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책사 - 한국사의 명암을 가른 관계의 힘
김준태 지음 / 믹스커피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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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역사는 왕이 아닌 관계가 만든다


우리는 광개토대왕, 세종, 정조처럼 위대한 왕의 이름은 쉽게 기억한다. 하지만 역사를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한 시대를 움직인 것은 한 사람의 천재가 아니라 서로를 완성한 왕과 책사의 관계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은 고구려부터 고려, 조선까지 40개의 군신 관계를 통해 권력과 조언, 신뢰와 견제의 역사를 새롭게 읽어낸다.


고국천왕이 이름 없는 농부였던 을파소를 국상으로 발탁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반대 세력을 제압하며 그가 마음껏 개혁을 펼칠 수 있는 권한까지 보장한다. 인재를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리더십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반대로 궁예와 왕건의 이야기는 권력이 신뢰를 잃는 순간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 준다. 두려움으로는 사람을 복종시킬 수는 있어도 끝까지 함께할 수는 없다. 수백 년 전의 역사 속 교훈은 지금의 조직과 사회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가까운 역사인 조선뿐 아니라 고구려와 고려의 사례를 풍성하게 담고 있어서 익숙한 인물보다 덜 알려진 군주와 책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사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이 말하는 것은 단순한 리더십이 아니라 좋은 관계가 좋은 결과를 만든다는 오래된 진실이다. 왕과 신하의 이야기를 읽고 있지만, 어느새 회사의 상사와 동료, 나를 이끌어 준 사람들, 그리고 내가 함께하는 관계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왕과 책사》는 왕들의 성공담보다 사람을 알아보고 믿는 힘이 어떻게 역사를 바꾸었는지를 보여 주는 의미 있는 책이었다.


#왕과책사 #믹스커피 #김준태 #일파만파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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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있었던 곳
정찬 지음 / 말하는나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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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역사를 배우지 않으면, 타인의 고통은 농담이 된다. 5·18민주화운동을 기록한 소설이 아닌 인간이 왜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지를 묻는 작품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최근 배재고 야구부에서 벌어진 5·18 조롱 논란이었다. 경기장에서 학생들이 외친 응원 구호는 단순한 장난이나 철없는 실수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을 잃은 기억이고, 공동체가 피로 지켜낸 민주주의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학생들이 악의를 가지고 있었다기보다 그 역사의 무게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을 가능성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학생 개인의 일탈 이전에 우리 사회 역사교육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건처럼 다가왔다.


『그들이 있었던 곳』은 바로 그 빈자리를 메운다. 소설은 시민군과 계엄군, 신부와 기자, 평범한 시민들의 시선을 따라가며 1980년 광주가 왜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교과서 속 몇 줄의 사건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사람들의 얼굴을 만나게 한다.


우리는 역사교육을 흔히 연도와 사건을 외우는 공부로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역사교육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감수성을 배우는 과정이어야 한다. 5·18을 안다는 것은 '1980년 5월'이라는 날짜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폭력 앞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선택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런 이해가 있었다면 누군가의 비극을 응원 구호나 유행어로 소비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2024년 비상계엄 사태를 보며 이 작품을 다시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는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시민들이 지켜야 하는 현재의 가치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과거를 잊으면 같은 잘못은 다른 모습으로 반복된다. 이번 배재고 논란 역시 역사가 현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있었던 곳』은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니라 민주 시민을 위한 교과서에 가깝다. 올바른 역사교육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 그리고 타인의 아픔을 함부로 희화화하지 않는 시민의식을 기르는 일이다.


역사는 시험을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지금의 자유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배우는 것이다. 『그들이 있었던 곳』은 우리에게 묻는다. "그들이 있었던 그곳을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번 사회의 논란은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그 기억을 다음 세대에게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가."


#그들이있었던곳 #정찬 #말하는나무 #일파만파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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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팅 - 유령화 시대의 사랑
도미닉 페트먼 지음, 최리외 옮김 / 동녘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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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지만, 가장 큰 상처 역시 사람에게서 받는다. 인간관계가 삶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라고 생각하다. 갈등은 견딜 수 있어도 이유를 모르는 침묵은 견디기 어렵다. 아무 말 없이 사라진 사람 앞에서 우리는 끝없이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도미닉 페트먼의 『고스팅』은 바로 그 설명할 수 없는 부재의 고통을 철학과 문학, 사회학을 통해 들여다보는 책이다.


우리는 흔히 고스팅을 '잠수 이별' 정도로 가볍게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을 '상징적 자살'이라고 표현한다. 육체는 살아 있지만 관계 속에서는 완전히 사라진 존재가 되는 것이다. 고스팅을 당한 사람은 상대를 잃은 것이 아니라, 이유를 영원히 알 수 없는 채 질문만 남겨진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라는 질문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고스팅을 개인의 무례함으로만 보지 않고, 신자유주의와 디지털 기술이 결합하면서 사람을 쉽게 연결하지만, 더 쉽게 끊어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관계는 점점 소비재처럼 변하고, 부담이 되면 설명보다 차단이 더 간편한 선택이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서로를 떠나보내는 기술은 익숙해졌지만, 떠남을 감당하는 방법은 잃어버렸다.


이 책은 연인과 친구 사이, 직장에서의 무응답, 플랫폼의 자동화된 응대,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까지도 '사회적 고스팅'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문득 현대인은 사람에게만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도 쉽게 잊히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는 메시지처럼, 우리의 목소리도 수많은 시스템 속에서 묻혀버리는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인간관계가 가장 큰 스트레스인 이유는 관계 자체보다 예측할 수 없음에 있다. 상대의 마음은 보이지 않고, 설명 없는 침묵은 어떤 말보다 큰 상처가 된다. 우리는 정말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연결되어 있다는 착각 속에서 점점 더 유령처럼 서로를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것일까.


관계를 쉽게 시작하고 쉽게 끝내는 시대일수록, 마지막 인사 한마디와 설명하려는 노력은 생각보다 훨씬 큰 책임이자 배려라는 사실을 조용하게 일깨워준다.


#고스팅 #도미닉페트먼 #동녘 #일파만파독서모임 #ghosting #최리외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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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문제가 가득한 레스토랑
유키 신이치로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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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모둠 견과류, 떡국, 똠얌꿍, 콩고물을 묻힌 떡을 주문하시면 수수께끼 풀이가 시작된다.


코로나가 바꾼 일상의 변화처럼, 배달 전문점의 셰프와 야간 배달기사. 비대면 주문과 배달 앱이 일상이 된 시대를 배경으로, 사건마저 앱을 통해 의뢰받는다는 설정은 신선하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것이 연결되는 시대답게, 추리의 재료 역시 사람들의 흔적과 데이터, 그리고 일상의 작은 틈에서 나온다. 그래서 이 소설은 '현대적이다'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미스터리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셰프의 철학이다. 그는 자신을 탐정이라 부르지 않는다. 손님이 원하는 것은 차가운 진실이 아니라 만족스러운 한 접시의 요리처럼 납득할 수 있는 해답이라고 말한다. 그 생각은 미스터리의 문법을 살짝 비껴가면서도 오히려 현실에 더 가까워 보인다. 우리는 실제 삶에서도 객관적 진실보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설명을 더 갈망하지 않는가.


배달기사와 셰프가 호흡을 맞추며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은 리듬감이 뛰어나고, 에피소드마다 분위기가 달라 지루할 틈이 없다. 가볍게 웃다가도 어느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고, 마지막에는 인간에 대한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일본 독자들이 "술술 읽히는데 마지막 한 방이 묵직하다"라고 평가한 이유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미스터리를 좋아하고 '요즘 세상을 가장 잘 담아낸 소설'을 찾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배달 앱과 SNS, 비대면 사회라는 너무도 익숙한 풍경 속에서, 유키 신이치로는 오늘날에만 가능한 새로운 탐정 이야기를 맛있게 한 상 차려냈다. 제목처럼 어려운 문제는 가득하지만, 그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만큼은 무척 즐겁다.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납득할 수 있는 해답일지도 모른다


#어려운문제가가득한레스토랑 #유키신이치로 #김은모옮김 #북다 #일파만파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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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하여 불멸의 연애 6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이상원 옮김 / 니케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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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대단한 사건도, 극적인 반전도 없는 체호프의 글을 좋아한다. 마치 퇴근길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문득 바라보게 되는 순간처럼, 체호프는 애써 외면해 온 감정들을 조용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사랑은 왜 늘 늦게 오는가


체호프의 대부분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거나, 너무 늦게 깨닫거나, 시작과 동시에 고통이 된다. 특히 이 책에 실린 네 편은 안톤 체호프의 사랑관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사랑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자신의 삶을 망설이고 주저하는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그와 그녀」는 제목 그대로 '그'와 '그녀'의 이야기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감정의 엇갈림 속에서 인간의 허영과 오해를 보여준다. 사랑은 상대를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싶은 모습을 투영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훗날 체호프가 평생 탐구하게 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출발점처럼 읽힌다.


「다락방이 있는 집」은 네 작품 가운데 가장 씁쓸한 작품이었다. 여기서 체호프는 사랑보다 더 중요한 신념이 있는가를 묻는다. 그 누구도 악인이 아니다. 언니도 옳고, 화가도 옳다. 하지만 각자의 확신이 너무 강한 나머지 사랑이 설자리를 잃어버린다. 사랑은 거대한 이상보다 훨씬 연약한 것임을 보여준다.


「사랑에 관하여」는 아마 네 작품 중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일 것이다. 서로 사랑하지만 사회적 책임과 도덕, 체면 때문에 끝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기차역에서 이별하는 장면은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순간 가운데 하나다. 그들은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이 생각한 나머지 사랑을 놓쳐 버렸다. 체호프는 여기서 인간이 불행한 이유가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처음에는 단순한 불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진정한 사랑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수많은 연애를 가볍게 여기던 사람이 안나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진심을 알게 된다. 그들의 사랑을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대신 사랑이야말로 인간을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이라고 조용히 이야기한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깨달음이며, 때로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더 깊어진다. 이 네 편의 단편을 덮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남았다. 우리 삶에서 가장 큰 비극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알면서도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처럼 망설이고, 후회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사랑이 세상을 구원하진 못하지만 사랑을 외면한 삶이 얼마나 공허한지 보여주고 있다.


#사랑에관하여 #안톤체호프 #니케북스 #일파만파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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