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들의 환대 - 제2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전석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지원도서


죽음을 마주하며, 삶을 다시 생각하다


예전엔 죽음이 아주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은근슬쩍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소설은 ‘죽음을 체험하는 공간’이라는 다소 낯설고 자극적인 설정으로 시작한다.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지자체의 사업, 이름마저 기묘한 ‘임종체험관’. 처음엔 이 설정이 일종의 블랙코미디이거나 사회 풍자의 배경일 거라 짐작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이곳이 단순한 이벤트 공간이 아님을, 그리고 이 소설이 말하려는 것이 단순히 ‘죽음을 준비하는 법’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소설은 미연, 유영, 가령, 승인이라는 네 명의 체험관 직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들은 죽음을 체험하러 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결국 자기 안에 있던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상처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외로움이나 아픔과 닮아 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외면하거나 말없이 삼켰던 분노와 미안함, 후회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폭우 속에 찾아온 한 방문객이 던진 말.

“죽으려고 했어요. 여기에 갔다 온 다음 날.”

그 한마디는 소설 속 경계를 무너뜨리고, 우리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린다.


이야기는 점점 추리극처럼 흘러가고, 네 명의 주인공 앞에 하나씩 ‘수상한 체험자’가 나타난다. 이 흐름 덕분에 이야기가 더 흥미로워지고, 자연스럽게 ‘나는 내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소설에서 삶과 죽음은 서로 반대되는 단어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가장 마음에 남았던 건 “희망이 없는데도 희망을 말하는” 이 소설의 태도였다. 절망의 끝에서조차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유서를 찢고, 누군가는 삶은 달걀 대신 날달걀로 바꾸며 죽음을 농담처럼 조롱하고, 의식처럼 치러낸다. 그렇게 아픔은 호소가 아닌 공유로, 고립이 아닌 연결로 전환된다. 이 소설은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삶의 절반을 지난 지금, “오늘은 당신의 첫 번째 기일입니다.”라는 문장이 이제는 죽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새롭게 삶을 써 내려가기 시작하는 서문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나 역시 조금은 더 환한 빛을 따라 살아내고 싶어졌다. 아주 작은 한 줄기라도 좋으니. 죽음을 떠올리며, 빛들의 환대를 받으며.


#빛들의환대 #전석순 #나무옆의자 #세계문학상수상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
설레스트 잉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채서포터즈3기 출판사지원도서입니다.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던 이야기”



설레스트 잉의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은 소설이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현실적인 기록이다. 나는 이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읽는 내내 나는 하나의 증언을 들었다. 누군가의 사라짐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 사라진 자리를 꿰매며 걸어가는 한 아이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오래전에 잃어버린 우리의 심장을 되짚었다.



버드, 아니 노아. 더는 자신의 이름으로 불릴 수 없게 된 한 아이가 있다. 어머니가 '파오'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얼굴이 '미국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감시받고, 침묵해야 하며, 지워져야 했다. 단지 어떤 ‘피’에서 비롯된 타자성이 이유였다. 나는 이 소년을 떠올릴 때마다, 우리가 거리에서 마주친 수많은 ‘지워진 존재들’이 함께 떠올랐다.



소설 속 미국은 낯설지 않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과, 어제 뉴스에서 본 장면들과, 우리가 싸워야 했던 수많은 권력의 얼굴들과 너무나 닮아 있다. ‘PACT’라는 이름 아래, 국가는 ‘순수’와 ‘애국’을 명분 삼아 폭력을 정당화한다. 소설은 그러한 국가 폭력이 어떻게 사적 감시와 분열, 혐오로 이어지는지를 잔혹하리만큼 정밀하게 보여준다.



이 소설은 ‘지금’이라는 시간과 너무나 가까운 디스토피아로 상상이 아니다. 반복되는 과거이며, 현재의 전조이고, 미래를 향한 경고다. 책을 태우는 대신 화장지로 갈아 넣는 문명화된 검열, 아이들의 이름을 지우고 얼굴을 납치하는 ‘정책’이라는 이름의 폭력. 작가는 말한다. “이것은 허구가 아니다. 이것은 내가 버틸 수 없어 결국 써야만 했던 진실이다.”



‘우리’의 불행이 ‘그들’의 행복 때문이라는 납득할 수 없는 논리로 사람들을 광기로 몰아넣는다. 마치 이주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을 향한 혐오가 늘 그래왔듯이. 이유를 만들어내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가장 비극적이다.



이야기는 살아 있는 존재이며, 기억의 저장소이자, 저항의 도구다. 노아가 그림 한 장을 붙잡고 어머니를 찾아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이야기 덕분이었다. 시와 말, 고리처럼 이어진 기억의 파편들이 공동체의 붕괴를 거슬러 올라가는 유일한 힘이 된다. 우리는 말해야 한다. 증언해야 한다. 그들은 단지 사라진 사람이 아니라, ‘다른 누구와도 다른 존재’였음을 말해줘야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내가 다시금 다짐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는 목격자여야 한다. 우리가 본 것, 들은 것, 그리고 사라진 사람들에 대해 말할 책임이 있다. 침묵은 또 다른 폭력이며, ‘존재’ 그 자체가 죄가 되는 세상에서 말하는 일은 곧 살아남는 일이다.


#우리의잃어버린심장 #설레스트잉 #비채 #디스토피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채서포터즈3기 출판사지원도서입니다.


영화가 태어나는 순간, 사람의 진심이 깃든 곳에서


살면서 내가 영화를 좋아하게 된 건, 단순히 그것이 재미있거나 감동적이어서만은 아니었다. 영화는 어떤 순간엔 나 대신 울어주고, 어떤 순간엔 나보다 먼저 질문을 던져준다. 특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그런 면에서 내게 특별했다. 그가 보여주는 세계는 늘 작고 보잘것없는 삶을 품에 안고, 그 안에서 희미하게 피어나는 진실과 구원을 담담히 응시해왔다.


이번에 읽은 책,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는 그가 프랑스 배우들과 함께한 첫 해외 프로젝트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제작 과정을 담은 기록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영화 제작 일지를 넘어서, 한 인간이 어떻게 진심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과 함께 창작하며, 자기 삶과 창작의 윤리적 의미를 되묻는지를 보여주는 자전적 고백이기도 하다.


책을 덮고 난 후 내 머릿속에 오래 남은 문장이 있다. “진실은 재미없지 않겠어?” 이 대사는 영화 속에서 노배우 파비안느가 딸에게 자서전의 왜곡을 지적받고 대꾸하는 말이지만, 동시에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연기와 삶의 경계를 오가며 살아온 배우이자 인간 파비안느의 고백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문장은, 감독 고레에다가 던지는 하나의 질문처럼 느껴졌다. "감독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며 내가 만드는 이야기, 그 이야기 속 진실은 어떤 모습인가?"


고레에다는 책 곳곳에서 '감독의 권력'에 대해 언급한다. 그의 영화가 늘 타인을 다루는 만큼, 그 타인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에 대해 그는 끊임없이 되묻는다. 배우에게 어떤 연기를 요구할 때, 어떤 이야기를 그들의 삶에 투영해낼 때, 창작자는 무언가를 구제하는 동시에 누군가를 해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의식한다. 그리고 이 윤리적 고민은 영화적 테크닉이나 스타일보다 훨씬 중요하게 이 책을 관통한다.


그는 언제나 “섬세하고 정중한 태도”를 잃지 않으려 애쓴다. 내가 특히 감탄한 대목은, 촬영지로 사용될 집에 머물며 대사의 길이를 공간감에 맞춰 조정하고, 배우의 해석을 듣고 장면을 수정하는 그 집요한 섬세함이다. ‘감독’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 협업자로서 영화라는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그의 태도는 지금 이 시대의 모든 리더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보인다.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여성의 나이 듦', 그 중에서도 '대중 앞에서 늙어가는 여성 배우'의 고독과 자존심을 매우 깊이 있게 포착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파비안느는 젊은 시절의 화려함에 안주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만든 가면을 벗어내려는 시도를 한다. 물론 그녀의 방식은 정직하지도, 따뜻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 투명한 자기 고백을 통해 우리는 그녀의 오랜 외로움과 두려움을 엿보게 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지금의 유튜브 시대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과거 배우들을 ‘접근 불가능한 존재’로 여겼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그들이 냉장고 문을 열고 라면을 끓이는 일상까지 소화하는 콘텐츠 속에서 본다. 하지만 그 일상이 진짜 ‘진실’일까? 고레에다는 이 질문을 영화라는 방식으로 천천히, 그리고 정면으로 응시한다.


책을 읽으며 감독이 자신의 ‘고레에다다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는 부분에서 깊이 공감했다. 일본어를 벗어나고, 일본을 벗어나도 남는 나만의 이야기가 있을까. 이 질문은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내가 내 자리, 내 언어를 떠나도 여전히 ‘나’일 수 있을까. 그 물음이 고레에다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탄생시켰고,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바로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나 역시 40대의 경계에서 나의 진실과 가식, 기억과 왜곡 사이를 들여다보게 된다. 엄마로서, 사회인으로서, 여자로서 살아온 내 삶은 ‘진실했는가’ 혹은 ‘진실할 수 있었는가’. 고레에다의 질문은 내게 그렇게 스며들었다.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는 자기 삶을 진심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창작일지이자 성찰의 기록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보여주는 ‘정중한 연출’의 태도는 사회 곳곳에서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어떤 감수성을 요구하고 있다.


나처럼 영화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나서 꼭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다시 보기를 권한다. 어느 장면에서든, 배우의 눈물 너머로 고레에다의 따뜻한 눈길이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조금씩 진실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영화가태어나는곳에서 #고레에다히로카즈 #비채 #파비안느에관한진실 #영화에세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스티스의 한 뼘 더 깊은 세계사 : 유럽 편 - 5,000년 유럽사의 흐름이 단숨에 읽히는 저스티스의 한 뼘 더 깊은 세계사
저스티스(윤경록)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지원도서


“교과서 밖 진짜 유럽사,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도 좋아요”


아이들 뒷바라지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어느새 ‘역사’라는 단어와는 멀어져 지냈다. 책을 읽어도 실용서나 에세이에 손이 갔고, 역사는 ‘머리 아픈 암기’라는 인상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저스티스의 한 뼘 더 깊은 세계사(유럽 편)』를 만나면서 그 낡은 인상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이 책은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역사책으로, 다시 지적인 재미를 되찾게 해 준 뜻밖의 시작점이 되었다.


구독자 14만 명의 역사 유튜브 <저스티스>에서 출발한 이 책은 영상 콘텐츠 특유의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을 책으로도 생생하게 옮겨냈다. 수메르 문명에서 현대 유럽까지 5천 년에 이르는 유럽의 역사를 다룬다고 하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책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중요한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짚어주는 방식이라 오히려 술술 읽힌다.


‘왜 유럽사는 꼭 알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면, 이 책은 그 물음에 납득 가능한 답을 준다. 르네상스, 종교개혁, 산업혁명처럼 세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인 순간들뿐 아니라, 우리가 교과서에서 대충 넘겼던 전쟁과 협약, 인물들에 대해서도 “이래서 중요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단순히 사건과 연도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여파와 변화의 본질까지 함께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00년 전쟁이 단순한 영토 싸움이 아니라, 이후 영국 산업의 태동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은 ‘과거는 현재의 뿌리’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또한 이 책은 서구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헬레니즘 시대를 유럽과 중동의 서로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는 방식이나, ‘승자의 기록’만으로 남은 역사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은 이제 우리에게도 필요한 역사 읽기의 자세임을 일깨워 준다.


유럽사라는 커다란 물줄기를 따라가며 시대의 흐름과 인간의 욕망, 문명의 충돌을 ‘한 뼘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확실히 넓어질 것이다.



#저스티스의한뼘더깊은세계사 #저스티스 #윤경록 #믹스커피 #유럽편 #유럽사 #세계사 #협찬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트랜지션, 베이비
토리 피터스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채서포터즈3기 출판사지원도서입니다.


나는 불편하다. 젠더 혼란을 미화한 건 아닐까?


토리 피터스의 『디트랜지션, 베이비』는 겉보기엔 ‘용감한 질문’을 던지는 듯하지만, 실상은 생물학적 현실과 전통적 가치에 대한 도전과 부정을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특히 이 소설은 페미니즘과 트랜스젠더 이슈를 혼합하며, 가족, 성별, 부모됨 같은 근본적 개념들을 해체하려 한다.


작품 속 인물 리즈는 트랜스 여성으로, 출산 능력이 없음에도 ‘엄마’가 되고자 한다. 하지만 ‘모성’이란 단순히 아이를 돌보는 감정이 아니라, 생물학적·심리적 연결이 결합된 복합적인 개념이다. 사회가 엄마라는 역할을 시스젠더 여성에게 중심적으로 허용해온 이유는 단순한 ‘차별’이 아니라, 생물학적 현실과 그에 따른 책임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기본적인 상식과 경계를 흐리려 하며, ‘돌봄’만으로도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 엄마라는 이름에 혼란을 주고 있다.


에임스라는 인물은 트랜스 여성이었다가 다시 남성으로 ‘디트랜지션’한 존재다. (남성→여성→다시 남성) 작가는 이를 통해 젠더 정체성의 유동성과 사회의 억압을 말하고 싶어 하지만, 오히려 그 인물 안에 존재하는 정체성 혼란과 정신적 불안정성에 주목하게 된다. 성별은 개인의 기분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의상’이 아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마치 정체성의 혼란 그 자체를 용기나 실험으로 치켜세우며, 젠더에 대한 회의감을 넘은 혼란을 안겨준다. 성기 바꾸기가 장난인가?


소설에서는 전통적 가족제도를 낡은 것처럼 묘사하며, 트랜스 여성, 디트랜스 남성, 시스젠더 여성이 함께 아이를 키우는 형태를 하나의 대안처럼 제시한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가족’은 책임과 안정보다는 감정적 선택과 즉흥성에 기반한 공동체에 불과하다. 가족이란 단지 양육의 기능만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세대 간 연속성, 안정성을 전제로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이 말하는 ‘가족의 다양성’은 그저 급진적 실험에 불과하다.


‘포용’이라는 미명 하에 “트랜스 여성도 여성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그 질문 자체가 이미 현실을 거스르고 있다. 여성이라는 성은 단순히 정체성의 문제나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생물학적 현실과 사회적 역할의 총합이다. 트랜스 여성을 여성으로 받아들이는 문제는 단순한 ‘포용’으로 풀 수 없는 복잡한 쟁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를 문제화하기보다는, 비판을 침묵시키는 건 아닐까?


『디트랜지션, 베이비』는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소설이다. 시대정신이라 불리는 '포용'과 '다양성'을 비판 없이 소비하려는 문학계의 흐름 속에서 탄생한 작품 같다. 전통적 가치와 상식에 기반을 둔 나 같은 사람은 트랜스젠더 인물들의 혼란과 고통,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책을 ‘용감하다’고 평가하기보다는, 자신에게도, 태어날 아기에게도 너무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디트랜지션베이비 #토리피터스 #비채 #비채서포터즈3기 #협찬도서 #트랜스젠더 #디트랜스 #시스젠더 #다양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