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일
조성준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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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어떤 답변들이 나올까? 독자는 '창조자'란 말을 자주 쓴다. 그들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니까 그렇다. 창의, 창조란 말은 말 그대로 없는 것(보이지 않는 것)에서 있는 것(보이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표현해준다. 보이지 않는 것은 대부분 사람의 생각이나 정신, 의식 혹은 무의식이다. 이런 것들은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표현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은 일반인들의 생각이다. 예술가들은 표현해낸다. 그림으로, 악보로, 문자로 인간의 감정이나 의식, 정신, 생각 등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간에 통하는 것은 있다.

스위스의 화가 파울 클레(Paul Klee)는 그래서인지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독자도 클레의 이 말이 좋아서 곧잘 인용한다. 예술을 말로 표현한 말 중 가장 적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작업이 예술가들에게는 '일'이다. 어떤 이는 동서고금의 인류에게 모두 인정받는 작품을 남기기도 하고 어떤 이는 단 하나의 작품도 남기지 못하고(인정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하나의 작품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그를 예술가에서 배제할 수는 없다. 그가 평생 예술 작업을 했다면 그를 예술가로 이름을 남기는 데 인색할 필요가 없다. 그가 인정받지 못한 작품들이 후세에 훨씬 인정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로 칭하기도 한다.





미술, 음악, 건축, 영화 등 여러 예술 장르에서 예술적 영감과 재능을 발휘하여 자신의 이름을 곧 예술로 만들어낸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화폭 앞에서, 무대 위에서, 그리고 거리를 누비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실현한 사람들이 남긴 것들은 바로 예술이 되기도 하고 당대엔 빛을 못 보다 후세에 인정을 받는 경우도 많다. 이들 대부분은 평생 예술을 창조하다 생애를 마친 사람들이다. 그들의 작품은 인간들에게 커다란 위안을 주기도 하고, 용기를 주기도 한다. 또 때론 개개인의 감정과 함께하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기도 한다. 예술가로서의 삶과 일반 사람으로서의 삶은 분명 다를 것이다. 일반 사람처럼 평범한 삶에서 위대한 예술 작품이 나오기는 어렵다. 그들의 혼이 실리고 영감과 혼신의 노력이 더해져야 탄생되는 것이 예술이기 때문이다. 삶이 평범한데 작품이 위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재능은 타고난 것이어서 많은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열정이나 노력은 모든 예술가들에게 모두 충분히 일반 사람들의 눈에도 보인다. 그들의 삶을 예술적이냐, 평범하냐의 가름은 보통 사람들이 한다. 조금 모순된 듯하나 그럴 수밖에 없다. 위대한 작품으로 인정해주는 일은 일반 사라들의 몫이다. 예술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예술적 재능, 영감, 열정에 혼신의 노력을 더할 뿐.



이 책 『예술가의 일』(조성준 저)은 예술가 33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에 실린 예술가들은 '미치광이', '괴짜', '이단아', '이방인' 등의 다른 이름들을 하나 이상씩 갖고 있다. 이 단어들은 모두 한 시대를 빛내고 인류사에 위대한 유산을 남긴 예술가들이 당대에 들었던 평가다. 미치광이라 불리며 건축학교를 꼴찌로 졸업한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기행을 일삼았던 클래식계의 이단아 글렌 굴드, 발레 공연을 하다가 외설죄로 체포된 무용수 바츨라프 니진스키. 하지만 안토니 가우디는 성스러운 건축물로 바르셀로나를 세계적인 도시로 우뚝 세웠고, 글렌 굴드의 음악은 지구를 대표하는 음악이 되어 무인탐사선 보이저호에 담겼으며, 바츨라프 니진스키는 발레라는 장르를 현대예술 영역으로 이끌었다. 세계의 일반적인 흐름과 형태와 다르다는 이유로 저평가되기도 했던 이들은 이제 한 예술 장르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어 예술사에 이름을 새겼고, 그들의 삶은 전설이 되었다. 그들이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겼다.

『예술가의 일』은 예술가의 세계가 탄생하는 과정과 여전히 그 세계의 영향력 아래 살게 하는 주요 작품들을 통해 예술가의 일과 삶을 생동감 있게 담아냄으로써 ‘한 예술가의 세계는 어떻게 탄생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예술가의 일』은 매경 프리미엄에 인기리에 연재 중인 예술 에세이 ‘죽은 예술가의 사회’를 수정, 보완하여 묶은 책이다. 매일경제 신문사 기자이기도 한 저자 조성준의 필치는 읽기 쉽고 담백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길지 않은 분량 안에 사회와 문화, 역사와 정치를 통해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들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보위, 구스타프 말러, 장국영, 마르크 샤갈. 이들 또한 이름이 곧 예술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가 아폴로 11호의 달 탐사를 생중계하며 배경음악으로 깔렸다는 사실을, 구스타프 말러가 당대 최고의 정신과 의사이던 프로이트를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았다는 것을, 마르스 샤갈이 히틀러의 숙청 대상이었다는 점은 좀처럼 알지 못한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들의 삶의 에피소드는 역사에 기록될 정도의 얘기들이었고, 작품에 영향을 주는 일이었을 뿐이었다. 개인적 삶에서 '특별한 일 만 책을 읽거나 미디어 매체를 통해 배워 알았다.

『예술가의 일』은 이러한 이면의 이야기들을 통해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단편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왜 이러한 작품을 창조했는가’를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다. 독자에게는 예술가들의 '신세계'를 접한다는 느낌에 한없이 신비롭고, 기행이라고 하지만 예술가니까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부럽기조차 하다. 단순히 재능이나 영감, 열정만으로는 위대한 예술이 탄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책은 글로 보여주고 있다. "당신이 편안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당신이 죽었다는 뜻이다.” 데이비드 보위의 말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오로지 예술만을 위한 최대한의 삶을 살다가 떠나간 예술가의 모습, 삶의 풍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밀고나간 예술가의 모습에서 우리는 삶을 대하는 불굴의 의지를 읽는다.



이 책에 담긴 예술가들의 공통점은 딱 하나다. 바로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예술가와 작품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는 쉽지만, 동시에 이 평가는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필립 로스의 책 『아버지의 유산』을 읽던 중에 그의 부고 소식을 접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밝힌다. 병든 아버지를 관찰, 기록하며 죽음에 골몰했던 아들도 결국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을 접한 작가는 한 인간이, 한 세계가 소멸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고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작가는 필립 로스처럼 이미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의 사연이 궁금했다고 언급한다. 그들은 어떤 일을, 어떠한 마음으로 하였을까? 이렇듯 『예술가의 일』은 우리에게 예술가의 대표 작품만이 아니라, 일생을 바쳐 한 세계를 구축한 예술가의 삶부터 먼저 들여다볼 것을 제안한다.

이 책에는 오늘날 ‘전설’이라 불리는 예술가 33인의 이야기,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독자는 국내의 첫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의 아기 업은 사진을 본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우리 영화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첫 여성 영화감독의 모습이 예전에 우리 주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이어서 놀랐다. 단순히 놀라는 정도에 그친 게 아니라 숨이 멎을 뻔했다. 충격이었다. 꽤 서구적 모습을 하고 사진을 찍고 남겼으리라 예견한 독자의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또 거리의 어둠을 수집한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 일본 에도시대 우키요에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 글램록의 대표주자 데이비드 보위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시대, 국적을 넘나들며 강렬한 에너지로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해온 예술가들의 삶을 면밀하게 들여다본 이 책이 준 충격은 놀라움 자체였고, 독자에게 예술가의 삶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마르크 샤갈의 〈도시 위에서〉, 프리다 칼로의 〈엘뢰서 박사에게 보내는 자화상〉. 이 작품들은 모두 예술가의 이름만 들어도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유명한 대표 작품들이다. 독자 개인의 입장으로는 직접 본 것도 있고 사진을 통해 본 작품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이 왜 유명해졌는지, 어쩌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 작품이 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은 이 책을 읽고서부터 알게 됐다. 이 답을 알기 위해선 예술가의 ‘삶’과 ‘일’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 이 책은 한 예술가의 세계가 탄생하는 시점부터 그들의 인생사는 물론, 당시의 문화·정치·사회적 흐름까지 담아냈다.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가 서양의 일본풍 찬양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뭉크는 어떠한 상태에서 〈절규〉처럼 강렬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나?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 안에는 당시 칼로가 느꼈던 아픔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었을까? 샤갈의 그림에서 엿볼 수 있는 사랑과 희망의 색채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던 걸까? 그 밖에도 화성에서 온 외계인 록스타로 불리던 데이비드 보위, 1200억원짜리 낙서의 주인공인 그래피티 아트의 개척자 바스키아,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피카소도 경계했으며 “아무도 그보다 멀리 갈 수 없다”고 사르트르가 평했던 조각가 자코메티 등... 이 책은 예술가와 그의 작품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작품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킬 뿐만 아니라, 한 예술가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그리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책을 읽고서부터 작품에 대한 감상법도 바뀔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여전히 사람들이 바스키아의 그림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천재 예술가의 영화 같은 인생 스토리 때문만은 아니다. 바스키아 그림엔 불꽃처럼 타올랐던 그의 삶과 달리 우울함이 감돈다. 유독 눈에 들어오는 색은 ‘블랙’이다. 다양한 색채로 범벅된 그림 중심엔 ‘검은 사람’(바스키아)이 있다. 이 사람은 종종 장기를 드러내 보여준다. 나의 내밀한 모습까지 봐달라고 말하듯이. ‘검은 사람’은 우울하고, 상처받은 눈을 하고 있다. 여기엔 인생의 최절정에서도 죽음에 사로잡혀 있었던 한 예술가의 황량한 내면이 담겨 있다. 1200억짜리 낙서에서 읽어야 할 것은 화려한 빛 뒤에 가려진 젊은 예술가의 우울한 초상일지도 모른다."

p.167, 「1200억짜리 낙서_장미셸 바스키아」 중에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식상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상투적인 문장을 피해서 ‘예술가의 일’을 설명하려니 그게 또 쉽지 않습니다. 예술가들 역시 제각각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을 한 사람들입니다. 누군가는 고독하게 일했고, 누군가는 시끌벅적하게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예술가의 결과물은 결국 인류의 유산으로 남았습니다. 우리는 이 유산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작가의 말’이라는 주제로 써 내린 지금 이 글도 제게는 일입니다. 저는 ‘예술가의 일’에 대해서 썼고, 이것은 제가 지난 3년 동안 매달린 일이었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 : 조성준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2014년부터 매일경제 신문사 편집부에서 근무했다. 온라인 뉴스플랫폼 매경프리미엄에 칼럼 ‘죽은 예술가의 사회’를 연재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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