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기억책 - 자연의 다정한 목격자 최원형의 사라지는 사계에 대한 기록
최원형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렸을 때부터 배운 '나라 사랑' 문구 중 "사계절이 뚜렷하고 화려한 금수강산"이 한반도라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그런데 불과 수십 년만에 우리 한반도의 사계가 사라질 지경이라니 기후 변화 정말 무섭다. 인류의 미래에 암담한 전망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그만큼 급박하게 기후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다. 한반도는 온대 지방에 자리잡고 있어 해양성 기후와 다르지만 사계가 뚜렷하다는 장점도 크다. 또 강수량이나 기온 등도 적절해 일년 단위로 생계를 잇는 농사를 짓기에도 안성맞춤인 지역이다. 한마디로 조상들로부터 매우 좋은 조건의 땅을 물려받았다는 이야기다. 인간이 살아가기에도 온대 지방이 가장 적합하다는 것은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모든 장점과 혜택이 없어지려 하고 있다.

이 책 『사계절 기억책』은 기후변화와 과도한 개발로 봄날의 아까시나무 향과 한여름의 매미가 사라지고 있는 현장에 대한 기록이다. 개발로 망가진 환경을 보존하려는 생각보다 사라져가는 생명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는 게 당초 의도다. 기록하고 또 그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개발이나 인간 편익을 위한 무자비한 환경 파괴 행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 최원형은 한반도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 기록은 생태계 변화의 역사가 되고 지구 위기의 리포트가 된다. 저자는 '자연의 다정한 목격자'란 별명을 갖고 있다. 저자의 기록은 기후위기의 시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생명과 생명의 만남이다. 또 무해한 자연의 위로를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산과 바다, 강과 하천, 갯벌과 습지 등 곳곳을 누비며 수많은 목숨붙이를 만난 저자는 그들의 생명력 넘치는 이야기를 직접 그린 100여 점의 세밀화와 함께 이 책을 통해 선보인다. 무심코 스쳐 지나온 이웃한 동식물은 물론 순천만 흑두루미, 파주 공릉천 수원청개구리, 제주 사려니숲 긴꼬리딱새처럼 쉽게 만날 수 없는 낯선 생명들까지, 마치 눈앞에 있듯 생생한 자연이 펼쳐진다.

저자는 책에서 지구상에 700여 마리밖에 생존하지 않는다는 넓적부리도요, 육식 산업의 발전과 함께 멸종한 소똥구리, 수족관에서 지내다 제주 앞바다에 방사된 남방큰돌고래 ‘비봉이’, 밀렵으로 사실상 기능적 멸종 상태가 된 코뿔소, 동물원을 탈출해 도로를 누볐던 얼룩말 ‘세로’ 등 인간의 욕심으로 고통받거나 사라져가는 자연의 존재들에도 주목한다. 자연 속 크고 작은 생명들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깊은 유대감으로 그들을 소중히 여길 수 있을 거란 믿음에서다. 기후위기와 멸종위기라는 말이 숱하게 들려오는 시대, 기억하고 지켜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저자는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저자가 그리기를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다고 한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한 손으로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어폰을 꽂으면 두 손이 자유로우니 가뜩이나 산만한 나는 노는 손을 가만두지 못했다. 평소에는 낙서에 그치는데 그날따라 책상 앞에 붙여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상모솔새 그림이었다. 나는 책상 위해 펼쳐놓은 다이어리에 상모솔새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새를 그린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중략) 색연필로 색칠까지 마치고 나니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새를 가까이에서 관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새를 그려보고 싶었나 보다."(p.8~9)

 


 

저자는 생태·환경·에너지 전문가로서 작가로서의 글 쓰는 일과 강연을 한다. 『달력으로 배우는 지구환경 수업』, 『착한 소비는 없다』 등 다수의 책을 펴내며 분야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저자가 이번에는 어느 책에서도 선보인 적 없는 100여 점의 세밀화와 함께 첫 자연 에세이를 펴냈다. 꽃과 나무부터 잡초라 불리는 식물까지, 익숙한 포유류와 조류부터 생소한 곤충과 양서류까지. 그간 인식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자연이 마치 눈앞에 있듯 생생하게 펼쳐진다.

모이대를 찾아온 직박구리와 사과를 나눠 먹는 순간, 풋고추 구멍 속에서 담배나방 애벌레를 꺼낸 순간, 분갈이를 하던 화분에서 지렁이를 발견한 순간까지, 저자에게 자연이란 손끝 발끝이 닿는 모든 순간에 있다. 저자는 숲에서도 도시에서도 크기가 다르지만 목숨의 무게는 같은 저마다의 생명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기록했다. 이 책은 강아지와 고양이의 종은 구별해도 오늘 가로수 위에서 노래를 부른 새의 이름은 알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도시 숲 자연주의자의 수상록이다.

“도시가 콘크리트 숲이라고 해도 사실 풀이며 새며 곳곳에 스며든 생명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p.73)”고 말하는 저자는 산과 바다, 강과 하천, 갯벌과 습지 등 곳곳을 누비며 그곳에서 만난 수많은 목숨붙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순천만 흑두루미, 파주 공릉천 수원청개구리, 제주 사려니숲 긴꼬리딱새…. 자연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된 자만이 마주할 수 있는 광경이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에게 기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생명과 생명의 만남을 지켜보며 '기적'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 삶에서 매 순간 기적 아닌 때가 있기나 했을까?란 사유적 말도 풀어낸다. 다만 기적을 기적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욕망의 더께에 가려 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우려의 마음도 슬그머니 꺼내놓는다. 제자리에서 묵묵히 자기의 소임을 다하는 존재들과 그들을 온기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는 저자의 모습에서 인위적 세상에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아주 ‘무해한’ 자연의 위로를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 자연을 관찰하면서 보고 배운 지혜로 "자연은 배움의 보고 그 자체다"고 강조한다. 어디를 들여다봐도 넘치는 생명과 진화의 신비를 엿볼 수 있고, 세상살이의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도시에 사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자연의 지혜를 흥미로운 이야기와 생동감 넘치는 그림으로 전하는 것도 그림을 잘 그려서가 아니라 그림이 말이나 글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정보와 지식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길에서 밟히면서도 널리 씨앗을 퍼트릴 수 있게 진화한 질경이부터 칼바람을 피할 수 있게 작은 방석처럼 잎을 펼치고 겨울을 나는 여러해살이풀들, ‘소리 없이 땅을 일구는 농부’라 불리는 지렁이, 온갖 재료로 자기만의 효율적인 둥지를 짓고 사는 세상 제일가는 건축가 새까지, 다양한 생물종이 품은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연에 순응하고 적응하며 살아가는 동식물을 통해 인간 동물이 나아갈 길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날 수 있도록 새는 몸을 변화시키며 진화했다. 몸무게를 줄이려 이빨을 포기했고 뼈를 비웠으며 때로 먼 길을 이동할 때면 몸속 장기마저 최소화한다. 비우고 덜어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새를 보며 배운다.”(p.197)

지금껏 인류는 무분별한 개발로 환경 파괴를 비롯한 수많은 문제를 야기해왔다. 간척 사업은 갯벌 생태계의 죽음을 불러왔고 서식지에 들어선 도로 때문에 개구리는 알을 낳으러 가는 길에 로드킬을 당한다. 육식 산업의 발전으로 소똥구리는 우리 땅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과거의 성찰에서 한 발 나아가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데 그치는 대신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책이라 할 수도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환경 보존', '기후 변화 대응' 등 수많은 환경보호 캐치프레이즈보다 직관적이고 강한 느낌을 받는 그림 그리기를 지속하는 이유가 된다.

 


 

이 책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900일 동안 포위되면서도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씨앗(종자)을 끝까지 지켜낸 바빌로프 연구소 이야기도 있다. 새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전깃줄을 없애며 철새들의 광활한 안식처가 되어준 순천시 이야기도 나온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어떻게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이 밖에도 콘크리트 배수로에 사는 개구리들을 위한 ‘개구리 사다리’, 도토리를 숲에 사는 동물들에게 돌려주자는 취지의 ‘도토리 수호대’, 겨울철 식량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새들을 위한 ‘버드피더’ 등 미래의 희망이 되어줄 지구 공동 생활자들의 갖가지 노력이 소개된다.

"전깃줄은 경관을 해친다. 그뿐만 아니라 흑두루미나 독수리처럼 큰 새들은 전깃줄에 걸려 날개를 다치기도 한다. 생존에 필수인 날개를 다친 새는 결국 도태되니 새들에게 전깃줄은 위협일 수밖에 없다. 새들을 위해 이런 전깃줄을 없앤 첫 지역이 순천시다. 2009년 4월 순천시는 순천만 주변 농경지에 있는 전봇대를 뽑아버리고 그 들판에 흑두루미 모양으로 벼를 심어 경관 농업을 시작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전기가 필요한데 전봇대를 뽑자고 하니 농민들이 순순히 동의했을 리 없다. 한국전력조차 전봇대 철거를 거부하자 순천시와 순천만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설득에 나섰다. 이렇게 해서 전봇대가 사라진 59헥타르에 이르는 들판은 철새 보호구역이 되었다. 그곳에서는 농약이나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방식으로 농사지어 수확한 벼를 흑두루미 먹이로 공급한다. 흑두루미뿐만 아니라 찾아오는 어떤 새든 와서 쉴 수 있도록 무논 습지를 확보해서 새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순천 시민들은 새들이 겨우내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불빛 차단 울타리와 차량 차단막을 설치하여 잠자리며 먹이터를 마련해주었다."(p.26~27)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다. 1장 「입춘을 품은 겨울」, 2장 「제비가 보인다, 봄」, 3장 「능소화가 핀 여름」, 4장 「감나무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 5장 「야생의 생명과 연대하는 가을」 등이다. 모두 사계절에 따라 순환하는 우리 인간과 삶의 모습이 같다. 어떤 일 하나 인간과 다를 바 없음을 관찰을 통해 저자는 기록한다. 특히 사라져 가는 자연과 그 속의 생명체들, 그리고 우리들의 삶의 모습 등은 아련하고 애잔한 향수도 불러일으킨다. 최소한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자연과 생명들을 아끼고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을 지향해야 함을 말없이 그림으로 보여준다.

독자가 어렸을 때 길가에서 흔히 발견되던 질경이에 대한 저자의 관찰과 사유는 많은 성찰을 하게 해준다. 〈밟히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숙명을 안은 풀〉로 특징을 적은 저자는 질경이에 대한 풀이를 문학적 혹은 철학적 사유의 일단을 보여준다. "내게 언제가 가장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들길 산책을 즐길 때라 답할 것이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살랑이는 바람 한 줄기가 함께하는 들길 산책은 말로 형언키 어려운 행복감이 밀려온다. 귀소하는 새 떼가 내 머리 위로 날아간다면 금상첨화다. 행복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세포 하나하나가 알아차리는 시간이다. 그 길에 만나는 풀이 질경이다. (중략) 밟혀서 완전히 짓이겨지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을 질경이는 너무나 정확히 알고 있다. 꽃자루에 작은 흰 꽃이 피고 검은 씨앗이 맺히는데 바닥에 엎드려도 루페 없인 구분이 어렵다. 이 씨앗에는 젤리 같은 물질이 있어 물에 닿으면 부풀어 오르며 접착력이 생긴다. 이런 씨앗의 특성 덕에 질경이는 길에 살면서 지나가는 나그네의 신발 바닥, 마차 바퀴 그리고 21세기에는 자동차 타이어에 묻어 먼 곳까지 이동하며 영역을 넓혀나간다. 질경이 생김새 하나하나에 자손을 퍼뜨리려는 진화의 흔적이 묻어 있는 걸 알고 나니 질경이라는 이름이 참 잘 어울리는 풀이란 생각이 든다."(p.83~84)

 


 

"다람쥐나 어치 같은 동물들은 도토리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모아서 자기가 기억할 수 있는 장소에 숨겨놓는다. 겨우내 꺼내 먹을 식량을 저장하며 겨울을 준비하는 건데, 도토리를 가져가 땅에 숨기는 동물들의 이런 행동은 참나무 입장에서도 좋다. 나무 아래로 떨어진 도토리가 설령 싹을 틔운다고 해도 큰 나무 아래서 다른 나무가 제대로 자라긴 쉽지 않으니 가능하면 멀리 떨어지는 게 자손을 퍼뜨리기에도 유리하다. (중략) 숨겨놓은 도토리를 동물이 다 기억하기란 불가능하니 잊히는 바람에 용케 살아남은 도토리는 적당한 깊이에 묻혀 있다가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싹을 올리며 큰 참나무가 된다. 그리고 어치와 다람쥐는 도토리를 잘 묻어준 수고의 대가를 가을에 도토리로 되돌려받는다."(p.217~219)

 

저자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가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밀어버리고 들어선 공간이니 “새들을 위해 모이를 챙기는 일은 내 의무이자 공간 사용료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도 기후위기의 희망으로 생명과 생명 간 연대에 주목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지구를 위한 선한 행동이 모여 내일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글·그림 : 최원형

 

우연히 자작나무 한 그루에 반해 따라 들어간 여름 숲에서 아름답게 노래하는 큰유리새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자기 목소리와 자리를 갖지 못한 존재들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뭇 생명과 조화로운 삶이 세대에 걸쳐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자연을 눈 가까이 불러들이고 싶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으로 더 많은 더 넓은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제가 그린 모든 것들은 순환하는 하나의 세상입니다. 오래오래 보고 싶은 것들이고요. 크고 작은 목숨붙이들과 마음을 나누며, 내일도 그릴 겁니다. 연세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잡지사 기자와 EBS, KBS 방송 작가로 일했습니다. 생태·에너지·기후변화와 관련해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시민 교육에 힘쓰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달력으로 배우는 지구환경 수업》, 《왜요, 기후가 어떤데요?》, 《라면을 먹으면 숲이 사라져》, 《착한 소비는 없다》, 《환경과 생태 쫌 아는 10대》, 《최원형의 청소년 소비 특강》 등이 있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