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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벽을 통과할 수 없는 이유 - 플로리안 아이그너의 양자물리학 이야기
플로리안 아이그너 지음, 이상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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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양자물리학이란 단어는 독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들어본 적이 없다. 아니 어쩌면 물리가 수학 못지않게 싫어서 요즘 말하는 '수포자' 대열에 있었기 때문에 몰랐다고 해야 더 옳을 듯하다. 독자가 고등학교 때는 아인슈타인이 현대 물리학에 가장 큰 기여를 한 학자라고 배웠다. 원자폭탄을 만들 때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원자폭탄 제조를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건의했던 물리학자로 알려진 정도였다. 아인슈타인은 뉴턴 이후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였다. 적어도 독자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는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뉴 밀레니엄을 전후해 양자역학, 양자물리학이란 단어가 자주 신문 보도에 인용되었던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독자는 대학을 졸업한 지 한참 되었고, 아날로그 세대로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필요치 않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별도의 시간을 내주는 직장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이 책 『우리가 벽을 통과할 수 없는 이유』는 양자역학, 양자물리학에 관한 입문서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저자 플로리안 아이그너(Florian Aigner)는 〈서문〉을 통해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모두 놀라게 될 것"이라며 "아주 작은 입자와 그리고 위대한 생각을 다룬다"고 말하고 있다. 책 표지에 쓰인 「우리가 몰랐던 세계를 여행하기 위한 양자물리학 기본 개념 가이드」란 부제를 착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독자는 고등학교 때 물리학을 포기할 정도로 어려워했고, 대학도 인문대를 나왔다. 물리학의 기본을 배운 것도 고등학교 시절이 마지막이었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수년 전 〈양자물리학〉이란 영화를 본 기억이 읽고자 하는 용기에 힘을 보태주었다. 영화 〈양자물리학〉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마약이나 성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난 룸살롱 등 고급 유흥업소를 둘러싼 사건으로 검찰과 정부의 커넥션도 포함돼 있어 영화 제목과는 얼핏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으로 봤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이 기억에 남아 있을 정도로 흥미롭게 봤다.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라는 양자물리학적 신념을 인생의 모토로 삼은 유흥계의 주인공 ‘이찬우’가 어느 날 유명 연예인이 연루된 마약 파티 사건을 눈치챈다. “불법 없이! 탈세 없이!” 이 바닥에서도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고 믿는 그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경찰청 범죄정보과 계장 ‘박기헌’에게 이 정보를 흘린다. 단순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던 마약파티가 연예계는 물론 검찰, 정치계까지 연루된 거대한 마약 스캔들임을 알게 된 '이찬우'는 이제는 살기 위해 거대 권력과 맞서야 하는 상황에 맞부딪친다. '이찬우’는 ‘박기헌’ 계장을 비롯해 황금인맥을 자랑하는 업계 퀸 ‘성은영’ 등 업계 에이스들과 함께 이 사건을 파헤치기로 한다. 부패 권력에 통쾌하게 맞서라, 생각은 현실을 만드니까. 이것이 양자물리학 이론의 핵심으로 이해됐다.

영화 제목과 '양자물리학'과의 관계가 깔끔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백과사전을 찾아 읽어도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 것 같지만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줍잖다. "양자역학은 분자, 원자 등 아주 작은 입자들을 연구하는 분야로 현대 물리학의 기초 이론이라고 한다. 플랑크의 양자 가설을 계기로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디랙 등에 의해 만들어졌다. 양자역학은 뉴턴의 고전역학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고전역학이 거시세계를 탐구하며 현재의 조건으로 미래의 상태를 완전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결정론적인 관점이라면, 양자역학은 미시세계를 탐구하며 현재 상태에 대해 알더라도 미래에 일어나는 사실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확률론적 입장이다. 양자역학은 컴퓨터의 주요 부품인 반도체의 원리를 설명해 주고, 과학기술, 철학, 문학, 예술 등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무래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물리학의 기초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탓일 터, 이쯤해서 독자는 이 책 『우리가 벽을 통과할 수 없는 이유』로 다시 눈을 돌린다. 

「이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란 제목의 〈서문〉에서 저자 플로리안 아이그너는 "이 책에는 어떠한 공식도 나오지 않는다"며 "양자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개념을 단계별로 알아가게 하도록 썼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양자역학 기본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흥미롭고 알기 쉽게 풀어 씀으로써 양자물리학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저자에 따르면 양자의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이상한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그 이야기에는 토마토와 전자의 차이, 코펜하겐에서 노벨상을 은폐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 양자폭탄, 우주선, 그리고 순간이동에 대한 내용도 있다. 우리는 또 스스로에게도 괴상한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물질은 알고 보면 사실 공간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왜 우리는 벽을 통과할 수 없는 것일까?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살아 있기도 하고 동시에 죽어 있는 것이기도 한다는 사고실험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미시적 차원에서 예상치 못할 정도로 거칠게 양자가 흔들리며 깜빡일 때, 우리는 분명하고 선명한 현실을 경험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하거기나 한 일일까?" 

"세상은 원자와 그보다 더 작은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계는 확률이 지배하는 양자역학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세계다. 양자역학이 탄생한 배경부터 최첨단 응용까지, 원자부터 우주까지 모든 것"을 이 책에 담았다. 알면 알수록 이해하지 못해서 우울해진다는 양자역학을 이 한 권의 책으로 통달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한걸음은 더 들어가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이 세상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원자라는 것의 실체가 밝혀지는 데는 그로부터 수천 년이 흘러서였다. 원자의 세계가 조금씩 밝혀지면서 고전적인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심지어 아인슈타인도 그랬다. 특히 양자역학이란 것을 말이다. 책에 따르면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중 한 사람인 독일의 막스 플랑크는 조금 더 효율이 좋은 전등을 만들려고 흑체복사를 연구했다. 흑체복사란 예전에 많이 사용하던 백열등을 상상하면 된다고 저자는 귀띔한다. 백열등에 전기를 공급하면 필라멘트가 달아오려며 빛과 열을 낸다. 즉, 어떤 물체에 열을 가하면 에너지가 빛과 열이라는 형태로 방출(복사)된다. 이런데 연구 결과 이 에너지가 특정 단위의 덩어리로만 방출되는 것이다. 플랑크는 혼란에 빠졌다.



지금까지의 지식으로는 빛은 전자기파의 일종, 즉 파장이었다. 파장은 에너지의 흐름이 연속적이다. 즉 더 뜨거우면 뜨거운 만큼 강한 파장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에너지가 덩어리 단위로 나온다는 뜻은 빛(에너지)이 입자라는 뜻인가? 입자여야 덩어리 단위로 묶을 수 있다. 실험으로 입증된 바와 같이 빛은 회절과 간섭을 한다. 입자가 어떻게 회절과 간섭을 한다는 말인가? 이 현상을 목격한 플랑크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고, 입자일 리가 없다고 믿었다. 이 현상은 나중에 해결될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것이 바로 양자(덩어리)역학의 시작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많은 과학자들이 플랑크의 발견과 이론을 좇아 연구한 결과 "빛은 파동과 입자 두 가지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로 결론났다. 파동이면 파동이고 입자면 입자지, 파동이면서 입자란 무엇인가? 저자는 고전적인 물리 이론으로는 납득할 수 없지만 실제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입자이면서 파동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그것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한 마음가짐이 현대물리를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빛이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면, 다른 입자도 파동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는 것이 그 다음 수순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여러 가지 이론과 실험에 의해 원자가 양성자(중성자도)와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문제가 있었다. 전자는 워낙 작은 존재라 그 전자의 에너지만 측정할 수 있을 뿐, 관찰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이다. 파동 방정식을 사용하면 전자의 에너지를 계산할 수 있고, 그 계산을 통해 전자의 위치를 확률적으로 알 수 있다. 2025년 노벨 물리학상은 존 클라크, 미셸 드보레, 존 마티니스가 수상하게 되었다. 그들의 업적은 ‘거시적 양자역학 현상의 발견’, 즉 거시 세계에서도 각종 양자역학 현상들을 관측할 수 있다고 증명한 것이다. 이로 인해 양자컴퓨터·양자암호 등 양자역학(양자물리학) 원리를 이용한 더 진보된 기술 개발의 길이 더 쉬워졌다.

양자역학, 양자물리학, 양자 이론, 그리고 양자. 도대체 ‘양자(quantum)’는 무엇일까? 거시세계에서 사물의 움직임은 예측이 가능하고 단일한 경로만 가능하다. 하지만 원자, 분자 및 여러 양자 입자는 완전히 다르게 행동한다. 예를 들어 원자는 왼쪽으로 움직이면서도 동시에 오른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는 특정한 궤적을 따르지 않고 확률적으로 분포해 있을 뿐이다.



이에 따라 과학자들은 다시 한 번 논쟁하기 시작했다. 파동방정식을 이용하면 결과가 나오기는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파동성을 보이는가가 문제였다. 여기에서 세상을 뒤집을 해석이 나온다. 실제 파동은 없고 확률만 파동을 보인다는 것이 그 해석이다. 실제 전자의 위치는 알 수 없고, 확률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 해석은 아인슈타인의 심기를 건드렸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로, 확률로만 존재하는 세계를 부정했다. 곧 다른 방법이 나오면 전자나 빛의 존재를 정확히 정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아인슈타인은 죽는 그 순간까지 양자역학의 확률론적 세계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현대물리학은 확률론적 세계를 조금씩 증명하고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무에서 유는 창조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확률적으로 보면 제로는 아니기 때문에 원자가 존재하고, 원자들이 모인 세계가 존재한다. 파동방정식을 만든 슈뢰딩거 그 자신도 확률론적 세계를 믿지 못했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이 책은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책이다. 수학적인 이야기는 최대한 자제했지만, 양자역학의 역사적 의의는 물론, 그 덕분에 우리가 누리고 있는 기술적 발전과 응용까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한번에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현대물리학자의 유연한 마음가짐으로 이 책을 들여다보면 세상을 이해하는 다른 지식을 만나게 될 것이다. 다만 저자가 쉽게 설명해도 단 한 권의 책으로 과학자들이 수천 년 연구해온 결과로 현대 과학의 중심 이론이 된 양자역학과 그 세상을 만나기는 어렵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더욱이 양자역학 이론에 따라 무한 발전해 가는 산업화 상품들은 우리가 상상에만 의존했던 레이저 광선 총, 또 미사일 요격, 각종 산업에 적용돼 나온 수많은 물건들을 보면 과학의 힘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책은 모두 12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파동, 입자, 그리고 양자보송이〉, 2장 〈아무도 측정하지 않는 경우에만〉, 3장 〈양자 도약, 작은 부분으로 구성된 세계〉, 4장 〈새로운 종류의 우연〉, 5장 〈전자는 행성이 아니다〉, 6장 〈양자 지우개와 양자폭탄〉, 7장 〈왜 우리는 벽을 통과하지 못할까?〉, 8장 〈양자 얽힘과 유령 같은 원격작용〉, 9장 〈순간이동과 도청 방지 코드〉, 10장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도대체 어떻게 됐을까?〉,11장 〈양자철학과 양자 유사과학〉, 12장 〈양자는 우리에게 어떻게 유용할까?〉 등이다.



양자 입자의 파동적 특성은 다릅니다. 측정은, 필연적으로 측정 대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것을 혼란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안심해도 됩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이를 믿고 싶어 하지 않았거든요. 관찰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측정 결과는 그에게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 역시 아주 오랫동안 좀 더 정교한 측정 시스템만 만들어 낸다면 이중 슬릿에서 입자의 실제 경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관찰할 수 있으며, 이것이 실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틀렸죠.(p.49) - 「제2장 아무도 측정하지 않는 경우에만」 중에서


순간이동은 당시에는 실질적인 과학적 근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실질적인 과학적 근거를 확보한 공상과학 기술의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순간이동은 이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스타트렉〉의 엔터프라이즈호처럼은 아니지만, 적어도 개별 입자의 양자 순간이동(텔레포테이션) 형태로 말이죠. 하지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솔직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양자 순간이동은 물질을 순수한 광선으로 변환한 후, 다른 위치에서 물질 입자로 재변환하는 공상과학 기술이 아닙니다. ‘양자 순간이동’에서, 하나의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전송되는 것은 정보입니다. 하나의 입자 상태가 다른 입자로 전달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양자 순간이동에서는 입자 자체가 아니라 그 입자의 속성만 전송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p.177) - 「제9장 순간이동과 도청 방지 코드」 중에서


저자 : 플로리안 아이그너(Florian Aigner)


2010년에 빈공과대학교에서 양자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물리학자이자 과학 작가, 과학 편집자 겸 저널리스트이다.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에서 수많은 기사를 썼으며, 인기 있는 과학 평론가이기도 하다. 최신 연구 문제뿐만 아니라 진정한 과학으로 오해받기 쉬운 난해한 주장들에 대해서도 다룬다. 저서로는 『우리에겐 과학이 필요하다』,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 등이 있다. 특히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는 오스트리아 과학부와 오스트리아 북매거진 [부흐쿨투어(Buchkultur)]에서 선정한 ‘2018년 올해의 과학 도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역자 : 이상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건너가 본대학교에서 번역학을 전공했다. 이후 출판사 편집팀장을 지내며 다양한 글을 기획하고 옮겨왔으며,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나는 아빠가 좋아요』, 『꼬마 거미의 질문 여행』, 『초등1학년 경제교육을 시작할 나이』, 『데미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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