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이재형 지음 / 디이니셔티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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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파리를 '예술의 도시'라고 부르는가? 최근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예술 도서들이 그 질문에 답하기라도 하듯 한결같이 파리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책들은 자신의 주제에 맞추느라 '미술' '음악' '건축' 등으로 나눠 소개한다. 그 책들은 어쩔 수 없이 파리의 미술, 파리의 음악, 파리의 건축 등 예술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분야를 각각 나누어 조망한다. 예술사 책도 마찬가지다. 간혹 에세이가 파리의 삶을 소개하면서 부분적으로 파리가 예술의 도시임을 증명하는 글을 쓰기도 하지만 역시 주제에 맞춰야 하는 한계에 부딪힌다. 파리를 예술의 예술의 도시라고 칭하기에는 내용이 조금 빈약하다는 생각이다.

독자는 십여 년 전 해외여행을 처음 가면서 파리에 간 적이 있다. 처음 하는 해외여행이라 기본적인 일정이나 계획을 짤 수 없어 '패키지 여행'을 택했다. 파리 체류 기간은 2박 3일이었다. 그것도 파리의 예술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유명한 장소나 박물관, 성당 등 몇 군데만 둘러봤을 뿐이다. 말 그대로 여행이 아니라 '관광'이었다. 그때 파리를 나오면서 처음으로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 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그 다짐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머릿속에서 파리에 대한 인상이 서서히 지워져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파리에 대한 예술서를 보면서 조금씩 다시 파리 여행을 꿈을 키우고 있다. 이 책 저 책 두서없이 닥치는 대로 읽다보니 메모는 늘어가지만 일정을 짜기에는 더 혼란스럽기도 한 상황이다. 이 책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가 선물처럼 눈에 띄었다. 예술가가 아닌 불문학자인 저자여서 더 읽고 싶었다. 더욱이 파리에 30년 간 거주하고 있다니 파리 시민 못지 않게 파리를 잘 알 것이라는 기대감도 작용했다.

 


 

파리는 ‘2021년 세계에서 가장 여행하고 싶은 도시 1위’로 선정(유로모니터 리서치)될 정도로 매력 넘치는 도시다. 파리의 무엇이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것일까? 바로 영원불멸한 예술을 삶 속에서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 아닐까. 독자가 파리에 가고 싶은 이유가 정확하게 저자 이재형의 집필 이유와 맞아 떨어진다. 저자는 파리에서 예술은 현실과 유리된 상류층의 장식품이 아닌,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삶의 일부라고 말한다. 힘들 때 예술 작품을 보며 위로받고 용기를 얻기도 한다. 출판사 측은 파리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그 여정에 반드시 함께해야 할 책이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마치 독자의 마음을 아는 것 같다. 저자 이재형은 파리에서 살면서 150권이 넘는 프랑스 작품을 번역한 불문학자다. 프랑스 문화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해석이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고 예술에 대한 애정이 파리의 예술을 빠짐없이 담게 된 이유다. 이는 독자에게도, 저자에게도 특별한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에는 유명 미술관부터 알려지지 않은 거리의 구석까지, 예술 작품을 따라 파리에 녹아있는 숨겨진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생생한 사진은 덤이다. 프랑스 문화에 대한 지식과 애정이 담긴 여정에 저자를 따라 간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 가이드북이 아니다. 한 번도 안 가본 독자에게는 여행 안내서 역할을, 한 번이라도 가본 독자들에게는 한 걸음 나아가 좀 더 깊이 파리의 모든 곳에 스며 있는 예술의 힘을 찾아 안내해 주기도 한다. 미술관 도슨트가 파리와 파리의 예술을 해설해 준다. 역사 속의 유명 예술인들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들린다. 저자가 선택한 특별한 예술 작품들은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파리에 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집값이나 집세 등을 비롯한 생활비가 말도 안 되게 비싸고, 공기가 그렇게 맑지도 않다. 게다가 날씨도 그다지 안 좋고 교통도 불편하며 어떤 동네는 지저분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나는 1996년 프랑스로 건너와 오랫동안 파리에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떠날 생각이 없다. 나는 왜 이렇게 파리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예술의 힘’이다. 나는 예술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고 믿는다.”(프롤로그 중에서)

이 책은 인상주의가 탄생한 몽마르트르부터 파리에서 영원히 숨 쉬는 예술가들이 묻힌 묘지, 걷는 사람만이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야외 예술품들, 오르세·루브르·오랑주리·로댕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작품들까지 빠짐없이 섭렵한다. 책에 실린 사진과 그림은 파리지앵인 저자가 파리의 구석구석을 걸으며 직접 찍은 기록의 산물이어서 어디선가 본 듯한, 그러나 사실 처음 보는 것들이다. 저자의 욕심은 파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파리만 보기 아쉬운 독자들을 위해 RER(파리외곽철도)선을 타고 ‘인상파의 길’이나 세잔과 고흐의 마을 ‘오베르쉬르와즈’, 17세기 프랑스를 느낄 수 있는 베르사유궁, 1300년 동안 계속되는 순례자들의 성지 ‘몽생미셸’로 떠나는 짧은 여행도 소개한다.

“불문학자이자 번역가인 이재형의 프랑스는 지도 위에 있는 유럽의 한 나라만이 아니다. 깊이 있고 세밀하게 추적된 프랑스 역사와 문화에 관한 관심은 그가 오랫동안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문화와 예술의 현장을 답사하며 직접 촬영한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전달된다.” 문화평론가 하재봉의 추천평이다.

 


 

이 책은 모두 6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파리의 가장 높은 곳 몽마르트르에서 피어난 인상주의」, 2장 「걷는 사람만이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야외 예술 작품들」, 3장 「빛이 색채가 되고 주인공이 되다 오르세 미술관 속으로」, 4장 「역사 속 이야기가 예술로 승화되다 루브르 미술관 속으로」, 5장 「조금 더 사적인 공간으로」, 6장 「파리만 보기 아쉬운 여행자를 위해」로 구성돼 있다. 저자는 1장에서 우리가 잘 아는 몽마르트에 대한 역사부터 더듬어 속속들이 세밀한 곳까지 찬찬히 살펴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몽마르트 언덕은 과수원과 포도밭(이 포도밭 일부가 북쪽 언덕에 남아 있다), 초가집, 40여 개의 풍차 방앗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당시 몽마르트는 아직 파리가 아니었고(파리로 편입된 것은 1860년의 일이다), 638명에 불과한 주민은 주로 방앗간 주인이나 몽마르트 지하에 매장되어 있던 석고 광산의 노동자들이었다. 집세가 싼 탓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몰렸다는 점을 설명한다. 가장 먼저 '인상파 화가들'있다. 그들의 미학적 원칙은 '자연'을 그리는 것이었다. 마치 눈에 잡힐 듯 섬세하고 세밀한 숫자까지 파악해 여기에 적은 이유는 저자의 이 책을 쓰기 위한 열정을 말해주는 듯하다.

"세입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피카소다. 월세가 15프랑이었던 이 건물에 들어오기 전부터 피카소는 이미 몽마르트르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삶이 전기를 이룬 것은 바로 세탁선에서다. 그는 여기서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만나 7년간 함께 살았다. 이들의 살림살이는 간단했다. 트렁크 하나, 침대 하나, 냄비 하나, 의자 하나, 책상 하나, 이젤, 붓. (…) 피카소는 1907년 여기서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그림으로써 입체파 미술운동의 시작을 알렸다."(p.16~17)

 


 

파리가 예술의 도시로서 만남과 사랑, 그리고 낭만의 도시였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리는 쇼팽에 대해서 몇 페이지를 할애해 소개한다. 세기의 연인으로 유명하고 파리를 떠들썩하게 했던 쇼팽과 상드 조루주의 만남부터 그들이 연인이었던 동안 쇼팽이 작곡한 〈발라드 2번〉 등에 대한 설명도 곁들인다. 쇼팽의 건강 상태가 나빠져 두 사람이 마요르카섬으로 간 사실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마요르카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추운 데다 비가 자주 내려서 산책조차 할 수가 없었던 두 연인은 다시 파리로 돌아와 〈전주곡, Op. 28, No 15〉를 작곡했다. 두 연인은 어쩔 수 없이 파리로 돌아온 후 몽마르트 남쪽의 누벨아테네 동네에 자리 잡았다.

들라크루아와 베를리오즈, 리스트, 마리 다구, 으젠 수, 성악가 플린 비아르도가 두 사람이 사는 오를레앙 광장으로 찾아왔다. 교유하며 지내는 유명한 예술가들의 이름이 열거된다. 근처 샵탈 거리에 사는 네덜란드 출신 화가 아리 쉐퍼(그가 살던 집은 지금 낭만생활 미술관으로 변했다)나 첼리스트 오귀스트 프랑스옴므도 자주 놀러왔다. 이 첼리스트를 위해 작곡한 것이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이다. 쇼팽이 실내악곡을 작곡한 것은 드문 일이라고 한다. 이밖에 르누아르 등 거장들의 이름이 나오고, 그가 그린 그림이 파리의 풍경과 파리 시민의 삶의 모습이었다는 것도 자연스럽고 필연적이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들 거장과 예술가들이 당시 어떻게 생활했고, 어떤 사람들이 당시에 파리 몽마르트에 살았는지 그 흔적을 일일이 찾아 소개할 정도로 몽마르트에 대해 섬세한 표현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책 한 권에 파리와 인근 주변에 대한 소개하는데 너무 많은 예술가들의 이름이 나오고, 독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명화들이 책 속에 각 페이지를 장식할 정도로 많아 파리가 예술의 도시라고 불릴 만한 충분한 자격과 역사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로댕 미술관' 소개는 인상적이다. 사실 로댕에 대해서는 어려을 적 독자가 교과서에서 보고 배운 로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로댕이 40세가 되던 1880년, 브뤼셀에서 〈청동시대〉를 전시하여 조각가로서 인정을 받고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 작품을 사들이는 한편 로댕에게 불에 타 없어진 감사원 건물 자리에 들어서게 될 장식미술관의 청동 문을 주문했다. 로댕은 단테가 쓴 『신곡』의 지옥 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이 문에 등장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1887년 이 주문은 취소되었다. 책에 따르면 로댕은 실망하지 않고 영원토록 지옥에서 고통받아야 하는 인간 300명을 자신의 〈지옥문〉에 조각하게 된다. 〈지옥문〉의 맨 꼭대기에 있는 세 유령은 〈유령들〉이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영혼들은 지옥의 입구에서 "여기에 들어온 당신,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라는 글을 가리키고 있다.

"합각머리 삼각 면에 조각된 인물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생각하는 단테다. 이 작품은 처음에는 ‘시인’이라고 불리다가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으로 다시 이름 붙여졌다. 로댕이 〈지옥문〉에서 떼어내 동명의 독립적인 작품으로 만든 〈생각하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 작품이 되었다."(p.273~274)

 


 

이 책 저자는 〈고흐의 마지막을 함께한 사람들〉이란 마지막 제목에서 고흐의 천재적 생각과 그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 고흐를 잘 아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그림은 독자의 가슴에도 영원히 남을 만한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된다. 정신병원을 나와 파리에 들른 반 고흐는 동생 테오 집에서 지내다가 사흘 뒤인 5월 21일 오베르쉬르와즈로 갔다. 이곳에 도착한 그는 하루 방값이 3프랑 50상팀인 '라부 여관'에 자리를 잡았다. 여관 주인은 꼭 필요한 가구만 갖추어진 지붕 밑 방을 그에게 내주었다. (중략) 반 고흐의 행복한 시절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힘들었던 걸 다 잊고 즐거운 마음으로 종일 그림만 그렸다(두 달 동안 무려 일흔다섯 점의 그림을 그렸다). 거의 매일 저녁 가세 박사(정신과 의사)를 찾아갔고, 가세 박사와 그의 딸은 식사하로 가라며 반 고흐를 붙잡았다. 그러다가 7월 초,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다. 형의 뒤를 돌보아 주던 테오의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데다 화랑에서 일하기도 쉽지 않다는 말을 털어놓았다. 이때부터 툭하면 화를 내는 등 정신상태가 불안해졌다. 가세 박사와도 말다툼이 있었고 사이마저 틀어졌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그림을 그리다 고흐는 권총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 페이지에 실린 그림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거의 다 그린 무렵이었다.

 

저자 : 이재형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원대학교, 상명여자대학교 강사를 지냈다. 우리에게 생소했던 프랑스 소설의 세계를 소개해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많은 작품들을 번역했으며, 지금은 프랑스에 머물면서 프랑스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세상의 용도』 『부엔 까미노』 『어느 하녀의 일기』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꾸뻬 씨의 시간 여행』 『꾸뻬 씨의 사랑 여행』 『마르셀의 여름 1, 2』 『사막의 정원사 무싸』 『카트린 드 메디치』 『장미와 에델바이스』 『이중설계』 『시티 오브 조이』 『조르주 바타유의 눈 이야기』 『레이스 뜨는 여자』 『정원으로 가는 길』 『프로이트: 그의 생애와 사상』 『사회계약론』 『법의 정신』 『군중심리』 『사회계약론』 『패자의 기억』 『최후의 성 말빌』 『세월의 거품』 『밤의 노예』 『지구는 우리의 조국』 『마법의 백과사전』 『말빌』 『신혼여행』 『어느 나무의 일기』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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