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키메라의 땅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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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본지원도서



핵으로 뒤덮인 대지 위에서, 인간의 오만은 마침내 한계에 다다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키메라의 땅』은 그 폐허 위에 새로이 피어나는 생명 ― 인간과 동물의 혼종, 키메라 ― 의 운명을 따라가는 장대한 이야기다. 



소설은 진화생물학자 알리스 카메러가 주도하는 ‘변신 프로젝트’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그는 하늘을 나는 에어리얼, 땅을 파고드는 디거, 바다를 유영하는 노틱을 설계한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언제나 그렇듯, 변화와 다름을 환영하기보다 배척한다. 결국 핵전쟁으로 인류는 스스로를 몰락시키고, 아이러니하게도 알리스의 실험적 창조물들만이 폐허 위에서 새로운 주인이 될 자격을 얻게 된다. 이 아이러니야말로 베르베르가 던지는 냉정한 메시지 아닐까.



베르베르는 늘 거대한 스케일의 서사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되묻는다. 『개미』에서 미시적 세계를 통해 인간의 오만을 비추었다면, 이번에는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신인류의 시선에서, ‘인간이란 종이 과연 특별한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흥미로운 점은, 키메라들의 존재가 괴물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다양성의 가능성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하늘, 땅, 바다 ― 지구를 이루는 세 요소에 각각 적응한 그들은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묻는, 하나의 새로운 답안지처럼 보인다.



읽는 내내 서늘한 공포와 동시에 묘한 희망이 교차했다. 인간의 파괴적 본성이 결국 제 종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전망은 더 이상 소설적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종의 경계가 무너지고 뒤섞이는 과정 속에서 태어나는 또 다른 생명들은, 우리를 대신해 새로운 지구의 주인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류의 종말일까, 아니면 지구 생명사의 또 다른 진화일까?



『키메라의 땅』을 덮으며 남는 것은 경이와 두려움이 뒤섞인 침묵이다. 우리가 ‘끝’이라고 부르는 자리에, 어쩌면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인간의 시작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지구라는 오래된 행성은, 여전히 생명의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키메라의땅 #베르나르베르베르 #열린책들 #가제본서평단 #키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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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가지 테마로 읽는 도시 세계사 - 철학의 도시 아테네부터 금융의 도시 뉴욕까지 역사를 이끈 위대한 도시 이야기 테마로 읽는 역사 9
첼시 폴렛 지음, 이정민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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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도시의 역사는 곧 인간의 역사다. 나는 늘 도시를 거닐며 시간의 결이 느껴지는 장소에 머물기를 좋아한다. 오래된 돌길, 닳은 계단, 때로는 지하철역 벽면에 무심히 걸린 사진 한 장에도 이야기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느끼곤 한다.


이 책은 1만 년의 세월을 40개의 도시로 나누어 보여준다. 고대 여리고의 부장품에서 권력의 흔적을 읽고, 괴베클리 테페에서 종교가 농경에 앞섰다는 통념을 뒤집는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문명의 기원’이라는 물음 앞에 서게 된다.


개인적으로 초기 도시들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농업이 시작되고, 우루크에서 최초의 문자가 탄생한 이유가 곡물의 회계 처리 때문이었다는 설명은 문명이 얼마나 실용적인 문제 해결에서 출발했는지를 보여준다. 모헨조다로의 상하수도 시설이나 공중목욕탕이 로마보다 앞섰다는 대목에서는 오래된 세계가 지닌 정교함과 우리 인식의 편협함을 동시에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정보 나열에 그치지 않고, 도시별로 인구 밀도, 개방성, 재정 안정성이라는 ‘혁신의 공식’을 통해 공통점을 짚어내고, 각 도시가 만들어낸 고유한 문화적·사회적 에너지의 흐름을 섬세하게 추적한다. 피렌체에서는 금융업과 예술 후원이 어떻게 르네상스를 열었는지를 보여주고, 아테네에서는 외부 사상과 기술을 유연하게 받아들인 개방성이 철학과 민주주의의 탄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짚는다. 이러한 서술은 우리가 ‘도시’라는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는다.


종교적 중심지였던 괴베클리 테페나 고대 도시들의 권력 구조는 과연 자유로운 개인을 존중했는가? 실제로 많은 문명은 배제와 통제, 때로는 폭력과 결속의 논리 위에 세워져 있었으며, 오늘날조차 ‘문명화된’ 도시 안에서조차 약자의 자유는 보장되지 않는다.


인간이 과거의 자신보다 조금은 나아지려는 움직임을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시도해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마치 도시가 끊임없이 갱신되는 장소인 것처럼, 인류도 스스로를 개선해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 말이다. 그리고 그런 희망은 피렌체의 공방, 볼로냐의 교실, 아테네의 광장에서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골목과 광장에서도 자라고 있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15가지 ‘토의를 위한 질문’은 이 여정을 마무리하면서도 다시금 사유의 시작점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도시를 사랑하고, 도시에 깃든 시간과 사람을 아끼는 이들이라면 이 책은 분명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책장을 덮고 난 지금, 나는 다시 한번 내가 사는 도시를 거닐며, 이곳에서 만들어질 다음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상상이, 곧 우리의 미래일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40가지테마로읽는도시세계사 #첼시폴렛 #현대지성 #도시세계사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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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
조니 선 지음, 홍한결 옮김 / 비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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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서포터즈3기 출판사지원도서입니다.


쉼을 꿈꾸는 일이 어쩐지 사치처럼 느껴지는 날들의 연속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조급하고, 쉴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해야만 겨우 한숨 돌릴 수 있는 삶. 그래서 이 책의 첫 문장을 읽었을 때, 울컥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는 너무 많은 걸 해내며 살아온 한 사람이, 지쳐버린 끝에서 비로소 쉼을 배우려 애쓰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바쁘게 달려온 만큼, 작가의 번아웃은 깊었고, 그로 인해 ‘쉬기’라는 가장 단순하지만 어려운 시도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쉬는 동안’에도 공상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결국 또 하나의 책을 완성한다. 이 모순적인 여정이야말로, 현대를 사는 우리가 겪는 쉼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가장 유쾌하고도 진지한 반어가 아닐까?


곳곳에 등장하는 조니 선의 라인 드로잉은 글의 결을 따라가며 마음을 따뜻하게 만져준다. ‘공백 채우기’, ‘이사’, ‘우정’ 같은 짧은 글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이자, 우리 삶의 거울 같다. “자신의 변화도 애도할 수 있다"라는 문장은,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낡아지는 내 안의 무언가를 조용히 안아주는 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쉼이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강박 없이, 내 템포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론 그게 글쓰기일 수도 있고, 그림 그리기일 수도 있고, 반려견과 눈을 맞추는 일이거나 그냥 멍하니 앉아있는 순간일 수도 있겠다. 중요한 건, 그 모든 선택이 내게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쉼은 회복이고 지쳤을 때, 나의 본래 속도로 돌아가는 일이다. 이 책은 삶에 지친 이들이 각자의 삶을 조용히 돌아볼 수 있는 거울 같아서, 번아웃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번아웃이라는 말조차 입에 올리기 어려운 이들에게도 조심스레 건네고 싶다.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그건 아마, 나를 다시 만나는 가장 조용한 방법이 아닐까? 오늘도 쉼을 꿈꾸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조니 선의 문장처럼 다정하게, 자신에게 말을 건네게 되기를.


#하던일을멈추고바닷속으로 #조니선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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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 정호승 우화소설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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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서포터즈3기 출판사지원도서입니다.


작은 존재들이 건네는 단단한 위로


아이를 키우고, 부모를 돌보고, 일상과 일 사이를 쉼 없이 오가다 보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작은 돌멩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 《조약돌》은 조용히 말을 건넨다. “괜찮아, 너는 너만의 무늬를 지닌 존재야.”라고. 정호승 시인의 우화는 나무나 조약돌 같은 낮고, 조용한 존재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감정이 스며든다. 외로움, 기다림, 두려움, 그리고 사랑. 그건 모두 우리가 너무 잘 아는 감정들이니까. 특히 조약돌 이야기에서 마음이 오래 머문다.


누군가의 손에 쥐어지는 걸 ‘기회’라 믿는 작은 돌. 그 마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우리 자신을 닮았다. 무언가 되어야만 의미 있는 삶이 아니라, 그저 존재 자체로도 빛나는 삶이 가능하다는걸, 시인은 조약돌을 통해 조용히 알려준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낙타의 이야기다. 기다림이 끝내 이별로 이어질 때, 우리는 상대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살면서 많은 관계의 끝을 경험했고, 그 끝에서 마음이 다 찢겨나가는 아픔도 남았다. 그런 나에게 낙타의 “저기 오아시스가 있다"라고 전하는 말은 이별을 더 이상 슬픔으로만 기억하지 않게 해주었다. 작별에도 따뜻한 방향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의 가장 큰 힘은, “이야기는 짧지만 질문은 길다"라는 점이다. 그 질문은 삶의 핵심을 건드린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누구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그리고 나라는 존재는 어떤 빛깔로 여기에 머물고 있는 걸까.


삶에 지치고, 스스로를 작고 희미하게 느끼는 날들에 《조약돌》은 내 안에 남아 있던 봄비 같은 감정을 깨운다. 겉으로는 여전히 겨울 같아도, 그 안에선 분명히 꽃망울이 올라오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조용히 위로를 건네고 싶다면, 아니,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주고 싶다면 이 책 한 권을 추천하고 싶다.


지금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이미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 안에 있다고, 곧 당신도 피어나게 될 거라고.


#조약돌 #정호승 #비채 #선물하기좋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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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정호승 우화소설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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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서포터즈3기 출판사지원도서입니다.


말없이 말을 거는 존재들의 이야기


나이가 들수록 말수가 줄었다. 많이 겪어서일까, 아니면 오래 견디며 쌓은 참을 인忍 때문일까. 하지만 말이 없어도 누군가를 이해하고, 오래 바라보는 눈길에도 충분히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항아리》에는 세상에서 비켜난 듯한 존재들이 나온다. 잘못 구워져 버려졌던 항아리, 하늘을 그리워하지만 날 수 없는 나무 새, 서울역 앞의 눈사람들. 누구에게도 특별할 것 없는, 어쩌면 우리 자신 같기도 한 이 존재들이 한 편의 짧은 이야기 속에서 다시금 "나 여기 있어요"라고 손을 내민다.


어릴 적 읽었던 이솝우화가 날카로운 교훈을 남겼다면, 이 책은 어른이 된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 말한다.

"괜찮아, 지금 모습 그대로도 의미 있어." 마치 긴 겨울을 지나 피어난 꽃 봉오리처럼, 그렇게 작고 조용한 위로가 페이지마다 피어난다.


하루가 무겁게 끝나는 저녁, 잠시 책장을 펼쳐 한 편만 읽어도 좋다. 차례를 따르지 않아도, 어느 이야기든 나지막이 말을 걸어올 테니까. 아이에게 읽어줘도 좋고, 지친 친구의 생일 선물로 건네도 좋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닿을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


정호승 시인의 글은 단지 ‘따뜻하다’는 말로는 모자라다. 그건 마치 겨울 창가에 가만히 스며드는 햇빛 같다.(지금은 너무 뜨거운 여름이지만) 사람을 밀어내지 않고, 조용히 안아주는 온기. 그 따스함 속에서 내 마음의 항아리도 조금씩 다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항아리》는 그런 책이다. 버려졌다고 느끼는 모든 마음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조용한 기도 같은 이야기.


#항아리 #정호승 #비채 #선물하기좋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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