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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한 세 번의 여행 - 엄마를 보내고, 기억하며 ㅣ 삶과 이야기 1
이상원 지음 / 갈매나무 / 2019년 11월
평점 :





췌장암 말기 진단을 내리면서 의사는 말했다. “외국 사람들은 말기 암 판정을 받으면 고맙다고 한답니다. 치매가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면서요.” 위로의 표현이었다. 남미 여행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인 2월 18일에 받은 진단.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극적이었다. (p.88)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은 내게 있다. 하지만 암 진단을 받은 순간 그 결정권은 조각조각 나기 일쑤이다. 한 조각은 의사에게, 다른 조각은 배우자에게, 다른 조각은 자식들에게. 그중 전문가는 의사 하나다. 전문가는 매뉴얼대로 치료법을 제안한다. 전이가 없다면 수술, 전이가 되었다면 항암제. 항암제는 이걸 써보고 효과가 없으면 저걸 쓴다. 이것과 저것을 섞어서 쓰기도 한다. 아직 유효한 상세 매뉴얼이 없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른 한편 배우자나 자식들은 대부분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결정권은 행사하려 든다. 환자 본인은 병의 고통 때문에, 혹은 심리적 충격 때문에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 (p.115)
심심하게 짝이 없어 보이는 엄마의 그 시간은 어쩌면 죽음 앞에서 거쳐야 할 통과의례인지도 몰랐다. 예전에 나는 시한부 선고를 받더라도 평소와 다름없이 살다 가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건 비현실적인 생각이었다. 죽음이 코앞에서 기다린다는 것을 아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기 때문이다. 우선 내가 달라진다. 삶에서 중요했던 많은 것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남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친구들과 전처럼 마음 편하게 웃고 떠들 수가 없다. 아마 나도 엄마가 그랬듯 혼자서 가만히 누워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게 되지 않을까. (p.124)
엄마는 촛불이 꺼지듯 떠났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는 서서히 조금씩 타들어간다는 것을 옆에서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가시기 얼마 전에 성 선생님 시아버님의 갑작스러운 부고가 왔다. 암 진단을 받고 막 치료를 시작하려는 와중에, 병원 침대에서 멀쩡하게 대화도 하다가 머리가 좀 아프다고 하더니 순식간에 떠나셨다고 했다. 문상을 갈 수는 없었지만 얼마나 황망한 마음일지 짐작이 갔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촛불이 꺼지듯 가는 것과 느닷없이 순식간에 가는 것 중에서 무엇이 더 나을까. 내가 가는 입장이라면 순식간에 가는 것이 좋겠고 보내는 입장에서는 그래도 서서히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호스피스 수녀님도 그런 얘기를 했다. 엄마가 자식들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많이 주는 거라고. 엄마 자신은 도대체 왜 안 가는지 모르겠다고,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냐고 말하면서 몇 번이고 한탄을 했지만 말이다. (p.162)
80세 엄마와 50세 딸이 한 달 동안 남미 여행을 떠난다. 두 사람은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사람, 언어, 문화와 역사를 만나고 돌아온다. 그리고 다음 날, 80세를 여행하는 한 해로 삼겠다던 엄마는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는다. 영화나 소설 속의 한 장면처럼. 엄마와 함께한 한 번의 여행, 한 번의 이별, 그리고 한 권의 일기. <엄마와 함께한 세 번의 여행> 이 책은 엄마를 떠나보내기 전, 그리고 떠나보내고 난 후에 엄마와 동행한 시간을 돌아본 딸의 기록이다. 엄마와 함께한 여행을 통해 저자는 담담하게 들여다본다. 낯선 곳을 여행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소중한 사람이 병마와 싸울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잘 알지 못했던 엄마는 어떤 사람인지.
미처 알지 못했던 엄마의 삶, 언젠가는 찾아올 엄마와의 이별. 세 번의 여행을 통해 딸은 엄마의 삶을, 엄마와의 이별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기록한다. 죽음 앞에 누구도 예외란 없다. 사전에 미리 알았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느 누가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게 내 가족이라면? 그중에서도 엄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준비할 수 없는 이별 죽음. 엄마가 남긴 일기를 읽으며 마주한 엄마의 삶은 슬프다 못해 애잔하다. 엄마.. 우리는 언제나 죽음 앞에서 나약하게 무너져 버린다. 아무리 많은 재산도 권력도 죽음 앞에서는 다 부질없다. 내가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도저히 버텨낼 자신이 없다.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그냥 지금 현재에 충실하자. 내가 할 수 있을 만큼의 표현을 하고 내가 할 수 있을 만큼의 관심을 내보이자. 언제가 될지 모를 그날에 내가 조금이라도 덜 후회할 수 있도록. 이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니까.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저자가 참 많이 부럽다. 이렇게라도 엄마를 추억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다시 엄마와 마주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