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클래식
김호정 지음 / 메이트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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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오늘부터 클래식』은 제목에서부터 클래식 초보를 위해 쓰인 책이라는 느낌을 준다. 클래식에 관심은 있지만 정식으로 클래식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 클래식에 익숙하지만 서양 음악계에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 등은 잘 모르는 클래식 애호가들이 흥미를 갖게 하는 책이다. 그래서 '오늘부터' 정식으로 클래식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더 잘 어울리는 책이다. 독자도 클래식을 오래 들었지만 클래식 공부를 한 적은 없다. 들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된 느낌이 좋아 즐겨 듣긴 하지만 한 번도 클래식을 공부한 적은 없다. 물론 요즘 쏟아져 나오는 클래식 관련 책을 코로나 팬데믹 이후 꽤 여러 권 읽었다. 클래식을 즐기는데 풍미를 더해주는 작곡가에 얽힌 얘기, 곡과 인물이 설킨 얘기를 주로 실은 책을 많이 접했다. 이런 책들은 클래식을 듣는데 확실하게 흥미를 돋우어 준다.

저자 김호정은 대학까지 클래식 음악을 정식으로 공부한 음악인이다. 그러나 대학원을 언론정보학이나 공연예술학을 전공한 것으로 보아 진로는 음악이 아니었나 보다. 그러나 클래식에는 정통으로 배운 탓인지 국내 최초의 음악 전문 기자가 됐다. 책 중간 중간에 나오는 에피소드에는 귀중한 경험을 얘기를 담아 클래식계에 새로운 재미를 전해주기도 하고, 클래식 초보자들에게는 점점 책에 빠지게 잘 썼다. 글도 기자여서 그런지 읽기에 무척 매끄럽고 좋은 문장이다.




책에 따르면 저자는 2008년 뉴욕 필하모닉 평양 공연을 취재한 유일한 국내 음악 기자이다. 한 해 앞서 2007년에는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타계 소식에 한달음 달려가 파바로티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사했던 소회를 맛깔나게 썼다. 클래식 입문자들에게는 신기하고 부러운 흥미거리가 될 터다. 국내외 주요 음악 이벤트 현장 가장 가까이에서 머무르며 듣고 보고 느낀 이야기를 이 한 권의 책에 담았다.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10년 넘게 일간지 음악 기자로 일한 저자는 클래식 음악을 이해하고 감상함에 있어 기자답게 사람과 현장에 시선을 맞춘다.

한 작곡가 혹은 연주자가 울고 웃으며 살아간 인생을 알면 음악이 다르게 들린다는 말도 공감한다. 저자는 극한의 긴장 속 단 한 번의 무대 위에서 모든 기량을 뽐내야 하는 잔인한 운명에 놓인 연주자들의 이야기, 유명 작곡가들의 치열하고 찬란했던 인생과 그것을 오롯이 담아낸 음악 이야기, 기사에서는 미처 전하지 못한 음악 현장의 뒷이야기, 알쏭달쏭한 클래식 궁금증과 클래식 음악의 이모저모를 마치 음악을 연주하듯 유려하게 담아냈다.



독자의 경험으로 비춰볼 때 클래식을 좋아하는 데는 어려운 음악이론이나 복잡한 음악사를 몰라도 괜찮다는 저자의 주장은 참이다. 사람과 현장을 이해하면 클래식 음악이 더는 졸립거나 어렵지 않다는 말도 설득력을 갖는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클래식과 거리를 뒀던 많은 이들을 클래식 애호가로 만들 자신감을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자신만 알고 있는 현대 클래식계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그리고 아낌없이 풀어놓는다. 독자 입장에서는 호기심이 점점 커지고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하는 매력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독자만의 얘기일까. 이 책을 읽는 사람 모두가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이 단순히 클래식 현장 중계가 아니라 스토리 중심의 얘기를 클래식이 그 장소에 있어서 가치를 더한 장소의 이야기까지 섞여 독자들의 흥미를 한껏 북돋운다. 아울러 클래식 음악의 풍요로움을 믿는 저자가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쓴 글들은 클래식뿐만 아니라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단숨에 읽힐 것이다. 단조로운 일상에 신선한 변화와 풍요로운 삶을 원한다면 ‘오늘부터 클래식’이 필요한 이유다.





이 책은 모두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요즘 콘서트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서는 클래식 공연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담았다. 연주자들의 무대 공포증, 다른 악기 연주자들과는 다르게 유독 피아니스트들만 악보를 외워서 연주하는 이유, 대타로 시작해서 스타가 된 연주자들, 왼손 피아니스트들의 이야기까지 하나하나 호기심을 유발하고 클래식을 흥미롭게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겼다. 독자로서 흥미와 함께 신비로움마저 느껴지는 이야기들이다. 특히 기자가 직접 듣고 느낀 점을 위주로 기술해 놓으니 남들은 모르는 지식을 은근히 나만 알게 되는 것 같다는 묘한 착시감마저 생긴다.

2장 「어떤 사람이 이런 곡을 썼을까?」에서는 유명한 작곡가들의 인생과 그들의 음악을 다룬다. 베토벤, 하이든 등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결코 '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슈만, 라흐마니노프, 라벨, 에릭 사티, 윤이상 등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작곡가들의 인생과 그에 필연적이었던 음악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20세기의 현대음악은 멜로디보다는 리듬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반복되는 리듬으로 연주될 때마다 청중들을 열광시키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볼레로〉가 압권이다. 〈볼레로〉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멜로디 발굴에서 감각적으로 본능을 건드리는 리듬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하는 곡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멋진 음악을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인간으로서 겪었던 불행한 뇌질환이다. 라벨은 1928년에 〈볼레로〉를 썼는데 연구자들은 라벨이 보속증을 앓았을 거라고 본다. 보속증은 ‘손을 들어보시오’ 같은 지시를 한 번 받으면 그 지시가 사라져도, 또는 새로운 지시가 있어도 계속 손을 드는 증상이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볼레로의 반복은 라벨의 건강 상태와 관련 있다. 다른 연구자들은 〈볼레로〉 악보에서 라벨의 필적이 혼란스러워져서 그의 뇌질환이 이 시기에 시작되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3장 「내가 만난 연주자들」에서는 현대의 음악가들을 소개한다. 사이먼 래틀, 안드레아 보첼리, 로린 마젤, 요요마, 손열음, 조성진과 백건우까지. 그들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 나눈 흥미로운 취재담과 그들의 음악을 한층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음악 저변의 상식도 넓힐 수 있다. 그야말로 다른 책에서는 쉽게 읽고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유려한 문장으로 귀에 쏙쏙 들어오게 맛깔스럽게 썼다. 독자들의 흥미는 최고조로 달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4장 「클래식에 대해 정말 궁금한 것들」에서는 다양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다. 지휘자는 뭘 하는 사람인지, 프로들의 세계일 것만 같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당당하게 활동하는 아마추어 음악가들, 비운의 여성 작곡가의 일생 등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들이 가득하다. 이 4장이야말로 정식으로 클래식을 배우지 못한 독자에게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실제 클래식 교육을 받는 듯한 느낌도 들게 한다. 생생하게 느껴지니 기억에도 오래 남으리라.

각 글마다 저자가 추천하는 클래식 명곡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다. 본문 속 이야기의 바로 그 공연을 볼 수 있는 QR코드를 넣었다. 휴대전화로 스캔하는 바로 그 순간, 그곳이 곧 나만의 콘서트홀이 될 것이다.



'저자가 만난 연주자들' 중에서 독자에게 가장 인상적인 연주자는 손열음 피아니스트이다. 손열음은 2009년 미국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2위를 하고 2011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도 2위에 올랐다. 1위를 ‘못하고’ 2위를 한 손열음은 1위와 비교하지 않고 자기 예술을 완성한다. 그 점이 그들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자기만의 예술'을 갖고 있는 연주자는 얼마나 행복할까를 생각하게 하는 피아니스트이다. TV에 출연해 그녀가 선보이는 연주는 진정으로 음악을 즐기는 연주자의 모습으로 늘 독자에게 다가온다.

저자 : 김호정

음악 하는 인생이 일반적인 줄 알고 피아노를 치며 자랐다.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에서 피아노, 언론정보학, 공연예술학으로 학사·석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경찰팀·시청팀, 산업부 유통팀에서 일했다. 이제는 음악 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예술의 풍요함을 신봉한다. 더 많은 사람이 풍족하게 음악을 듣도록 돕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문화부 음악 담당 기자이며, JTBC의 클래식 프로그램 〈고전적 하루〉를 기획·진행했다. 이탈리아 부조니 국제 콩쿠르 라이브스트리밍, 문화재청 덕수궁 석조전 음악회의 사회를 맡았다. 중앙일보 칼럼 ‘왜 음악인가’, 오디오 콘텐츠 〈고전적 하루〉, JTBC 동영상 〈헤이뉴스〉의 ‘헤이 클래식’을 기획 및 진행하고 있으며 클래식 음악과 공연 전반에 걸쳐 글을 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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