를 말하고, 사랑을 말하며 살아왔던 순이의 인생이 너무나 고단해져서 마음이 아팠지만, 그러나 돌아와 잘가요 언덕에 섰을 때 만났던 많은 이들, 그녀의 사랑으로 세워진 샘물이 할머니와 가족들, 그녀가 평소 소망하던 대로 많은 이들의 엄마가 되었던 그날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나 또한 용서의 마음으로 책을 덮게 되었다.
"순이만큼은 처음부터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그저 호랑이 마을에서 태어나 어른들을 공경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착하게 살아왔을 뿐입니다. 그런 죄 하나 없는 여인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광기만 남은 곳, 나쁜 남자들의 욕심 때문에 엉망진창이 된 아수라장 전쟁터로 몰아넣어 희생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저 나쁜 남자들의 욕심 때문에 아수라장 전쟁터로 몰아넣어져 희생을 강요당한 것밖에는.. 이제는 전쟁의 상처가 많이 희미해져가서 덩달아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의 무게마저 희미하게 잊혀져가진 않나 염려가 되는 이 때 이런 소설이 나와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