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결말을 바꾼다 - 삶의 무의미를 견디는 연습 철학은 바꾼다
서동욱 지음 / 김영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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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는 일상 속에서 철학이 어떻게 현실의 방향을 움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서동욱 교수는 전작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에서 사유가 감정의 기후를 바꾼다고 말했다면, 이번에는 사유가 삶의 결말을 바꾼다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철학은 거창한 학문이 아니라, 하루를 조금 다르게 살아보는 연습이기 때문이다.


책은 네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다. ‘먹기’와 ‘쾌락’ 같은 일상의 행위를 철학적으로 들여다보는 1부에서는 에피쿠로스가 왜 질병 속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히 참는 법이 아니라, 고통의 의미를 새로 해석하는 법이다. 나 또한 불안하거나 피로할 때, 이 책의 문장을 곱씹으면 일상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진다.


2부의 핵심은 ‘실망’이다. 우리는 좌절을 피하려 하지만, 서동욱은 실망이야말로 인간을 성장시키는 공부라고 말한다. 철학은 인생의 ‘답안지’가 아니라, 실패를 통과하며 얻는 사유의 훈련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사는 연습”이라는 표현이 오래 남았다. 철학은 죽음을 준비하는 학문이 아니라, 더 단단히 살아보기 위한 기술이다.


3부와 4부는 세계를 낯설게 보는 법을 가르친다. 구역질, 부분과 전체, 타자와 자유 같은 주제들이 등장하지만,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킨다. 결말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혁명이 아니라 “미세한 차이”라는 것이다. 내 안의 편견을 조금 비틀고, 타자를 향한 시선을 조금 열어두는 일. 그것이 곧 철학의 시작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는 말을 개인의 구호로 받아들였다. 일상의 결말, 관계의 결말, 생각의 결말을 조금씩 다르게 쓰는 힘. 철학은 거창하지 않다. 다만 멈춰 서서 한 문장을 더 깊이 생각할 용기를 주는 것.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바뀌는 건 결말뿐 아니라, 그 결말을 기다리는 우리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철학은결말을바꾼다 #서동욱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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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비 이야기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비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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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유스케의 《여름비 이야기》는 장마철의 눅진한 공기 같은 공포의 이야기로, 읽다 보면 비 냄새 속에 숨어 있는 인간의 어둠이 느껴진다.

기시는 언제나 초자연보다 인간을 택한다. 이번 책에서도 공포의 근원은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다. <5월의 어둠>의 하이쿠에 숨은 죄의식과 후회, <보쿠토 기담>의 향락 속에 스며든 자기 파괴로 타락해가는 젊은이가 등장하고, <버섯>에서는 버섯이 자라며 고립된 집을 덮어버리고 그 속에서 주인공은 악의를 느낀다. 세 이야기 모두 마음속의 어둠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시의 문장은 냉정하면서도 이상하게도 아름답다. 비가 내릴 때마다 기억이 사라지고, 버섯이 퍼지듯 죄책감이 확산된다. 현실적인 서스펜스와 환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그 순간, 나는 서늘함보다 슬픔을 느꼈다. 인간의 악의는 결국 외로움과 공허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보여준다.

책을 덮은 뒤에도 장마 소리가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가을비 이야기》가 죽음의 냄새를 품은 스산한 비였다면, 《여름비 이야기》의 비는 살아 있는 인간이 저지른 죄를 씻어내지 못한 채 흘러내리는 비다. 창밖의 빗줄기가 현실의 균열처럼 느껴지는 경험은 기시 유스케가 만들어내는 진짜 공포다.

악의를 통해 인간을 해부하는 냉혹한 실험 같은 책! 읽는 동안 나는 ‘공포’가 아니라 ‘자각’에 몸서리쳤다. 나도 일상 속에서 저런 어둠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여름비이야기 #기시유스케 #비채 #호러소설 #가을비이야기 #악의 #5월의어둠 #보쿠토기담 #암흑기담집 #이호러가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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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과 군상
하인리히 뵐 지음, 사지원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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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와 문서로 레니를 ‘증거‘처럼 배열한다. 배열이 끝나면 레니의 윤리가 또렷해진다. 전후 독일의 기만, 재건의 탐욕, 신앙과 위선이 드러난다. 레니는 비영웅적 선함으로 생존과 연대의 문법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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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안인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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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서포터즈3기 출판사지원도서입니다.


《복안인》을 덮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오래도록 가라앉는다. 인간이 만들어낸 폐허 위에서, 여전히 살아가려는 생명의 마지막 몸짓을 그린 지구의 초상화다.


나는 플라스틱을 씻어 말리며 쓰레기 분리수거일마다 이 책을 떠올렸다. 우리가 버린 그 작은 플라스틱들이 모여, 바다 한가운데 ‘섬’을 이룬다. 그리고 그 섬은 언젠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 우밍이는 이 끔찍한 순환을 신화의 언어로 번역한다. 와요와요의 소년 아트리에와 타이완의 여성 앨리스가 만나는 순간, 바다는 더 이상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를 기억하는 의식 있는 존재로 변한다.


“자연은 반격하지 않는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이 문장은 소설 속에서 가장 잔인하고도 진실하다. 인간이 자연을 파괴할 때, 그것은 ‘공격’이지만 자연의 변화는 ‘복수’가 아니다. 그저 균형의 복원일 뿐이다.


쓰레기 섬, 복안인, 카방의 신화, 그리고 앨리스의 절망은 모두 한 점으로 수렴한다. 그것은 보는 눈의 문제, 곧 ‘복안’의 의미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본 것만이 세계의 전부라 착각한다. 그러나 곤충의 겹눈처럼 세상을 입체적으로 본다면, 우리는 더 이상 개발과 소비를 ‘진보’라 부르지 못할 것이다.


읽는 내내 숨이 막혔다. 아름다운 문장이 파도처럼 밀려오지만, 그 속에 섞인 냄새는 썩은 바다의 것이다. 아트리에는 죄가 없다. 그러나 문명의 죄는 그를 집어삼킨다. 앨리스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이 만든 재앙 속에서 그녀는 고양이 ‘오하요’와 함께 미약한 생의 불씨를 지킨다.


읽고 나면 다시는 "버린다"라는 말을 쉽게 쓸 수 없다. 우리의 쓰레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방향을 바꿔, 우리에게 되돌아올 뿐이다.


#복안인 #우밍이 #비채 #비채서포터즈3기 #리브르앵쉬레르상 #베를르날레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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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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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책과 함께 늙어가는 삶에 대하여”



책이라는 물성을 사랑한다는 건, 단순히 활자와 종이의 결합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에 느껴지는 묵직한 책등의 두께, 손끝으로 넘길 때의 감촉, 문장 사이사이에 스며든 시간의 냄새, 그리고 그 책을 만든 누군가의 노동과 마음까지 느끼는 일이다. 



김혜진의 『오직 그녀의 것』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손들”의 세계, 편집이라는 내밀하고 고요한 노동의 세계를 펼쳐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그 세계 속에서 오래도록 머물렀다. 마치 내 책장 속 낡은 책들이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듯한 감각이었다.



주인공 석주는 90년대 초, 교열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그 시절의 출판사는 활판 인쇄가 남아 있고, 원고는 종이로 묶여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던 시절이었다. 석주는 교정지를 붉은 펜으로 고치며, 서서히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간다. 그녀는 늘 조용하고 성실하지만, 그 조용함 안에는 한 문장을 살리고자 하는 집요한 사랑이 있다. 편집의 일은 눈에 띄지 않지만, 한 권의 책이 독자에게 닿기 전까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그림자 예술’이다. 김혜진은 이 세계를 요란한 감정이 아닌, 잔잔한 호흡으로 그려낸다.



책을 만드는 일이란 결국 사람을 다루는 일이기도 하다. 석주는 오기서 과장의 냉정한 기준 속에서 단단해지고, 작가와의 관계 속에서 일의 의미를 새로 배워나간다. 그리고 편집자 소모임에서 만난 조원호와의 관계를 통해 “일과 사랑”의 경계가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깨닫는다. 둘 다 예측할 수 없고, 완벽하지 않으며, 그럼에도 매일의 반복 속에서 비로소 무언가가 쌓인다. 책을 만든다는 일은 결국 삶을 만들어가는 일이고, 사랑을 지속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걸, 나는 석주를 보며 새삼 배웠다.



“좋아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나가게 되거든요” p.253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오래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좋아해서 시작했지만, 때로는 지치고 다치면서도 도저히 그만둘 수 없었던 어떤 일. 석주에게 그것은 편집이었고, 나에게는 책 그 자체였다. 책은 늘 나를 위로해 주지만, 동시에 나를 시험해왔다. 그건 어쩌면 ‘좋아한다’는 감정이 본래 가진 이중성일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책장 속 책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석주들이 있었다. 이름 없이 교정지를 넘기던 누군가, 밤새 문장을 고치던 편집자들, 문학의 뒷면에서 묵묵히 살아온 이들. 이 소설은 그들을 위한, 그리고 그들 덕분에 책을 사랑하게 된 우리를 위한 헌사다.



“책을 좋아하나요?” 그 말이 왠지 따뜻하게 나에게 묻는 듯, 나에게 책이, 그리고 이 소설이 ‘오직 나의 것’이 되는 순간이었다.



#오직그녀의것 #김혜진 #문학동네 #독파 

좋아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나가게 되거든요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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