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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평점 :

☆출판사지원도서
“책과 함께 늙어가는 삶에 대하여”
책이라는 물성을 사랑한다는 건, 단순히 활자와 종이의 결합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에 느껴지는 묵직한 책등의 두께, 손끝으로 넘길 때의 감촉, 문장 사이사이에 스며든 시간의 냄새, 그리고 그 책을 만든 누군가의 노동과 마음까지 느끼는 일이다.
김혜진의 『오직 그녀의 것』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손들”의 세계, 편집이라는 내밀하고 고요한 노동의 세계를 펼쳐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그 세계 속에서 오래도록 머물렀다. 마치 내 책장 속 낡은 책들이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듯한 감각이었다.
주인공 석주는 90년대 초, 교열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그 시절의 출판사는 활판 인쇄가 남아 있고, 원고는 종이로 묶여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던 시절이었다. 석주는 교정지를 붉은 펜으로 고치며, 서서히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간다. 그녀는 늘 조용하고 성실하지만, 그 조용함 안에는 한 문장을 살리고자 하는 집요한 사랑이 있다. 편집의 일은 눈에 띄지 않지만, 한 권의 책이 독자에게 닿기 전까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그림자 예술’이다. 김혜진은 이 세계를 요란한 감정이 아닌, 잔잔한 호흡으로 그려낸다.
책을 만드는 일이란 결국 사람을 다루는 일이기도 하다. 석주는 오기서 과장의 냉정한 기준 속에서 단단해지고, 작가와의 관계 속에서 일의 의미를 새로 배워나간다. 그리고 편집자 소모임에서 만난 조원호와의 관계를 통해 “일과 사랑”의 경계가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깨닫는다. 둘 다 예측할 수 없고, 완벽하지 않으며, 그럼에도 매일의 반복 속에서 비로소 무언가가 쌓인다. 책을 만든다는 일은 결국 삶을 만들어가는 일이고, 사랑을 지속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걸, 나는 석주를 보며 새삼 배웠다.
“좋아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나가게 되거든요” p.253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오래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좋아해서 시작했지만, 때로는 지치고 다치면서도 도저히 그만둘 수 없었던 어떤 일. 석주에게 그것은 편집이었고, 나에게는 책 그 자체였다. 책은 늘 나를 위로해 주지만, 동시에 나를 시험해왔다. 그건 어쩌면 ‘좋아한다’는 감정이 본래 가진 이중성일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책장 속 책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석주들이 있었다. 이름 없이 교정지를 넘기던 누군가, 밤새 문장을 고치던 편집자들, 문학의 뒷면에서 묵묵히 살아온 이들. 이 소설은 그들을 위한, 그리고 그들 덕분에 책을 사랑하게 된 우리를 위한 헌사다.
“책을 좋아하나요?” 그 말이 왠지 따뜻하게 나에게 묻는 듯, 나에게 책이, 그리고 이 소설이 ‘오직 나의 것’이 되는 순간이었다.
#오직그녀의것 #김혜진 #문학동네 #독파
좋아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나가게 되거든요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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