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담장의 말 - 흙과 돌과 숨으로 빚은 담의 미학을 생각한다
민병일 지음 / 열림원 / 2023년 2월
평점 :
#담장의말#민병일#산문집#열림원#협찬도서
때때로 집에서 일찍 나서 여유가 있는 날 직장 근처 강변을 잠깐 운동삼아 걷게 되는 날이 있다.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일정 거리를 다녀오기로 하는데 자꾸만 발걸음이 멈추게 되는 때가 있다. 비춰오는 햇빛, 산책하는 사람들 뒷모습, 자전거 타고 멀어져가는 모습, 때로 못보던 꽃, 강변의 새들등을 본다고 멈춰 다녀오려던 길을 다 걷지 못한다.
이책은 강변길 걷다 발걸음 멈추게 하듯 멈추게 되는 때가 있다. 담벼락 방랑자의 담벼락 사진, 해외의 벽사진, 소개하는 그림들, 음악, 문장표현들 등이 책장 넘기기를 멈추게 한다.
어느 집들의 담벼락 사진들에서 멈춘다. 아~~
감탄이다. 어느 바닷가 오래된 사람은 살지 않는 집의 화장실 담이 멈추게 한다. 작가는 이담과 함께 프랑스 시골의 작은 마을 롱샹 성당 담벼락을 비유하
며 담의 미를 이야기 한다. 아름다웠다.
또 읽어가다가는 그림, 음악 등에 멈추어 이들에 대해 검색해서 보개도 듣겠고 한다.
찾아서 보게된 그림은 장욱진 화가의 항아리 과
찾아듣게된 음악은 드보르작의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이다. 그림 앞에 음악 속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책의 많은 문장표현들도 멈추게 한다. 계속계속 옮기고 싶은 문장들이 나와 멈춤한다.
읽어나가며 드는 생각 하나
이런 아름다움들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머물 수 있다면 삶의 어렵고 힘든 순간들을 넘어갈 수 있는 힘이 되겠다 싶었다.
또 하나
그곳에 가고 싶다. 와온 ㅡ
책속에서 ㅡㅡ
예술이든 사람이든 꽃을 피웠지만 아름답지 못한 것은 내면에 심미적 사유로서의 아름다움이 없기 때문이고, 꽃을 피웠지만 아름다운 것은 내면에 심미적 사유로서의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P74
동백으로 붉게 물든 담장이든, 새하얀 눈 덮인 담장이든, 담장 앞에 서면 본래의 내가 보였다. 나는 담장 안에 있는 고즈넉한 오두막에 있길 좋아했다. 흙냄새가 솔솔 풍겨왔고 달빛 머금은 돌에서 파란별을 찾다보면 잃어버린 시간
을 찾아가는 길이 보였다. 보이지 않던 길이 길을 열고, 그 길이 수만갈래 길을 열어가며 길의 우주를 만들었다. 그곳에서는 시간이 시간을 재촉하지 않았다. P102
아름다움이란 어느 순간 나타났다 사라져가기에, 미적인 것을 보았을 때 그 순간을 보았을 때 그 순간을 경배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P103
사노라면 길이 잘 보이지 않아 막막할 때가 있고 길이 보이더라도 선뜻 그 길을 가기 쉽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담장이 말을 걸어올 적이 있다. 길을 걷다 보면 길이 보였다. 담장은 예술적인 '것' 을 보여주는 친구 같았고, 방랑하는 길목에서 생의 신비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현자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