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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노래 ㅣ 푸른도서관 30
배봉기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5월
평점 :
책을 읽다가 손을 놓을 수가 없어서 앉은 자리에서 그냥 끝까지 읽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책이었다, 이 책은. 상당한 흡인력으로 읽는 내내 책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고 일어서니 한밤중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 서두에 나오는 저자의 이야기와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기록 때문에 더더욱 이 책의 이야기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이 소설의 근간을 이루는 뼈대가 바로 책의 후반부에 수록된 이스터섬의 이야기에 관련된 한 인류학자의 기록이었다.
이스터섬은 원지어(原地語)로는 라파누이(Rapa Nui), 에스파냐어로는 파스쿠아(Pascua)라고도 한다고 하며 네덜란드 탐험가인 J.로게벤이 1722년 부활절에 상륙한 데서 이스터섬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20개 가까운 화구가 있는 화산섬인데, 수목은 없고 초원이며, 물은 적은 편이다. 고고학상 중요한 섬으로서, 인면석상(人面石像) 등의 거석문화(巨石文化)의 유적과 폴리네시아 유일의 문자가 남겨져 있으나, 이것들을 만든 사람들에 대하여는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이 섬으로의 이주는 10세기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며, 언어 ·인류학상으로 보아 최초의 주민은 멜라네시아의 피가 섞인 폴리네시아인으로 본다. 1722년 이전에는 최고 4,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추정되고 있으나, 1862년의 노예사냥과, 그에 잇달은 천연두의 유행 등으로 섬의 인구는 최저 111명까지 감소되었다. 1864년 이후에 백인도 정착하게 되고 1888년에 칠레령이 되었다고 한다. 또 예전에는 아열대수림이 울창했으나 대화재 후 거의 소실되었다고 알려져있으며, 숲이 사라지면서 식량의 부족 등으로 종족간의 분규가 일어났을 것이라 추정된다고 한다. 이 기록을 보면서 책을 보면 더욱 이야기가 실감이 난다. 마치 팩션을 보는 듯 하다.
단이족과 장이족과의 지루한 싸움, 평화로웠으나 일방적으로 평화가 깨어진 후 계속되는 증오와 반목, 그리고 전쟁. 전쟁의 와중에 태어나 오도가도 못하고 노예족으로 운명지어지는 새로운 혼혈족의 이야기 또한 악의 고리가 얼마나 질기고 단단한지를 보여주는 일면들이었다.
이스터섬의 거대한 석상들은 바로 이러한 종족간의 분규와 미움과 질시 속에서 서로 상대방 종족을 탄압하고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이 책은 기록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소설인지라 이스터섬의 거대한 석상에 관한 역사적 사실의 진위 여부를 가린다는 것은 우스운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그 점은 중요하지 않다. 소설 속에서 거대한 석상은 인간의 욕망, 폭력성, 잔인성, 서구 열강의 야만성을 상징할 뿐이다. 그래서 대사제가 된 큰노래는 자신의 종족을 지키기 위해 모아이 석상을 쓰러뜨리지만, 결국 다 쓰러뜨리지 못한 채 노예선에 끌려가 오클랜드에서 노예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섬의 역사가 잊혀지지 않도록, 그는 거기서도 그의 주인집 아들에게 자신이 살았던 고향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주인집 아들은 후에 인류학자가 되어서 자신이 들었던 이스터 섬의 이야기를 기록하게 되고, 100년 전 기록을 보게 된 작가가 상상력과 결합하여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가, 사실적인 공감을 획득하며 독자들에게 무언중에 전해오는 메시지도 강렬하다.
전쟁의 잔인성과 숨겨진 인간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이 책에서는 노예사냥, 즉 문명화된 이들이 섬을 찾아와 강탈하고, 원주민을 무작위로 노예로 끌고 갔던 역사적 사실들도 고발하고 있다.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참으로 우리의 청소년 문학의 발전을 실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