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을까. 모르겠다."
첫 문장으로도 너무나 유명한 소설, 롤랑 바르트가 "건전지의 발명과 맞먹을 정도로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던 소설 <이방인>
1부에서 뫼르소는 엄마의 죽음 앞에서 눈물도 보이지 않고 너무나 태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바닷가에서 수영을 즐기고 우연히 마리를 만나게 되고 하룻밤을 보낸다. 이웃집에 살고 있는 레몽의 부탁으로 그의 아랍계 여자 친구에게 편지를 대신 써주고 레몽의 집에 다시 찾아왔다가 폭행을 당하게 된다. 그녀의 아랍 형제들이 찾아오고 레몽은 다치게 된다. 레몽의 권총을 가지고 있었던 뫼르소는 바닷가에서 아랍인을 다시 마주치게 되고 그에게 총을 쏘게 된다.
"그 네 발의 총성이 내게는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와도 같았다."
2부에서는 체포된 뫼르소의 재판 과정을 보여준다. 알제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곳이었다. 칼을 갖고 있던 아랍인을 상대로 정당방위를 주장할 수도 있었던 뫼르소는 자신을 위한 변호를 위한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일체의 거짓을 배제한 사실만을 발언하는 데 그를 바라보는 변호사, 재판관, 사제 등등 어느 누구도 뫼르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고 뫼르소도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단두대형이 공표된다.
처음 <이방인>을 읽었을 때는 범죄소설로 읽었었다. 한발의 총성 이후에 이어 네발을 더 쏜 이유를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아랍인에게도 칼이 있었고 정당방위로 잘 해결될 줄 알았는데 뫼르소의 우발적 범죄는 아랍인을 죽인 사건의 본질을 벗어나 뫼르소를 단죄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신부님이 찾아와 회개하도록 권유한다. 하지만 뫼르소는 자신의 삶이 엉망이었지만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내가 행복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에게 어울리는 유일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형상화하려 했다는 사실은 서문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영웅적 자세를 취하지 않고 진실을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한 사내의 이야기가 예수의 이야기로 생각이 뻗어나가다니. 서양문학을 읽으면 읽을수록 성경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을 좋아했던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시지프 신화> 더 읽어봐야겠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알베르 카뮈가 만약 더 오래 살아서 <부정-긍정-사랑>의 작품 세계관 중 마지막 사랑에 대한 글을 완성했다면, 44세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천재 작가로서 더 많은 작품을 남겨 주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안타까운 상상을 해본다.
진실은 빛과 같이 눈을 어둡게 한다. 반대로 거짓은 아름다운 저녁노을과 같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 알베르 카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